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번을 누르면 농장이 열린다” 큐브형 스마트팜

입력 2024.03.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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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이 핫 이슈이긴 한가 봅니다. 농업 분야 취재를 맡고 있는 제가 2월 한 달 동안 방문한 스마트팜만 전국에 4곳이나 되는 걸 보니 말입니다. 스마트팜만 골라서 취재한 것도 아닌데, 정부 정책이 나올 때마다 스마트팜이 빠지질 않았던 탓입니다.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비 부담이 크지만, 관행 농업에 비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의 규모도 커서 청년 농민들의 관심도 높습니다. 재배환경을 IoT 기술로 제어하는 기술도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해 스마트팜 붐을 이끌고 있습니다.

전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팜을 취재하며 느낀 것은, 저마다 유형도 다르고 최적화된 작물도 다르고 시설에 들어가는 자금의 규모도 천양지차라 하나로 요약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는데요. 무엇보다 1~2분짜리 방송용 리포트에서는 많은 얘기를 담을 수 없어, 스마트팜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큐브형 스마트팜 : 비밀번호를 누르면 농장이 열립니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드림팜 본사에서 만난 박향진 대표. 큐브형 스마트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경남 사천시에 있는 드림팜 본사에서 만난 박향진 대표. 큐브형 스마트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큐브형 스마트팜은 외견상 창고처럼 보입니다. 경남 사천에 있는 드림팜 본사 주차장에 놓여있는 큐브도 딱 그랬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면 그 안에 푸른 농장이 펼쳐집니다. 문을 닫아놓으면 단열이 완벽한 구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농장으로 출근하는 거죠.

"매일 24시간 퇴근이 없는 농부가 아니라, '출근하는 농부'가 될 수 있어야 더 많은 이들이 더 쉽게 농업에 투신할 수 있다" 는 것이, 드림팜 박향진 대표의 포부입니다.

■ 왜 24㎡ 인가요?

큐브의 크기는 3m x 8m x 3m 입니다. 면적이 24㎡, 높이가 3m라서 5톤짜리 화물차에 실어서 전국 어디든지 배송(!) 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이왕 하는 농사라면 규모가 커야 수익이 많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박향진 대표는 "저온 상태를 유지하기에 최적인 규모"라고 답합니다.

규모가 더 큰 스마트팜도 시도를 해봤지만, 내부 온도를 1℃ 내리는데 드는 에너지 차이가 너무 커서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빠르게 온도를 낮출 수 있는 24㎡로 개발했다고요.

또 전국 어디서든 주문만 하면 농장을 화물차에 실어 배달해서, 전기와 수도, 인터넷만 연결하면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 왜 온도를 낮추는 게 중요하죠?

이 큐브가 '저온성 작물'에 특화된 스마트팜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온실'은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도로 따뜻하게 보온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드림팜의 큐브는 연중 시원한 농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큐브 안에는 ‘배지 경 수경재배’ 단이 3단으로 설치돼 있다.큐브 안에는 ‘배지 경 수경재배’ 단이 3단으로 설치돼 있다.

지금 큐브에서 자라고 있는 것도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고추냉이 (일명 와사비) 입니다. 고추냉이는 12~15℃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재배하는 곳이 드뭅니다. 특히 수온이 15℃ 정도여야 하는데, 우리나라 지하수 온도는 17℃ 정도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큐브 안을 연중 서늘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박 대표는 큐브 안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자동으로 제어해주는 시설과 영양분 등의 조합을 통해, 고추냉이를 2년간 3번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2년에 한 번 수확하는 기존의 농법에 비해 3모작이 가능하게 되었고, 시설 안에도 재배 단을 3층으로 쌓아서 그만큼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이런 시설이 꼭 필요한 곳이 있겠군요!

바로 더운 나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큐브형 스마트팜 1억 2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5백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해낸 것도 바로 이런 경쟁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스마트팜 시장에서는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꼽히지만, '시원하게 만드는 것'은 큐브만 한 게 없다고 박 대표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맛이 없어지는 딸기도, 이 큐브에서는 겨울철과 똑같은 맛을 내도록 생산해서 지난해 뉴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여름철 딸기가 비싸게 팔린 것은 물론이고요.

중동뿐 아니라 카자흐스탄이나 괌 등 작물 재배가 힘든 곳에서 수입 상담이 들어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 농산물의 인기가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드림팜 박향진 대표드림팜 박향진 대표

“이거는 우리 밭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단순히 큐브를 판매하고 끝이 아니라, 우리 밭을 늘려나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딸기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외국)서는 또 신선한 맛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있으니까, 딸기를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용은 얼마나 들죠?

스마트팜에 관심 있는 분들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질문을 하시더군요. 방송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저도 꼭 물어봅니다.

24㎡짜리 큐브 한 동 가격은 5천만 원. 이를 운용해 얻는 농민의 수익은 평균 월 100만 원 선이라고 합니다.

노동시간은 고추냉이의 경우 일주일에 1시간 정도면 된다고 설명합니다. 고추냉이가 잘 자랄 수 있는 레시피 대로 큐브가 설정돼 있으니, 관리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여다 보면 된다고 설명하는데, 대부분 주인은 매일 들여다 본다고 하는군요. 생명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힐링이니까요.

노동력이 그리 많이 들지 않으니, 큐브를 5~10동씩 관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청년 농민뿐 아니라 '정년퇴직 농민'도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비해 딸기는 손이 더 많이 가고 전문성이 필요한데, 수익도 더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습니다.

■키우면 팔 곳은 있을까요?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가장 새겨들어야 할 조언은 "내가 키울 수 있는 것을 재배하지 말고, 팔 수 있는 것을 재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농산물은 판로가 중요합니다.

드림팜은 큐브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큐브에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컨설팅해주고, 작물을 수확하면 전량 유통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작목반처럼 여러 농민을 모아서 규모의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 소비처와의 협상력도 키우는 효과가 있겠습니다.

특히 '서늘한 환경을 유지하는 특기'를 살려서, 계절을 거꾸로 타는 작목을 선정해서 농가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관리한다는 설명입니다.

유통 수수료는 2% 정도를 매긴다고 하니, 일반적인 농산물 유통조직보다는 저렴하게 들렸습니다.

스마트팜 중에는 유리온실형도 있고, 수직농장도 있었는데요, 앞으로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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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번을 누르면 농장이 열린다” 큐브형 스마트팜
    • 입력 2024-03-03 08: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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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이 핫 이슈이긴 한가 봅니다. 농업 분야 취재를 맡고 있는 제가 2월 한 달 동안 방문한 스마트팜만 전국에 4곳이나 되는 걸 보니 말입니다. 스마트팜만 골라서 취재한 것도 아닌데, 정부 정책이 나올 때마다 스마트팜이 빠지질 않았던 탓입니다.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비 부담이 크지만, 관행 농업에 비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의 규모도 커서 청년 농민들의 관심도 높습니다. 재배환경을 IoT 기술로 제어하는 기술도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해 스마트팜 붐을 이끌고 있습니다.

전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팜을 취재하며 느낀 것은, 저마다 유형도 다르고 최적화된 작물도 다르고 시설에 들어가는 자금의 규모도 천양지차라 하나로 요약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는데요. 무엇보다 1~2분짜리 방송용 리포트에서는 많은 얘기를 담을 수 없어, 스마트팜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큐브형 스마트팜 : 비밀번호를 누르면 농장이 열립니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드림팜 본사에서 만난 박향진 대표. 큐브형 스마트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큐브형 스마트팜은 외견상 창고처럼 보입니다. 경남 사천에 있는 드림팜 본사 주차장에 놓여있는 큐브도 딱 그랬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면 그 안에 푸른 농장이 펼쳐집니다. 문을 닫아놓으면 단열이 완벽한 구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농장으로 출근하는 거죠.

"매일 24시간 퇴근이 없는 농부가 아니라, '출근하는 농부'가 될 수 있어야 더 많은 이들이 더 쉽게 농업에 투신할 수 있다" 는 것이, 드림팜 박향진 대표의 포부입니다.

■ 왜 24㎡ 인가요?

큐브의 크기는 3m x 8m x 3m 입니다. 면적이 24㎡, 높이가 3m라서 5톤짜리 화물차에 실어서 전국 어디든지 배송(!) 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이왕 하는 농사라면 규모가 커야 수익이 많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박향진 대표는 "저온 상태를 유지하기에 최적인 규모"라고 답합니다.

규모가 더 큰 스마트팜도 시도를 해봤지만, 내부 온도를 1℃ 내리는데 드는 에너지 차이가 너무 커서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빠르게 온도를 낮출 수 있는 24㎡로 개발했다고요.

또 전국 어디서든 주문만 하면 농장을 화물차에 실어 배달해서, 전기와 수도, 인터넷만 연결하면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 왜 온도를 낮추는 게 중요하죠?

이 큐브가 '저온성 작물'에 특화된 스마트팜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온실'은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도로 따뜻하게 보온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드림팜의 큐브는 연중 시원한 농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큐브 안에는 ‘배지 경 수경재배’ 단이 3단으로 설치돼 있다.
지금 큐브에서 자라고 있는 것도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고추냉이 (일명 와사비) 입니다. 고추냉이는 12~15℃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재배하는 곳이 드뭅니다. 특히 수온이 15℃ 정도여야 하는데, 우리나라 지하수 온도는 17℃ 정도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큐브 안을 연중 서늘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박 대표는 큐브 안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자동으로 제어해주는 시설과 영양분 등의 조합을 통해, 고추냉이를 2년간 3번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2년에 한 번 수확하는 기존의 농법에 비해 3모작이 가능하게 되었고, 시설 안에도 재배 단을 3층으로 쌓아서 그만큼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이런 시설이 꼭 필요한 곳이 있겠군요!

바로 더운 나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큐브형 스마트팜 1억 2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5백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해낸 것도 바로 이런 경쟁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스마트팜 시장에서는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꼽히지만, '시원하게 만드는 것'은 큐브만 한 게 없다고 박 대표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맛이 없어지는 딸기도, 이 큐브에서는 겨울철과 똑같은 맛을 내도록 생산해서 지난해 뉴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여름철 딸기가 비싸게 팔린 것은 물론이고요.

중동뿐 아니라 카자흐스탄이나 괌 등 작물 재배가 힘든 곳에서 수입 상담이 들어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 농산물의 인기가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드림팜 박향진 대표
“이거는 우리 밭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단순히 큐브를 판매하고 끝이 아니라, 우리 밭을 늘려나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딸기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외국)서는 또 신선한 맛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있으니까, 딸기를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용은 얼마나 들죠?

스마트팜에 관심 있는 분들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질문을 하시더군요. 방송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저도 꼭 물어봅니다.

24㎡짜리 큐브 한 동 가격은 5천만 원. 이를 운용해 얻는 농민의 수익은 평균 월 100만 원 선이라고 합니다.

노동시간은 고추냉이의 경우 일주일에 1시간 정도면 된다고 설명합니다. 고추냉이가 잘 자랄 수 있는 레시피 대로 큐브가 설정돼 있으니, 관리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여다 보면 된다고 설명하는데, 대부분 주인은 매일 들여다 본다고 하는군요. 생명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힐링이니까요.

노동력이 그리 많이 들지 않으니, 큐브를 5~10동씩 관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청년 농민뿐 아니라 '정년퇴직 농민'도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비해 딸기는 손이 더 많이 가고 전문성이 필요한데, 수익도 더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습니다.

■키우면 팔 곳은 있을까요?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가장 새겨들어야 할 조언은 "내가 키울 수 있는 것을 재배하지 말고, 팔 수 있는 것을 재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농산물은 판로가 중요합니다.

드림팜은 큐브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큐브에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컨설팅해주고, 작물을 수확하면 전량 유통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작목반처럼 여러 농민을 모아서 규모의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 소비처와의 협상력도 키우는 효과가 있겠습니다.

특히 '서늘한 환경을 유지하는 특기'를 살려서, 계절을 거꾸로 타는 작목을 선정해서 농가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관리한다는 설명입니다.

유통 수수료는 2% 정도를 매긴다고 하니, 일반적인 농산물 유통조직보다는 저렴하게 들렸습니다.

스마트팜 중에는 유리온실형도 있고, 수직농장도 있었는데요, 앞으로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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