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60대 여성은 어쩌다 사망했을까 [취재후]

입력 2024.02.05 (07:05) 수정 2024.02.0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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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응급실로 옮겨지는 여성지난달 26일 오후 응급실로 옮겨지는 여성

60대 여성이 쓰러진 건 지난달 26일입니다. 평소처럼 수영 강습을 받기 위해 부산의 한 체육시설을 찾았고, 수업 전 몸을 풀려고 몇 바퀴 수영했습니다. 그러고선 '몸 상태가 안 좋다'며 물 밖으로 나와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수영장 관계자는 급히 상태를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습니다. 신고 시각은 오후 4시 3분. 119구조대가 즉시 출동했지만 도착했을 때 여성은 이미 심정지로 혼수상태였습니다.

119구조대는 '심정지 환자'라는 사실을 인근 병원에 알리고, 가장 가까운 상급종합병원인 A 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체육시설에서 1.5km, 차로 4분 거리에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하지만 A 대학병원은 환자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당장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구급차를 몰던 119구급대는 대학병원에 도착하고서야 이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여성은 대학병원에서 3.6km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구급차가 다른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2분, 신고 접수 후 29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한 여성은 심폐소생술 등 응급 조치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숨진 여성이 이송될 때는 심정지 상태, 말 그대로 '응급 환자'였습니다. 사망 판정을 받은 병원의 '응급실 간호 기록지'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도구, 이른바 'KTAS' 단계는 '1단계'입니다. KTAS 1단계는 '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로 진료 우선 순위 역시 ' 최우선'입니다.

유족은 1분 1초가 급한 응급환자를 병원에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걸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어디 있냐고 (체육시설에) 물으니 이미 돌아서 다른 병원으로 간대요. 겨우 택시를 잡아서 다른 병원으로 갔어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거야. (그러곤) '사망했습니다', 딱 하는 거예요. 그냥 억울해서 눈물밖에 안 나니까… -숨진 60대 여성의 남편 박기종 씨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으로 돌아간 '응급실'

환자 수용 불가를 통보한 부산의 한 대학 병원환자 수용 불가를 통보한 부산의 한 대학 병원

A 대학병원 측에 당시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병원 측은 " 수용 불가를 소방 상황실에 즉시 통보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정해진 절차대로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를 했다는 취지입니다.

수용 불가의 이유가 뭐였을까요? 병원 측은 심정지 환자를 받으려면 기도 삽관, 흉부 압박 등의 작업을 하기 위해 최소 3명의 의사가 필요한데, 당시 모든 의사가 수술이나 외래진료 중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당시 A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2명'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총원은 3명인데 한 명은 휴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숨진 여성을 받아 뒤늦게 응급 조치하고, 사망 판정을 내린 병원 상황은 어땠을까요?

이 병원 역시 종합병원이지만 A 대학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 일반 종합병원입니다. 병상 수는 A 대학병원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응급 전문의 수는 2명으로 A 대학병원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역 응급의료·필수 의료 붕괴 '방증'하는 사건"


저 혼자 어찌 살아갈 겁니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도를 (마련)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아픈 사람이 죽는다는 건 말도 아니고…-숨진 60대 여성 남편 박기종 씨

A 대학병원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유족의 수사 요청으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다만 의료계에선 이번 사건이 A 대학병원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시가 급한 환자를 외면했다는 비판은 일단 차치하고, 응급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응급 전문의가 4명에서 6명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의료계 관계자는 " 응급의료 체계와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 되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력은 없고, 법적 위험은 크니 결국 전공의들의 응급실 지원이 떨어진다"면서 "그런데 이런 현상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의료 개혁을 주제로 한 민생 토론회에서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A 대학병원에선 남아있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가운데 한 명이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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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급실 뺑뺑이’ 60대 여성은 어쩌다 사망했을까 [취재후]
    • 입력 2024-02-05 07:05:17
    • 수정2024-02-05 07:05:27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26일 오후 응급실로 옮겨지는 여성
60대 여성이 쓰러진 건 지난달 26일입니다. 평소처럼 수영 강습을 받기 위해 부산의 한 체육시설을 찾았고, 수업 전 몸을 풀려고 몇 바퀴 수영했습니다. 그러고선 '몸 상태가 안 좋다'며 물 밖으로 나와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수영장 관계자는 급히 상태를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습니다. 신고 시각은 오후 4시 3분. 119구조대가 즉시 출동했지만 도착했을 때 여성은 이미 심정지로 혼수상태였습니다.

119구조대는 '심정지 환자'라는 사실을 인근 병원에 알리고, 가장 가까운 상급종합병원인 A 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체육시설에서 1.5km, 차로 4분 거리에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하지만 A 대학병원은 환자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당장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구급차를 몰던 119구급대는 대학병원에 도착하고서야 이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여성은 대학병원에서 3.6km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구급차가 다른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2분, 신고 접수 후 29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한 여성은 심폐소생술 등 응급 조치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숨진 여성이 이송될 때는 심정지 상태, 말 그대로 '응급 환자'였습니다. 사망 판정을 받은 병원의 '응급실 간호 기록지'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도구, 이른바 'KTAS' 단계는 '1단계'입니다. KTAS 1단계는 '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로 진료 우선 순위 역시 ' 최우선'입니다.

유족은 1분 1초가 급한 응급환자를 병원에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걸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어디 있냐고 (체육시설에) 물으니 이미 돌아서 다른 병원으로 간대요. 겨우 택시를 잡아서 다른 병원으로 갔어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거야. (그러곤) '사망했습니다', 딱 하는 거예요. 그냥 억울해서 눈물밖에 안 나니까… -숨진 60대 여성의 남편 박기종 씨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으로 돌아간 '응급실'

환자 수용 불가를 통보한 부산의 한 대학 병원
A 대학병원 측에 당시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병원 측은 " 수용 불가를 소방 상황실에 즉시 통보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정해진 절차대로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를 했다는 취지입니다.

수용 불가의 이유가 뭐였을까요? 병원 측은 심정지 환자를 받으려면 기도 삽관, 흉부 압박 등의 작업을 하기 위해 최소 3명의 의사가 필요한데, 당시 모든 의사가 수술이나 외래진료 중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당시 A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2명'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총원은 3명인데 한 명은 휴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숨진 여성을 받아 뒤늦게 응급 조치하고, 사망 판정을 내린 병원 상황은 어땠을까요?

이 병원 역시 종합병원이지만 A 대학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 일반 종합병원입니다. 병상 수는 A 대학병원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응급 전문의 수는 2명으로 A 대학병원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역 응급의료·필수 의료 붕괴 '방증'하는 사건"


저 혼자 어찌 살아갈 겁니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도를 (마련)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아픈 사람이 죽는다는 건 말도 아니고…-숨진 60대 여성 남편 박기종 씨

A 대학병원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유족의 수사 요청으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다만 의료계에선 이번 사건이 A 대학병원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시가 급한 환자를 외면했다는 비판은 일단 차치하고, 응급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응급 전문의가 4명에서 6명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의료계 관계자는 " 응급의료 체계와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 되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력은 없고, 법적 위험은 크니 결국 전공의들의 응급실 지원이 떨어진다"면서 "그런데 이런 현상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의료 개혁을 주제로 한 민생 토론회에서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A 대학병원에선 남아있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가운데 한 명이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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