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무덤 4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이런 파묘는 처음”

입력 2024.03.09 (08:01) 수정 2024.03.0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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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조부모와 부모님 무덤 4기가 사라진 모습(KBS뉴스9_2024.03.07.)지난해 추석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조부모와 부모님 무덤 4기가 사라진 모습(KBS뉴스9_2024.03.07.)

■ 하루아침에 사라진 무덤들…성묘 간 가족들 '황당'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곽남길 씨에게 조상들이 잠든 고향 전북 완주군의 선산은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장소였습니다.

곽 씨 8남매는 어릴 적엔 부모님 손을 잡고 선산에 올라 어린 나무를 심었습니다.

곽 씨는 20대 때 상경했지만, 명절마다 가족들과 고향 집에 모였고 선산을 방문해 잡초를 뽑고 막걸리를 따랐습니다.

이렇게 가족의 유대를 확인하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달 곽 씨 가족은 설을 맞아 성묘를 하러 선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조부모와 부모님 무덤 4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솟아있던 봉분은 평평한 맨땅으로 변했고 무덤을 둘러싼 둘레석도 없어진 겁니다.

"술이라도 한잔 따라드리자, 그래서 내려와서 보니까 이런 상황이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황당해가지고…."
- 곽남길/파묘 피해자

현장에 굴착기 바큇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현장에 굴착기 바큇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

■ 선명한 굴착기 바퀴 자국…"옆 땅 주인이 헷갈려 파묘"

무덤이 있던 현장에는 굴착기 바큇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곽 씨 가족들은 누군가 중장비를 동원해 무덤을 파 옮긴 것으로 보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지난해 말 무덤 옆 땅 주인이 무덤을 파서 열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무덤 옆 땅의 주인은 무덤이 선 곳이 자기 땅인 줄 알고 무덤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국토정보공사가 지적 측량을 해 보니 무덤이 있던 땅은 곽 씨 가족 소유가 맞았습니다.

곽 씨 가족이 다른 곳에 묻힌 어머니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곽 씨 가족이 다른 곳에 묻힌 어머니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

옆 땅 주인은 이미 유골 일부도 화장해 다른 장소에 매장한 뒤였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경찰은 옆 땅 주인을 분묘 발굴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는 한편 옆 땅 주인이 다른 곳에 묻은 유골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습니다.

무덤을 이장할 때 제출하는 개장 신고서 양식무덤을 이장할 때 제출하는 개장 신고서 양식

■무덤 이장, 신고만 하면 가능…확인 절차 미흡

현행법상 무덤을 옮기려면 소속 지자체에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인과 사망자 등 개인 정보를 신고서에 적고, 묘지 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됩니다.

문제는 무덤 이장은 신고만 하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무덤 위치가 실제 신고서 상 주소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별도의 확인 절차가 없습니다.

지자체가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도 않아도 무덤을 옮길 수 있기에 실제 신고와 다른 곳의 무덤을 파도 막기 어려운 겁니다.

해당 지자체는 "묘비도 없어 신고자 제출 사진과 지도상 위성 사진을 비교했다"며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입장입니다.
조상 무덤과 유골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피해가 더는 반복되지 않으려면 신고만 하면 무덤을 옮길 수 있는 절차가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연관 기사] 통째로 사라진 조상 무덤…후손도 모르게 ‘파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8057

(촬영기자 : 정성수 / 그래픽 : 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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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 무덤 4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이런 파묘는 처음”
    • 입력 2024-03-09 08:01:04
    • 수정2024-03-09 08: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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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조부모와 부모님 무덤 4기가 사라진 모습(KBS뉴스9_2024.03.07.)
■ 하루아침에 사라진 무덤들…성묘 간 가족들 '황당'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곽남길 씨에게 조상들이 잠든 고향 전북 완주군의 선산은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장소였습니다.

곽 씨 8남매는 어릴 적엔 부모님 손을 잡고 선산에 올라 어린 나무를 심었습니다.

곽 씨는 20대 때 상경했지만, 명절마다 가족들과 고향 집에 모였고 선산을 방문해 잡초를 뽑고 막걸리를 따랐습니다.

이렇게 가족의 유대를 확인하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달 곽 씨 가족은 설을 맞아 성묘를 하러 선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조부모와 부모님 무덤 4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솟아있던 봉분은 평평한 맨땅으로 변했고 무덤을 둘러싼 둘레석도 없어진 겁니다.

"술이라도 한잔 따라드리자, 그래서 내려와서 보니까 이런 상황이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황당해가지고…."
- 곽남길/파묘 피해자

현장에 굴착기 바큇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
■ 선명한 굴착기 바퀴 자국…"옆 땅 주인이 헷갈려 파묘"

무덤이 있던 현장에는 굴착기 바큇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곽 씨 가족들은 누군가 중장비를 동원해 무덤을 파 옮긴 것으로 보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지난해 말 무덤 옆 땅 주인이 무덤을 파서 열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무덤 옆 땅의 주인은 무덤이 선 곳이 자기 땅인 줄 알고 무덤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국토정보공사가 지적 측량을 해 보니 무덤이 있던 땅은 곽 씨 가족 소유가 맞았습니다.

곽 씨 가족이 다른 곳에 묻힌 어머니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
옆 땅 주인은 이미 유골 일부도 화장해 다른 장소에 매장한 뒤였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경찰은 옆 땅 주인을 분묘 발굴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는 한편 옆 땅 주인이 다른 곳에 묻은 유골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습니다.

무덤을 이장할 때 제출하는 개장 신고서 양식
■무덤 이장, 신고만 하면 가능…확인 절차 미흡

현행법상 무덤을 옮기려면 소속 지자체에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인과 사망자 등 개인 정보를 신고서에 적고, 묘지 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됩니다.

문제는 무덤 이장은 신고만 하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무덤 위치가 실제 신고서 상 주소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별도의 확인 절차가 없습니다.

지자체가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도 않아도 무덤을 옮길 수 있기에 실제 신고와 다른 곳의 무덤을 파도 막기 어려운 겁니다.

해당 지자체는 "묘비도 없어 신고자 제출 사진과 지도상 위성 사진을 비교했다"며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입장입니다.
조상 무덤과 유골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피해가 더는 반복되지 않으려면 신고만 하면 무덤을 옮길 수 있는 절차가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연관 기사] 통째로 사라진 조상 무덤…후손도 모르게 ‘파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8057

(촬영기자 : 정성수 / 그래픽 : 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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