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호황의 그늘 Ⅱ, 비행낭인

입력 2024.03.0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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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3회 Ⅱ] 호황의 그늘Ⅱ, 비행낭인

이른바 '비행낭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하는 조종사 지망생을 뜻하는 항공업계 은어입니다.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매년 수백 명, 최근 10년 사이 수천 명의 '비행낭인'이 양산된 것으로 추산할 뿐입니다. 실제 김규왕 한서대학교 비행교육원장은 4~5천 명, 박상모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 사무처장은 8천 명 정도를 얘기합니다.

2014년~2023년 10년 동안 발급된 사업용 조종사 면허는 11,570장입니다. 그 사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10개 항공사에 조종사로 취직한 사람은 4,812명입니다. 단순 뺄셈을 해봐도 6,758명이 남기 때문입니다.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는 데 생활비 제외 7천만 원, 18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나옵니다. 이마저도 2017년 자료입니다. 물론 항공운항학과에 진학하느냐, 전문학교에 가느냐, 미국에 가느냐, 군에 가느냐 등에 따라 비용과 시간은 다를 테지만, 최근엔 일반적으로 1억~1억 5천만 원 이상은 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비행낭인'이 다수 양산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 코로나19 팬데믹

항공업계는 지난 2020년,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풍파를 마주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입니다.

2019년 우리나라 여객기 탑승객은 1억 2천3백만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대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만에, 여객기 탑승객은 3천4백만여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70% 넘게 감소한 겁니다.

이충섭 대한항공 기장(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협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이충섭/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협회장/대한항공 기장
2020년 3월로 기억합니다. 제가 2020년 3월에 비행 일정이 상당히 많이 나왔었어요, 유럽 노선도 많이 나오고 그 당시에. '에어버스330'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3월 1일에 (비행을 갔다가) 3월 4일에 돌아왔더니 거짓말같이 나머지 비행이 다 취소돼버렸어요.

휴업에 이어 대량 해고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스타항공이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인 605명을 해고해버린 겁니다. 그중 조종사는 150여 명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안정적인 직업'이란 인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스타항공 해고 조종사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죠. 사실은 그전까지 조종사들의 기본적인 생각이 '이 직업은 한 번 되고 나면 너무나 안정적인 직장이다'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근데 아마 이스타항공 사태로 인해서 그 이미지가 완전히 깨진 거죠.

조종사도 전문직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종사는 그냥 직장인일 뿐이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전문직이라고 하면 본인이 개업하거나, 아니면 직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돼야 전문직인 것이지, 조종사는 어딘가에 반드시 소속돼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신규 채용도 적었습니다.

2018년 898명, 2019년 761명을 기록한 신규 조종사 채용 인원, 2020년엔 125명, 2021년엔 88명까지 줄어듭니다.

그 사이 2018년 1,558명, 2019년 1,726명, 2020년 1,044명, 2021년 895명의 취업 준비생이 쏟아집니다. 모두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입니다.

닫혀버린 취업 문과 쏟아져 나온 지망생, 그 사이 '비행낭인' 수천 명이 양산된 겁니다.

조종사를 꿈꾸며 직장을 관두고 나온 강동근 씨.

강 씨도 역시 코로나19를 거치며 항공사 취업의 꿈을 접었습니다. 지금은 휴대전화 가게와 여행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열린 하늘길과 호황의 그늘


오래 숨죽였던 항공시장.

호황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월 기준 국제선 여객기와 화물기 운항 실적은 2019년 대비 95.2% 회복했습니다.

채용도 다시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항공사들은 조종사 486명을 새로 채용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조종사 지망생이 전하는 취업시장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정민석/한서대학교 조종사 지망생
걱정을 많이 하는 분위깁니다. 요새 시장이, 제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굉장히 항공시장이 호황기였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오고, 코로나를 겪은 다음엔 지금이 호황기가 아니라서 취업도 많이 안 되고…

박지수/한서대학교 조종사 지망생
코로나 때보단 더 활성화가 됐지만, 아직 워낙 못 가셨던 분들이 많이 계시고, 적체된 인원도 많이 계시고 하니까 경쟁률이 더 엄청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왜 이런 걸까?

박상모 진에어 기장(대한민국 조종사노조연맹 사무처장)은 채용문 자체가 좁아졌다고 분석합니다. 합병 문제로 신규 채용을 중단한 아시아나항공과 그 자회사, 플라이강원 등 경영난을 겪고 있는 LCC까지 악재가 산재해있기 때문입니다.

박상모/대한민국 조종사노조연맹 사무처장/진에어 기장
항공사들이 그동안 코로나 기간에 항공기를 줄였어요. 조종사가 어느 정도 남는 항공사들이 있다는 얘기죠. 다시 항공기가 채워가고 있지만, 기존에 있는 조종사로 운영이 가능한 수준. 거기에 또 이제는 합병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아시아나나 에어부산 에어서울 산업은행 채권단 아래에 있는 항공사들은 지금 채용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실제 아시아나항공과 그 자회사인 에어서울, 에어부산은 지난 2년 동안 단 한 명의 조종사도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아시아나항공이 2020년과 2021년 모두 31명의 조종사를 채용하긴 했지만,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은 당시에도 모두 합쳐 1명을 뽑는 데 그쳤습니다.

거기에 중국시장이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점도 한몫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 경력직을 선호하는 조종사 시장의 특성도 처음 조종사를 꿈꾸는 이들에겐 반갑지 않습니다.

이근영/한국교통대학교 교수
(경력 조종사가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선 신규로 채용하는 것보다는 당장 활용하기에 편한 부분이 있고요. 1년에 일정 정도의 군 조종사가 전역하면서 민간에 들어오는 그런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신규 조종사 필요 요구량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뜩이나 좁은 시장.

팬데믹 기간 해고된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 중국에서 해고된 뒤 우리나라로 돌아온 조종사, 그사이 쌓인 조종사 취업 준비생과 다시 비행의 꿈을 꾸기 시작한 학생들까지 모두 시장에 나왔습니다. 경쟁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김규왕/한서대학교 비행교육원장/전 대한항공 기장
한 학년에 정원이 70명이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학생들이 취업에 대한 불투명 때문에 휴학계를 냈다가 복학해서 지금 한 95명 정도 되고, 그리고 일반 타과의 학생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이른바 '선선발' 채용 인원도 남아있습니다. 2017년 국토교통부와 항공사들이 취업을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로 뽑아놓은 조종사 후보생입니다. 523명을 뽑았지만, 이중 최종 채용된 인원은 15%에 불과합니다.

하늘길은 다시 열렸지만, 채용문은 예전만큼 넓지 않은 현실.


호황의 그늘에 있는 이들을 <더 보다>가 만나봤습니다.

취재 : 박진수
촬영 : 강우용
편집 : 김태형
리서처 : 김보현
그래픽 : 장수현
조연출 : 김영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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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호황의 그늘 Ⅱ, 비행낭인
    • 입력 2024-03-03 23:23:38
    경제

[더 보다 3회 Ⅱ] 호황의 그늘Ⅱ, 비행낭인

이른바 '비행낭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하는 조종사 지망생을 뜻하는 항공업계 은어입니다.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매년 수백 명, 최근 10년 사이 수천 명의 '비행낭인'이 양산된 것으로 추산할 뿐입니다. 실제 김규왕 한서대학교 비행교육원장은 4~5천 명, 박상모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 사무처장은 8천 명 정도를 얘기합니다.

2014년~2023년 10년 동안 발급된 사업용 조종사 면허는 11,570장입니다. 그 사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10개 항공사에 조종사로 취직한 사람은 4,812명입니다. 단순 뺄셈을 해봐도 6,758명이 남기 때문입니다.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는 데 생활비 제외 7천만 원, 18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나옵니다. 이마저도 2017년 자료입니다. 물론 항공운항학과에 진학하느냐, 전문학교에 가느냐, 미국에 가느냐, 군에 가느냐 등에 따라 비용과 시간은 다를 테지만, 최근엔 일반적으로 1억~1억 5천만 원 이상은 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비행낭인'이 다수 양산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 코로나19 팬데믹

항공업계는 지난 2020년,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풍파를 마주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입니다.

2019년 우리나라 여객기 탑승객은 1억 2천3백만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대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만에, 여객기 탑승객은 3천4백만여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70% 넘게 감소한 겁니다.

이충섭 대한항공 기장(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협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이충섭/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협회장/대한항공 기장
2020년 3월로 기억합니다. 제가 2020년 3월에 비행 일정이 상당히 많이 나왔었어요, 유럽 노선도 많이 나오고 그 당시에. '에어버스330'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3월 1일에 (비행을 갔다가) 3월 4일에 돌아왔더니 거짓말같이 나머지 비행이 다 취소돼버렸어요.

휴업에 이어 대량 해고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스타항공이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인 605명을 해고해버린 겁니다. 그중 조종사는 150여 명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안정적인 직업'이란 인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스타항공 해고 조종사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죠. 사실은 그전까지 조종사들의 기본적인 생각이 '이 직업은 한 번 되고 나면 너무나 안정적인 직장이다'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근데 아마 이스타항공 사태로 인해서 그 이미지가 완전히 깨진 거죠.

조종사도 전문직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종사는 그냥 직장인일 뿐이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전문직이라고 하면 본인이 개업하거나, 아니면 직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돼야 전문직인 것이지, 조종사는 어딘가에 반드시 소속돼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신규 채용도 적었습니다.

2018년 898명, 2019년 761명을 기록한 신규 조종사 채용 인원, 2020년엔 125명, 2021년엔 88명까지 줄어듭니다.

그 사이 2018년 1,558명, 2019년 1,726명, 2020년 1,044명, 2021년 895명의 취업 준비생이 쏟아집니다. 모두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입니다.

닫혀버린 취업 문과 쏟아져 나온 지망생, 그 사이 '비행낭인' 수천 명이 양산된 겁니다.

조종사를 꿈꾸며 직장을 관두고 나온 강동근 씨.

강 씨도 역시 코로나19를 거치며 항공사 취업의 꿈을 접었습니다. 지금은 휴대전화 가게와 여행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열린 하늘길과 호황의 그늘


오래 숨죽였던 항공시장.

호황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월 기준 국제선 여객기와 화물기 운항 실적은 2019년 대비 95.2% 회복했습니다.

채용도 다시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항공사들은 조종사 486명을 새로 채용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조종사 지망생이 전하는 취업시장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정민석/한서대학교 조종사 지망생
걱정을 많이 하는 분위깁니다. 요새 시장이, 제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굉장히 항공시장이 호황기였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오고, 코로나를 겪은 다음엔 지금이 호황기가 아니라서 취업도 많이 안 되고…

박지수/한서대학교 조종사 지망생
코로나 때보단 더 활성화가 됐지만, 아직 워낙 못 가셨던 분들이 많이 계시고, 적체된 인원도 많이 계시고 하니까 경쟁률이 더 엄청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왜 이런 걸까?

박상모 진에어 기장(대한민국 조종사노조연맹 사무처장)은 채용문 자체가 좁아졌다고 분석합니다. 합병 문제로 신규 채용을 중단한 아시아나항공과 그 자회사, 플라이강원 등 경영난을 겪고 있는 LCC까지 악재가 산재해있기 때문입니다.

박상모/대한민국 조종사노조연맹 사무처장/진에어 기장
항공사들이 그동안 코로나 기간에 항공기를 줄였어요. 조종사가 어느 정도 남는 항공사들이 있다는 얘기죠. 다시 항공기가 채워가고 있지만, 기존에 있는 조종사로 운영이 가능한 수준. 거기에 또 이제는 합병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아시아나나 에어부산 에어서울 산업은행 채권단 아래에 있는 항공사들은 지금 채용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실제 아시아나항공과 그 자회사인 에어서울, 에어부산은 지난 2년 동안 단 한 명의 조종사도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아시아나항공이 2020년과 2021년 모두 31명의 조종사를 채용하긴 했지만,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은 당시에도 모두 합쳐 1명을 뽑는 데 그쳤습니다.

거기에 중국시장이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점도 한몫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 경력직을 선호하는 조종사 시장의 특성도 처음 조종사를 꿈꾸는 이들에겐 반갑지 않습니다.

이근영/한국교통대학교 교수
(경력 조종사가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선 신규로 채용하는 것보다는 당장 활용하기에 편한 부분이 있고요. 1년에 일정 정도의 군 조종사가 전역하면서 민간에 들어오는 그런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신규 조종사 필요 요구량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뜩이나 좁은 시장.

팬데믹 기간 해고된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 중국에서 해고된 뒤 우리나라로 돌아온 조종사, 그사이 쌓인 조종사 취업 준비생과 다시 비행의 꿈을 꾸기 시작한 학생들까지 모두 시장에 나왔습니다. 경쟁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김규왕/한서대학교 비행교육원장/전 대한항공 기장
한 학년에 정원이 70명이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학생들이 취업에 대한 불투명 때문에 휴학계를 냈다가 복학해서 지금 한 95명 정도 되고, 그리고 일반 타과의 학생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이른바 '선선발' 채용 인원도 남아있습니다. 2017년 국토교통부와 항공사들이 취업을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로 뽑아놓은 조종사 후보생입니다. 523명을 뽑았지만, 이중 최종 채용된 인원은 15%에 불과합니다.

하늘길은 다시 열렸지만, 채용문은 예전만큼 넓지 않은 현실.


호황의 그늘에 있는 이들을 <더 보다>가 만나봤습니다.

취재 : 박진수
촬영 : 강우용
편집 : 김태형
리서처 : 김보현
그래픽 : 장수현
조연출 : 김영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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