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없는 유한양행에 회장직…“빈 자리로 둘꺼면 왜?”

입력 2024.03.15 (15:48) 수정 2024.03.1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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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업체 1위인 유한양행이 정관을 변경해 '회장·부회장직'을 부활시켰습니다.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에 이어 연만희 고문이 1996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28년 만입니다.

이번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이 오르자마자, 회사 안팎으로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특정인을 회장에 앉히기 위한 절차가 아니냐는 겁니다. 일부 직원들은 돈을 모아 지난 11일부터 본사 앞에서 트럭을 동원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유일링 이사 "창업주 정신이 사라질까 걱정돼"

정기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어제(14일),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KBS 취재진과 만나 이번 직제 개편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제 '뉴스9'에 담지 못했던 유일링 이사의 많은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유한양행,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회장직, 빈 자리로 둘 거면 대체 왜 만드나"

한 기업에 '회장직'을 만드는 것. 언뜻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회사 내부에선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요.

바로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기업 정신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유 박사의 경영 원칙에 따라,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왔습니다.

물론, 창업주 일가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주요 의사 결정은 이사회 중심으로 진행해왔습니다. 그래서 회장직 신설이 주총 안건으로 오르자마자, 일부 직원들이 "특정인이 회장직에 오르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며 반발한 겁니다.

주주총회장에서 주주들은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대한 많은 찬반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 주주는 "대기업이나 과거 일반 회사들의 의장이나 고문들의 인사 전횡, 장기집권, 횡포 등의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누가 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주주는 "외부에서 인물 영입을 고려하는 거 같은데, 그 사람이 국민기업인 유한의 정신과 문화를 승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또 내부에서 추진하면 결국 옥상옥이 되는 조직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욱제 사장 "당장 회장직 선임계획 없다"…이정희 의사회 의장 "저는 안한다"

경영진으로부터 회장직 신설안을 보고 받은 한 주주는 "푸틴이 대통령하다가 총리 내려왔다가 다시 대통령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얘기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을 장기집권하고 있는 푸틴에 비유한 겁니다.

이 의장은 2015년 3년 임기의 유한양행 대표가 됐습니다. 한차례 연임할 수 있는 정관에 따라 연임을 했고 후임은 현 조욱제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주총회에서는 사장이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직을 이사회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정관개정안도 통과됐습니다. 새로 이사회 의장 자리가 만들어진 건데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입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안과 함께 조욱제 사장의 연임안, 그리고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의 이사직 연임안도 포함됐습니다. 회장· 부회장직 신설이 결국은 두 사람의 장기집권을 위한 디딤돌 놓기 아니냐고 의심하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유한양행은 왜 이제와서 회장직을 새로 만든다는 걸까요. 유한양행 측은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가 필요하고, 외부 인재 영입 시 현재 직급보다 높은 직급을 요구하는 경우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주총장에서 조욱제 사장은 "일부 우려와 달리 당장 회장직의 선임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빈자리로 둘 거면, 대체 왜 필요한가?"라고 의문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회장직이 새로 만들어지면 회장직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던 이정희 이사회 의장은 주주총회장에서 "딱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회장을) 안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유한양행, 회장직 신설 결정…논란 속에서도 주총 통과

제101차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유한양행 4층 대회의실 모습제101차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유한양행 4층 대회의실 모습

유한양행은 오늘(15일)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직 신설을 포함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조욱제 현 사장의 연임, 그리고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의 이사 연임도 확정됐습니다. 이정희 의장이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면 이 의장은 사장 6년에 이사회의장 6년이란 유한양행에서 전무후무한 이력을 쌓게 됩니다. 오너없는 회사 유한양행에 회장, 부회장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오를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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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이 오르자마자, 회사 안팎으로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특정인을 회장에 앉히기 위한 절차가 아니냐는 겁니다. 일부 직원들은 돈을 모아 지난 11일부터 본사 앞에서 트럭을 동원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유일링 이사 "창업주 정신이 사라질까 걱정돼"

정기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어제(14일),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KBS 취재진과 만나 이번 직제 개편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제 '뉴스9'에 담지 못했던 유일링 이사의 많은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유한양행,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회장직, 빈 자리로 둘 거면 대체 왜 만드나"

한 기업에 '회장직'을 만드는 것. 언뜻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회사 내부에선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요.

바로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기업 정신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유 박사의 경영 원칙에 따라,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왔습니다.

물론, 창업주 일가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주요 의사 결정은 이사회 중심으로 진행해왔습니다. 그래서 회장직 신설이 주총 안건으로 오르자마자, 일부 직원들이 "특정인이 회장직에 오르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며 반발한 겁니다.

주주총회장에서 주주들은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대한 많은 찬반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 주주는 "대기업이나 과거 일반 회사들의 의장이나 고문들의 인사 전횡, 장기집권, 횡포 등의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누가 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주주는 "외부에서 인물 영입을 고려하는 거 같은데, 그 사람이 국민기업인 유한의 정신과 문화를 승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또 내부에서 추진하면 결국 옥상옥이 되는 조직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욱제 사장 "당장 회장직 선임계획 없다"…이정희 의사회 의장 "저는 안한다"

경영진으로부터 회장직 신설안을 보고 받은 한 주주는 "푸틴이 대통령하다가 총리 내려왔다가 다시 대통령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얘기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을 장기집권하고 있는 푸틴에 비유한 겁니다.

이 의장은 2015년 3년 임기의 유한양행 대표가 됐습니다. 한차례 연임할 수 있는 정관에 따라 연임을 했고 후임은 현 조욱제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주총회에서는 사장이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직을 이사회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정관개정안도 통과됐습니다. 새로 이사회 의장 자리가 만들어진 건데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입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안과 함께 조욱제 사장의 연임안, 그리고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의 이사직 연임안도 포함됐습니다. 회장· 부회장직 신설이 결국은 두 사람의 장기집권을 위한 디딤돌 놓기 아니냐고 의심하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유한양행은 왜 이제와서 회장직을 새로 만든다는 걸까요. 유한양행 측은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가 필요하고, 외부 인재 영입 시 현재 직급보다 높은 직급을 요구하는 경우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주총장에서 조욱제 사장은 "일부 우려와 달리 당장 회장직의 선임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빈자리로 둘 거면, 대체 왜 필요한가?"라고 의문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회장직이 새로 만들어지면 회장직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던 이정희 이사회 의장은 주주총회장에서 "딱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회장을) 안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유한양행, 회장직 신설 결정…논란 속에서도 주총 통과

제101차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유한양행 4층 대회의실 모습
유한양행은 오늘(15일)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직 신설을 포함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조욱제 현 사장의 연임, 그리고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의 이사 연임도 확정됐습니다. 이정희 의장이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면 이 의장은 사장 6년에 이사회의장 6년이란 유한양행에서 전무후무한 이력을 쌓게 됩니다. 오너없는 회사 유한양행에 회장, 부회장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오를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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