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메모 남긴 섬마을 교사…‘순직 불인정’ 이유는?

입력 2024.03.07 (14:38) 수정 2024.03.0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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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은 이른바 '서이초 사건'으로 알려지며, '교권 회복 운동'이 촉발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건 발생 약 7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인사혁신처는 해당 교사에 대한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같은 날, 인사혁신처로부터 순직 신청 결과를 받은 유족이 또 있었습니다. 전북 군산 무녀도 초등학교에 재직 중 사망한 교사의 유족입니다. 결과는 순직 불인정. 교육계는 서이초 사건 순직 인정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무녀도초 사건에 대한 결과에는 유감을 표했습니다.

KBS는 유족 측의 동의를 얻어 해당 교사의 이름을 공개하고, 순직 불인정 통보문을 분석했습니다.

■ 100일간 공문 530건 접수…메모엔 "살려주세요"

비교적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녀도초 사건은 38살, 고(故) 주영훈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주 교사는 2013년 임용돼 약 10년 6개월간 교단에 섰습니다. 아내와 8살 딸을 둔 가장이기도 했습니다.

무녀도 초등학교는 전교생 10명의 작은 섬마을 초등학교입니다. 지난해 3월, 이 학교로 부임한 주 교사는 4학년과 6학년 두 학년의 복식학급 담임 교사를 맡았습니다. 이 때문에 인근 지역 초등교사의 평균 수업시간인 20.8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주 29시간 수업을 해야했습니다.

흔히 기피업무로 분류되는 학교폭력 업무와, 방과후 돌봄, 차세대 나이스, 축제 관련 업무 등 19가지의 행정 업무도 주 교사의 몫이었습니다. 출근 일수 약 100일 동안 33번의 출장 기록, 530여 건의 공문 접수, 164건의 공문 생산 기록이 고인의 생전 맡아 온 업무량을 증명합니다.

고 주영훈 씨의 휴대전화에 기록된 메모고 주영훈 씨의 휴대전화에 기록된 메모

전북교사노조는 "2021년~2023년 동일 기간 동안 해당 학교에 근무했던 교사들의 공문 생산량 대비 고인의 업무량이 가장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주 씨는 학교 관리자인 교장과 업무적 갈등을 빚어와, 평소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녀도초 부임 약 6개월 만인 8월 31일, 주 교사는 군산 동백대교 인근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 교사의 휴대전화에는 생전 신변을 비관하는 메모가 다수 남아있었습니다. 사망 당일, 주교사는 휴대전화에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긴 메모를 남겼습니다.

■ 인사혁신처 "사망 이를만한 특별한 이벤트 없어"

군산 해경은 지난해 10월, 주 교사가 과중한 업무와 학교관리자와의 갈등 등으로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치료를 받아오다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서거석 전북도교육감은 공무원 재해보상 심의에 직접 참석해, 순직 인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 판단은 달랐습니다. KBS가 확보한 순직 불인정 통보문을 보면, 인사혁신처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주 씨의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①과도한 업무 관련 객관적 근거자료가 부족하고 ②사망에 이를 정도의 스트레스가 발생할 만한 특별한 이벤트(사건)가 없었고 ③업무 외적인 스트레스 등이 확인된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주 씨의 유족에게 보낸 순직 불인정 통지문인사혁신처가 주 씨의 유족에게 보낸 순직 불인정 통지문

유족 측 법률대리인 고봉찬 변호사는 "당초 심의위에서 주 씨가 초과근무 신청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지적이 있었다"며 " 무녀도초는 연륙교로 이어진 섬학교로 숙직이 불가해, 오후 4시30분이 지나면 집으로 일거리를 들고 와야해 초과근무 신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학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사혁신처가 이런 특수 맥락을 고려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해양경찰의 객관적인 수사 결과에 반하는 판단을 내린 인사혁신처의 순직불승인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 엇갈린 순직 인정 결과…판단 근거는?

주 씨 사건과 서이초 사건의 공통점은 교사들이 업무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건에 대한 상반된 판단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일까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법률상 자해 행위는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공무상 업무와 사망에 대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때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개별 순직 신청에 대한 심의는 11~13명으로 구성된 전문가로 이뤄진 위원회가 맡는다"며 "수사기관의 판단은 참고하되 구속되지는 않으며,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고 덧붙였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인사혁신처에 접수된 교육공무원의 순직 신청은 모두 57건입니다. 이 가운데 순직이 승인된 건 단 15건, 26.3%에 그칩니다. 같은 기간 소방공무원의 82.4%, 경찰 공무원 67.4%, 일반공무원 52.3%가 순직 인정을 받은 것과 대조적입니다.

서이초 사건에 대한 순직 인정 결과에도 교육계가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사노조연맹은 "교사의 순직 인정 비율이 낮은 이유는 순직 인정 입증 책임을 유족에게만 떠맡기고 있기 때문"이라며 "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내용을 공무상 재해보상 승인의 근거로 인정하고, 심사 과정에 교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영훈 씨의 유족은 이른 시일내, 주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 재심사를 요청할 예정입니다.

(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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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은 이른바 '서이초 사건'으로 알려지며, '교권 회복 운동'이 촉발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건 발생 약 7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인사혁신처는 해당 교사에 대한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같은 날, 인사혁신처로부터 순직 신청 결과를 받은 유족이 또 있었습니다. 전북 군산 무녀도 초등학교에 재직 중 사망한 교사의 유족입니다. 결과는 순직 불인정. 교육계는 서이초 사건 순직 인정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무녀도초 사건에 대한 결과에는 유감을 표했습니다.

KBS는 유족 측의 동의를 얻어 해당 교사의 이름을 공개하고, 순직 불인정 통보문을 분석했습니다.

■ 100일간 공문 530건 접수…메모엔 "살려주세요"

비교적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녀도초 사건은 38살, 고(故) 주영훈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주 교사는 2013년 임용돼 약 10년 6개월간 교단에 섰습니다. 아내와 8살 딸을 둔 가장이기도 했습니다.

무녀도 초등학교는 전교생 10명의 작은 섬마을 초등학교입니다. 지난해 3월, 이 학교로 부임한 주 교사는 4학년과 6학년 두 학년의 복식학급 담임 교사를 맡았습니다. 이 때문에 인근 지역 초등교사의 평균 수업시간인 20.8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주 29시간 수업을 해야했습니다.

흔히 기피업무로 분류되는 학교폭력 업무와, 방과후 돌봄, 차세대 나이스, 축제 관련 업무 등 19가지의 행정 업무도 주 교사의 몫이었습니다. 출근 일수 약 100일 동안 33번의 출장 기록, 530여 건의 공문 접수, 164건의 공문 생산 기록이 고인의 생전 맡아 온 업무량을 증명합니다.

고 주영훈 씨의 휴대전화에 기록된 메모
전북교사노조는 "2021년~2023년 동일 기간 동안 해당 학교에 근무했던 교사들의 공문 생산량 대비 고인의 업무량이 가장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주 씨는 학교 관리자인 교장과 업무적 갈등을 빚어와, 평소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녀도초 부임 약 6개월 만인 8월 31일, 주 교사는 군산 동백대교 인근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 교사의 휴대전화에는 생전 신변을 비관하는 메모가 다수 남아있었습니다. 사망 당일, 주교사는 휴대전화에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긴 메모를 남겼습니다.

■ 인사혁신처 "사망 이를만한 특별한 이벤트 없어"

군산 해경은 지난해 10월, 주 교사가 과중한 업무와 학교관리자와의 갈등 등으로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치료를 받아오다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서거석 전북도교육감은 공무원 재해보상 심의에 직접 참석해, 순직 인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 판단은 달랐습니다. KBS가 확보한 순직 불인정 통보문을 보면, 인사혁신처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주 씨의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①과도한 업무 관련 객관적 근거자료가 부족하고 ②사망에 이를 정도의 스트레스가 발생할 만한 특별한 이벤트(사건)가 없었고 ③업무 외적인 스트레스 등이 확인된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주 씨의 유족에게 보낸 순직 불인정 통지문
유족 측 법률대리인 고봉찬 변호사는 "당초 심의위에서 주 씨가 초과근무 신청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지적이 있었다"며 " 무녀도초는 연륙교로 이어진 섬학교로 숙직이 불가해, 오후 4시30분이 지나면 집으로 일거리를 들고 와야해 초과근무 신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학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사혁신처가 이런 특수 맥락을 고려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해양경찰의 객관적인 수사 결과에 반하는 판단을 내린 인사혁신처의 순직불승인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 엇갈린 순직 인정 결과…판단 근거는?

주 씨 사건과 서이초 사건의 공통점은 교사들이 업무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건에 대한 상반된 판단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일까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법률상 자해 행위는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공무상 업무와 사망에 대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때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개별 순직 신청에 대한 심의는 11~13명으로 구성된 전문가로 이뤄진 위원회가 맡는다"며 "수사기관의 판단은 참고하되 구속되지는 않으며,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고 덧붙였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인사혁신처에 접수된 교육공무원의 순직 신청은 모두 57건입니다. 이 가운데 순직이 승인된 건 단 15건, 26.3%에 그칩니다. 같은 기간 소방공무원의 82.4%, 경찰 공무원 67.4%, 일반공무원 52.3%가 순직 인정을 받은 것과 대조적입니다.

서이초 사건에 대한 순직 인정 결과에도 교육계가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사노조연맹은 "교사의 순직 인정 비율이 낮은 이유는 순직 인정 입증 책임을 유족에게만 떠맡기고 있기 때문"이라며 "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내용을 공무상 재해보상 승인의 근거로 인정하고, 심사 과정에 교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영훈 씨의 유족은 이른 시일내, 주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 재심사를 요청할 예정입니다.

(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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