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마트폰 ‘성지’의 비밀은?

입력 2024.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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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성지'를 아시나요?

한때 구로, 용산 등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스마트폰 판매점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서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는데요. 이용자 차별이라는 지적에,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규제 대상이 됐습니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 9년이 지났지만, 성지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통신 3사가 실적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금 등을 조정하며 '성지'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서초동 시장운영반'에서 '번호이동 실적 실시간 공유

정보 공유는 은밀히 이뤄졌습니다. 통신 3사의 직원들이 모인 곳은 서울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한두 번 만난 게 아닙니다. 매일같이 나와 저녁 8시까지 사무실을 지켰습니다. 사실상 출근이었습니다. 서초동에 차려진 사무실 이름, '시장상황반'입니다.

직원들은 통신 시장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번호이동' 실적입니다.

번호이동은 통신사를 갈아타는 가입 방법입니다. 정해진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시장이니, 통신사들이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관리도 철저합니다. 시장운영반 직원들은 20분, 30분 단위로 3사의 번호이동 실적을 모니터링했습니다.

통신사 직원들이 관리한 실시간 번호이동 실적통신사 직원들이 관리한 실시간 번호이동 실적

3사의 번호이동 실적은 가입조건 등에 따라서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었습니다. KBS가 입수한 어느 토요일의 모니터링 표를 보면, 오후 3시 20분을 기준으로 SK텔레콤이 가입자 436명을 KT와 LG유플러스에 뺏겼습니다.


■ 판매장려금 '성지'에 뿌려 '실적 메우기'

휴대전화 대리점들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가입자를 뺏긴 통신사는 늦은 오후 실적 만회에 나섭니다.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은 바로 '판매장려금'입니다.

판매장려금은 통신사들이 휴대전화 대리점이나 판매점에 지급하는 마케팅 비용입니다. '우리 제품 더 팔아달라'면서 주는, 합법적인 리베이트입니다. 휴대전화 한 대당 최대 30만 원까지 줄 수 있습니다.

실적이 낮은 회사, 이 판매 장려금을 특정 대리점에 더 높여줍니다. '지금부터 갤럭시 S21에 지원금 10만원 추가' 등의 문자를 보내면서요. 이른바 '성지'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판매장려금 한도보다 훨씬 높은 돈을 주는 때도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몇 군데 대리점에 인기제품 판매장려금을 높이면 대리점은 판매장려금 일부를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영업에 나섭니다. 한두 시간이면 성지의 좌표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돌아 목표량을 채우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게 판매점들의 얘기입니다.

■ 판매장려금 갑자기 후려쳐 '실적 미루기'

실적이 높은 회사 직원도 바빠집니다.

상식적으론 경쟁사의 공세를 방어하는데 나설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갑자기 판매 장려금을 줄이는 겁니다. 조금 전까지 가입자 1명에 30만 원이던 장려금이 갑자기 10만 원, 15만 원 수준으로 줄면 판매점은 이미 고객이 가입서를 쓴 휴대전화도 개통을 미룹니다.

"오늘은 개통이 안 된다"라는 판매점의 말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있습니다. 통신사는 당일 더는 실적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하루를 마칠 수 있습니다.

한 휴대전화 판매점 점주
"어제까지만 해도 장려금 40만 원을 줬는데 갑자기 20만 원, 15만 원으로 줄이는 거예요. 그건 팔지 말라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그 날은 그 통신사 걸 판매를 안 해요. 못하는 거죠. 이건 무언의 암시예요. 아 오늘 개통하면 안 되는구나."

예컨대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팔고는 그 다음부터 실적을 억누르려고 가격할인이나 증정품 제공을 중단하는 격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 실적도 적당히, 마케팅 비용도 적당히

하지만 독과점 시장에서는 절제하는 게 오히려 '미덕'입니다. 이동통신 시장의 규모는 뻔한데, 뺏고 뺏기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마케팅 비용 등 지출이 늘고 이익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명시적 합의가 없더라도 타사보다 너무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실적을 관리하는 쪽으로 갈 유인이 더 큰 겁니다. 실제로 특정 회사가 장려금을 많이 쓰고 번호이동 실적을 높이면 타사 직원들이 눈치를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통신사들은 5G 경쟁이 치열하게 붙었던 때를 제외하고 단통법 이후 7조 원대 마케팅비를 유지하면서 예년과 비슷한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공정위 제재 임박...거액 과징금 예상

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매장려금 담합 혐의로 통신3사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통신업계에서는 "판매장려금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가이드라인(행정지도)를 따른 것이고 담합한 게 아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소관 부처의 행정지도를 따른 것에 공정거래법의 잣대를 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드러난 '시장상황반'의 실태는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수량 담합의 전형적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심지어 판매장려금을 급격히 올릴 때는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공정위 조사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이르면 다음 주 중에 조사를 마무리하고, 제재 안건을 위원회에 상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통신 3사가 주요 실적을 공유하면서 시장 점유율과 물량을 짰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점유율과 물량 담합은 '경성 카르텔'로 분류되기 때문에, 제재 수위도 비교적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담합은 관련 매출의 5%(현재는 10%)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데, 법 위반으로 인정된다면 1천억 원대 과징금까지 가능할 거로 보입니다.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에는 이러한 과징금 부과 의견과 함께 시장상황반 운영을 금지하는 시정명령, 검찰 고발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입니다.

공정위는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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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스마트폰 ‘성지’의 비밀은?
    • 입력 2024-02-16 06:00:15
    단독

스마트폰 '성지'를 아시나요?

한때 구로, 용산 등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스마트폰 판매점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서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는데요. 이용자 차별이라는 지적에,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규제 대상이 됐습니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 9년이 지났지만, 성지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통신 3사가 실적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금 등을 조정하며 '성지'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서초동 시장운영반'에서 '번호이동 실적 실시간 공유

정보 공유는 은밀히 이뤄졌습니다. 통신 3사의 직원들이 모인 곳은 서울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한두 번 만난 게 아닙니다. 매일같이 나와 저녁 8시까지 사무실을 지켰습니다. 사실상 출근이었습니다. 서초동에 차려진 사무실 이름, '시장상황반'입니다.

직원들은 통신 시장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번호이동' 실적입니다.

번호이동은 통신사를 갈아타는 가입 방법입니다. 정해진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시장이니, 통신사들이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관리도 철저합니다. 시장운영반 직원들은 20분, 30분 단위로 3사의 번호이동 실적을 모니터링했습니다.

통신사 직원들이 관리한 실시간 번호이동 실적
3사의 번호이동 실적은 가입조건 등에 따라서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었습니다. KBS가 입수한 어느 토요일의 모니터링 표를 보면, 오후 3시 20분을 기준으로 SK텔레콤이 가입자 436명을 KT와 LG유플러스에 뺏겼습니다.


■ 판매장려금 '성지'에 뿌려 '실적 메우기'

휴대전화 대리점들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가입자를 뺏긴 통신사는 늦은 오후 실적 만회에 나섭니다.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은 바로 '판매장려금'입니다.

판매장려금은 통신사들이 휴대전화 대리점이나 판매점에 지급하는 마케팅 비용입니다. '우리 제품 더 팔아달라'면서 주는, 합법적인 리베이트입니다. 휴대전화 한 대당 최대 30만 원까지 줄 수 있습니다.

실적이 낮은 회사, 이 판매 장려금을 특정 대리점에 더 높여줍니다. '지금부터 갤럭시 S21에 지원금 10만원 추가' 등의 문자를 보내면서요. 이른바 '성지'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판매장려금 한도보다 훨씬 높은 돈을 주는 때도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몇 군데 대리점에 인기제품 판매장려금을 높이면 대리점은 판매장려금 일부를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영업에 나섭니다. 한두 시간이면 성지의 좌표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돌아 목표량을 채우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게 판매점들의 얘기입니다.

■ 판매장려금 갑자기 후려쳐 '실적 미루기'

실적이 높은 회사 직원도 바빠집니다.

상식적으론 경쟁사의 공세를 방어하는데 나설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갑자기 판매 장려금을 줄이는 겁니다. 조금 전까지 가입자 1명에 30만 원이던 장려금이 갑자기 10만 원, 15만 원 수준으로 줄면 판매점은 이미 고객이 가입서를 쓴 휴대전화도 개통을 미룹니다.

"오늘은 개통이 안 된다"라는 판매점의 말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있습니다. 통신사는 당일 더는 실적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하루를 마칠 수 있습니다.

한 휴대전화 판매점 점주
"어제까지만 해도 장려금 40만 원을 줬는데 갑자기 20만 원, 15만 원으로 줄이는 거예요. 그건 팔지 말라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그 날은 그 통신사 걸 판매를 안 해요. 못하는 거죠. 이건 무언의 암시예요. 아 오늘 개통하면 안 되는구나."

예컨대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팔고는 그 다음부터 실적을 억누르려고 가격할인이나 증정품 제공을 중단하는 격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 실적도 적당히, 마케팅 비용도 적당히

하지만 독과점 시장에서는 절제하는 게 오히려 '미덕'입니다. 이동통신 시장의 규모는 뻔한데, 뺏고 뺏기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마케팅 비용 등 지출이 늘고 이익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명시적 합의가 없더라도 타사보다 너무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실적을 관리하는 쪽으로 갈 유인이 더 큰 겁니다. 실제로 특정 회사가 장려금을 많이 쓰고 번호이동 실적을 높이면 타사 직원들이 눈치를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통신사들은 5G 경쟁이 치열하게 붙었던 때를 제외하고 단통법 이후 7조 원대 마케팅비를 유지하면서 예년과 비슷한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공정위 제재 임박...거액 과징금 예상

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매장려금 담합 혐의로 통신3사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통신업계에서는 "판매장려금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가이드라인(행정지도)를 따른 것이고 담합한 게 아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소관 부처의 행정지도를 따른 것에 공정거래법의 잣대를 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드러난 '시장상황반'의 실태는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수량 담합의 전형적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심지어 판매장려금을 급격히 올릴 때는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공정위 조사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이르면 다음 주 중에 조사를 마무리하고, 제재 안건을 위원회에 상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통신 3사가 주요 실적을 공유하면서 시장 점유율과 물량을 짰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점유율과 물량 담합은 '경성 카르텔'로 분류되기 때문에, 제재 수위도 비교적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담합은 관련 매출의 5%(현재는 10%)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데, 법 위반으로 인정된다면 1천억 원대 과징금까지 가능할 거로 보입니다.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에는 이러한 과징금 부과 의견과 함께 시장상황반 운영을 금지하는 시정명령, 검찰 고발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입니다.

공정위는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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