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잡은 물고기’는 없다…흔들흔들 흑인 표심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입력 2024.02.1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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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투표율이야!…투표장에 발길 안 한 '파워 흑인 유권자'

지난 3일, 민주당의 첫 대선 경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치러졌습니다. 후보자는 바이든 대통령과 딘 필립스 연방하원의원, 매리앤 윌리엄슨 작가. 다른 두 명의 지명도가 낮아 사실상 바이든의 독주였고, 바이든은 96%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싱겁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본인에겐 썩 달갑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는 득표율이 아니라 투표율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거 종료 직후 바이든의 질문도 "투표율은?"이었다고 합니다.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2020년에는 54만 명이었던 투표자 수가 올해 13만 명으로 뚝 떨어진 겁니다. KBS 취재진이 당일 오전 11시쯤 찾은 한 투표장은 등록 유권자 수가 1만 1천여 명에 달했지만, 투표를 마친 사람이 73명에 그칠 정도로 썰렁했습니다. 정오엔 8천 명이 등록된 다른 투표소에 가봤지만, 130명 정도만 투표를 마쳤단 답이 돌아왔습니다 '바람몰이'엔 실패한 경선이었던 셈입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도 컬럼비아에 마련된 민주당 대선 경선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는 주민들.  (촬영=KBS)사우스캐롤라이나 주도 컬럼비아에 마련된 민주당 대선 경선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는 주민들. (촬영=KBS)

단순히 '싱거운 게임'이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오렌지버그에서 만난 흑인 대학생 올리비아 화이트 씨는 "지난 선거 때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투표했지만, 이번엔 누굴 뽑을지 결정 못했다"며 "바이든 정부가 약속했던 흑인 대학(HBCU)에 대한 지원이 여전히 부족해 불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한 다른 흑인 대학생 두 명도 '바이든을 지지하는지 잘 모르겠고 투표도 안 할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 흑인이 미국 민주당 '표밭' 된 이유는?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흑인 비율이 26%로 미국 평균 15%에 비해 높아 흑인 표심을 가늠할 수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흑인 지지에 강점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이 신경쓸 수 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경선 결과가 다른 지역 흑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사실 흑인은 민주당의 오랜 표밭입니다. 1948년 당시 대통령이자 재선을 앞뒀던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이 길을 텄습니다. 트루먼은 노예제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남부에 묶였던 흑인들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적 안정을 찾아 미국 전역, 특히 뉴욕이나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 같은 규모가 큰 경합 주로 퍼진 데 주목했습니다. 흑인 표 확보를 위해 트루먼은 그 해 군대와 연방 공무원 선발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대선에서 77%의 흑인 표를 가져가는 데 성공합니다.

1948년 7월 17일 투표를 위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민주당에 등록하고 있는 흑인들  (사진=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홈페이지)1948년 7월 17일 투표를 위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민주당에 등록하고 있는 흑인들 (사진=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홈페이지)

흑인 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60년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은 경쟁적으로 흑인 배려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걸 깬 건 1964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였습니다. 그는 민권법에 선명하게 반대했고, 흑인들은 돌아섰습니다.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화당은 대선에서 흑인 표의 15% 이상을 가져간 적이 없습니다. 다른 어떤 이슈보다 인종 차별에 민감하고, 한데 뭉치는 경향이 있는 흑인 투표의 경향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2020년, 흑인 대통령 오바마와 함께 일했던 부통령 출신이자, 러닝메이트로 유색인종 카멀라 해리스를 택한 민주당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에도 흑인들은 집단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 2024, 변해가는 흑인 마음…'받은 만큼 투표한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선거를 앞둔 표심은 더합니다. 지난해 12월 전국 단위의 AP-NORC 여론조사에선 흑인 성인의 50%만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2021년 7월의 86%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인데, 백인 성인에 비해서도 하락 폭이 큽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주 흑인들이 민주당, 공화당을 각각 얼마나 지지하는지 조사한 결과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2020년에는 흑인 공화당 지지자보다 민주당 지지자가 무려 66%p나 많았는데, 계속 차이가 줄더니 지난해 드디어 사상 최저치(47%p)를 기록했습니다. 나이와 교육 수준보다 인종을 특정할 때 변화가 더 컸습니다. 일부 격전지의 민주당원들은 흑인 유권자의 투표율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장 큰 이유를 경제에서 찾았습니다. 바이든은 자신의 치적 사업으로 '경제'를 내세우지만, 실제 흑인들이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정규직 흑인 근로자의 2022년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10.3%p 증가했던 주당 평균 소득이 지난해 3분기엔 4.2%p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국인 평균보다 낮은 임금 상승률입니다. 이에 더해 미국은 코로나 19를 거치며 물가 상승률이 한때 9%에 달할 정도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는데, 식료품 가격이나 유가의 고공행진이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흑인 사회에 더 타격이 됐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유권자들이 학자금 대출 부채 탕감이나 주거 불안정을 해결할 저렴한 주택 공급, 공공 안전을 위한 경찰력 개선 등 흑인들이 관심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이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한 데 실망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고 2021년엔 아프가니스탄 철군도 단행했던 바이든 정부가 국내 문제보다 외교에만 너무 치중한다거나, 흑인보다 성 소수자, LGBTQ 같은 소수자 문제에 너무 공들인다는 불만이 나온다는 겁니다.

2023년 3월 6일, 미국에서 참정권을 요구하는 흑인들을 유혈 진압한 ‘피의 일요일’ 58주년을 맞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흑인 인권 운동가들과 사건 현장인 앨라배마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2023년 3월 6일, 미국에서 참정권을 요구하는 흑인들을 유혈 진압한 ‘피의 일요일’ 58주년을 맞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흑인 인권 운동가들과 사건 현장인 앨라배마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2020년 민주당 경선 당시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4, 5위에 그치던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흑인 몰표에 힘입어 1위에 오르며 반전 계기를 만들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습니다. 이달 3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당시 MSNBC 앵커는 이를 언급하며 "미국 정치와 세계가 흑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 계기"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에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흑인들이 스스로 표의 가치를 깨닫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는 게 지금 바이든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말하는 "우리의 강점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진단이 전부라고는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흑인 투표장 안 나오기만 해도 이득" vs "집토끼 돈 들여서라도 지금 잡아야"

이 틈을 트럼프가 노리고 있습니다. 공화당의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을 트럼프의 연설에 매번 동반하며 부통령 후보감으로 띄우고, 다양한 인종의 지지층을 모읍니다. 바이든을 지지하는 흑인들이 덜 투표장에 나오거나 제3 후보를 찍기만 해도 이득이라는 전략입니다. 소득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AP-NORC 조사에서 트럼프에 호의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22%였습니다. 트럼프가 2020년에 흑인 표의 8%, 2016년에는 6%를 얻는 데 불과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입니다. 노예제를 합리화하는 듯 남북전쟁을 두고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등 인종 차별 관련한 발언이 잦은 걸 감안하면 더 그렇습니다.

지난달 19일, 미국 공화당 소속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이 뉴햄프셔에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위) 지난달 27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를 방문해 흑인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아래) (사진=AP)지난달 19일, 미국 공화당 소속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이 뉴햄프셔에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위) 지난달 27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를 방문해 흑인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아래) (사진=AP)

바이든 측도 바빠졌습니다. 전엔 선거 막판에야 흑인 접촉을 늘리는 등 흑인을 '집토끼' 취급하던 데서 벗어나 이들에게 조기에 다가가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경합 주에선 흑인 관련 미디어와 홍보 활동에도 큰 돈을 쓰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 면모를 부각하면서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을 임명하는 등 바이든 정부의 업적을 내세우고, 유색인종에 대한 경제 여건 개선책 등을 재정립한다는 계획입니다. '잡은 고기'라고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선거의 진리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된 바이든 캠프가 얼마나 만회를 해낼 수 있을지도 미국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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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에 ‘잡은 물고기’는 없다…흔들흔들 흑인 표심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 입력 2024-02-17 0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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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투표율이야!…투표장에 발길 안 한 '파워 흑인 유권자'

지난 3일, 민주당의 첫 대선 경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치러졌습니다. 후보자는 바이든 대통령과 딘 필립스 연방하원의원, 매리앤 윌리엄슨 작가. 다른 두 명의 지명도가 낮아 사실상 바이든의 독주였고, 바이든은 96%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싱겁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본인에겐 썩 달갑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는 득표율이 아니라 투표율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거 종료 직후 바이든의 질문도 "투표율은?"이었다고 합니다.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2020년에는 54만 명이었던 투표자 수가 올해 13만 명으로 뚝 떨어진 겁니다. KBS 취재진이 당일 오전 11시쯤 찾은 한 투표장은 등록 유권자 수가 1만 1천여 명에 달했지만, 투표를 마친 사람이 73명에 그칠 정도로 썰렁했습니다. 정오엔 8천 명이 등록된 다른 투표소에 가봤지만, 130명 정도만 투표를 마쳤단 답이 돌아왔습니다 '바람몰이'엔 실패한 경선이었던 셈입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도 컬럼비아에 마련된 민주당 대선 경선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는 주민들.  (촬영=KBS)
단순히 '싱거운 게임'이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오렌지버그에서 만난 흑인 대학생 올리비아 화이트 씨는 "지난 선거 때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투표했지만, 이번엔 누굴 뽑을지 결정 못했다"며 "바이든 정부가 약속했던 흑인 대학(HBCU)에 대한 지원이 여전히 부족해 불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한 다른 흑인 대학생 두 명도 '바이든을 지지하는지 잘 모르겠고 투표도 안 할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 흑인이 미국 민주당 '표밭' 된 이유는?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흑인 비율이 26%로 미국 평균 15%에 비해 높아 흑인 표심을 가늠할 수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흑인 지지에 강점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이 신경쓸 수 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경선 결과가 다른 지역 흑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사실 흑인은 민주당의 오랜 표밭입니다. 1948년 당시 대통령이자 재선을 앞뒀던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이 길을 텄습니다. 트루먼은 노예제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남부에 묶였던 흑인들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적 안정을 찾아 미국 전역, 특히 뉴욕이나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 같은 규모가 큰 경합 주로 퍼진 데 주목했습니다. 흑인 표 확보를 위해 트루먼은 그 해 군대와 연방 공무원 선발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대선에서 77%의 흑인 표를 가져가는 데 성공합니다.

1948년 7월 17일 투표를 위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민주당에 등록하고 있는 흑인들  (사진=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홈페이지)
흑인 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60년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은 경쟁적으로 흑인 배려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걸 깬 건 1964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였습니다. 그는 민권법에 선명하게 반대했고, 흑인들은 돌아섰습니다.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화당은 대선에서 흑인 표의 15% 이상을 가져간 적이 없습니다. 다른 어떤 이슈보다 인종 차별에 민감하고, 한데 뭉치는 경향이 있는 흑인 투표의 경향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2020년, 흑인 대통령 오바마와 함께 일했던 부통령 출신이자, 러닝메이트로 유색인종 카멀라 해리스를 택한 민주당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에도 흑인들은 집단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 2024, 변해가는 흑인 마음…'받은 만큼 투표한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선거를 앞둔 표심은 더합니다. 지난해 12월 전국 단위의 AP-NORC 여론조사에선 흑인 성인의 50%만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2021년 7월의 86%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인데, 백인 성인에 비해서도 하락 폭이 큽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주 흑인들이 민주당, 공화당을 각각 얼마나 지지하는지 조사한 결과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2020년에는 흑인 공화당 지지자보다 민주당 지지자가 무려 66%p나 많았는데, 계속 차이가 줄더니 지난해 드디어 사상 최저치(47%p)를 기록했습니다. 나이와 교육 수준보다 인종을 특정할 때 변화가 더 컸습니다. 일부 격전지의 민주당원들은 흑인 유권자의 투표율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장 큰 이유를 경제에서 찾았습니다. 바이든은 자신의 치적 사업으로 '경제'를 내세우지만, 실제 흑인들이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정규직 흑인 근로자의 2022년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10.3%p 증가했던 주당 평균 소득이 지난해 3분기엔 4.2%p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국인 평균보다 낮은 임금 상승률입니다. 이에 더해 미국은 코로나 19를 거치며 물가 상승률이 한때 9%에 달할 정도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는데, 식료품 가격이나 유가의 고공행진이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흑인 사회에 더 타격이 됐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유권자들이 학자금 대출 부채 탕감이나 주거 불안정을 해결할 저렴한 주택 공급, 공공 안전을 위한 경찰력 개선 등 흑인들이 관심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이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한 데 실망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고 2021년엔 아프가니스탄 철군도 단행했던 바이든 정부가 국내 문제보다 외교에만 너무 치중한다거나, 흑인보다 성 소수자, LGBTQ 같은 소수자 문제에 너무 공들인다는 불만이 나온다는 겁니다.

2023년 3월 6일, 미국에서 참정권을 요구하는 흑인들을 유혈 진압한 ‘피의 일요일’ 58주년을 맞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흑인 인권 운동가들과 사건 현장인 앨라배마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2020년 민주당 경선 당시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4, 5위에 그치던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흑인 몰표에 힘입어 1위에 오르며 반전 계기를 만들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습니다. 이달 3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당시 MSNBC 앵커는 이를 언급하며 "미국 정치와 세계가 흑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 계기"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에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흑인들이 스스로 표의 가치를 깨닫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는 게 지금 바이든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말하는 "우리의 강점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진단이 전부라고는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흑인 투표장 안 나오기만 해도 이득" vs "집토끼 돈 들여서라도 지금 잡아야"

이 틈을 트럼프가 노리고 있습니다. 공화당의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을 트럼프의 연설에 매번 동반하며 부통령 후보감으로 띄우고, 다양한 인종의 지지층을 모읍니다. 바이든을 지지하는 흑인들이 덜 투표장에 나오거나 제3 후보를 찍기만 해도 이득이라는 전략입니다. 소득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AP-NORC 조사에서 트럼프에 호의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22%였습니다. 트럼프가 2020년에 흑인 표의 8%, 2016년에는 6%를 얻는 데 불과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입니다. 노예제를 합리화하는 듯 남북전쟁을 두고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등 인종 차별 관련한 발언이 잦은 걸 감안하면 더 그렇습니다.

지난달 19일, 미국 공화당 소속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이 뉴햄프셔에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위) 지난달 27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를 방문해 흑인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아래) (사진=AP)
바이든 측도 바빠졌습니다. 전엔 선거 막판에야 흑인 접촉을 늘리는 등 흑인을 '집토끼' 취급하던 데서 벗어나 이들에게 조기에 다가가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경합 주에선 흑인 관련 미디어와 홍보 활동에도 큰 돈을 쓰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 면모를 부각하면서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을 임명하는 등 바이든 정부의 업적을 내세우고, 유색인종에 대한 경제 여건 개선책 등을 재정립한다는 계획입니다. '잡은 고기'라고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선거의 진리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된 바이든 캠프가 얼마나 만회를 해낼 수 있을지도 미국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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