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해받는 나발니”…“트럼프 꿈은 ‘아메리칸 푸틴’?”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입력 2024.02.20 (16:48) 수정 2024.02.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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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당신과 우리 외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일주일쯤 전에 알렉세이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재미있고 활기찬 이메일이었습니다. 풀과 나뭇잎이 보이지 않는 감방에 앉아있다며 산책할 때도 밖이 아닌 옆 감방으로만 데려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괜찮고 그 어떤 것도 그를 망치지 못할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략)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가 초자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는 죽을 수 없다고, 외계인은 죽지 않으니까 라고 쉽게 생각했지요.

그는 이제 미래 러시아의 대통령이 아닌 미래 러시아의 건국의 아버지가 될 겁니다. 완벽한 선례가 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여러 세대에 걸친 슈퍼 히어로이자, 자라날 아이들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존경하게 될 건 푸틴이 아닙니다. (중략) 사람들은 러시아에 이제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러시아의 미래는 전 세계에서 나발니를 애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발니는 우리를 단결시켰고,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제 당신과 우리 외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함께 노력합시다"

현지 시간 19일, 러시아 언론인 미하일 지가르가 미국 ‘타임’지에 기고한 알렉세이 나발니 애도문 (사진=타임)현지 시간 19일, 러시아 언론인 미하일 지가르가 미국 ‘타임’지에 기고한 알렉세이 나발니 애도문 (사진=타임)

러시아의 독립뉴스 채널 '도즈드'의 설립자인 미하일 지가르가 16일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을 애도한 글입니다. 나발니가 생전에 오랜 교분을 나눴던 지가르의 애도문은 현지 시간 19일 러시아가 아닌 미국 매체 '타임'지에 실렸습니다. 반(反) 푸틴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애도는 러시아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더 불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17일 미국 워싱턴 DC의 주미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도 나발니의 죽음에 분노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러시아인 이고르 수리코프는 "나발니와 그의 동료들은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우리가 결코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며 울먹였습니다. 미국인들도 동참했습니다. 미국인 참석자 앤드류 다니에리는 "모두가 나발니를 기억할 것이며, 러시아인들이 그의 유산을 이어가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시간 17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나발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AP)현지 시간 17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나발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AP)

■ 트럼프, 나발니 죽음 애도 없이 '나랑 비슷해'…미국 대선판 '푸틴 리스크'?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지 시간 16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까지 열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그렇듯 나도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놀랍지 않으며, 격분하고 있다. 푸틴이 나발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럽 주요 국가들에선 각국 주재 러시아 대사들이 잇따라 초치돼 나발니 사망에 대한 항의, 진상 조사 요구 등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이든의 대선 경쟁자인 트럼프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나발니 사망 뒤 사흘이나 지나 SNS를 통해 내놓은 언급에선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없었습니다. 대신 '나발니는 나랑 처지가 똑같다'는 식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지 시간 19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나발니 관련 언급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지 시간 19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나발니 관련 언급

4건의 형사 기소를 비롯한 각종 민·형사 재판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이 나발니와 같은 정치 탄압의 희생자라는 의미입니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바이든:트럼프=푸틴:나발니"라는 제목의 보수매체 사설을 게시했습니다. 나발니가 "조작된 범죄로 기소돼 투옥됐고 사회와 격리됐었다"며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설입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를 두고 "트럼프가 나발니를 언급했지만 그게 다였다, 누구도 비난하거나 연민을 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등 미국 언론 대다수도 "트럼프가 푸틴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트럼프의 태도는 대선 선거판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공화당 경선 경쟁자인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트럼프가 칭송하고 옹호하는 푸틴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푸틴이 나발니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지 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공화당의 '반트럼프' 인사인 체니 전 하원의원은 트럼프를 '푸틴파'로 칭하며 "문제는 공화당의 푸틴파가 백악관 웨스트윙(대통령 집무실)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푸틴의 천재적 침공"…"트럼프 기소는 박해"

트럼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맹공에 나설 수 있는 건 트럼프와 러시아가 오래, 자주 엮이며 뒷말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등이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에 유리한 글을 SNS에 올려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 논란이 커졌습니다.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이 의혹이 뒤따라다녔는데도, 트럼프와 푸틴은 살가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17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우)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첫 미·러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2017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우)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첫 미·러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의혹이 한창이던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두 시간 넘는 이례적인 정상회담을 한 것도 모자라, 몇 시간 뒤 따로 또 만났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측 통역사만 배석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적 만찬이라 해도 미국 측 통역사가 배석하지 않았기에 무슨 내용을 말했는지 알 수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정보기관 채널을 통해 러시아 내 테러를 막을 정보를 전해줬고 이에 감사를 표했다"고 말해 두 사람의 관계가 또 입길에 올랐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우호적 관계는 계속 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2022년 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천재적"이라며 이를 감행한 푸틴 대통령에 대해 "그는 얼마나 똑똑한가? 대단히 요령 있다"고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에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언론담당 부보좌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두 마리의 역겹고 끔찍한 돼지"라고까지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지난해 9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되자 이번엔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 박해"라고 트럼프를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 "트럼프는 아메리칸 푸틴"…"경선 영향은 제로"

이번 나발니에 관한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도 푸틴과의 끈끈한 관계와 연관돼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 부대변인을 지낸 사라 매튜스는 미국 NBC 뉴스와의 대담에서 "트럼프는 어떤 면에서 푸틴을 존경하는 것 같다. 그는 나발니의 죽음 같은 일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캠페인의 목적을 '보복'이라고 말했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보복'이란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실은 트럼프 자신과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를 '미국의 푸틴'으로 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려던 여성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려던 여성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경선 압승 가도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미국 언론들 분석입니다. 미국 인터넷매체 세마포의 벤지 살린 워싱턴 지국장은 "트럼프의 발언에서 눈에 띄는 점은 너무 모호하고, 벌어진 상황과 동떨어져 있어서 어떤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습니다.

나발니의 죽음에 대해 푸틴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푸틴과 친밀한 관계였던 자신에게 쏟아질 주목을 엉뚱한 말로 희석시켜버리는 트럼프 특유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트럼프는 과거 나발니에 대한 독살 시도가 있었을 때도 러시아의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계속 물어보는 게 흥미롭다. 러시아보다는 중국이 훨씬 더 많이 얘기해야 할 국가"라며 묘하게 답을 피한 적이 있습니다.

살린 지국장은 24일에 있을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경선에 미칠 영향도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며 "경쟁자인 헤일리가 트럼프를 비난하는 방식은 바이든과 똑같아서 공화당 지지자들을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지난 10일 이 지역에서 벌인 유세에서 "나토가 제대로 돈을 내지 않으면 (나토 동맹국들을) 보호하지 않겠다. 오히려 러시아에 침공을 독려할 것"이라고 말해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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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박해받는 나발니”…“트럼프 꿈은 ‘아메리칸 푸틴’?”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 입력 2024-02-20 16:48:34
    • 수정2024-02-20 16: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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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당신과 우리 외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일주일쯤 전에 알렉세이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재미있고 활기찬 이메일이었습니다. 풀과 나뭇잎이 보이지 않는 감방에 앉아있다며 산책할 때도 밖이 아닌 옆 감방으로만 데려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괜찮고 그 어떤 것도 그를 망치지 못할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략)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가 초자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는 죽을 수 없다고, 외계인은 죽지 않으니까 라고 쉽게 생각했지요.

그는 이제 미래 러시아의 대통령이 아닌 미래 러시아의 건국의 아버지가 될 겁니다. 완벽한 선례가 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여러 세대에 걸친 슈퍼 히어로이자, 자라날 아이들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존경하게 될 건 푸틴이 아닙니다. (중략) 사람들은 러시아에 이제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러시아의 미래는 전 세계에서 나발니를 애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발니는 우리를 단결시켰고,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제 당신과 우리 외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함께 노력합시다"

현지 시간 19일, 러시아 언론인 미하일 지가르가 미국 ‘타임’지에 기고한 알렉세이 나발니 애도문 (사진=타임)
러시아의 독립뉴스 채널 '도즈드'의 설립자인 미하일 지가르가 16일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을 애도한 글입니다. 나발니가 생전에 오랜 교분을 나눴던 지가르의 애도문은 현지 시간 19일 러시아가 아닌 미국 매체 '타임'지에 실렸습니다. 반(反) 푸틴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애도는 러시아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더 불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17일 미국 워싱턴 DC의 주미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도 나발니의 죽음에 분노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러시아인 이고르 수리코프는 "나발니와 그의 동료들은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우리가 결코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며 울먹였습니다. 미국인들도 동참했습니다. 미국인 참석자 앤드류 다니에리는 "모두가 나발니를 기억할 것이며, 러시아인들이 그의 유산을 이어가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시간 17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나발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AP)
■ 트럼프, 나발니 죽음 애도 없이 '나랑 비슷해'…미국 대선판 '푸틴 리스크'?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지 시간 16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까지 열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그렇듯 나도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놀랍지 않으며, 격분하고 있다. 푸틴이 나발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럽 주요 국가들에선 각국 주재 러시아 대사들이 잇따라 초치돼 나발니 사망에 대한 항의, 진상 조사 요구 등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이든의 대선 경쟁자인 트럼프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나발니 사망 뒤 사흘이나 지나 SNS를 통해 내놓은 언급에선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없었습니다. 대신 '나발니는 나랑 처지가 똑같다'는 식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지 시간 19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나발니 관련 언급
4건의 형사 기소를 비롯한 각종 민·형사 재판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이 나발니와 같은 정치 탄압의 희생자라는 의미입니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바이든:트럼프=푸틴:나발니"라는 제목의 보수매체 사설을 게시했습니다. 나발니가 "조작된 범죄로 기소돼 투옥됐고 사회와 격리됐었다"며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설입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를 두고 "트럼프가 나발니를 언급했지만 그게 다였다, 누구도 비난하거나 연민을 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등 미국 언론 대다수도 "트럼프가 푸틴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트럼프의 태도는 대선 선거판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공화당 경선 경쟁자인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트럼프가 칭송하고 옹호하는 푸틴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푸틴이 나발니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지 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공화당의 '반트럼프' 인사인 체니 전 하원의원은 트럼프를 '푸틴파'로 칭하며 "문제는 공화당의 푸틴파가 백악관 웨스트윙(대통령 집무실)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푸틴의 천재적 침공"…"트럼프 기소는 박해"

트럼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맹공에 나설 수 있는 건 트럼프와 러시아가 오래, 자주 엮이며 뒷말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등이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에 유리한 글을 SNS에 올려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 논란이 커졌습니다.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이 의혹이 뒤따라다녔는데도, 트럼프와 푸틴은 살가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17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우)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첫 미·러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의혹이 한창이던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두 시간 넘는 이례적인 정상회담을 한 것도 모자라, 몇 시간 뒤 따로 또 만났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측 통역사만 배석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적 만찬이라 해도 미국 측 통역사가 배석하지 않았기에 무슨 내용을 말했는지 알 수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정보기관 채널을 통해 러시아 내 테러를 막을 정보를 전해줬고 이에 감사를 표했다"고 말해 두 사람의 관계가 또 입길에 올랐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우호적 관계는 계속 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2022년 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천재적"이라며 이를 감행한 푸틴 대통령에 대해 "그는 얼마나 똑똑한가? 대단히 요령 있다"고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에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언론담당 부보좌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두 마리의 역겹고 끔찍한 돼지"라고까지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지난해 9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되자 이번엔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 박해"라고 트럼프를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 "트럼프는 아메리칸 푸틴"…"경선 영향은 제로"

이번 나발니에 관한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도 푸틴과의 끈끈한 관계와 연관돼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 부대변인을 지낸 사라 매튜스는 미국 NBC 뉴스와의 대담에서 "트럼프는 어떤 면에서 푸틴을 존경하는 것 같다. 그는 나발니의 죽음 같은 일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캠페인의 목적을 '보복'이라고 말했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보복'이란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실은 트럼프 자신과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를 '미국의 푸틴'으로 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려던 여성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경선 압승 가도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미국 언론들 분석입니다. 미국 인터넷매체 세마포의 벤지 살린 워싱턴 지국장은 "트럼프의 발언에서 눈에 띄는 점은 너무 모호하고, 벌어진 상황과 동떨어져 있어서 어떤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습니다.

나발니의 죽음에 대해 푸틴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푸틴과 친밀한 관계였던 자신에게 쏟아질 주목을 엉뚱한 말로 희석시켜버리는 트럼프 특유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트럼프는 과거 나발니에 대한 독살 시도가 있었을 때도 러시아의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계속 물어보는 게 흥미롭다. 러시아보다는 중국이 훨씬 더 많이 얘기해야 할 국가"라며 묘하게 답을 피한 적이 있습니다.

살린 지국장은 24일에 있을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경선에 미칠 영향도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며 "경쟁자인 헤일리가 트럼프를 비난하는 방식은 바이든과 똑같아서 공화당 지지자들을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지난 10일 이 지역에서 벌인 유세에서 "나토가 제대로 돈을 내지 않으면 (나토 동맹국들을) 보호하지 않겠다. 오히려 러시아에 침공을 독려할 것"이라고 말해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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