오늘도 팍팍한 출근길…혼자라서 외로우면 ‘함께’ [창+]

입력 2024.01.29 (07:00) 수정 2024.01.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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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기획창 '어떤 가족-고립을 넘다' 중에서]

광주광역시 청춘발산마을.

지금의 모습으로는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달동네였습니다.

마을에 새 바람이 불어온 것은 2015년. 지자체와 기업이 힘을 모아 국내 최초, 최대 규모로 진행한 도시재생사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둘, 청년들이 자리를 잡아가며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죠.

<인터뷰> 송명은/ 광주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
나도 좀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 좀 남들도 챙기고 이런 동네에서 또 살고 싶다. 이런 생각들도 이렇게 세대가 같이 만나지 않으면 해보기 어려운 생각들이잖아요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이 점차 사라져 가는 시대.

마을 어른들로부터 인생을 배우게 되면서, 일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아주 살기로 했다는 명은 씨의 말에 ‘사회적 가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춘발산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에서 보기 어려운 특별한 풍경들이 많이 펼쳐집니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폐품을 모아 지역 학생들을 후원해 왔습니다.

<인터뷰> 신삼영/ 청춘발산마을 샘몰경로당 대표
큰 금액은 아니지만 1년에 한번씩 이렇게 해가지고 벌써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마을 경로당의 대표 일을 맡아하고 있는 신삼영 어르신.

마을 청년들에게는 그저 따뜻하고 든든한 어르신이지만, 고등학교 진학 포기와 연이은 가족의 상실로 삶의 끝을 고민했을 만큼, 그의 젊은 날은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살기로 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죠.

<인터뷰> 신삼영/ 청춘발산마을 샘몰경로당 대표
청년들하고 이렇게 만나서 얘기해 보면 청년들은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 또 그런 얘기들<을 노인들에게 배우고 노인들 보면 자기들이 살아왔던 것이 다 옳다고만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한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많이 달라졌어요.

더불어 산다는 삶을 보여주는 것은 이 가게도 마찬가지, 한 몸처럼 합이 착착 맞는 이들은 청년 사장님과 어르신 직원들입니다.

<인터뷰> 이미옥/ 청춘샌드위치 대표
단체 주문이 한 번씩 들어오면 손이 필요하거든요. 마침 먼저 다가와 주셨어요, 저한테. 도와주겠다고. 돈 안 받을 테니까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먼저 이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인터뷰: 이영희/ 청춘샌드위치 직원(92세)
칼질을 잘하는 할머니가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나는 음식이 예쁘게 썰어야 되니까 그런 줄 알았지, 샌드위치 이렇게 이렇게 가르기만 한 것이더만. 그러니까 별로 힘이 든 것이 아니어서 그래서 그때부터 그냥 같이 와서 하게 됐어요.

남의 고생을 그냥 지나칠 줄 모르는 어르신들과 남의 고생에 감사할 줄 아는 청년.

다정한 마음들이 만나 속이 실한 샌드위치가 탄생합니다.

<인터뷰> 이미옥/ 청춘샌드위치 대표
SNS로 홍보를 한다거나 주문 전화를 받는 거, 그거는 청년들이. 어르신들은 같이 샌드위치 만들고 포장하고 스티커 이렇게 천천히 붙여 주시고. 그러면 이렇게 팀워크가 딱 되죠. 많은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없으면 안 돼요. 우리는 그냥 항상 팀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자. 그렇게 항상 구호처럼 하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서로 돌보는 마을.

세대를 뛰어넘어 피가 섞인 가족, 함께 사는 식구보다 더 선명하게 이어져 있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것이
외롭지 않은 세계의 시작이 아닐까 희망해 보았습니다.

<인터뷰> 신삼영/ 청춘발산마을 샘몰경로당 대표
이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으면 폐허가 됩니다. 젊은이들이 없으면 장래가 보장이 안 돼요.

<인터뷰 > 송명은/ 광주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
돌잔치도 마을에서 같이 하고 결혼식도 다같이 가고. 이런 일상이 실은 되게 좀 특별한 일상이지만 저희한테는 그게 항상 매일 매일 있는 일이고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 나오는 것들이 결국에는 성장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어서 참 재미있는 거 같아요

지난 몇 달간 마주한 외로움과 고립은 잠시 스쳐가고 마는, 그래서 혼자 해소하면 그만인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추정하는 우리나라의 고립 인구는 280만 명.

나홀로 가구가 늘고 경쟁이 과열되는 분위기 속에 우리는 점점 더 혼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병남/ 1인 가구· <어떤가족-고립을 넘다> 내레이터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고 듣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낄 때 외로움이 닥쳐오는 거 아닌가. 개인 차원에서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른 그런 결과가 아니겠느냐, 이제 그렇게 생각이 돼요. 우리가 서로서로 보고 있고, 듣고 있고라는 거를 알려주면 그러면 그게 뭔가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 가족이 서로의 안위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시대.

우리가 만난 이들이 문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가족 대신 손을 잡아준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외로움에서 구한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래 혼자 있는 건 아닌지, 너무 오래 닫혀 있는 건 아닌지,

서로의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묻는 누군가가 있단 것만으로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가깝게 연결될 테니까요.


#외로움 #고립 #고독사 #1인가구 #혼삶 #사회적비용 #사회적처방 #가족 #시사기획창 #KBS시사


관련 방송일시: 2024년 1월 23일(화) 밤10시 KBS1TV

취재 기자: 손은혜
촬영 기자: 이재섭 김성현
영상 편집: 김대영
작가 : 박희진
자료조사: 정성연
조연출: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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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9 07:00:14
    • 수정2024-01-29 07: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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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기획창 '어떤 가족-고립을 넘다' 중에서]

광주광역시 청춘발산마을.

지금의 모습으로는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달동네였습니다.

마을에 새 바람이 불어온 것은 2015년. 지자체와 기업이 힘을 모아 국내 최초, 최대 규모로 진행한 도시재생사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둘, 청년들이 자리를 잡아가며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죠.

<인터뷰> 송명은/ 광주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
나도 좀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 좀 남들도 챙기고 이런 동네에서 또 살고 싶다. 이런 생각들도 이렇게 세대가 같이 만나지 않으면 해보기 어려운 생각들이잖아요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이 점차 사라져 가는 시대.

마을 어른들로부터 인생을 배우게 되면서, 일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아주 살기로 했다는 명은 씨의 말에 ‘사회적 가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춘발산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에서 보기 어려운 특별한 풍경들이 많이 펼쳐집니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폐품을 모아 지역 학생들을 후원해 왔습니다.

<인터뷰> 신삼영/ 청춘발산마을 샘몰경로당 대표
큰 금액은 아니지만 1년에 한번씩 이렇게 해가지고 벌써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마을 경로당의 대표 일을 맡아하고 있는 신삼영 어르신.

마을 청년들에게는 그저 따뜻하고 든든한 어르신이지만, 고등학교 진학 포기와 연이은 가족의 상실로 삶의 끝을 고민했을 만큼, 그의 젊은 날은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살기로 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죠.

<인터뷰> 신삼영/ 청춘발산마을 샘몰경로당 대표
청년들하고 이렇게 만나서 얘기해 보면 청년들은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 또 그런 얘기들<을 노인들에게 배우고 노인들 보면 자기들이 살아왔던 것이 다 옳다고만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한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많이 달라졌어요.

더불어 산다는 삶을 보여주는 것은 이 가게도 마찬가지, 한 몸처럼 합이 착착 맞는 이들은 청년 사장님과 어르신 직원들입니다.

<인터뷰> 이미옥/ 청춘샌드위치 대표
단체 주문이 한 번씩 들어오면 손이 필요하거든요. 마침 먼저 다가와 주셨어요, 저한테. 도와주겠다고. 돈 안 받을 테니까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먼저 이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인터뷰: 이영희/ 청춘샌드위치 직원(92세)
칼질을 잘하는 할머니가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나는 음식이 예쁘게 썰어야 되니까 그런 줄 알았지, 샌드위치 이렇게 이렇게 가르기만 한 것이더만. 그러니까 별로 힘이 든 것이 아니어서 그래서 그때부터 그냥 같이 와서 하게 됐어요.

남의 고생을 그냥 지나칠 줄 모르는 어르신들과 남의 고생에 감사할 줄 아는 청년.

다정한 마음들이 만나 속이 실한 샌드위치가 탄생합니다.

<인터뷰> 이미옥/ 청춘샌드위치 대표
SNS로 홍보를 한다거나 주문 전화를 받는 거, 그거는 청년들이. 어르신들은 같이 샌드위치 만들고 포장하고 스티커 이렇게 천천히 붙여 주시고. 그러면 이렇게 팀워크가 딱 되죠. 많은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없으면 안 돼요. 우리는 그냥 항상 팀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자. 그렇게 항상 구호처럼 하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서로 돌보는 마을.

세대를 뛰어넘어 피가 섞인 가족, 함께 사는 식구보다 더 선명하게 이어져 있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것이
외롭지 않은 세계의 시작이 아닐까 희망해 보았습니다.

<인터뷰> 신삼영/ 청춘발산마을 샘몰경로당 대표
이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으면 폐허가 됩니다. 젊은이들이 없으면 장래가 보장이 안 돼요.

<인터뷰 > 송명은/ 광주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
돌잔치도 마을에서 같이 하고 결혼식도 다같이 가고. 이런 일상이 실은 되게 좀 특별한 일상이지만 저희한테는 그게 항상 매일 매일 있는 일이고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 나오는 것들이 결국에는 성장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어서 참 재미있는 거 같아요

지난 몇 달간 마주한 외로움과 고립은 잠시 스쳐가고 마는, 그래서 혼자 해소하면 그만인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추정하는 우리나라의 고립 인구는 280만 명.

나홀로 가구가 늘고 경쟁이 과열되는 분위기 속에 우리는 점점 더 혼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병남/ 1인 가구· <어떤가족-고립을 넘다> 내레이터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고 듣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낄 때 외로움이 닥쳐오는 거 아닌가. 개인 차원에서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른 그런 결과가 아니겠느냐, 이제 그렇게 생각이 돼요. 우리가 서로서로 보고 있고, 듣고 있고라는 거를 알려주면 그러면 그게 뭔가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 가족이 서로의 안위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시대.

우리가 만난 이들이 문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가족 대신 손을 잡아준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외로움에서 구한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래 혼자 있는 건 아닌지, 너무 오래 닫혀 있는 건 아닌지,

서로의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묻는 누군가가 있단 것만으로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가깝게 연결될 테니까요.


#외로움 #고립 #고독사 #1인가구 #혼삶 #사회적비용 #사회적처방 #가족 #시사기획창 #KBS시사


관련 방송일시: 2024년 1월 23일(화) 밤10시 KBS1TV

취재 기자: 손은혜
촬영 기자: 이재섭 김성현
영상 편집: 김대영
작가 : 박희진
자료조사: 정성연
조연출: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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