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이 본 고려 거란 전쟁 영웅들

입력 2024.03.07 (11:20) 수정 2024.03.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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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 뿐만 아니라 2차 전쟁의 영웅 양규 장군 등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여러 인물을 재조명하고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드라마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고려를 이은 조선 시대 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요. 한남대 허인욱 교수가 <고려와 거란 전쟁 - 정주와 유목의 충돌>이란 글을 한국국학진흥원 웹진에 게재했는데요, 이 글에 실린 관련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담긴 대거란전쟁 영웅들
세조 2년(1456)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는 무성묘(武成廟)를 세워 조선 이전 공을 세운 장군들을 모실 것을 왕에게 건의합니다.

무성묘를 세워서 제례와 배식은 대략 문묘의 제도에 따르고, 또 신라의 김유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유금필·강감찬·양규·윤관·조충·김취려·김경손·박서·김방경·안우·김득배·이방실·최영·정지, 본조의 하경복·최윤덕을 배향하게 하소서.
- 세조 2년 3월 28일 정유 3번째 기사

여기에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강감찬과 양규 두 사람은 신라 김유신, 고구려 을지문덕 등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선조 대와 광해군 대에는 전 왕조 왕들의 묘와 충신들의 묘를 재정비하라고 지시합니다. 그 가운데 고려에선 강감찬이 정몽주와 충신으로 등장합니다.

<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 장군, 조선왕조 실록 속 강감찬은 구국의 영웅인 동시에 만고의 충신으로 기록돼 있습니다.<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 장군, 조선왕조 실록 속 강감찬은 구국의 영웅인 동시에 만고의 충신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전교하였다.
"전대 제왕의 능묘를 변란을 겪은 뒤이니 각기 그 본관으로 하여금 파훼(破毁)된 곳을 수치(修治)하고 나무 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그리고 전대의 충신으로서 신라의 김유신·김양, 백제의 성충·계백, 고려의 강감찬·정몽주의 무덤도 또한 봉분을 만들고 나무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
- 선조실록 146권, 선조 35년 2월 5일 무진 1번째 기사

전교하였다.
(중략) 전대의 대표적인 충신으로서 신라의 김유신·김양, 백제의 성충·계백, 고려의 강감찬·정몽주 등과 같은 이에 대해서는 그 묘를 봉분해 주고 나무를 심고서 불을 금하고 벌채를 금하게 하라.
- 광해군일기[정초본] 25권, 광해 2년 2월 6일 임자 2번째 기사

■조선 시대에도 추숭된 고려 영웅들
거란과의 2차 전쟁에서 전사한 양규, 김숙흥, 유백부 세 분을 모신 삼충사(三忠祠). 하지만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여러 전란을 겪으면서 사라집니다. 인조 23년인 1645년, 이를 다시 창건합니다.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속 양규 장군의 전사 장면. 양규 장군은 자신을 희생해 수많은 고려 포로를 구출해냈습니다.<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속 양규 장군의 전사 장면. 양규 장군은 자신을 희생해 수많은 고려 포로를 구출해냈습니다.

강감찬 장군에 대한 기록은 조금 더 많습니다. 태조 원년인 1392년, 강감찬 장군은 금천, 즉 지금의 경기도 광명에 있는 충현서원과 숭의전에 배향됐습니다.
또 성호 이익은 해동악부(海東樂府)의 '금화팔지가(金花八枝歌)'를 통해 "살았을 땐 백성들의 부모와 같았었고, 죽어서는 고종(瞽宗: 중국 은나라 때의 학교)의 악조(樂祖: 예악을 주관하던 선현)가 되었다네… 천고에 이름 남을 그대가 있었구나"라며 강감찬을 기렸습니다.

나라를 지킨 영웅들을 기리고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건,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한편 고려 장군을 기린 이들은 많았지만, 이들 중에 선조와 광해군, 인조가 있었다는 건 흥미롭습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왕들이 전란 이후 고려의 영웅을 더욱 기렸다는 게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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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사람들이 본 고려 거란 전쟁 영웅들
    • 입력 2024-03-07 11:20:13
    • 수정2024-03-07 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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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 뿐만 아니라 2차 전쟁의 영웅 양규 장군 등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여러 인물을 재조명하고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드라마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고려를 이은 조선 시대 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요. 한남대 허인욱 교수가 <고려와 거란 전쟁 - 정주와 유목의 충돌>이란 글을 한국국학진흥원 웹진에 게재했는데요, 이 글에 실린 관련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담긴 대거란전쟁 영웅들
세조 2년(1456)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는 무성묘(武成廟)를 세워 조선 이전 공을 세운 장군들을 모실 것을 왕에게 건의합니다.

무성묘를 세워서 제례와 배식은 대략 문묘의 제도에 따르고, 또 신라의 김유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유금필·강감찬·양규·윤관·조충·김취려·김경손·박서·김방경·안우·김득배·이방실·최영·정지, 본조의 하경복·최윤덕을 배향하게 하소서.
- 세조 2년 3월 28일 정유 3번째 기사

여기에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강감찬과 양규 두 사람은 신라 김유신, 고구려 을지문덕 등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선조 대와 광해군 대에는 전 왕조 왕들의 묘와 충신들의 묘를 재정비하라고 지시합니다. 그 가운데 고려에선 강감찬이 정몽주와 충신으로 등장합니다.

<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 장군, 조선왕조 실록 속 강감찬은 구국의 영웅인 동시에 만고의 충신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전교하였다.
"전대 제왕의 능묘를 변란을 겪은 뒤이니 각기 그 본관으로 하여금 파훼(破毁)된 곳을 수치(修治)하고 나무 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그리고 전대의 충신으로서 신라의 김유신·김양, 백제의 성충·계백, 고려의 강감찬·정몽주의 무덤도 또한 봉분을 만들고 나무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
- 선조실록 146권, 선조 35년 2월 5일 무진 1번째 기사

전교하였다.
(중략) 전대의 대표적인 충신으로서 신라의 김유신·김양, 백제의 성충·계백, 고려의 강감찬·정몽주 등과 같은 이에 대해서는 그 묘를 봉분해 주고 나무를 심고서 불을 금하고 벌채를 금하게 하라.
- 광해군일기[정초본] 25권, 광해 2년 2월 6일 임자 2번째 기사

■조선 시대에도 추숭된 고려 영웅들
거란과의 2차 전쟁에서 전사한 양규, 김숙흥, 유백부 세 분을 모신 삼충사(三忠祠). 하지만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여러 전란을 겪으면서 사라집니다. 인조 23년인 1645년, 이를 다시 창건합니다.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속 양규 장군의 전사 장면. 양규 장군은 자신을 희생해 수많은 고려 포로를 구출해냈습니다.
강감찬 장군에 대한 기록은 조금 더 많습니다. 태조 원년인 1392년, 강감찬 장군은 금천, 즉 지금의 경기도 광명에 있는 충현서원과 숭의전에 배향됐습니다.
또 성호 이익은 해동악부(海東樂府)의 '금화팔지가(金花八枝歌)'를 통해 "살았을 땐 백성들의 부모와 같았었고, 죽어서는 고종(瞽宗: 중국 은나라 때의 학교)의 악조(樂祖: 예악을 주관하던 선현)가 되었다네… 천고에 이름 남을 그대가 있었구나"라며 강감찬을 기렸습니다.

나라를 지킨 영웅들을 기리고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건,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한편 고려 장군을 기린 이들은 많았지만, 이들 중에 선조와 광해군, 인조가 있었다는 건 흥미롭습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왕들이 전란 이후 고려의 영웅을 더욱 기렸다는 게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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