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사이트 자금줄 ‘가상계좌’…금감원 조사 착수

입력 2024.02.0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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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각종 공과금을 납부할 때 '가상계좌' 사용해 본 경험 있으실 겁니다.

가상계좌특정 목적을 위해 임시로 생성되는 계좌번호입니다. 입금 확인이 간편하고 개인 정보 유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보니 다양한 전자상거래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편의성 때문일까요? 가상계좌를 이용한 전화 금융사기, 마약 범죄도 꾸준히 적발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재진은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박 실태와 문제점을 고발해 온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의 도움을 받아 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봤습니다.

회원 가입은 휴대전화 번호와 은행 계좌 번호 등 몇 가지 정보만 입력하자 금세 끝났습니다. 그리고 도박금 충전하기 버튼을 누르자 업체 측의 공지가 나왔습니다.

업체 측은 A 은행의 가상계좌 번호를 제시하면서 "회원 등록할 때 인증받은 계좌에서만 송금 가능하다"고 안내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상계좌는 수시로 변경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불법 도박 판돈 충전에 사용된 '가상계좌'

경남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B 군도 이런 방식으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가 제시한 가상계좌에 돈을 입금했습니다. 적게는 1만 원부터 많게는 20여만 원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15초 만에 결과가 나오는 바카라에 중독되자 일상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잠이 모자랐고 2주 동안 학교에 가지 않기도 했습니다. 돈을 잃는 날엔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 용돈을 더 받아 도박 사이트에 입금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에게 들통이 났고 B 군은 스스로 도박을 끊기 어렵다고 판단해 현재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B 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거래 내역을 확인하다 보니 한 결제대행(PG)업체와 A 은행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버지와 상담을 진행한 '도박없는학교'는 A 은행이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건 아닌지 조사해 달라며 금융감독원에 공익신고했습니다.


■"가상계좌 무제한 생성 가능…모계좌는 지급정지 어려워"

그동안 범죄조직은 주로 대포통장을 활용해왔는데, 정부 단속이 강화되자 대포통장 유통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의 신고로 계좌가 지급정지되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그러자 '가상계좌'가 새로운 범죄수단으로 떠올랐습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은행과 계약을 맺은 결제대행사는 가맹업주에게 가상계좌를 발급해 줍니다. 가상계좌에 입금된 돈은 은행 '모계좌'로 옮겨집니다. 거래 금액 일부를 은행과 결제대행사가 수수료로 나눠 갖습니다.

가상계좌 발급 횟수는 사실상 제한이 없습니다. 2022년 기준 은행 모계좌에 연결된 가상계좌는 9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은행도 결제대행사가 발급한 가상계좌에 대해선 깐깐하게 점검하지 않습니다.

범죄조직들은 바로 이 점을 노렸습니다. 정상적인 사업장인 것처럼 위장해 결제대행사와 계약을 맺고, 범죄 수익금을 여러 차례 옮겨 자금을 세탁하는 겁니다. 결제대행사가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한 대포통장 업자는 "A 은행과 C 은행 가상계좌가 주로 사용된다"면서 "수수료는 0.8~1% 정도"라고 귀띔했습니다.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계좌 지급정지는 이미 사용이 끝난 가상계좌에만 적용됩니다. 모계좌 지급정지는 다른 가맹사업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지급정지가 쉽지 않습니다.


공익신고자 대리인인 신알찬 변호사는 "금융회사나 결제대행업체가 가상계좌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그 사용 목적이 불법인지 알았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가맹사업자가 규모에 비해 취급액이 지나치게 크거나 개설된 가상계좌 개수가 많다면, 금융회사나 결제대행사가 점검하고 위법 행위를 걸러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금융회사도 결제대행사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A 은행 측은 "금감원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결제대행사 측은 "불법 도박 사이트와 가상계좌 발급 계약을 한 적 없다"면서 "악성 민원으로 지난해 12월 초부터 가상계좌 사업을 종료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A 은행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 결과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관계 부서와 협의해 결제대행사와 다른 은행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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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박사이트 자금줄 ‘가상계좌’…금감원 조사 착수
    • 입력 2024-02-05 10: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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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각종 공과금을 납부할 때 '가상계좌' 사용해 본 경험 있으실 겁니다.

가상계좌특정 목적을 위해 임시로 생성되는 계좌번호입니다. 입금 확인이 간편하고 개인 정보 유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보니 다양한 전자상거래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편의성 때문일까요? 가상계좌를 이용한 전화 금융사기, 마약 범죄도 꾸준히 적발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재진은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박 실태와 문제점을 고발해 온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의 도움을 받아 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봤습니다.

회원 가입은 휴대전화 번호와 은행 계좌 번호 등 몇 가지 정보만 입력하자 금세 끝났습니다. 그리고 도박금 충전하기 버튼을 누르자 업체 측의 공지가 나왔습니다.

업체 측은 A 은행의 가상계좌 번호를 제시하면서 "회원 등록할 때 인증받은 계좌에서만 송금 가능하다"고 안내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상계좌는 수시로 변경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불법 도박 판돈 충전에 사용된 '가상계좌'

경남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B 군도 이런 방식으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가 제시한 가상계좌에 돈을 입금했습니다. 적게는 1만 원부터 많게는 20여만 원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15초 만에 결과가 나오는 바카라에 중독되자 일상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잠이 모자랐고 2주 동안 학교에 가지 않기도 했습니다. 돈을 잃는 날엔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 용돈을 더 받아 도박 사이트에 입금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에게 들통이 났고 B 군은 스스로 도박을 끊기 어렵다고 판단해 현재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B 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거래 내역을 확인하다 보니 한 결제대행(PG)업체와 A 은행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버지와 상담을 진행한 '도박없는학교'는 A 은행이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건 아닌지 조사해 달라며 금융감독원에 공익신고했습니다.


■"가상계좌 무제한 생성 가능…모계좌는 지급정지 어려워"

그동안 범죄조직은 주로 대포통장을 활용해왔는데, 정부 단속이 강화되자 대포통장 유통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의 신고로 계좌가 지급정지되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그러자 '가상계좌'가 새로운 범죄수단으로 떠올랐습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은행과 계약을 맺은 결제대행사는 가맹업주에게 가상계좌를 발급해 줍니다. 가상계좌에 입금된 돈은 은행 '모계좌'로 옮겨집니다. 거래 금액 일부를 은행과 결제대행사가 수수료로 나눠 갖습니다.

가상계좌 발급 횟수는 사실상 제한이 없습니다. 2022년 기준 은행 모계좌에 연결된 가상계좌는 9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은행도 결제대행사가 발급한 가상계좌에 대해선 깐깐하게 점검하지 않습니다.

범죄조직들은 바로 이 점을 노렸습니다. 정상적인 사업장인 것처럼 위장해 결제대행사와 계약을 맺고, 범죄 수익금을 여러 차례 옮겨 자금을 세탁하는 겁니다. 결제대행사가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한 대포통장 업자는 "A 은행과 C 은행 가상계좌가 주로 사용된다"면서 "수수료는 0.8~1% 정도"라고 귀띔했습니다.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계좌 지급정지는 이미 사용이 끝난 가상계좌에만 적용됩니다. 모계좌 지급정지는 다른 가맹사업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지급정지가 쉽지 않습니다.


공익신고자 대리인인 신알찬 변호사는 "금융회사나 결제대행업체가 가상계좌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그 사용 목적이 불법인지 알았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가맹사업자가 규모에 비해 취급액이 지나치게 크거나 개설된 가상계좌 개수가 많다면, 금융회사나 결제대행사가 점검하고 위법 행위를 걸러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금융회사도 결제대행사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A 은행 측은 "금감원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결제대행사 측은 "불법 도박 사이트와 가상계좌 발급 계약을 한 적 없다"면서 "악성 민원으로 지난해 12월 초부터 가상계좌 사업을 종료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A 은행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 결과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관계 부서와 협의해 결제대행사와 다른 은행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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