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형제국’ 쿠바와 극비 협의…북한에 미칠 영향은? [이슈 집중]

입력 2024.02.15 (21:08) 수정 2024.02.1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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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쿠바와의 국교 수립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북한 때문입니다.

카스트로와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1인 장기집권을 했는데 서로 형제국으로 불렀습니다.

핵 개발로 평화를 위협하고 3대 세습까지 하는 북한은 세계무대에서 점차 고립됐는데 이번 한국과 쿠바의 관계 수립으로 북한 외교는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신지혜 기자가 대한민국과 쿠바 외교관계 수립의 다양한 의미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기자]

한국과 쿠바는 유엔 회원국 대부분과 수교 중이지만 서로에게는 거의 마지막 미수교국이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늦은 수교, 북한 영향이 컸습니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다음 해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대신 한국과는 관계를 끊었습니다.

이후 쿠바는 북한이 3대 세습을 하는 동안에도 서로를 '형제'로 부르며 정치·군사적 협력을 이어왔습니다.

그동안 쿠바와의 수교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2010년대 초 한국 관광객 증가와 한류 열풍 등 민간 교류가 늘고, 코로나 19 이후 자국 경제가 최악을 치닫자 쿠바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북한과의 '의리'도 좋지만 이제는 '실리'를 챙기기로 한 셈인데, 수교 성사까지의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2000년 쿠바에 수교를 요청한 한국, 구체적 진척은 없었습니다.

2015년, 적대하던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자, 이듬해(2016년) 한국도 당시 윤병세 외교장관을 처음 쿠바에 보내며 고위급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본격적인 접촉은 지난해부터였습니다.

박진 당시 외교장관이 지난해 5월 과테말라에서 쿠바에 비공개로 수교 뜻을 전달하자, 석 달 후 쿠바는 학술행사 참가 명목으로 전직 고위관료를 서울로 보내 한국의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이어 9월 유엔총회, 양국 외교장관이 비밀리에 협상합니다.

유엔 대표부가 있는 뉴욕에서 이번 설 연휴까지 막판 조율한 끝에, 13일 국무회의에서 극도의 보안 속에 수교안이 의결됐습니다.

북한 반발을 의식해 모든 과정은 극비리에, 최소 인원만 관여했습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쿠바가 결단을 내렸다"면서, "북한이 모르도록 비밀리에 신속히 협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결단'의 배경은 코로나 19로 극심해진 경제난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미국의 제재를 받아 온 쿠바는, 코로나 19 이후 관광 산업이 무너졌고 식량과 에너지 조달도 어려워졌습니다.

또 2021년 화폐정책 실패로 지난해에도 물가상승률이 30%를 웃돌았습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금 원조와 민간기업 진출이 더 절실해진 이유입니다.

최근 10년 사이 대유행한 한류도 수교를 앞당겼습니다.

[하상섭/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 : "한류의 쿠바 내에서의 영향력, 이런 것들은 (수교 성사의) 굉장히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는 거죠. 한국과 수교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 이런 것들을 많이 줄여주거나 낮추는 역할들을 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쿠바와의 수교로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 외교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쿠바는 코로나 이전 연간 한국인 만 4천명이 방문한 관광지로, 대사관을 통한 체계적 영사 조력도 가능해집니다.

[기자]

수교 발표 직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과 우호 관계였던 대 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북한과 대를 이어 밀착했던 쿠바가 극비리에 남한과 수교 협상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가뜩이나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북한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1970년대 남북은 수교 경쟁을 하며 국제사회에서 대립했지만, 냉전 붕괴를 전후해 한국이 소련(1990), 중국(1992), 또 동구권 국가들과 연이어 수교하며 외교 입지를 넓혀온 반면, 북한은 핵 개발을 선택하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이번 한국-쿠바 수교에 북한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거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향후 북한의 반응, 또 북한-쿠바와의 관계 변화 여부도 주목됩니다.

양민철 기자가 설명합니다.

[리포트]

[북한 기록영화 : "김일성 동지께서는 쿠바의 당 및 국가 수반 피델 카스트로 동지와 뜻깊은 상봉을 하셨습니다."]

1986년, 피델 카스트로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북한 방문 모습입니다.

'혁명 1세대'인 두 사람의 유대를 기반으로, 양국은 대를 이어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북한 매체들이 거의 매일 쿠바 관련 소식에 지면을 할애했을 정돕니다.

그런데 수교 직후인 오늘(15일) 북한 매체들은 북한 주재 외교단의 행사를 보도하면서, 러시아와 베트남, 시리아 등을 일일이 언급했지만 쿠바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인데, 북한 당국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쿠바마저 한국과 수교한다는 것은 북한의 외교적인 고립이 더욱더 심화되는 그런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북한이 몇 안 되는 맹방인 쿠바와 급격한 관계 변화를 꾀하긴 어렵겠지만, 대신 러시아, 중국에 대한 의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외교적이고 상징적인 지지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이라든지 경제 협력이라든지 실질적으로 북한이라고 하는 나라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두 개밖에 없는 것이죠."]

이미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 중인 국가는 150여 개국.

하지만 북한과 쿠바는 친선 관계 이상의 '밀착'을 과시했던 관계였던 만큼, 이번 수교를 계기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영상편집:이상미/그래픽: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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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5 21:08:27
    • 수정2024-02-15 22: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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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쿠바와의 국교 수립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북한 때문입니다.

카스트로와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1인 장기집권을 했는데 서로 형제국으로 불렀습니다.

핵 개발로 평화를 위협하고 3대 세습까지 하는 북한은 세계무대에서 점차 고립됐는데 이번 한국과 쿠바의 관계 수립으로 북한 외교는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신지혜 기자가 대한민국과 쿠바 외교관계 수립의 다양한 의미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기자]

한국과 쿠바는 유엔 회원국 대부분과 수교 중이지만 서로에게는 거의 마지막 미수교국이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늦은 수교, 북한 영향이 컸습니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다음 해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대신 한국과는 관계를 끊었습니다.

이후 쿠바는 북한이 3대 세습을 하는 동안에도 서로를 '형제'로 부르며 정치·군사적 협력을 이어왔습니다.

그동안 쿠바와의 수교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2010년대 초 한국 관광객 증가와 한류 열풍 등 민간 교류가 늘고, 코로나 19 이후 자국 경제가 최악을 치닫자 쿠바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북한과의 '의리'도 좋지만 이제는 '실리'를 챙기기로 한 셈인데, 수교 성사까지의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2000년 쿠바에 수교를 요청한 한국, 구체적 진척은 없었습니다.

2015년, 적대하던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자, 이듬해(2016년) 한국도 당시 윤병세 외교장관을 처음 쿠바에 보내며 고위급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본격적인 접촉은 지난해부터였습니다.

박진 당시 외교장관이 지난해 5월 과테말라에서 쿠바에 비공개로 수교 뜻을 전달하자, 석 달 후 쿠바는 학술행사 참가 명목으로 전직 고위관료를 서울로 보내 한국의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이어 9월 유엔총회, 양국 외교장관이 비밀리에 협상합니다.

유엔 대표부가 있는 뉴욕에서 이번 설 연휴까지 막판 조율한 끝에, 13일 국무회의에서 극도의 보안 속에 수교안이 의결됐습니다.

북한 반발을 의식해 모든 과정은 극비리에, 최소 인원만 관여했습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쿠바가 결단을 내렸다"면서, "북한이 모르도록 비밀리에 신속히 협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결단'의 배경은 코로나 19로 극심해진 경제난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미국의 제재를 받아 온 쿠바는, 코로나 19 이후 관광 산업이 무너졌고 식량과 에너지 조달도 어려워졌습니다.

또 2021년 화폐정책 실패로 지난해에도 물가상승률이 30%를 웃돌았습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금 원조와 민간기업 진출이 더 절실해진 이유입니다.

최근 10년 사이 대유행한 한류도 수교를 앞당겼습니다.

[하상섭/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 : "한류의 쿠바 내에서의 영향력, 이런 것들은 (수교 성사의) 굉장히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는 거죠. 한국과 수교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 이런 것들을 많이 줄여주거나 낮추는 역할들을 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쿠바와의 수교로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 외교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쿠바는 코로나 이전 연간 한국인 만 4천명이 방문한 관광지로, 대사관을 통한 체계적 영사 조력도 가능해집니다.

[기자]

수교 발표 직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과 우호 관계였던 대 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북한과 대를 이어 밀착했던 쿠바가 극비리에 남한과 수교 협상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가뜩이나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북한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1970년대 남북은 수교 경쟁을 하며 국제사회에서 대립했지만, 냉전 붕괴를 전후해 한국이 소련(1990), 중국(1992), 또 동구권 국가들과 연이어 수교하며 외교 입지를 넓혀온 반면, 북한은 핵 개발을 선택하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이번 한국-쿠바 수교에 북한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거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향후 북한의 반응, 또 북한-쿠바와의 관계 변화 여부도 주목됩니다.

양민철 기자가 설명합니다.

[리포트]

[북한 기록영화 : "김일성 동지께서는 쿠바의 당 및 국가 수반 피델 카스트로 동지와 뜻깊은 상봉을 하셨습니다."]

1986년, 피델 카스트로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북한 방문 모습입니다.

'혁명 1세대'인 두 사람의 유대를 기반으로, 양국은 대를 이어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북한 매체들이 거의 매일 쿠바 관련 소식에 지면을 할애했을 정돕니다.

그런데 수교 직후인 오늘(15일) 북한 매체들은 북한 주재 외교단의 행사를 보도하면서, 러시아와 베트남, 시리아 등을 일일이 언급했지만 쿠바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인데, 북한 당국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쿠바마저 한국과 수교한다는 것은 북한의 외교적인 고립이 더욱더 심화되는 그런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북한이 몇 안 되는 맹방인 쿠바와 급격한 관계 변화를 꾀하긴 어렵겠지만, 대신 러시아, 중국에 대한 의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외교적이고 상징적인 지지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이라든지 경제 협력이라든지 실질적으로 북한이라고 하는 나라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두 개밖에 없는 것이죠."]

이미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 중인 국가는 150여 개국.

하지만 북한과 쿠바는 친선 관계 이상의 '밀착'을 과시했던 관계였던 만큼, 이번 수교를 계기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영상편집:이상미/그래픽: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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