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50만 원?’ 턱도 없어요”…대학가가 더 비싸다 [취재후]

입력 2024.03.07 (07:00) 수정 2024.03.0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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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3백만 원, 월세 50만 원'

대학교 3학년인 정윤서 씨가 이번 학기에 지내게 될 15㎡(4.5평)짜리 원룸의 비용입니다.

이 집을 구할 때 고려한 조건은 두 가지. 월세가 50만 원 이하이면서 학교와 가까울 것.

윤서 씨는 사흘 내내 근처 원룸 서른 곳을 돌아다닌 뒤 이 집을 골랐습니다.

대학교 3학년 정윤서 씨의 원룸대학교 3학년 정윤서 씨의 원룸

미국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는 게 목표인 윤서 씨는 학부 연구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7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급 50만 원은 고스란히 월세로 부담합니다.

연구실에서 일하며 장학금도 받고 있지만, 고정 지출을 생각하면 부모님 지원 없이는 생활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 기자가 직접 방 구해보니…"2.5평 원룸 월세가 70만 원"

더 싸고 괜찮은 방을 찾을 순 없을까? 서울의 한 대학가 주변을 다니며 직접 기자가 월세방을 구해봤습니다.

'월세 50만 원 이하' 방을 구한다고 하자, 공인중개사는 "월세 50만 원은 최저 금액"이라고 했습니다.

"여학생 혼자 안전한 곳에 살려면 (50만 원은) 턱도 없다"는 공인중개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보여준 방은 한 구축 건물의 반지하 방이었습니다. 월세는 50만 원이 맞지만, 관리비에 전기세, 가스비 등을 포함하면 약 70만 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다른 '월세 55만 원' 방은 '전입 신고가 되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보증금은 1천만 원,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 꼭대기 5평짜리 집입니다.

전입 신고가 안 돼 불안하면 보증금을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대신 월세는 60만 원으로 오른다고 했습니다.


[연관 기사]
“한 달 버는 돈, 전부 월세로”…“대학가가 8만 6천 원 더 비싸” [뉴스줌] (KBS뉴스9,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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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가까울수록 월세는 70만 원대로 올랐습니다.

학교와 가장 가까운 4평짜리 방,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가 75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 원래 하나로 쓰던 방을 두 개로 쪼갠 '사다리꼴' 모양의 방입니다. 화장실 문은 너무 좁아서 몸을 틀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대학가 월세가 8만 원 더 비싸"…청년 몰릴수록 가격 오른다

대학가 원룸 월세, 얼마나 비싸진 걸까.

실제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조사해 보니, 33㎡(10평) 기준 대학가 월세가 비대학가보다 8만 6천 원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으로 월세 계약을 분석했더니, 서울 주요 22개 대학가의 월세 평균은 ▲ 2021년 51만 8천 원 ▲2022년 53만 4천 원 ▲2023년 58만 6천 원으로 증가해 3년 사이 13%가 올랐습니다.

(출처: 민달팽이유니온 / 그래픽: 이재희 )(출처: 민달팽이유니온 / 그래픽: 이재희 )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 '청년 전입'과 '신축'에 그 답이 있습니다.

분석 결과 대학가 중에서도 ▲청년 전입 인구와 ▲신축 계약 비율이 높을수록 평균 월세 인상률도 상승했습니다.

청년 전입 인구 비율이 71%로 가장 높은 관악구 신림동은 최근 3년간 월세 인상률이 17.4%로 평균(13%)을 웃돌았습니다.

서대문구 대현동의 경우 최근 3년간 월세 평당 상승률이 20%를 넘겼습니다. 대현동의 월세 계약은 신축 계약 비율이 32%를 넘고, 오피스텔 계약 비율은 78%를 넘깁니다.

청년들이 많이 유입될수록 주거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고 이는 신축 오피스텔 건립 등으로 이어지는데, 비싼 신축 월세방이 공급되자 주변 월세 시세를 견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겁니다.

결국, 대학생 청년들의 주거 수요가 공공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해결되며 주거비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서울 같은 대도시에 있는 대학가 인근 지역은 도심의 핵심 인프라들이 집중된 지역이에요. 교육, 직업 등을 이유로 그 지역에 살아야만 하는 청년들은 빈곤할수록 서울 생활에 진입하는 문턱이 너무나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높아지는 주거비를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 낮은 기숙사 수용률…계속되는 청년 주거 불안

비싼 월세를 피하려면 기숙사가 대안이 되겠지만, 들어가는 게 쉽진 않습니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에서 직접 운영하는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은 수도권이 평균 18.2%, 비수도권은 평균 26.5%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전국 424곳 대학 중 167곳, 40%가 몰려있는 수도권의 기숙사 수용률 2020년부터 3년간 18%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수도권에서도 서울로 좁히면 10% 초반으로 떨어진다고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출처:  대학정보공시 / 그래픽: 이재희)(출처: 대학정보공시 / 그래픽: 이재희)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여러 주거 대안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 한국사학진흥재단·한국장학재단과 함께 전국에 연합기숙사 10여 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용 가능한 인원은 9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사업을 늘리곤 있지만, 주요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쓰지 않는 호텔을 개조해 월 40만 원 비용으로 머물 수 있는 LH 청년특화주택 등 주거 대안 사업도 있긴 하지만, 서울에는 두 곳뿐이라 입주 경쟁이 치열합니다.

■ '기숙사 공약' 지킬 의지 있나…"학교 책임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학교와 공공 책임을 강조합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의 기숙사 공급 부분도 대학 평가에 반영하는 등 대학을 움직일 수 있는 정책을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소장은 "수도권의 기숙사 부족 문제는 대학과 함께 지자체도 책임이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공약만 낸 뒤, 총선이 끝나고 지역 주민들이 공공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면 지자체장들이 '나몰라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반드시 타지에 살 수밖에 없는 학생과 청년들, 전세는 불안하고 월세는 오르고 기숙사는 들어가기 어려우니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회에 나서는 이들에게 발판이 돼줄 대안, 이제는 제대로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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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세 50만 원?’ 턱도 없어요”…대학가가 더 비싸다 [취재후]
    • 입력 2024-03-07 07:00:23
    • 수정2024-03-07 07:02:24
    취재후·사건후

'보증금 3백만 원, 월세 50만 원'

대학교 3학년인 정윤서 씨가 이번 학기에 지내게 될 15㎡(4.5평)짜리 원룸의 비용입니다.

이 집을 구할 때 고려한 조건은 두 가지. 월세가 50만 원 이하이면서 학교와 가까울 것.

윤서 씨는 사흘 내내 근처 원룸 서른 곳을 돌아다닌 뒤 이 집을 골랐습니다.

대학교 3학년 정윤서 씨의 원룸
미국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는 게 목표인 윤서 씨는 학부 연구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7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급 50만 원은 고스란히 월세로 부담합니다.

연구실에서 일하며 장학금도 받고 있지만, 고정 지출을 생각하면 부모님 지원 없이는 생활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 기자가 직접 방 구해보니…"2.5평 원룸 월세가 70만 원"

더 싸고 괜찮은 방을 찾을 순 없을까? 서울의 한 대학가 주변을 다니며 직접 기자가 월세방을 구해봤습니다.

'월세 50만 원 이하' 방을 구한다고 하자, 공인중개사는 "월세 50만 원은 최저 금액"이라고 했습니다.

"여학생 혼자 안전한 곳에 살려면 (50만 원은) 턱도 없다"는 공인중개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보여준 방은 한 구축 건물의 반지하 방이었습니다. 월세는 50만 원이 맞지만, 관리비에 전기세, 가스비 등을 포함하면 약 70만 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다른 '월세 55만 원' 방은 '전입 신고가 되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보증금은 1천만 원,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 꼭대기 5평짜리 집입니다.

전입 신고가 안 돼 불안하면 보증금을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대신 월세는 60만 원으로 오른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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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가까울수록 월세는 70만 원대로 올랐습니다.

학교와 가장 가까운 4평짜리 방,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가 75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 원래 하나로 쓰던 방을 두 개로 쪼갠 '사다리꼴' 모양의 방입니다. 화장실 문은 너무 좁아서 몸을 틀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대학가 월세가 8만 원 더 비싸"…청년 몰릴수록 가격 오른다

대학가 원룸 월세, 얼마나 비싸진 걸까.

실제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조사해 보니, 33㎡(10평) 기준 대학가 월세가 비대학가보다 8만 6천 원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으로 월세 계약을 분석했더니, 서울 주요 22개 대학가의 월세 평균은 ▲ 2021년 51만 8천 원 ▲2022년 53만 4천 원 ▲2023년 58만 6천 원으로 증가해 3년 사이 13%가 올랐습니다.

(출처: 민달팽이유니온 / 그래픽: 이재희 )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 '청년 전입'과 '신축'에 그 답이 있습니다.

분석 결과 대학가 중에서도 ▲청년 전입 인구와 ▲신축 계약 비율이 높을수록 평균 월세 인상률도 상승했습니다.

청년 전입 인구 비율이 71%로 가장 높은 관악구 신림동은 최근 3년간 월세 인상률이 17.4%로 평균(13%)을 웃돌았습니다.

서대문구 대현동의 경우 최근 3년간 월세 평당 상승률이 20%를 넘겼습니다. 대현동의 월세 계약은 신축 계약 비율이 32%를 넘고, 오피스텔 계약 비율은 78%를 넘깁니다.

청년들이 많이 유입될수록 주거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고 이는 신축 오피스텔 건립 등으로 이어지는데, 비싼 신축 월세방이 공급되자 주변 월세 시세를 견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겁니다.

결국, 대학생 청년들의 주거 수요가 공공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해결되며 주거비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서울 같은 대도시에 있는 대학가 인근 지역은 도심의 핵심 인프라들이 집중된 지역이에요. 교육, 직업 등을 이유로 그 지역에 살아야만 하는 청년들은 빈곤할수록 서울 생활에 진입하는 문턱이 너무나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높아지는 주거비를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 낮은 기숙사 수용률…계속되는 청년 주거 불안

비싼 월세를 피하려면 기숙사가 대안이 되겠지만, 들어가는 게 쉽진 않습니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에서 직접 운영하는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은 수도권이 평균 18.2%, 비수도권은 평균 26.5%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전국 424곳 대학 중 167곳, 40%가 몰려있는 수도권의 기숙사 수용률 2020년부터 3년간 18%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수도권에서도 서울로 좁히면 10% 초반으로 떨어진다고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출처:  대학정보공시 / 그래픽: 이재희)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여러 주거 대안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 한국사학진흥재단·한국장학재단과 함께 전국에 연합기숙사 10여 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용 가능한 인원은 9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사업을 늘리곤 있지만, 주요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쓰지 않는 호텔을 개조해 월 40만 원 비용으로 머물 수 있는 LH 청년특화주택 등 주거 대안 사업도 있긴 하지만, 서울에는 두 곳뿐이라 입주 경쟁이 치열합니다.

■ '기숙사 공약' 지킬 의지 있나…"학교 책임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학교와 공공 책임을 강조합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의 기숙사 공급 부분도 대학 평가에 반영하는 등 대학을 움직일 수 있는 정책을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소장은 "수도권의 기숙사 부족 문제는 대학과 함께 지자체도 책임이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공약만 낸 뒤, 총선이 끝나고 지역 주민들이 공공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면 지자체장들이 '나몰라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반드시 타지에 살 수밖에 없는 학생과 청년들, 전세는 불안하고 월세는 오르고 기숙사는 들어가기 어려우니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회에 나서는 이들에게 발판이 돼줄 대안, 이제는 제대로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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