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보증 기관에 소송 건 ‘전세사기 피해자’…왜?
입력 2024.03.07 (07:00)
수정 2024.03.0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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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 HUG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을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HUG는 '보증 보험'을 통해 세입자들의 돈을 지켜줍니다.
전세사기 피해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HUG는 세입자들이 기댈 수 있는 '희망'인 셈이죠. 그런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HUG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보증보험' 가입하겠다고 '서류 조작'한 집주인…HUG 대응은 '전부 취소'
2020년 8월, 민간임대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임대 사업자들은 '전세보증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개인 임대사업자인 A 씨가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던 당시 조건은 "주택에 걸린 전세금과 채권 금액의 합은 주택 가격보다 낮아야 한다"였습니다. A 씨가 소유한 집은 주택 가치보다 전세금과 채권 금액의 합이 높았습니다. 채권 일부를 갚거나, 전세가율을 낮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서류 조작'을 선택했습니다. 계약한 전세 금액보다 낮은 금액을 쓴 '값 낮춘 계약서'를 제출한 겁니다. 2022년 10월부터 계약서를 위조했는데, 지난해 6월까지 A 씨가 위조한 계약서 수만 36개였습니다. HUG는 반년이 넘도록 이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승인했습니다.
HUG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세입자 한 명에게 보증보험 가입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계약한 조건과 HUG에 A 씨가 제출한 조건이 달랐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세입자 덕분에 문서 위조 사실을 알게 된 HUG의 선택은 '보험 일방 해지'였습니다.
■속인 사람: 집주인·속은 곳: HUG, 피해자는 세입자?…80여 명 HUG 상대 '소송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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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을 자기가 섰는데, "자신도 사기를 당했다. 그래서 이 보증은 무효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억울한 것 같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B 씨 |
해지 통보를 받은 세입자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전세사기 우려가 커지던 즈음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안심"이라는 '희망'이 무너진 겁니다.
집주인 감 씨는 해지 사실을 알고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을 끊고 잠적했습니다.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세입자들은 아무것도 보증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속인 사람은 집주인이고, 속은 곳은 HUG인데, 정작 피해자는 제3 자 '세입자'가 돼버렸습니다.
A 씨는 경찰에 붙잡혀 조사 끝에 구속기소 됐습니다. 149명을 상대로 183억 원의 '무자본 갭투기'를 벌인 사기 혐의에, '문서 위조' 혐의까지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세입자 돈을 변제해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징역 얼마가 내려지더라도, 세입자들에게 돌아올 돈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세입자들은 또 하나의 소송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HUG'를 향한 민사소송이었습니다. 소송을 건 세입자 수만 80명이 넘습니다.
세입자들은 '보증보험 이행'을 요구했습니다. HUG가 허위 서류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책임은 전혀 없고, 일방적 해지로 집주인은 도망가 결국 전세사기 피해가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건 '책임 회피'라는 겁니다.
HUG 측은 '사기나 허위로 보증을 신청한 경우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약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 보증보험은 HUG와 집주인의 계약으로,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 보험을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형사 재판에 민사 소송에…'망가진 일상'은 누가 책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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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면서 (보증보험 취소) 사실을 알았거든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때부터 계속 울었어요. 울고 나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병원 가니까 불안장애랑 우울증(이라고)…" -전세사기 피해자 C씨 |
취재진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만난 날은 전세사기 피의자 A씨의 첫 공판일이었습니다. 대부분 20~30대 사회초년생이었고, 취재진에게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말도 못 하고 있다"며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모아온 돈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오롯이 혼자 견디고 있었던 겁니다.
재판장에서 한 피해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집주인을 향해 "얼굴이나 좀 봅시다."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습니다. 적막 속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욕설하기도 했습니다. 나와서도 분통을 참지 못하는 듯 눈물을 보이는 세입자도 있었습니다.
세입자들은 재판장을 나와서도 '희망'이었던 HUG의 죄를 앞다투어 말했습니다. HUG가 소송 때마다 주장하는 '약관'은 세입자들이 계약 당시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서류를 제출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 방법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세입자 80여 명이 각각 HUG에 건 민사 소송은 총 15건. 다음 달 30일에는 HUG를 향한 소송의 첫 선고가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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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3-07 07:00:23
- 수정2024-03-07 07: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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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 HUG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을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HUG는 '보증 보험'을 통해 세입자들의 돈을 지켜줍니다.
전세사기 피해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HUG는 세입자들이 기댈 수 있는 '희망'인 셈이죠. 그런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HUG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보증보험' 가입하겠다고 '서류 조작'한 집주인…HUG 대응은 '전부 취소'
2020년 8월, 민간임대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임대 사업자들은 '전세보증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개인 임대사업자인 A 씨가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던 당시 조건은 "주택에 걸린 전세금과 채권 금액의 합은 주택 가격보다 낮아야 한다"였습니다. A 씨가 소유한 집은 주택 가치보다 전세금과 채권 금액의 합이 높았습니다. 채권 일부를 갚거나, 전세가율을 낮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서류 조작'을 선택했습니다. 계약한 전세 금액보다 낮은 금액을 쓴 '값 낮춘 계약서'를 제출한 겁니다. 2022년 10월부터 계약서를 위조했는데, 지난해 6월까지 A 씨가 위조한 계약서 수만 36개였습니다. HUG는 반년이 넘도록 이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승인했습니다.
HUG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세입자 한 명에게 보증보험 가입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계약한 조건과 HUG에 A 씨가 제출한 조건이 달랐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세입자 덕분에 문서 위조 사실을 알게 된 HUG의 선택은 '보험 일방 해지'였습니다.
■속인 사람: 집주인·속은 곳: HUG, 피해자는 세입자?…80여 명 HUG 상대 '소송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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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을 자기가 섰는데, "자신도 사기를 당했다. 그래서 이 보증은 무효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억울한 것 같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B 씨 |
해지 통보를 받은 세입자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전세사기 우려가 커지던 즈음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안심"이라는 '희망'이 무너진 겁니다.
집주인 감 씨는 해지 사실을 알고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을 끊고 잠적했습니다.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세입자들은 아무것도 보증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속인 사람은 집주인이고, 속은 곳은 HUG인데, 정작 피해자는 제3 자 '세입자'가 돼버렸습니다.
A 씨는 경찰에 붙잡혀 조사 끝에 구속기소 됐습니다. 149명을 상대로 183억 원의 '무자본 갭투기'를 벌인 사기 혐의에, '문서 위조' 혐의까지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세입자 돈을 변제해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징역 얼마가 내려지더라도, 세입자들에게 돌아올 돈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세입자들은 또 하나의 소송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HUG'를 향한 민사소송이었습니다. 소송을 건 세입자 수만 80명이 넘습니다.
세입자들은 '보증보험 이행'을 요구했습니다. HUG가 허위 서류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책임은 전혀 없고, 일방적 해지로 집주인은 도망가 결국 전세사기 피해가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건 '책임 회피'라는 겁니다.
HUG 측은 '사기나 허위로 보증을 신청한 경우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약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 보증보험은 HUG와 집주인의 계약으로,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 보험을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형사 재판에 민사 소송에…'망가진 일상'은 누가 책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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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면서 (보증보험 취소) 사실을 알았거든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때부터 계속 울었어요. 울고 나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병원 가니까 불안장애랑 우울증(이라고)…" -전세사기 피해자 C씨 |
취재진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만난 날은 전세사기 피의자 A씨의 첫 공판일이었습니다. 대부분 20~30대 사회초년생이었고, 취재진에게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말도 못 하고 있다"며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모아온 돈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오롯이 혼자 견디고 있었던 겁니다.
재판장에서 한 피해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집주인을 향해 "얼굴이나 좀 봅시다."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습니다. 적막 속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욕설하기도 했습니다. 나와서도 분통을 참지 못하는 듯 눈물을 보이는 세입자도 있었습니다.
세입자들은 재판장을 나와서도 '희망'이었던 HUG의 죄를 앞다투어 말했습니다. HUG가 소송 때마다 주장하는 '약관'은 세입자들이 계약 당시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서류를 제출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 방법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세입자 80여 명이 각각 HUG에 건 민사 소송은 총 15건. 다음 달 30일에는 HUG를 향한 소송의 첫 선고가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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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천 기자 hu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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