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는 ‘해녀’ 아닌 ‘해남’이…기후 변화에 생계 위기

입력 2024.02.17 (22:09) 수정 2024.03.06 (16: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 제주에 해녀가 있다면, 태국에도 해남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섬에 사는 남성들이 우리 해녀처럼 비슷한 복장과 도구로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며 살고 있다는데요.

그런데, 최근엔 이런 일을 하는 '해남'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방콕 정윤섭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국 남부 시라차 앞바다, 배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꼬 시창, 시창섬에 다다릅니다.

섬 안쪽, 작은 집에서 만난 기스다 씨.

마침 작업을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오리발과 물안경 같은 간단한 장비만 챙겨 길을 나섭니다.

기스다 씨는 수십 년째 물질, 즉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온 '해남'입니다.

[기스다 생통/태국 시창섬 해남 : "어릴 때부터 바다에 들어갔어요. 5살 또는 10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나가곤 했죠."]

오토바이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간 바닷가.

성인 한 명 겨우 탈 만한 작은 모터 보트를 타고, 오늘의 물질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물질.

["오늘은 바닷속 물살이 잔잔하네요, 어제는 상당히 빨랐거든요."]

손에는 쇠꼬챙이와 그물주머니 하나, 바다 밑바닥에서 조개와 소라 등을 건져 올립니다.

바다 생물과 산호가 가득했던 이곳, 이젠 돌밭이 돼 버렸습니다.

그나마 가끔 눈에 띄는 조개류가 반가울 뿐입니다.

[기스다 생통/태국 시창섬 해남 : "예전엔 바닷속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이 많았거든요. 요즘엔 그만큼 많지 않아요."]

1시간 넘게 이어진 물질, 그물에 담긴 건 조개류 몇 개뿐입니다.

이곳은 어종 보호를 위해 전문적인 고기잡이가 금지돼 있지만, 해남들에 한해 해산물 채취는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채취한 해산물은 인근 식당에 팔거나 시장에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확이 적은 만큼, 벌이도 시원치 않습니다.

결국, 몇년 전부터 육지의 한 박물관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스다 생통/태국 시창섬 해남 : "조개 캐는 일에서 벗어나 돈을 벌기 위해선 다른 일을 찾아야 했어요."]

각종 바다생물이 가득한 수족관들.

손에 든 건 상어의 알입니다.

투명한 껍질 속으로 새끼 상어의 움직임이 보입니다.

개체 수가 급감한 해양 동물의 알을 부화시켜 바다로 돌려보내는 시창섬 해양생물센텁니다.

특히 최근 급감한 산호를 되살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닌라낫 차이타나위숫/시창섬 해양생물센터장 : "(어린 산호를 키운 뒤) 바다에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시창섬 주변에 지금보다 산호가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겁니다."]

6년 전 닌라낫 씨가 직접 조성한 이곳, 태국 왕실의 공주가 방문하면서 예산 지원도 받고 있지만, 바다를 되살리기엔 여전히 역부족입니다.

주변 공장과 대형 선박 등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바다 수온이 33도 씨를 웃도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닌라낫 차이타나위숫/시창섬 해양생물센터장 : "요즘 가장 큰 문제는 폐수 때문에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끔 바다의 색깔이 갈색이나 녹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정은 시창섬 주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맑고 깨끗한 것으로 유명했던 태국 바다 곳곳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수차나 차와닛/박사/쭐라롱껀대학교 해양과학·수산자원 연구소 교수 : "인류의 행위, 그리고 기후변화가 원인입니다. 태국 주변의 산호가 예전보다 30% 이상 감소했습니다. 사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막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도를 줄일 수는 있을 겁니다."]

태국에서 '해남'의 수는 최근 들어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통적 채취 방식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바다를 되살리려는 시창섬 사람들의 노력.

소중하지만 힘에 부쳐 보입니다.

방콕에서 정윤섭입니다.

영상편집:오태규/촬영:KEMIN/자료조사·통역:NICHIMON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태국에는 ‘해녀’ 아닌 ‘해남’이…기후 변화에 생계 위기
    • 입력 2024-02-17 22:09:05
    • 수정2024-03-06 16:39:00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우리나라 제주에 해녀가 있다면, 태국에도 해남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섬에 사는 남성들이 우리 해녀처럼 비슷한 복장과 도구로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며 살고 있다는데요.

그런데, 최근엔 이런 일을 하는 '해남'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방콕 정윤섭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국 남부 시라차 앞바다, 배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꼬 시창, 시창섬에 다다릅니다.

섬 안쪽, 작은 집에서 만난 기스다 씨.

마침 작업을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오리발과 물안경 같은 간단한 장비만 챙겨 길을 나섭니다.

기스다 씨는 수십 년째 물질, 즉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온 '해남'입니다.

[기스다 생통/태국 시창섬 해남 : "어릴 때부터 바다에 들어갔어요. 5살 또는 10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나가곤 했죠."]

오토바이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간 바닷가.

성인 한 명 겨우 탈 만한 작은 모터 보트를 타고, 오늘의 물질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물질.

["오늘은 바닷속 물살이 잔잔하네요, 어제는 상당히 빨랐거든요."]

손에는 쇠꼬챙이와 그물주머니 하나, 바다 밑바닥에서 조개와 소라 등을 건져 올립니다.

바다 생물과 산호가 가득했던 이곳, 이젠 돌밭이 돼 버렸습니다.

그나마 가끔 눈에 띄는 조개류가 반가울 뿐입니다.

[기스다 생통/태국 시창섬 해남 : "예전엔 바닷속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이 많았거든요. 요즘엔 그만큼 많지 않아요."]

1시간 넘게 이어진 물질, 그물에 담긴 건 조개류 몇 개뿐입니다.

이곳은 어종 보호를 위해 전문적인 고기잡이가 금지돼 있지만, 해남들에 한해 해산물 채취는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채취한 해산물은 인근 식당에 팔거나 시장에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확이 적은 만큼, 벌이도 시원치 않습니다.

결국, 몇년 전부터 육지의 한 박물관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스다 생통/태국 시창섬 해남 : "조개 캐는 일에서 벗어나 돈을 벌기 위해선 다른 일을 찾아야 했어요."]

각종 바다생물이 가득한 수족관들.

손에 든 건 상어의 알입니다.

투명한 껍질 속으로 새끼 상어의 움직임이 보입니다.

개체 수가 급감한 해양 동물의 알을 부화시켜 바다로 돌려보내는 시창섬 해양생물센텁니다.

특히 최근 급감한 산호를 되살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닌라낫 차이타나위숫/시창섬 해양생물센터장 : "(어린 산호를 키운 뒤) 바다에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시창섬 주변에 지금보다 산호가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겁니다."]

6년 전 닌라낫 씨가 직접 조성한 이곳, 태국 왕실의 공주가 방문하면서 예산 지원도 받고 있지만, 바다를 되살리기엔 여전히 역부족입니다.

주변 공장과 대형 선박 등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바다 수온이 33도 씨를 웃도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닌라낫 차이타나위숫/시창섬 해양생물센터장 : "요즘 가장 큰 문제는 폐수 때문에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끔 바다의 색깔이 갈색이나 녹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정은 시창섬 주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맑고 깨끗한 것으로 유명했던 태국 바다 곳곳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수차나 차와닛/박사/쭐라롱껀대학교 해양과학·수산자원 연구소 교수 : "인류의 행위, 그리고 기후변화가 원인입니다. 태국 주변의 산호가 예전보다 30% 이상 감소했습니다. 사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막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도를 줄일 수는 있을 겁니다."]

태국에서 '해남'의 수는 최근 들어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통적 채취 방식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바다를 되살리려는 시창섬 사람들의 노력.

소중하지만 힘에 부쳐 보입니다.

방콕에서 정윤섭입니다.

영상편집:오태규/촬영:KEMIN/자료조사·통역:NICHIMON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