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간첩단 사건 첫 재판…“판사님이 내려와서 확인하세요”

입력 2024.01.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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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KBS 제주 DB제주지방법원. KBS 제주 DB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반정부 활동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제주 간첩단 사건' 첫 재판이 검찰 기소 9개월여 만에 열렸습니다.

그러나 공판 절차에 반발한 피고인과 변호인단이 재판 시작 30분도 안 돼 단체로 임의 퇴정하며 파행을 빚었습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오늘(29일) 오후 2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은주(53)·박현우(48) 전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과 고창건(53)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검찰이 지난해 4월 피고인들을 재판에 넘겼지만, 첫 공판이 이제서야 열린 건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놓고 법원 판단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피고인 측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국민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까지 가며 다툰 끝에 국민참여재판은 최종 불허돼 해를 넘기고서야 첫 공판이 열리게 된 겁니다.

■ 재판 시작부터 실랑이…판사가 신원 묻자 "직접 내려와서 확인하시라"

첫 재판은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직업, 주소를 묻는 인정 신문 절차에 피고인들은 일체 침묵하며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질문을 하려면 권리 보장을 위해 고지부터 하라"고 요구하자 재판장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하기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강 전 위원장에게 재판장이 신원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강 씨의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가 "(피고인은) 암 환자다. 형사소송법상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근거가 있느냐"며 거부했습니다.

재판장이 강 씨를 향해 자리에서 일어서 달라고 하자 변호인은 "정 필요하시면 제가 주민등록증을 드리겠다"며 "판사님이 확인하러 (피고인석으로) 내려오세요. 확인해드리겠다"고 날 선 신경전을 펼쳤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 신분 확인을 위한 절차다. 얼굴 실물과 신체, 체격 등을 다 봐야 한다"고 하자 변호인은 "일어서지 않아서 확인이 안 되는 건가. 제가 판사님 신분 확인을 해도 되느냐. 세 분 판사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되받아쳤습니다.

장 변호사는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가 앉아 있는 법대 앞으로 걸어가다가, 법정 경위들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피고인들도 신분 확인 절차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10여 분 가까이 이어진 실랑이는 검찰 측에서 "모두 피고인들이 맞는다"고 신분을 확인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 "졸속 재판" 항의하며 피고인·변호인단 단체 퇴정…공판 그대로 진행

하지만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또다시 재판부와 변호인 측이 충돌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지난해 4차례 열린 공판준비기일 녹음물도 조서에 포함해달라"며 조서 변경을 청구했습니다. 향후 상급심 재판부가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판준비절차가 적법하게 종결됐다"면서 조서 변경 청구를 기각하고 공판 절차를 이어갔습니다.

변호인 측은 이에 "재판부가 공판 조서 변경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관해 설명도 없이 재판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합의 재판부에서 판사 간 협의 없이 재판장이 독단적으로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항의를 이어갔습니다.


재판부가 끝내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피고인과 변호인 측은 "졸속 재판"이라며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인사들과 함께 단체로 자리에서 일어나 퇴정했습니다.

재판이 시작한 지 25분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재판장이 "퇴정을 불허한다"며 자리에 앉을 것을 거듭 고지했지만, 일부는 "이게 공정한 재판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피고인과 변호인 측이 모두 임의로 퇴정한 경우에도 재판을 진행한 사례가 있다"며 피고인과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첫 공판은 검사의 기소요지 진술과 증인신청 등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검찰은 공판 종료 직전 재판부를 향해 "기소한 지 1년 가까이 되는 사건"이라며 신속한 재판 진행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그게 타당하다고 본다"며 공감했지만, 다음 달 19일 예정된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장이 바뀔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다음 공판기일을 2개만 지정했습니다.

이 사건 2차 공판은 다음 달 26일 오후 2시에 제주지법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강은주 전 위원장은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3명을 만나, 제주 지하조직 결성과 운용 등을 논의하고, 박현우 도당위원장·고창건 사무총장과 공모해 제주에서 이적단체 'ㅎㄱㅎ'을 조직한 혐의를 받습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북한 지령에 따라 전국민중대회, 윤석열 정권 심판, 한미 국방장관 회담 규탄 회견 등을 통해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고, 북한 대남공작전략에 이익이 되는 각종 대북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는 등 친북 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고인 측은 공소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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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9 19: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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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KBS 제주 DB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반정부 활동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제주 간첩단 사건' 첫 재판이 검찰 기소 9개월여 만에 열렸습니다.

그러나 공판 절차에 반발한 피고인과 변호인단이 재판 시작 30분도 안 돼 단체로 임의 퇴정하며 파행을 빚었습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오늘(29일) 오후 2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은주(53)·박현우(48) 전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과 고창건(53)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검찰이 지난해 4월 피고인들을 재판에 넘겼지만, 첫 공판이 이제서야 열린 건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놓고 법원 판단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피고인 측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국민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까지 가며 다툰 끝에 국민참여재판은 최종 불허돼 해를 넘기고서야 첫 공판이 열리게 된 겁니다.

■ 재판 시작부터 실랑이…판사가 신원 묻자 "직접 내려와서 확인하시라"

첫 재판은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직업, 주소를 묻는 인정 신문 절차에 피고인들은 일체 침묵하며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질문을 하려면 권리 보장을 위해 고지부터 하라"고 요구하자 재판장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하기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강 전 위원장에게 재판장이 신원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강 씨의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가 "(피고인은) 암 환자다. 형사소송법상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근거가 있느냐"며 거부했습니다.

재판장이 강 씨를 향해 자리에서 일어서 달라고 하자 변호인은 "정 필요하시면 제가 주민등록증을 드리겠다"며 "판사님이 확인하러 (피고인석으로) 내려오세요. 확인해드리겠다"고 날 선 신경전을 펼쳤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 신분 확인을 위한 절차다. 얼굴 실물과 신체, 체격 등을 다 봐야 한다"고 하자 변호인은 "일어서지 않아서 확인이 안 되는 건가. 제가 판사님 신분 확인을 해도 되느냐. 세 분 판사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되받아쳤습니다.

장 변호사는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가 앉아 있는 법대 앞으로 걸어가다가, 법정 경위들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피고인들도 신분 확인 절차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10여 분 가까이 이어진 실랑이는 검찰 측에서 "모두 피고인들이 맞는다"고 신분을 확인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 "졸속 재판" 항의하며 피고인·변호인단 단체 퇴정…공판 그대로 진행

하지만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또다시 재판부와 변호인 측이 충돌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지난해 4차례 열린 공판준비기일 녹음물도 조서에 포함해달라"며 조서 변경을 청구했습니다. 향후 상급심 재판부가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판준비절차가 적법하게 종결됐다"면서 조서 변경 청구를 기각하고 공판 절차를 이어갔습니다.

변호인 측은 이에 "재판부가 공판 조서 변경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관해 설명도 없이 재판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합의 재판부에서 판사 간 협의 없이 재판장이 독단적으로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항의를 이어갔습니다.


재판부가 끝내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피고인과 변호인 측은 "졸속 재판"이라며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인사들과 함께 단체로 자리에서 일어나 퇴정했습니다.

재판이 시작한 지 25분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재판장이 "퇴정을 불허한다"며 자리에 앉을 것을 거듭 고지했지만, 일부는 "이게 공정한 재판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피고인과 변호인 측이 모두 임의로 퇴정한 경우에도 재판을 진행한 사례가 있다"며 피고인과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첫 공판은 검사의 기소요지 진술과 증인신청 등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검찰은 공판 종료 직전 재판부를 향해 "기소한 지 1년 가까이 되는 사건"이라며 신속한 재판 진행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그게 타당하다고 본다"며 공감했지만, 다음 달 19일 예정된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장이 바뀔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다음 공판기일을 2개만 지정했습니다.

이 사건 2차 공판은 다음 달 26일 오후 2시에 제주지법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강은주 전 위원장은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3명을 만나, 제주 지하조직 결성과 운용 등을 논의하고, 박현우 도당위원장·고창건 사무총장과 공모해 제주에서 이적단체 'ㅎㄱㅎ'을 조직한 혐의를 받습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북한 지령에 따라 전국민중대회, 윤석열 정권 심판, 한미 국방장관 회담 규탄 회견 등을 통해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고, 북한 대남공작전략에 이익이 되는 각종 대북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는 등 친북 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고인 측은 공소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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