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준희가 남은 2명의 이준희에게 “국가대표 유니폼에 ‘이준희’ 꼭 새겨 주렴”
입력 2024.03.19 (13:17)
수정 2024.03.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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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안산 그리너스의 측면을 든든히 지키던 수비수 이준희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준희는 올해 동계 훈련까지 모두 소화하며 자신의 14번째 프로 시즌을 준비했으나, 전지훈련 막바지에 또 한 번 찾아온 고질적인 무릎 부상 탓에 결국 축구화를 벗게 됐다.
안산 팬들에겐 갑작스러운 작별이었지만, 이준희는 계속해서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지내왔다고 밝혔다.
서른 살 이후에도 계속된 수술 탓에, 이준희의 무릎 연골은 현재 다 닳아있는 상황. 한 번 더 다치면 선수 인생이 완전히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찾아오자, 이준희는 스스로 가슴 속에 품었던 사표를 꺼냈다.
"막상 은퇴를 하니 설레는 마음이 더 큽니다. 선수 생활 동안에는 어떠한 틀 안에서 규칙적으로 시키는 것만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제 인생에 대한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고 또 선택할 수 있어서 설렘이 더 큰 것 같습니다."
K리그 무대에서 총 220경기를 뛰며 7골 13도움을 올린 베테랑이지만, 이준희는 축구 인생 못다한 꿈이 하나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축구 인생을 돌아봤다.
"국가대표가 꿈이었는데, 태극마크를 한 번도 달아보지 못했네요. 제가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꾸준함이 부족했고, 늘 한계에서 멈추곤 했죠. 그런데 안산에서 같이 뛰었던 박진섭 선수, 그리고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주민규 선수를 보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침부터 자신의 계획대로 훈련 하고 또 정말 꾸준히 노력하는데, 결국 그런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더라고요. 노력은 누구나 하는데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프로 인생 동안 배운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에게 축구 선배로서 이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어요. 재능만 믿고 꾸준함이 없는 선수는 결국 중간에 사라지더라고요."
(왼쪽) 안산의 골키퍼 이준희. (오른쪽) 안산의 신인 공격수 이준희.
안산에는 두 명의 이준희가 더 있다. 안산의 뒷문을 든든히 지키는 골키퍼 이준희와 올해 입단한 2004년생 신인 윙어 이준희. 떠나는 이준희는 남은 이준희들 덕에 자신의 이름이 계속 기억될 것 같다며 고마움을 건넸다.
"아 기자님 이름도 이준희라면서요? 하하하 인연이네요 정말. 준희들이 있어서 제 모습과 이름이 안산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워요. 팬들이 이준희라는 이름을 불러주면 제 생각도 해 주실 것 같으니깐 은퇴해도 은퇴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남은 준희가 제가 못다 한 꿈을 이뤄주면 좋겠어요. 준희가 국가대표 꼭 돼서 이준희 이름 새겨준 유니폼 사인해서 저한테 하나 꼭 선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안산에서 그라운드를 떠난 이준희. 10년 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준 팬들에게도 감사함을 표현했다.
"대구와 안산 모든 팀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대구는 저를 데뷔할 수 있게 해주신 팀이고요.
안산은 은퇴할 위기에 몰렸던, 표류하던 저를 벼랑 끝에서 구해준 감사한 팀이죠. 또 수원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 은퇴식 날이 수원전이었는데, 사실 원정 팬 규모에 걱정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안익수 대표님이 은퇴식 전에 '수원 서포터들은 분명 너를 존중해 줄 거다.'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처럼 안산 팬뿐 아니라 수원 팬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은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축구협회의 도움으로 최근 축구 전력 분석을 공부해 온 이준희는 '축구 영상 분석가'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에 사용하는 기술이 K리그엔 한 5, 6년 정도 늦게 들어오더라고요. 영상 분석 경우에도 경기 중 실시간으로 경기 영상을 분석해서 코칭스태프에게 전달하고 전술 변화에 도움을 주곤 하는데, 아직 K리그에선 보편화 돼 있지 않더라고요. 팀의 일원이 돼서 영상 분석을 하며 더 배울지, 아니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업의 길로 나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팀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팀에 헌신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준희는 당분간은 한 가정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로 돌아가 그간 못다 한 봉사를 실컷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가 무릎이 아파 힘들어할 때마다 첫째가 '아빠 이제 축구 그만하고 그냥 빵집 하면 안 돼?' 이랬거든요. 가족들한테 국가대표도 못 한 남편, 아빠로 은퇴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은퇴식은 멋지게 한 것 같아서 그나마 떳떳한 남편, 아빠가 된 것 같아요. 이제 집에서 밥은 편하게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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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이준희가 남은 2명의 이준희에게 “국가대표 유니폼에 ‘이준희’ 꼭 새겨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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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3-19 13:17:15
- 수정2024-03-19 14:44:02
지난 주말 안산 그리너스의 측면을 든든히 지키던 수비수 이준희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준희는 올해 동계 훈련까지 모두 소화하며 자신의 14번째 프로 시즌을 준비했으나, 전지훈련 막바지에 또 한 번 찾아온 고질적인 무릎 부상 탓에 결국 축구화를 벗게 됐다.
안산 팬들에겐 갑작스러운 작별이었지만, 이준희는 계속해서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지내왔다고 밝혔다.
서른 살 이후에도 계속된 수술 탓에, 이준희의 무릎 연골은 현재 다 닳아있는 상황. 한 번 더 다치면 선수 인생이 완전히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찾아오자, 이준희는 스스로 가슴 속에 품었던 사표를 꺼냈다.
"막상 은퇴를 하니 설레는 마음이 더 큽니다. 선수 생활 동안에는 어떠한 틀 안에서 규칙적으로 시키는 것만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제 인생에 대한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고 또 선택할 수 있어서 설렘이 더 큰 것 같습니다."
K리그 무대에서 총 220경기를 뛰며 7골 13도움을 올린 베테랑이지만, 이준희는 축구 인생 못다한 꿈이 하나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축구 인생을 돌아봤다.
"국가대표가 꿈이었는데, 태극마크를 한 번도 달아보지 못했네요. 제가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꾸준함이 부족했고, 늘 한계에서 멈추곤 했죠. 그런데 안산에서 같이 뛰었던 박진섭 선수, 그리고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주민규 선수를 보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침부터 자신의 계획대로 훈련 하고 또 정말 꾸준히 노력하는데, 결국 그런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더라고요. 노력은 누구나 하는데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프로 인생 동안 배운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에게 축구 선배로서 이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어요. 재능만 믿고 꾸준함이 없는 선수는 결국 중간에 사라지더라고요."
안산에는 두 명의 이준희가 더 있다. 안산의 뒷문을 든든히 지키는 골키퍼 이준희와 올해 입단한 2004년생 신인 윙어 이준희. 떠나는 이준희는 남은 이준희들 덕에 자신의 이름이 계속 기억될 것 같다며 고마움을 건넸다.
"아 기자님 이름도 이준희라면서요? 하하하 인연이네요 정말. 준희들이 있어서 제 모습과 이름이 안산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워요. 팬들이 이준희라는 이름을 불러주면 제 생각도 해 주실 것 같으니깐 은퇴해도 은퇴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남은 준희가 제가 못다 한 꿈을 이뤄주면 좋겠어요. 준희가 국가대표 꼭 돼서 이준희 이름 새겨준 유니폼 사인해서 저한테 하나 꼭 선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안산에서 그라운드를 떠난 이준희. 10년 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준 팬들에게도 감사함을 표현했다.
"대구와 안산 모든 팀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대구는 저를 데뷔할 수 있게 해주신 팀이고요.
안산은 은퇴할 위기에 몰렸던, 표류하던 저를 벼랑 끝에서 구해준 감사한 팀이죠. 또 수원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 은퇴식 날이 수원전이었는데, 사실 원정 팬 규모에 걱정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안익수 대표님이 은퇴식 전에 '수원 서포터들은 분명 너를 존중해 줄 거다.'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처럼 안산 팬뿐 아니라 수원 팬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은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축구협회의 도움으로 최근 축구 전력 분석을 공부해 온 이준희는 '축구 영상 분석가'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에 사용하는 기술이 K리그엔 한 5, 6년 정도 늦게 들어오더라고요. 영상 분석 경우에도 경기 중 실시간으로 경기 영상을 분석해서 코칭스태프에게 전달하고 전술 변화에 도움을 주곤 하는데, 아직 K리그에선 보편화 돼 있지 않더라고요. 팀의 일원이 돼서 영상 분석을 하며 더 배울지, 아니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업의 길로 나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팀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팀에 헌신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준희는 당분간은 한 가정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로 돌아가 그간 못다 한 봉사를 실컷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가 무릎이 아파 힘들어할 때마다 첫째가 '아빠 이제 축구 그만하고 그냥 빵집 하면 안 돼?' 이랬거든요. 가족들한테 국가대표도 못 한 남편, 아빠로 은퇴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은퇴식은 멋지게 한 것 같아서 그나마 떳떳한 남편, 아빠가 된 것 같아요. 이제 집에서 밥은 편하게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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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기자 fcju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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