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48곳 ‘상수도관 부식 방지’ 미인증 장비에 124억 샜다

입력 2024.02.28 (17:54) 수정 2024.02.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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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서울 문래동 붉은 수돗물 사태의 원인으로 노후 상수도관이 지목된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지역의 상수도관은 결국 설치 40여 년 만에 교체됐는데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상수도관 부식을 막겠다며 상수도관 교체 대신 '부식 억제 장비'를 부착한 사례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해당 장비들이 정작 법정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이라는 겁니다.

■상수도관 부식 막겠다며 부착했지만 '미인증'...124억 새어나갔다

한 지자체가 상수도관에 설치한 미인증 부식억제 장비(사진제공: 국민권익위원회)한 지자체가 상수도관에 설치한 미인증 부식억제 장비(사진제공: 국민권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2월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설치로 지자체들이 세금을 낭비한다"는 부패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 실태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조사 결과 48개 지자체에서 장비 5백여 개를 설치해 124억 원을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북 270개, 경기 112개, 경남 57개 순으로 많았습니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들이 상수도관이 부식되는 걸 막기 위해 조달청의 나라장터 쇼핑몰에서 개당 수백만 원부터 2억 원대로 팔리는 제품들을 구입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자체들이 사들인 제품들의 규격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 단, 수도법시행령 제32조 1호 나목에 해당하는 급수설비의 옥내급수관에만 사용 가능하며, 수도법 제14조 제3항 에 해당하는 일반수도 또는 전용상수도용으로는 사용이 불가함

해당 제품들은 '옥내용'이었고, 상수도관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국물기술인증원으로부터 적합 인증(CP인증)을 받은 제품들이 아니었던 겁니다.

현재 시중에는 옥외 상수도관 부착 용도로 인증된 부식 억제 장비는 없습니다. 금속관로 상수도관의 부식억제 장비로 인증을 받으려면 부식 억제율이 25% 이상 돼야하는데, 그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겁니다. 결국 상수도관 부식을 막으려면 비금속 재질의 상수도관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지자체로선 예산이 부담입니다.

한 지자체가 부착한 장비의 부식 억제율을 살펴보니 상수도관용 인증 기준인 25%에 한참 모자른 14%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고 권익위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지자체 공무원 "기존에도 쓰던 것이라 효과 기대...'옥내용' 확인 못한 건 맞아"

미인증 장비를 상수도관에 부착한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옥내용이라고 된 걸 저희가 확인 못한 건 맞다"고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다만 "지역에 노후관이 굉장히 많고, 이번에 저희가 처음 사용한 게 아니라 사용한 지 꽤 됐다. 그런 장비로도 해결된다면 한번 적용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차원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수도사업소 상수도관에 설치된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모습. 해당 장비는 1억 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화면제공: 국가권익위원회)경기도의 한 수도사업소 상수도관에 설치된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모습. 해당 장비는 1억 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화면제공: 국가권익위원회)

미인증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곳은 서울과 인천, 대전, 세종, 충북, 광주, 대구, 부산, 제주였습니다. 해당 지자체들은 상수도관이 부식되지 않는 비금속관이거나 CP 인증 장비가 시중에 없다는 이유로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권익위 "환경부 후속 조치 필요...내용 공유"

권익위 관계자는 이런 조사 결과를 관계부처인 환경부에 공유했습니다. 권익위 관계자는 "2016년 9월부터 환경부가 부식억제 장비가 CP인증을 받도록 했다. 다만 해당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상황도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환경부도 인증 기준의 변경을 공지한 적이 있었던 만큼 공무원들이 '미인증'을 알고도 구매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무원 소속 기관 등의 자체 감찰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권익위가 수사 의뢰한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제조∙판매 업체 3곳에 대해 수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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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서울 문래동 붉은 수돗물 사태의 원인으로 노후 상수도관이 지목된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지역의 상수도관은 결국 설치 40여 년 만에 교체됐는데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상수도관 부식을 막겠다며 상수도관 교체 대신 '부식 억제 장비'를 부착한 사례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해당 장비들이 정작 법정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이라는 겁니다.

■상수도관 부식 막겠다며 부착했지만 '미인증'...124억 새어나갔다

한 지자체가 상수도관에 설치한 미인증 부식억제 장비(사진제공: 국민권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2월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설치로 지자체들이 세금을 낭비한다"는 부패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 실태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조사 결과 48개 지자체에서 장비 5백여 개를 설치해 124억 원을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북 270개, 경기 112개, 경남 57개 순으로 많았습니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들이 상수도관이 부식되는 걸 막기 위해 조달청의 나라장터 쇼핑몰에서 개당 수백만 원부터 2억 원대로 팔리는 제품들을 구입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자체들이 사들인 제품들의 규격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 단, 수도법시행령 제32조 1호 나목에 해당하는 급수설비의 옥내급수관에만 사용 가능하며, 수도법 제14조 제3항 에 해당하는 일반수도 또는 전용상수도용으로는 사용이 불가함

해당 제품들은 '옥내용'이었고, 상수도관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국물기술인증원으로부터 적합 인증(CP인증)을 받은 제품들이 아니었던 겁니다.

현재 시중에는 옥외 상수도관 부착 용도로 인증된 부식 억제 장비는 없습니다. 금속관로 상수도관의 부식억제 장비로 인증을 받으려면 부식 억제율이 25% 이상 돼야하는데, 그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겁니다. 결국 상수도관 부식을 막으려면 비금속 재질의 상수도관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지자체로선 예산이 부담입니다.

한 지자체가 부착한 장비의 부식 억제율을 살펴보니 상수도관용 인증 기준인 25%에 한참 모자른 14%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고 권익위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지자체 공무원 "기존에도 쓰던 것이라 효과 기대...'옥내용' 확인 못한 건 맞아"

미인증 장비를 상수도관에 부착한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옥내용이라고 된 걸 저희가 확인 못한 건 맞다"고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다만 "지역에 노후관이 굉장히 많고, 이번에 저희가 처음 사용한 게 아니라 사용한 지 꽤 됐다. 그런 장비로도 해결된다면 한번 적용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차원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수도사업소 상수도관에 설치된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모습. 해당 장비는 1억 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화면제공: 국가권익위원회)
미인증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곳은 서울과 인천, 대전, 세종, 충북, 광주, 대구, 부산, 제주였습니다. 해당 지자체들은 상수도관이 부식되지 않는 비금속관이거나 CP 인증 장비가 시중에 없다는 이유로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권익위 "환경부 후속 조치 필요...내용 공유"

권익위 관계자는 이런 조사 결과를 관계부처인 환경부에 공유했습니다. 권익위 관계자는 "2016년 9월부터 환경부가 부식억제 장비가 CP인증을 받도록 했다. 다만 해당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상황도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환경부도 인증 기준의 변경을 공지한 적이 있었던 만큼 공무원들이 '미인증'을 알고도 구매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무원 소속 기관 등의 자체 감찰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권익위가 수사 의뢰한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제조∙판매 업체 3곳에 대해 수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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