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알바’지만 고졸은 지원 불가…왜? [취재후]

입력 2024.02.05 (16:00) 수정 2024.02.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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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도 높고 일도 편한 아르바이트를 '꿀알바'라고 하죠. 그럼 이런 아르바이트, 어떠신가요?

- 시급: 최저 기준보다 1,500원가량 높은 11,436원
- 근무 시간: 월~금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 빼고 루 5시간
- 주요 업무: 시청(구청) 문서 정리, 민원 응대, 행사 보조와 같은 단순 업무

이렇게 6주를 일하면 186만 원가량이 통장에 들어옵니다. 시청이나 구청 같은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경험까지 쌓을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전국 자치단체들이 방학 때마다 모집하는 청년 인턴 사업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일부 지자체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대학생'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 서울시 25개 구 중 24곳은 '대학생'만 선발

실제로 이번 겨울방학 공고된 청년 인턴 자격조건을 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성동구를 제외한 24개 구에서는 '대학생'만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했습니다.

성동구 또한 지난해 여름까지는 대학생만 뽑았지만, 이 문제를 지적한 지난해 12월 KBS 보도 직후 학력 제한을 없앴습니다. 성동구에 사는 만 19세에서 29세 청년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번 겨울 선발된 80명 중 9명은 대학생이 아니었고, 이 가운데 3명은 고등학교 졸업자였습니다. 최종 선발은 지원자격이 되는 이들 중 '추첨'을 통해 투명하게 이뤄졌습니다.

KBS 뉴스9 보도 화면, 지난해 12월 4일KBS 뉴스9 보도 화면, 지난해 12월 4일

그렇다면 이 청년 인턴은 과연 대학교 학력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 업무일까요. 3명 중 한 명인 20대 여성 김주경 씨를 직접 만나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봤습니다.

■ 공공기관 취업 꿈꾸는 김 씨, "대학생 아닌데 기회 생긴 것 감사해"

취업을 앞둔 청년은 '막상 직장에 들어갔는데 일이 나랑 안 맞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기 마련입니다.

평소 행정 서비스 같은 공공기관 업무에 관심이 많았던 김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씨가 이번 겨울 인턴 6주 동안 구청 업무를 하며 느낀 건 "관공서 일을 해보면 정말 괜찮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성동구청 교통행정과에 배정돼 업무를 하고 있는 김주경 씨성동구청 교통행정과에 배정돼 업무를 하고 있는 김주경 씨

김 씨의 주요 업무는 민원인을 안내하고, 자동차 관련 민원 서류를 정리하는 겁니다.

서류 정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냐 물었더니 이제는 익숙하다며 "자동차에 대해 잘 몰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방법은 공무원분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금방 배웠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하면 대학 진학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업무는 자격이 대학생으로 제한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아니면 이런 체험을 할 수 없었는데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 전국 기초자치단체 68%, '대학생'만 선발

다른 곳은 어떨까요. 서울의 한 구청에 '대학생만 뽑는 이유가 뭔지,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조례를 개정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 였습니다.

2013년 제정된 조례의 이름은 '대학생 행정체험연수 운영', 즉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사업이 규정된 겁니다.

또 다른 구에 문의해보니,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어서 다음 여름방학부터는 청년 전체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전국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인권진흥원에서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조사해봤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 도·광역시·특별시 등 광역자치단체 17곳 중 70%에 해당하는 12곳이 '청년 전체'를 대상으로 선발했습니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로 눈을 넓히자,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68%가량의 지자체에서 '대학생'만 뽑았습니다.

충청북도의 경우 11개 시·군이 모두 대학생만 뽑았고, 강원도는 18개 시·군 중 16곳, 경기도는 31개 시·군 중 24곳에서 대학생만 뽑았습니다.


■ 청년 취업 돕기 위해 시작됐지만…인권위도 '차별' 판단

청년행정인턴 사업은 2008년 정부의 청년 실업 대책, 일자리 확대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행정 체험을 시켜줘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학비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재정자립'이라는 목표에 맞춰 선발 인원 중 일정 부분을 기초생활 수급권자, 차상위 계층, 장애인 등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발 대상을 꼭 대학생으로 한정해야 하느냐는 지적은 계속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여수시에 개선 권고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공직 이해를 높이고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목적을 이루려면 반드시 대학생으로 자격이 제한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지자체에서 제시하는 업무들이 반드시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이 요구되는 업무라고 볼 수 없고, 설령 개별 부처의 특수한 수요에 따라 특정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업무가 있다 하더라도 필요한 능력이 있는지는 서류심사 또는 면접 등 별도의 채용 과정을 통해서 검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도입 초기 경제위기로 인해 취업이 힘들어진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2023년 중앙부처 청년행정인턴 채용 계획 등도 신청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지원사업으로 청년행정인턴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 2023.4.18.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중

서울시 역시 지난해 11월, 공식 의결기구인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았습니다.

이재원 한국인권진흥원장은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데 경종을 울리는 판단"이라며, "전국으로 확대돼서 청년이 학력 차별로 괴로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권고를 받아들여, 차별을 최소화하면서도 대학생들의 학비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절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올 여름방학에는 더 다양한 청년들이 사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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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알바’지만 고졸은 지원 불가…왜? [취재후]
    • 입력 2024-02-05 16:00:04
    • 수정2024-02-05 17:39:41
    취재후·사건후

시급도 높고 일도 편한 아르바이트를 '꿀알바'라고 하죠. 그럼 이런 아르바이트, 어떠신가요?

- 시급: 최저 기준보다 1,500원가량 높은 11,436원
- 근무 시간: 월~금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 빼고 루 5시간
- 주요 업무: 시청(구청) 문서 정리, 민원 응대, 행사 보조와 같은 단순 업무

이렇게 6주를 일하면 186만 원가량이 통장에 들어옵니다. 시청이나 구청 같은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경험까지 쌓을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전국 자치단체들이 방학 때마다 모집하는 청년 인턴 사업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일부 지자체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대학생'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 서울시 25개 구 중 24곳은 '대학생'만 선발

실제로 이번 겨울방학 공고된 청년 인턴 자격조건을 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성동구를 제외한 24개 구에서는 '대학생'만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했습니다.

성동구 또한 지난해 여름까지는 대학생만 뽑았지만, 이 문제를 지적한 지난해 12월 KBS 보도 직후 학력 제한을 없앴습니다. 성동구에 사는 만 19세에서 29세 청년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번 겨울 선발된 80명 중 9명은 대학생이 아니었고, 이 가운데 3명은 고등학교 졸업자였습니다. 최종 선발은 지원자격이 되는 이들 중 '추첨'을 통해 투명하게 이뤄졌습니다.

KBS 뉴스9 보도 화면, 지난해 12월 4일
그렇다면 이 청년 인턴은 과연 대학교 학력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 업무일까요. 3명 중 한 명인 20대 여성 김주경 씨를 직접 만나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봤습니다.

■ 공공기관 취업 꿈꾸는 김 씨, "대학생 아닌데 기회 생긴 것 감사해"

취업을 앞둔 청년은 '막상 직장에 들어갔는데 일이 나랑 안 맞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기 마련입니다.

평소 행정 서비스 같은 공공기관 업무에 관심이 많았던 김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씨가 이번 겨울 인턴 6주 동안 구청 업무를 하며 느낀 건 "관공서 일을 해보면 정말 괜찮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성동구청 교통행정과에 배정돼 업무를 하고 있는 김주경 씨
김 씨의 주요 업무는 민원인을 안내하고, 자동차 관련 민원 서류를 정리하는 겁니다.

서류 정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냐 물었더니 이제는 익숙하다며 "자동차에 대해 잘 몰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방법은 공무원분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금방 배웠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하면 대학 진학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업무는 자격이 대학생으로 제한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아니면 이런 체험을 할 수 없었는데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 전국 기초자치단체 68%, '대학생'만 선발

다른 곳은 어떨까요. 서울의 한 구청에 '대학생만 뽑는 이유가 뭔지,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조례를 개정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 였습니다.

2013년 제정된 조례의 이름은 '대학생 행정체험연수 운영', 즉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사업이 규정된 겁니다.

또 다른 구에 문의해보니,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어서 다음 여름방학부터는 청년 전체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전국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인권진흥원에서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조사해봤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 도·광역시·특별시 등 광역자치단체 17곳 중 70%에 해당하는 12곳이 '청년 전체'를 대상으로 선발했습니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로 눈을 넓히자,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68%가량의 지자체에서 '대학생'만 뽑았습니다.

충청북도의 경우 11개 시·군이 모두 대학생만 뽑았고, 강원도는 18개 시·군 중 16곳, 경기도는 31개 시·군 중 24곳에서 대학생만 뽑았습니다.


■ 청년 취업 돕기 위해 시작됐지만…인권위도 '차별' 판단

청년행정인턴 사업은 2008년 정부의 청년 실업 대책, 일자리 확대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행정 체험을 시켜줘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학비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재정자립'이라는 목표에 맞춰 선발 인원 중 일정 부분을 기초생활 수급권자, 차상위 계층, 장애인 등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발 대상을 꼭 대학생으로 한정해야 하느냐는 지적은 계속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여수시에 개선 권고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공직 이해를 높이고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목적을 이루려면 반드시 대학생으로 자격이 제한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지자체에서 제시하는 업무들이 반드시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이 요구되는 업무라고 볼 수 없고, 설령 개별 부처의 특수한 수요에 따라 특정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업무가 있다 하더라도 필요한 능력이 있는지는 서류심사 또는 면접 등 별도의 채용 과정을 통해서 검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도입 초기 경제위기로 인해 취업이 힘들어진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2023년 중앙부처 청년행정인턴 채용 계획 등도 신청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지원사업으로 청년행정인턴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 2023.4.18.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중

서울시 역시 지난해 11월, 공식 의결기구인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았습니다.

이재원 한국인권진흥원장은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데 경종을 울리는 판단"이라며, "전국으로 확대돼서 청년이 학력 차별로 괴로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권고를 받아들여, 차별을 최소화하면서도 대학생들의 학비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절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올 여름방학에는 더 다양한 청년들이 사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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