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차량 아니었어?”…‘공무수행’ 차주 정체 알고 보니

입력 2024.02.02 (12:00) 수정 2024.02.02 (12: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A 씨는 2020년 온라인 구매사이트에서 '검찰 마크'가 새겨진 세 개의 차량 표지판을 제작 의뢰했습니다.

하나는 검찰 업무표장 아래 ‘검찰 PROSECUTION SERVICE'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A 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넣은 주차 표지판(제1표지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검찰 업무표장 아래 ’검찰 PROSECUTION OFFICE'라는 문구가 있고 그 아래 A 씨의 승용차 번호가 적힌 표지판(제2표지판)이었으며, 마지막 것은 검찰 업무표장 아래 '검찰 PROSECUTION SERVICE 공무수행'이라고 표시한 표지판(제3표지판)이었습니다.

해당 업무표장은 검찰이 모두 상표 등록을 한 것이었습니다. 수사·공판 업무, 각종 행사·홍보 업무 등에 실제 사용하고 있는 표장이었습니다.


A 씨는 2020년 11월부터 12월까지 이렇게 주문한 표지판 3개를 승용차에 부착하고 다녔습니다.

A 씨의 행위가 적발된 건 한 시민이 이런 검찰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이 장기간 회사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것을 의아하게 여겨 민원 신고를 넣으면서였습니다.

평소 A 씨는 회사 동료에게 '검찰청에 근무하는 검사 사촌 형이 차량을 빌려 갔다가 부착한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해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제1 표지판은 2016년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방문하여 기념품으로 받은 것을 부착한 것이고, 제2, 3 표지판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사촌 형이 차량을 빌려가 부착한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A 씨는 각각 행사할 목적으로 공기호인 검찰청 업무표장을 각각 위조한 혐의(공기호위조), 이를 승용차에 부착하고 다녀 위조된 공기호인 검찰청 업무표장을 행사한 혐의(위조공기호행사)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형법 제238조 (공인등의 위조, 부정사용)
①행사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행사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238조는 공기호를 위조하거나 사용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용하는 경우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기호'란, 그 부호를 통하여 증명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고 해당 사항이 그 부호에 의하여 증명이 이루어질 것이 요구됩니다. 해당 부호를 공무원 또는 공무소가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하급심 "검찰 공무 수행 차량과 동일성 오해하기에 충분" 집행유예

A 씨는 재판에서 △검찰 표장은 특정한 사항에 관한 증명성이나 특정성이 없어 '공기호'에 해당하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구매한 것에 불과하므로 피고인이 위조한 사실이 없으며 △차량에 부착한 것만으로는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은 그러나 A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혐의를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법원은 "범행에 사용된 업무표장은 '검찰 CI(로고)'와 '검찰 CM(마크)'로,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에 이르기까지 검찰청의 업무 자체 혹은 업무와의 관련성을 증명하기 위한 부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 씨가 제작하여 행사한 표지판은 '주차표지판' 및 '승용차번호 표지판' 외에 '공무수행중' 표지판이 있고, 이를 차량의 앞뒷면에 부착하여 사용하였는바, 이 사건 각 표지판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일반인에게 위 자동차의 검찰 공무 수행 차량과의 동일성 혹은 관련성을 오인하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지판을 판매한 인터넷 쇼핑몰의 주문방식을 보면 피고인이 기성 완제품을 단순히 구매한 것이 아니라 상품 판매자에게 주문할 때 표지판에 넣을 마크를 고른 다음 피고인의 개인 휴대폰 번호와 차량번호를 작성·전달하여 이를 각 표지판에 새기도록 하여 완성한다"며 공기호 위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피고인이 이 사건 각 표지판을 차량에 부착하여 상당 기간 위 차량을 실제로 운행하고 다닌 점 △각 표지판은 단순히 검찰 표장만 각인된 것이 아니라 ‘공무 수행 중’임을 드러내고 있기도 한 점 등을 들어, A 씨가 표지판을 마치 진정한 것처럼 부착해 운행함으로써 검찰 공무 수행 차량과의 동일성을 착각하게 할 염려가 있다며 '위조 공기호 행사' 혐의도 인정했습니다.

2심 결론 역시 1심과 같았고, A 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7. (관명사칭 등) 국내외의 공직(公職), 계급, 훈장, 학위 또는 그 밖에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명칭이나 칭호 등을 거짓으로 꾸며 대거나 자격이 없으면서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제복, 훈장, 기장 또는 기념장(記念章), 그 밖의 표장(標章)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사람

■ 대법원 "업무표장은 공기호 아냐…다시 재판"

하지만 대법원은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재판부는 "각 표지판에 사용된 검찰 업무표장은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 등 검찰청의 업무 전반 또는 검찰청 업무와의 관련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 이것이 부착된 차량은 ‘검찰 공무 수행 차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능이 있다는 등 이를 통하여 증명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다거나 그 사항이 이러한 검찰 업무표장에 의하여 증명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일반인들이 이 사건 각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을 '검찰 공무 수행 차량'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해도 위 각 검찰 업무표장이 위와 같은 증명적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이를 공기호라고 할 수는 없다"며,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다만 공기호 위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해도, A 씨에겐 경범죄 처벌법상 '관명사칭(제3조 제7호)' 혐의가 적용될 여지도 있어 보입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검찰 차량 아니었어?”…‘공무수행’ 차주 정체 알고 보니
    • 입력 2024-02-02 12:00:31
    • 수정2024-02-02 12:41:51
    심층K

A 씨는 2020년 온라인 구매사이트에서 '검찰 마크'가 새겨진 세 개의 차량 표지판을 제작 의뢰했습니다.

하나는 검찰 업무표장 아래 ‘검찰 PROSECUTION SERVICE'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A 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넣은 주차 표지판(제1표지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검찰 업무표장 아래 ’검찰 PROSECUTION OFFICE'라는 문구가 있고 그 아래 A 씨의 승용차 번호가 적힌 표지판(제2표지판)이었으며, 마지막 것은 검찰 업무표장 아래 '검찰 PROSECUTION SERVICE 공무수행'이라고 표시한 표지판(제3표지판)이었습니다.

해당 업무표장은 검찰이 모두 상표 등록을 한 것이었습니다. 수사·공판 업무, 각종 행사·홍보 업무 등에 실제 사용하고 있는 표장이었습니다.


A 씨는 2020년 11월부터 12월까지 이렇게 주문한 표지판 3개를 승용차에 부착하고 다녔습니다.

A 씨의 행위가 적발된 건 한 시민이 이런 검찰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이 장기간 회사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것을 의아하게 여겨 민원 신고를 넣으면서였습니다.

평소 A 씨는 회사 동료에게 '검찰청에 근무하는 검사 사촌 형이 차량을 빌려 갔다가 부착한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해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제1 표지판은 2016년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방문하여 기념품으로 받은 것을 부착한 것이고, 제2, 3 표지판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사촌 형이 차량을 빌려가 부착한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A 씨는 각각 행사할 목적으로 공기호인 검찰청 업무표장을 각각 위조한 혐의(공기호위조), 이를 승용차에 부착하고 다녀 위조된 공기호인 검찰청 업무표장을 행사한 혐의(위조공기호행사)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형법 제238조 (공인등의 위조, 부정사용)
①행사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행사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238조는 공기호를 위조하거나 사용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용하는 경우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기호'란, 그 부호를 통하여 증명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고 해당 사항이 그 부호에 의하여 증명이 이루어질 것이 요구됩니다. 해당 부호를 공무원 또는 공무소가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하급심 "검찰 공무 수행 차량과 동일성 오해하기에 충분" 집행유예

A 씨는 재판에서 △검찰 표장은 특정한 사항에 관한 증명성이나 특정성이 없어 '공기호'에 해당하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구매한 것에 불과하므로 피고인이 위조한 사실이 없으며 △차량에 부착한 것만으로는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은 그러나 A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혐의를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법원은 "범행에 사용된 업무표장은 '검찰 CI(로고)'와 '검찰 CM(마크)'로,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에 이르기까지 검찰청의 업무 자체 혹은 업무와의 관련성을 증명하기 위한 부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 씨가 제작하여 행사한 표지판은 '주차표지판' 및 '승용차번호 표지판' 외에 '공무수행중' 표지판이 있고, 이를 차량의 앞뒷면에 부착하여 사용하였는바, 이 사건 각 표지판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일반인에게 위 자동차의 검찰 공무 수행 차량과의 동일성 혹은 관련성을 오인하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지판을 판매한 인터넷 쇼핑몰의 주문방식을 보면 피고인이 기성 완제품을 단순히 구매한 것이 아니라 상품 판매자에게 주문할 때 표지판에 넣을 마크를 고른 다음 피고인의 개인 휴대폰 번호와 차량번호를 작성·전달하여 이를 각 표지판에 새기도록 하여 완성한다"며 공기호 위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피고인이 이 사건 각 표지판을 차량에 부착하여 상당 기간 위 차량을 실제로 운행하고 다닌 점 △각 표지판은 단순히 검찰 표장만 각인된 것이 아니라 ‘공무 수행 중’임을 드러내고 있기도 한 점 등을 들어, A 씨가 표지판을 마치 진정한 것처럼 부착해 운행함으로써 검찰 공무 수행 차량과의 동일성을 착각하게 할 염려가 있다며 '위조 공기호 행사' 혐의도 인정했습니다.

2심 결론 역시 1심과 같았고, A 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7. (관명사칭 등) 국내외의 공직(公職), 계급, 훈장, 학위 또는 그 밖에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명칭이나 칭호 등을 거짓으로 꾸며 대거나 자격이 없으면서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제복, 훈장, 기장 또는 기념장(記念章), 그 밖의 표장(標章)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사람

■ 대법원 "업무표장은 공기호 아냐…다시 재판"

하지만 대법원은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재판부는 "각 표지판에 사용된 검찰 업무표장은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 등 검찰청의 업무 전반 또는 검찰청 업무와의 관련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 이것이 부착된 차량은 ‘검찰 공무 수행 차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능이 있다는 등 이를 통하여 증명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다거나 그 사항이 이러한 검찰 업무표장에 의하여 증명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일반인들이 이 사건 각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을 '검찰 공무 수행 차량'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해도 위 각 검찰 업무표장이 위와 같은 증명적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이를 공기호라고 할 수는 없다"며,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다만 공기호 위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해도, A 씨에겐 경범죄 처벌법상 '관명사칭(제3조 제7호)' 혐의가 적용될 여지도 있어 보입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