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여권에 담긴 비밀 [창+]

입력 2024.02.04 (09:00) 수정 2024.02.0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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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타이완 민주주의_중국에 대답하다' 중에서]

타이완에서도 중국 대륙 수복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사람, 타이완의 국부로 불리는 장제스다.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지만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뚱에 패배하고,
200만명을 이끌고 타이완 섬으로 건너온 인물.

그런데, 여기도 장제스 동상, 저기도 장제스 동상이다.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표정도 제각각이다.

발밑 동판에 동상이 원래 서있던 자리를 새겨놓았다.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던 동상들이 특히 많다.

<인터뷰> 지/퇴직 교사
나중에 총통이 바뀌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장제스 동상들을 여기로 운반한 다음에 전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이완 민주화 이후 독재자란 꼬리표가 붙으면서 동상들이 철거됐는데, 그중 일부를 이곳에 모아 놓았다.

바로 옆에 장제스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1975년, 장제스는 타이완에서 눈을 감았다.

<인터뷰> 지/퇴직 교사
마치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았어요.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겼죠. 그래서 국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팔에 검은색 천을 둘렀어요. 유해가 안치된 곳에 가서 조문을 했었죠.

하얀 십자가 뒤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장제스가 누워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장제스의 관은 땅속에 묻히지 않고 땅 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인터뷰> 지/퇴직 교사
“=장제스의 소원이었어요. 장제스는 중국 저장성 출신인데 고향에 돌아가서 하관되고 싶어 했어요. 지금은 정치적인 요인 때문에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임시로 여기에 안치돼 있는 거죠.

대륙을 수복한 뒤에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장제스의 유언.

세상을 떠난 지 50년 가까이 지나도록 땅속에 묻히지 못했던 이유다.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의 거대한 장제스 동상,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남쪽도 북쪽도 아닌, 북서쪽, 바로 중국 대륙이다.

하지만, 장제스의 유언이 이루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요즘 타이완 젊은이들은 대륙 수복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인터뷰> 베이가이오즈/ 타이완 청년
(여러분들은 타이완인입니까?) “네, 우리는 모두 타이완인입니다.”
(중국인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중국인이 아니니 중국 대륙을 수복할 이유도 없다.

<인터뷰> 베이가이오즈/ 타이완 청년
“딱히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저는 타이완 사람입니다. 저는 뭐 소속된 정당도 없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타이완은 타이완이고 중국은 중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박병배/ 타이완 중앙연구원 박사
“타이완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좀 바꿔 이야기하면 정치적으로 중국하고는 하나가 될 생각이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20여년 전만 해도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인터뷰> 크리스티나 라이/ 타이완 중앙연구원
“타이완 유권자들 사이에 세대차이가 있습니다. 4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타이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완의 젊은이들은 점차 지역적인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타이완이 199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런 정체성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타이완의 여권이다.

20년전 여권에는 헌법상 정식 국호인 ‘중화민국’, 영어로 ‘REPUBLIC OF CHINA’만 적혀 있다.

2000년대 들어 민진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TAIWAN’이라는 영문 글씨가 추가되었다.

<녹취> 리처드 시 / 당시 타이완 외교부 대변인(2003년)
"타이완 사람들이 해외에 가면 중국 여권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이완이라는 글씨를 넣은 이후에는 훨씬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티커를 붙여 CHINA를 지우고 타이완을 내세우는 놀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대만국, REPUBLIC OF TAIWAN.

<인터뷰> 타이완 시민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은 입장에서는 차이나가 없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인터뷰> 박병배/ 타이완 중앙연구원 박사
“이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남북관게라고 하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코리아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는데, 갑자기 북조선, 남조선 하는 순간 되게 당황하지 않습니까? 딱 그런 느낌이거든요. / 2220 중국이나 일본에서 갑자기 조선반도 문제라고 표현하게 되면 ‘어 이게 뭐지?’라는 식의 약간 이질감을 느끼는 건데...”

3년 전에는 차이잉원 정부가 또다시 새 여권을 내놓았다.

‘TAIWAN’이라는 영문 글씨를 더 크게 키웠다.

‘중화민국’이란 헌법상 정식 국호는 남겨둘 수 밖에 없지만, 영문명 ‘REPUBLIC OF CHINA’는 작은 글씨로 새겨 동그란 테두리 안에 넣어버렸다.

<인터뷰> 박병배/ 타이완 중앙연구원 박사
“민진당 입장에서는 타이완을 강조하고 싶은, 그걸 또 정책적으로 보여준, 행동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리퍼블릭 오브 차이나’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거든요. 헌법에 국호로 들어있기 때문에...

<인터뷰> 하오/ 타이완 시민
“그냥 그저 그래요. / 0800 옛날 여권이 예뻐요. 어려서부터 쓰던 것이기도 하고요. 옛날 여권이 익숙해요. /0832 현 정부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중국 당국은 타이완 독립을 위한 민진당의 도발로 받아들였다.

<녹취> 화춘잉 /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 (2021년)
”민진당이 어떤 장난을 치든 타이완은 중국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중국의 반응에, 신중함을 주문하던 사람들조차도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터뷰> 하오/ 타이완 시민
(중국 정부에서는 싫어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건 그 사람들 문제고요. 제가 해외에 놀러가는 데 방해만 안 되면 상관 없어요



#중국 #타이완 #총통_선거 #미중패권 #라이칭더 #시사기획창 #KBS시사

방송일시: 2024년 1월 30일 밤 10시(KBS 1TV)
취재기자: 박성래
촬영기자: 고영민
영상편집: 이종환
자료조사: 이란희
조연출: 진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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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4 09:00:32
    • 수정2024-02-04 0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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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타이완 민주주의_중국에 대답하다' 중에서]

타이완에서도 중국 대륙 수복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사람, 타이완의 국부로 불리는 장제스다.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지만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뚱에 패배하고,
200만명을 이끌고 타이완 섬으로 건너온 인물.

그런데, 여기도 장제스 동상, 저기도 장제스 동상이다.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표정도 제각각이다.

발밑 동판에 동상이 원래 서있던 자리를 새겨놓았다.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던 동상들이 특히 많다.

<인터뷰> 지/퇴직 교사
나중에 총통이 바뀌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장제스 동상들을 여기로 운반한 다음에 전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이완 민주화 이후 독재자란 꼬리표가 붙으면서 동상들이 철거됐는데, 그중 일부를 이곳에 모아 놓았다.

바로 옆에 장제스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1975년, 장제스는 타이완에서 눈을 감았다.

<인터뷰> 지/퇴직 교사
마치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았어요.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겼죠. 그래서 국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팔에 검은색 천을 둘렀어요. 유해가 안치된 곳에 가서 조문을 했었죠.

하얀 십자가 뒤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장제스가 누워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장제스의 관은 땅속에 묻히지 않고 땅 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인터뷰> 지/퇴직 교사
“=장제스의 소원이었어요. 장제스는 중국 저장성 출신인데 고향에 돌아가서 하관되고 싶어 했어요. 지금은 정치적인 요인 때문에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임시로 여기에 안치돼 있는 거죠.

대륙을 수복한 뒤에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장제스의 유언.

세상을 떠난 지 50년 가까이 지나도록 땅속에 묻히지 못했던 이유다.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의 거대한 장제스 동상,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남쪽도 북쪽도 아닌, 북서쪽, 바로 중국 대륙이다.

하지만, 장제스의 유언이 이루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요즘 타이완 젊은이들은 대륙 수복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인터뷰> 베이가이오즈/ 타이완 청년
(여러분들은 타이완인입니까?) “네, 우리는 모두 타이완인입니다.”
(중국인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중국인이 아니니 중국 대륙을 수복할 이유도 없다.

<인터뷰> 베이가이오즈/ 타이완 청년
“딱히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저는 타이완 사람입니다. 저는 뭐 소속된 정당도 없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타이완은 타이완이고 중국은 중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박병배/ 타이완 중앙연구원 박사
“타이완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좀 바꿔 이야기하면 정치적으로 중국하고는 하나가 될 생각이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20여년 전만 해도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인터뷰> 크리스티나 라이/ 타이완 중앙연구원
“타이완 유권자들 사이에 세대차이가 있습니다. 4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타이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완의 젊은이들은 점차 지역적인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타이완이 199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런 정체성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타이완의 여권이다.

20년전 여권에는 헌법상 정식 국호인 ‘중화민국’, 영어로 ‘REPUBLIC OF CHINA’만 적혀 있다.

2000년대 들어 민진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TAIWAN’이라는 영문 글씨가 추가되었다.

<녹취> 리처드 시 / 당시 타이완 외교부 대변인(2003년)
"타이완 사람들이 해외에 가면 중국 여권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이완이라는 글씨를 넣은 이후에는 훨씬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티커를 붙여 CHINA를 지우고 타이완을 내세우는 놀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대만국, REPUBLIC OF TAIWAN.

<인터뷰> 타이완 시민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은 입장에서는 차이나가 없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인터뷰> 박병배/ 타이완 중앙연구원 박사
“이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남북관게라고 하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코리아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는데, 갑자기 북조선, 남조선 하는 순간 되게 당황하지 않습니까? 딱 그런 느낌이거든요. / 2220 중국이나 일본에서 갑자기 조선반도 문제라고 표현하게 되면 ‘어 이게 뭐지?’라는 식의 약간 이질감을 느끼는 건데...”

3년 전에는 차이잉원 정부가 또다시 새 여권을 내놓았다.

‘TAIWAN’이라는 영문 글씨를 더 크게 키웠다.

‘중화민국’이란 헌법상 정식 국호는 남겨둘 수 밖에 없지만, 영문명 ‘REPUBLIC OF CHINA’는 작은 글씨로 새겨 동그란 테두리 안에 넣어버렸다.

<인터뷰> 박병배/ 타이완 중앙연구원 박사
“민진당 입장에서는 타이완을 강조하고 싶은, 그걸 또 정책적으로 보여준, 행동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리퍼블릭 오브 차이나’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거든요. 헌법에 국호로 들어있기 때문에...

<인터뷰> 하오/ 타이완 시민
“그냥 그저 그래요. / 0800 옛날 여권이 예뻐요. 어려서부터 쓰던 것이기도 하고요. 옛날 여권이 익숙해요. /0832 현 정부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중국 당국은 타이완 독립을 위한 민진당의 도발로 받아들였다.

<녹취> 화춘잉 /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 (2021년)
”민진당이 어떤 장난을 치든 타이완은 중국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중국의 반응에, 신중함을 주문하던 사람들조차도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터뷰> 하오/ 타이완 시민
(중국 정부에서는 싫어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건 그 사람들 문제고요. 제가 해외에 놀러가는 데 방해만 안 되면 상관 없어요



#중국 #타이완 #총통_선거 #미중패권 #라이칭더 #시사기획창 #KBS시사

방송일시: 2024년 1월 30일 밤 10시(KBS 1TV)
취재기자: 박성래
촬영기자: 고영민
영상편집: 이종환
자료조사: 이란희
조연출: 진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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