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값 계산 먼저”…상처 덧입은 재난 피해자들

입력 2024.02.21 (19:35) 수정 2024.02.21 (20:3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KBS 탐사 기획 '재난과 악몽' 세 번째 순섭니다.

재난의 경험과 소중한 가족을 잃은 고통은 일상을 지배하는 심리적 외상을 남기는데요.

진상 규명 대신 배상과 보상의 이름으로 목숨에 값을 먼저 매기는 접근법은 상처를 더 깊게 합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사이 8년, 우리 사회는 과연 달라졌을까요?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이가 잠긴 바닷물만큼 부모 가슴을 시리게 한 건, 날 선 냉대와 왜곡된 시선이었습니다.

2천14년 4월 16일.

생사조차 확인 못 한 참사 당일, 유족 눈물 위로 사망 보험금을 계산하며 목숨값을 덧입히던 세상은 지울 수 없는 모욕이 됐습니다.

그토록 외친 진상 규명을 외면한 정부.

참사 한 해를 보름 남기고 서둘러 배·보상안을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경쟁하듯 부추겼습니다.

["학생은 배상금 등을 합쳐 8억여 원을, 교사는 11억여 원을 받을 것으로…."]

"잊지 말자"던 되새김 뒤 8년, 바뀐 건 없었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또다시 차가운 거리에 서 곡기를 끊고 머리카락을 잘라냈습니다.

438일 만에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을 끝내 거부한 대통령과 정부가 내민 건, 역시 지원금과 치료비 등 경제적 지원을 하겠단 말뿐, 그러나 켜켜이 쌓인 심리적 상처와 무너진 존엄은 '돈 봉투'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방기선/국무조정실장/지난달 30일 :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확정 전이라도 신속하게 배상과 필요한 지원을…."]

반복된 참사에도, 무너진 구호 체계를 물질적 지원으로 뒤늦게 만회하려는 재난 당국의 접근법, 진실 규명이 장기화할수록, 국가 배·보상액의 수용 여부와 기준 등을 두고 참사 피해자들 사이 갈등과 분열을 낳기도 합니다.

[문성철/故 문효균 씨 아버지 : "상처 입죠. 어떤 부모가 자식의 죽음,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세월호 때, 저희들 알고 있었이요. 돈 가지고 유족들을 왜곡시키고 폄하하고, 국민들로부터 등 돌리게 한 걸 봤기 때문에…."]

참사 뒤 일상까지 배어든 트라우마를 반복해 경험하는 피해자와 유족, 현장 목격자들을 위한 심리 치료가 재난 구호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경욱/원광디지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내 슬픔과 진실에 대한 관심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재난 지원에 대한 의미, 재난 후 일상의 회복에 대한 의미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목숨에 값을 매기기에 앞서 국가가 이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건, "당신, 얼마나 아팠습니까?"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입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김동균/그래픽:최희태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목숨값 계산 먼저”…상처 덧입은 재난 피해자들
    • 입력 2024-02-21 19:35:09
    • 수정2024-02-21 20:30:54
    뉴스7(전주)
[앵커]

KBS 탐사 기획 '재난과 악몽' 세 번째 순섭니다.

재난의 경험과 소중한 가족을 잃은 고통은 일상을 지배하는 심리적 외상을 남기는데요.

진상 규명 대신 배상과 보상의 이름으로 목숨에 값을 먼저 매기는 접근법은 상처를 더 깊게 합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사이 8년, 우리 사회는 과연 달라졌을까요?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이가 잠긴 바닷물만큼 부모 가슴을 시리게 한 건, 날 선 냉대와 왜곡된 시선이었습니다.

2천14년 4월 16일.

생사조차 확인 못 한 참사 당일, 유족 눈물 위로 사망 보험금을 계산하며 목숨값을 덧입히던 세상은 지울 수 없는 모욕이 됐습니다.

그토록 외친 진상 규명을 외면한 정부.

참사 한 해를 보름 남기고 서둘러 배·보상안을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경쟁하듯 부추겼습니다.

["학생은 배상금 등을 합쳐 8억여 원을, 교사는 11억여 원을 받을 것으로…."]

"잊지 말자"던 되새김 뒤 8년, 바뀐 건 없었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또다시 차가운 거리에 서 곡기를 끊고 머리카락을 잘라냈습니다.

438일 만에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을 끝내 거부한 대통령과 정부가 내민 건, 역시 지원금과 치료비 등 경제적 지원을 하겠단 말뿐, 그러나 켜켜이 쌓인 심리적 상처와 무너진 존엄은 '돈 봉투'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방기선/국무조정실장/지난달 30일 :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확정 전이라도 신속하게 배상과 필요한 지원을…."]

반복된 참사에도, 무너진 구호 체계를 물질적 지원으로 뒤늦게 만회하려는 재난 당국의 접근법, 진실 규명이 장기화할수록, 국가 배·보상액의 수용 여부와 기준 등을 두고 참사 피해자들 사이 갈등과 분열을 낳기도 합니다.

[문성철/故 문효균 씨 아버지 : "상처 입죠. 어떤 부모가 자식의 죽음,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세월호 때, 저희들 알고 있었이요. 돈 가지고 유족들을 왜곡시키고 폄하하고, 국민들로부터 등 돌리게 한 걸 봤기 때문에…."]

참사 뒤 일상까지 배어든 트라우마를 반복해 경험하는 피해자와 유족, 현장 목격자들을 위한 심리 치료가 재난 구호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경욱/원광디지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내 슬픔과 진실에 대한 관심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재난 지원에 대한 의미, 재난 후 일상의 회복에 대한 의미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목숨에 값을 매기기에 앞서 국가가 이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건, "당신, 얼마나 아팠습니까?"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입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김동균/그래픽:최희태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전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KBS는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자유로운 댓글 작성을 지지합니다.
다만 해당 기사는 댓글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자체 논의를 거쳐 댓글창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