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 적자인데 큰 돈이 남았다…안 쓴 건가 못 쓴 건가

입력 2024.02.08 (17:24) 수정 2024.02.0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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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라 살림의 수입(세입)과 지출(세출) 규모가 최종 집계됐습니다. 결산에 들어가기 전에, 지난 한 해 수치는 이렇게 나왔다는 것을 확정하는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나온 자료가 오늘(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 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입니다.

지난해 '세수 감소' 얘기는 많이 들으셨죠. 이미 9월에 정부가 재추계를 발표하며 2023년 본예산 때보다 '59조 원' 부족할 거라고 했으니 이 자료가 무슨 뉴스가 될까 싶었는데, 뜻 밖에 다른 수치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불용액입니다.


■ 역대 최대 불용액 '45조'…원인은 세수 감소?

불용액, '쓰지 않고 남은 돈'을 의미합니다. 지난해 쓰기로 잡아 놓은 돈 규모, 예산현액(예산+전년도 이월액+초과지출승인액)은 약 540조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총 세출은 490.4조 원입니다. 45조 7천억 원을 못 썼죠. 그게 불용액입니다. 불용률은 8.5%로 나옵니다.

지난해 불용액수와 불용률은 지금의 국가 예산·회계 시스템을 운영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세금이 덜 걷혀 돈이 모자라다더니, 있는 돈도 못 썼다고? 하는 의문이 드는데, 이유는 있습니다.

불용액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방교부세·교부금 감액조정'입니다. 이 규모만 18조 6천억 원입니다. 지방교부세는 국세 수입에 연동돼 있습니다. 국세의 19.2%가 절로 지자체로 내려가죠. 국세가 덜 걷혔으니 지방교부세도 못 주게 됐는데, 당초 주려던 돈을 못 준 것이 '불용액'으로 계산되는 체계입니다.

16조 4천억 원을 기록한 '정부 내부거래' 불용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정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 기금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습니다. 세수 감소가 예상되면 일반회계에서 특별회계로 넘겨 주려던 돈을 조금 보수적으로, 덜 주고 품고 있게 되죠. 특별회계에서는 돈을 쓰려고 계획했던 걸 못 쓰니 당연히 불용이 되는데 이때 문제는 이 규모가 일반 회계에서도 (주려다 못 줬으니) 불용으로 잡혀 중복으로 계상된다는 겁니다. 정부가 '불용 규모 45조 원'이라는 뉴스 제목에 억울해하는 이유입니다.


■ 올해 등장한 단어 '사실상 불용' … "사실상 불용은 코로나 19 탓"

기획재정부는 그래서 '사실상 불용'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켰습니다. 사업비 불용 같은 진짜 불용, '사실상 불용'은 10조 8천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불용도 이유는 있습니다. 예비비를 많이 못 썼는데, 예비비를 못 쓴 이유가 코로나 19 때문입니다. 코로나 19에 대응하려고 잡아 놓은 예산이 코로나 19 종식에 따라 집행되지 않았고, 하반기 재난 재해도 예상보다 줄어 예비비 나갈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사실상 불용 기준으로 봐도 역대 최대 규모가 맞긴 합니다. 직전 연도 '사실상 불용액' 7조 4천억 원과 크게 격차가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괜찮은 건가, 라고 따져보면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예산 운용이 너무 경직적이지 않은가, 하는 점을 문제로 언급합니다.

"최근 연구·개발 예산 부족, 국방 예산 문제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예비비를 추경 등으로 다른 데에 쓸 여지는 없었는가 이 부분은 지적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우리 재정의 원칙이 경직적이어서 불용액을 피치 못하게 발생시킨 측면이 없는지 면밀히 검토를 해서 제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는 따져볼 만 하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지방재정 악화를 고려하면 세수 감소분을 추경하든 전용하든 메꿔야 했는데, 불용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보인다. 그렇게 하려면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예비비를 교부세로 집행하는 절차가 필요했을 것. 그런데 정부가 추경을 아예 안 했다는 것은 유연하지 않은 재정 집행을 한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정부는 오늘 마감한 숫자들로 오는 4월 결산을 합니다. 그때는 재정수지까지 포함한 지난해 살림의 최종 수치가 모두 공개됩니다. 결산 보고서는 5월 국회로 제출할 예정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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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라 살림의 수입(세입)과 지출(세출) 규모가 최종 집계됐습니다. 결산에 들어가기 전에, 지난 한 해 수치는 이렇게 나왔다는 것을 확정하는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나온 자료가 오늘(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 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입니다.

지난해 '세수 감소' 얘기는 많이 들으셨죠. 이미 9월에 정부가 재추계를 발표하며 2023년 본예산 때보다 '59조 원' 부족할 거라고 했으니 이 자료가 무슨 뉴스가 될까 싶었는데, 뜻 밖에 다른 수치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불용액입니다.


■ 역대 최대 불용액 '45조'…원인은 세수 감소?

불용액, '쓰지 않고 남은 돈'을 의미합니다. 지난해 쓰기로 잡아 놓은 돈 규모, 예산현액(예산+전년도 이월액+초과지출승인액)은 약 540조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총 세출은 490.4조 원입니다. 45조 7천억 원을 못 썼죠. 그게 불용액입니다. 불용률은 8.5%로 나옵니다.

지난해 불용액수와 불용률은 지금의 국가 예산·회계 시스템을 운영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세금이 덜 걷혀 돈이 모자라다더니, 있는 돈도 못 썼다고? 하는 의문이 드는데, 이유는 있습니다.

불용액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방교부세·교부금 감액조정'입니다. 이 규모만 18조 6천억 원입니다. 지방교부세는 국세 수입에 연동돼 있습니다. 국세의 19.2%가 절로 지자체로 내려가죠. 국세가 덜 걷혔으니 지방교부세도 못 주게 됐는데, 당초 주려던 돈을 못 준 것이 '불용액'으로 계산되는 체계입니다.

16조 4천억 원을 기록한 '정부 내부거래' 불용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정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 기금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습니다. 세수 감소가 예상되면 일반회계에서 특별회계로 넘겨 주려던 돈을 조금 보수적으로, 덜 주고 품고 있게 되죠. 특별회계에서는 돈을 쓰려고 계획했던 걸 못 쓰니 당연히 불용이 되는데 이때 문제는 이 규모가 일반 회계에서도 (주려다 못 줬으니) 불용으로 잡혀 중복으로 계상된다는 겁니다. 정부가 '불용 규모 45조 원'이라는 뉴스 제목에 억울해하는 이유입니다.


■ 올해 등장한 단어 '사실상 불용' … "사실상 불용은 코로나 19 탓"

기획재정부는 그래서 '사실상 불용'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켰습니다. 사업비 불용 같은 진짜 불용, '사실상 불용'은 10조 8천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불용도 이유는 있습니다. 예비비를 많이 못 썼는데, 예비비를 못 쓴 이유가 코로나 19 때문입니다. 코로나 19에 대응하려고 잡아 놓은 예산이 코로나 19 종식에 따라 집행되지 않았고, 하반기 재난 재해도 예상보다 줄어 예비비 나갈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사실상 불용 기준으로 봐도 역대 최대 규모가 맞긴 합니다. 직전 연도 '사실상 불용액' 7조 4천억 원과 크게 격차가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괜찮은 건가, 라고 따져보면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예산 운용이 너무 경직적이지 않은가, 하는 점을 문제로 언급합니다.

"최근 연구·개발 예산 부족, 국방 예산 문제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예비비를 추경 등으로 다른 데에 쓸 여지는 없었는가 이 부분은 지적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우리 재정의 원칙이 경직적이어서 불용액을 피치 못하게 발생시킨 측면이 없는지 면밀히 검토를 해서 제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는 따져볼 만 하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지방재정 악화를 고려하면 세수 감소분을 추경하든 전용하든 메꿔야 했는데, 불용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보인다. 그렇게 하려면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예비비를 교부세로 집행하는 절차가 필요했을 것. 그런데 정부가 추경을 아예 안 했다는 것은 유연하지 않은 재정 집행을 한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정부는 오늘 마감한 숫자들로 오는 4월 결산을 합니다. 그때는 재정수지까지 포함한 지난해 살림의 최종 수치가 모두 공개됩니다. 결산 보고서는 5월 국회로 제출할 예정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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