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한 개통, 느긋한 마무리”…고속도로 뚫려도 주민들 웃지 못하는 이유는? [취재후]

입력 2024.03.06 (17:12) 수정 2024.03.0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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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경기도 포천과 남양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됐습니다.

개통식에는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과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연사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차로 55분 걸렸다고 합니다. 이제 왕복 4차로, 33.6km의 고속도로를 통해서 20분이면 다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양양 고속도로, 중부 내륙 고속도로 등 주요 고속도로와 직접 연결이 되어서 경기북부에서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이동이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공사 관계자 여러분, 그간 참으로 고생 많으셨고 멋진 결실을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 (지난달 6일, 포천-조안 고속도로 개통식)


그런데 이 '결실',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고속도로 아랫마을 주민들입니다.

■ "맑은 날에도 도로 곳곳 물 웅덩이"…엉망이 된 도로

고속도로는 새로 닦였지만, 그 아래 멀쩡히 있던 포장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중장비들이 다니며 아스팔트 곳곳이 깨졌습니다.

마무리 배수 공사가 되지 않은 곳에 물이 흘러오며, 일대는 진흙 펄이 됐습니다.

주민들이 매일 산책하고 통학, 통근하던 길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달 29일, 종일 맑았지만 도로 곳곳에 물 웅덩이가 보였습니다.

한 주민은 "매일 세차를 해야 할 정도로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도로 곳곳이 웅덩이가 된 마을 (시청자 제공)도로 곳곳이 웅덩이가 된 마을 (시청자 제공)

■ 반딧불이 살던 물가, 공사 자재 방치돼 '흉물'로

마을이 위치한 수동면 일대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주민 오명근 씨는 "이 지역 물이 남한강으로 흘러 서울시로 공급돼, 서울시에서 물 이용 분담금까지 받는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 최경애 씨도 "반딧불이가 살고 다슬기도 잡힐 정도로 깨끗한 물이라 외지인들도 많이 와서 놀다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 카메라에는 개천 곳곳에 널브러진 공사 장비들이 잡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대형 스티로폼 조각과 꼬깔콘, 안전 펜스 등이 물에 떠다녔습니다.

축대로 쌓아야 할 큰 돌들은 개울물에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손에 담아보면 여전히 투명하고 맑은 물이지만, 주민들은 이제 안심하지 못합니다.


■ "뒷마무리는 시공사에서"…민원에도 '더딘' 변화

200여 가구 주민들은 약 2년 간의 공사 동안 발생한 소음과 먼지를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로 견뎠습니다.

그런데 도로가 개통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마무리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겁니다.

주민들은 남양주시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 민자 도로여서 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남양주시청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운영사인 포천화도고속도로(주)와 국토교통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국토부 역시 민원 처리를 운영사 측에서 하도록 협약을 맺어, 결국 운영사로 이첩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운영사에 전화해봤습니다.

뒷마무리는 시공사에서 해야 할 역할이라며, 마찬가지로 시공사에 이 내용을 전달했다고만 말했습니다.


■ "마무리 작업은 '하청' 업체에서"

시공사인 A 사는 B 사에 하청을 주는 구조였습니다.

A 사 관계자는 "B 사에서 뒷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A 사가 준공금을 받은 게 개통 2주 뒤인 2월 23일이었다"며, "B 사에 돈을 주는 등 회계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B 사가 아직 장비비와 인건비 등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다만 하도급 계약상 도로 포장은 A 사에서 해야 한다며, "설 연휴 이후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비가 계속 내려 아스팔트 콘크리트 포장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도로를 개통하기 전에 뒷정리까지 끝낼 순 없었던 걸까요?

A 사 측은 "도로 상부를 공사하려면 하부를 메꾼 뒤 장비를 세워야 한다"며, " 원래 고속도로 작업 구조상 하부 마감을 먼저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시공사 관계자와 대화 나누는 취재진시공사 관계자와 대화 나누는 취재진

[연관 기사] 개통은 ‘성대’, 마무리는 ‘느긋’…진흙탕 된 고속도로 아랫마을 [현장K] (KBS뉴스9, 2024.03.0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6104

■ 국토교통부 "주민 불편 발생…빠르게 해소하겠다"

어제 KBS의 보도 이후, 국토교통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해당 지역 주민 불편을 이른 시일 내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국토부는 "사업 시행자가 수동면 마을 도로 옆 기존 배수로를 복개해 작업장으로 사용했는데 잦은 우천 등으로 원상복구 작업이 지연돼 주민 불편이 발생했다"며, "서울국토청이 공사 마무리 상태를 즉시 점검하도록 하고, 사업시행자에게는 이른 시일 내에 원상복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오는 8일까지 방치 자재 정리와 배수로 복구를, 12일까지는 마을 도로 재포장을 완료하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성대한 개통'이 제대로 된 '멋진 결실'로 이어지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촬영기자:하정현 / 그래픽: 김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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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대한 개통, 느긋한 마무리”…고속도로 뚫려도 주민들 웃지 못하는 이유는? [취재후]
    • 입력 2024-03-06 17:12:54
    • 수정2024-03-06 18:33:44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7일, 경기도 포천과 남양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됐습니다.

개통식에는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과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연사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차로 55분 걸렸다고 합니다. 이제 왕복 4차로, 33.6km의 고속도로를 통해서 20분이면 다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양양 고속도로, 중부 내륙 고속도로 등 주요 고속도로와 직접 연결이 되어서 경기북부에서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이동이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공사 관계자 여러분, 그간 참으로 고생 많으셨고 멋진 결실을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 (지난달 6일, 포천-조안 고속도로 개통식)


그런데 이 '결실',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고속도로 아랫마을 주민들입니다.

■ "맑은 날에도 도로 곳곳 물 웅덩이"…엉망이 된 도로

고속도로는 새로 닦였지만, 그 아래 멀쩡히 있던 포장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중장비들이 다니며 아스팔트 곳곳이 깨졌습니다.

마무리 배수 공사가 되지 않은 곳에 물이 흘러오며, 일대는 진흙 펄이 됐습니다.

주민들이 매일 산책하고 통학, 통근하던 길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달 29일, 종일 맑았지만 도로 곳곳에 물 웅덩이가 보였습니다.

한 주민은 "매일 세차를 해야 할 정도로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도로 곳곳이 웅덩이가 된 마을 (시청자 제공)
■ 반딧불이 살던 물가, 공사 자재 방치돼 '흉물'로

마을이 위치한 수동면 일대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주민 오명근 씨는 "이 지역 물이 남한강으로 흘러 서울시로 공급돼, 서울시에서 물 이용 분담금까지 받는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 최경애 씨도 "반딧불이가 살고 다슬기도 잡힐 정도로 깨끗한 물이라 외지인들도 많이 와서 놀다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 카메라에는 개천 곳곳에 널브러진 공사 장비들이 잡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대형 스티로폼 조각과 꼬깔콘, 안전 펜스 등이 물에 떠다녔습니다.

축대로 쌓아야 할 큰 돌들은 개울물에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손에 담아보면 여전히 투명하고 맑은 물이지만, 주민들은 이제 안심하지 못합니다.


■ "뒷마무리는 시공사에서"…민원에도 '더딘' 변화

200여 가구 주민들은 약 2년 간의 공사 동안 발생한 소음과 먼지를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로 견뎠습니다.

그런데 도로가 개통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마무리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겁니다.

주민들은 남양주시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 민자 도로여서 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남양주시청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운영사인 포천화도고속도로(주)와 국토교통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국토부 역시 민원 처리를 운영사 측에서 하도록 협약을 맺어, 결국 운영사로 이첩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운영사에 전화해봤습니다.

뒷마무리는 시공사에서 해야 할 역할이라며, 마찬가지로 시공사에 이 내용을 전달했다고만 말했습니다.


■ "마무리 작업은 '하청' 업체에서"

시공사인 A 사는 B 사에 하청을 주는 구조였습니다.

A 사 관계자는 "B 사에서 뒷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A 사가 준공금을 받은 게 개통 2주 뒤인 2월 23일이었다"며, "B 사에 돈을 주는 등 회계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B 사가 아직 장비비와 인건비 등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다만 하도급 계약상 도로 포장은 A 사에서 해야 한다며, "설 연휴 이후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비가 계속 내려 아스팔트 콘크리트 포장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도로를 개통하기 전에 뒷정리까지 끝낼 순 없었던 걸까요?

A 사 측은 "도로 상부를 공사하려면 하부를 메꾼 뒤 장비를 세워야 한다"며, " 원래 고속도로 작업 구조상 하부 마감을 먼저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시공사 관계자와 대화 나누는 취재진
[연관 기사] 개통은 ‘성대’, 마무리는 ‘느긋’…진흙탕 된 고속도로 아랫마을 [현장K] (KBS뉴스9, 2024.03.0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6104

■ 국토교통부 "주민 불편 발생…빠르게 해소하겠다"

어제 KBS의 보도 이후, 국토교통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해당 지역 주민 불편을 이른 시일 내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국토부는 "사업 시행자가 수동면 마을 도로 옆 기존 배수로를 복개해 작업장으로 사용했는데 잦은 우천 등으로 원상복구 작업이 지연돼 주민 불편이 발생했다"며, "서울국토청이 공사 마무리 상태를 즉시 점검하도록 하고, 사업시행자에게는 이른 시일 내에 원상복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오는 8일까지 방치 자재 정리와 배수로 복구를, 12일까지는 마을 도로 재포장을 완료하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성대한 개통'이 제대로 된 '멋진 결실'로 이어지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촬영기자:하정현 / 그래픽: 김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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