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스터디-공단기 “합병 안 돼”…공시생은 기쁠까

입력 2024.03.21 (18:26) 수정 2024.03.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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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종합학원에서 출발한 메가스터디, 지금은 안 하는 게 없는 사교육계 ‘큰손‘입니다.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의학전문대학원 등 대학원 입시 학원, 편입 학원, 컴퓨터 학원, 취업 학원 시장에도 발을 뻗고 있습니다.

이런 메가스터디가 2019년, 공무원 시험 학원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듬해 한국사 전한길, 행정학 신용한 등 경쟁사의 스타강사를 연이어 영입하면서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폈습니다.

2022년에는 아예 강사가 아닌 회사 전체를 ‘영입’하기로 마음먹고, 업계 1위 ‘공단기’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둘의 결합을 심사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늘(21일) ‘불허’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공정위의 결정은 승인, 조건부 승인, 불허 등 크게 3가지인데 불허 결정은 2016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일 정도로 흔치 않습니다.

■ 4년째 2위...메가스터디가 인수 나선 이유

메가스터디가 인수하려던 공단기, 독보적인 선두 사업자입니다. 2022년 기준, 7·9급 공무원과 군무원 학원 시장의 46.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메가스터디는 21.5%로 꽤 큰 차이가 나는 2등입니다.

공단기의 독주 비결은 ‘패스 상품’에 있습니다. 한 번 구매하면 일정 기간 모든 온라인 강의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입니다.

공단기가 이 패스 상품을 공시 시장에 처음 도입했습니다. ‘시험에 붙을 때까지’ 모든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파격적인 상품까지 선보이면서 단과 중심이던 시장이 순식간에 브랜드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합격 때까지 구독이라는 조건은 점유율의 ’족쇄‘노릇을 했습니다. 메가스터디가 아무리 1타 강사들을 데려와도, 공단기 수강생들은 합격 전까지 쉽사리 학원을 옮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메가스터디는 공단기 수험생들의 합격을 빌어주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 인수를 택했습니다.

■ 합병 성사되면 시장 70% 먹는 ‘공룡’ 출현

이번 인수를 공정위가 막아선 이유, 독점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 합은 70% 수준. 통상 한 회사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면 독점 사업자로 보는데, 그것보다 훨씬 큰 학원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1타 강사 점유율’은 더합니다. 공정위가 ‘인기 강사’로 분류한 40명 중 23명이 공단기, 13명이 메가스터디 소속입니다. 두 회사가 결합하면, 1타 강사의 90%가 한솥밥을 먹게 됩니다.
메가스터디가 인수 이후 커진 몸집과 인기 강사진을 바탕으로 수강생들을 더 끌어모을 거란 게 공정위 판단입니다.

■ 일부 수험생은 “차라리 한 곳이 다 먹는 게 나아”

무조건 인수를 막는 게 수험생들에게 좋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공무원 시험 수험생 카페엔 “누구든 상관없으니 한 회사로 합병했으면 좋겠다”는 댓글도 달립니다. 1타 강사들이 학원 두 곳에 나뉘어 있으면, 돈이 이중으로 드는데, 합치면 한 곳에서 다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사 1타 강사인 전한길 강사가 공단기에서 메가스터디로 이적한 2020년 7월, 공단기엔 환불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전한길 강사 한 명을 보고 패스 상품을 구매했는데, 메가스터디에서도 구매해야 하니까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정 모 씨도 차라리 독점 학원의 수강권이 더 싸다는 입장입니다.

정00/7급 공무원 시험 수험생
“메가스터디가 들어오기 전에 공단기 수강권이 200만 원까지도 갔었어요. 그런데 지금 수험생들 사이에선 그때 200만 원이 더 싸다는 말도 나와요. 한국사, 행정학 등 꼭 들어야 하는 과목 1타 강사들이 다 공단기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1타 강사들이 나뉘어있으면 돈이 300만 원까지도 드는 거죠.”


■ “가격 인상은 결국 다수 수험생 피해로”

그럼에도, 공정위는 합병으로 이익을 보는 수험생보다 피해를 보는 수험생이 더 많을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메가스터디가 살 예정이던 공단기 주식 가치는 1,030억 원입니다. 이 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강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단 겁니다.

이런 예측은 공정위 경제분석에도 나타납니다. 공무원 학원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 오를 때마다 패스 상품 가격은 2.56%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금 1위 사업자인 공단기도 꾸준히 가격을 올려왔습니다. 2013년 패스 상품을 38만 원에 내놨는데, 2019년엔 최대 229만 원에 팔았습니다.

■ ‘메가스터디’ 독점 안 돼

이번 기업 결합을 심사한 심사관 측은, ‘조건부 승인’ 의견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합은 허용하되, 메가스터디의 공무원 관련 사업부를 팔거나 일부 강사를 다른 학원으로 분산시키는 조건을 붙이는 겁니다. 강력한 조건이지만, 배민-요기요 사례처럼 매각 후 인수는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위원회 측은 메가스터디가 1위 사업자로 올라서면 어떤 조건으로도 경쟁 제한을 해소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인수를 하용하면 메가스터디는 1위가 되기 위해 공단기 사업부를 우선 취하고, 2위인 메가공무원(메가스터디의 공무원 부문)을 팔거나 사업을 줄이겠죠.

하지만 메가스터디가 사교육 업계에서 노하우와 자금력을 쌓아온 만큼, 금세 줄어든 파이를 되찾을 거란 게 위원회 판단입니다. 메가스터디가 공시 분야에서도 ‘1타 사업자’가 되는 건 너무 위험하단 거죠.

‘수험생들도 반기는 합병을 공정위가 왜 막냐’는 지적은 당장은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틀리다는 게 입증된 셈입니다. 최근 공무원 시험 관련 시장은 공무원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위축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두 학원이 수험생들에게 더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경쟁을 펼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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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03-21 18: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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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종합학원에서 출발한 메가스터디, 지금은 안 하는 게 없는 사교육계 ‘큰손‘입니다.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의학전문대학원 등 대학원 입시 학원, 편입 학원, 컴퓨터 학원, 취업 학원 시장에도 발을 뻗고 있습니다.

이런 메가스터디가 2019년, 공무원 시험 학원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듬해 한국사 전한길, 행정학 신용한 등 경쟁사의 스타강사를 연이어 영입하면서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폈습니다.

2022년에는 아예 강사가 아닌 회사 전체를 ‘영입’하기로 마음먹고, 업계 1위 ‘공단기’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둘의 결합을 심사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늘(21일) ‘불허’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공정위의 결정은 승인, 조건부 승인, 불허 등 크게 3가지인데 불허 결정은 2016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일 정도로 흔치 않습니다.

■ 4년째 2위...메가스터디가 인수 나선 이유

메가스터디가 인수하려던 공단기, 독보적인 선두 사업자입니다. 2022년 기준, 7·9급 공무원과 군무원 학원 시장의 46.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메가스터디는 21.5%로 꽤 큰 차이가 나는 2등입니다.

공단기의 독주 비결은 ‘패스 상품’에 있습니다. 한 번 구매하면 일정 기간 모든 온라인 강의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입니다.

공단기가 이 패스 상품을 공시 시장에 처음 도입했습니다. ‘시험에 붙을 때까지’ 모든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파격적인 상품까지 선보이면서 단과 중심이던 시장이 순식간에 브랜드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합격 때까지 구독이라는 조건은 점유율의 ’족쇄‘노릇을 했습니다. 메가스터디가 아무리 1타 강사들을 데려와도, 공단기 수강생들은 합격 전까지 쉽사리 학원을 옮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메가스터디는 공단기 수험생들의 합격을 빌어주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 인수를 택했습니다.

■ 합병 성사되면 시장 70% 먹는 ‘공룡’ 출현

이번 인수를 공정위가 막아선 이유, 독점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 합은 70% 수준. 통상 한 회사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면 독점 사업자로 보는데, 그것보다 훨씬 큰 학원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1타 강사 점유율’은 더합니다. 공정위가 ‘인기 강사’로 분류한 40명 중 23명이 공단기, 13명이 메가스터디 소속입니다. 두 회사가 결합하면, 1타 강사의 90%가 한솥밥을 먹게 됩니다.
메가스터디가 인수 이후 커진 몸집과 인기 강사진을 바탕으로 수강생들을 더 끌어모을 거란 게 공정위 판단입니다.

■ 일부 수험생은 “차라리 한 곳이 다 먹는 게 나아”

무조건 인수를 막는 게 수험생들에게 좋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공무원 시험 수험생 카페엔 “누구든 상관없으니 한 회사로 합병했으면 좋겠다”는 댓글도 달립니다. 1타 강사들이 학원 두 곳에 나뉘어 있으면, 돈이 이중으로 드는데, 합치면 한 곳에서 다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사 1타 강사인 전한길 강사가 공단기에서 메가스터디로 이적한 2020년 7월, 공단기엔 환불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전한길 강사 한 명을 보고 패스 상품을 구매했는데, 메가스터디에서도 구매해야 하니까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정 모 씨도 차라리 독점 학원의 수강권이 더 싸다는 입장입니다.

정00/7급 공무원 시험 수험생
“메가스터디가 들어오기 전에 공단기 수강권이 200만 원까지도 갔었어요. 그런데 지금 수험생들 사이에선 그때 200만 원이 더 싸다는 말도 나와요. 한국사, 행정학 등 꼭 들어야 하는 과목 1타 강사들이 다 공단기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1타 강사들이 나뉘어있으면 돈이 300만 원까지도 드는 거죠.”


■ “가격 인상은 결국 다수 수험생 피해로”

그럼에도, 공정위는 합병으로 이익을 보는 수험생보다 피해를 보는 수험생이 더 많을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메가스터디가 살 예정이던 공단기 주식 가치는 1,030억 원입니다. 이 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강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단 겁니다.

이런 예측은 공정위 경제분석에도 나타납니다. 공무원 학원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 오를 때마다 패스 상품 가격은 2.56%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금 1위 사업자인 공단기도 꾸준히 가격을 올려왔습니다. 2013년 패스 상품을 38만 원에 내놨는데, 2019년엔 최대 229만 원에 팔았습니다.

■ ‘메가스터디’ 독점 안 돼

이번 기업 결합을 심사한 심사관 측은, ‘조건부 승인’ 의견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합은 허용하되, 메가스터디의 공무원 관련 사업부를 팔거나 일부 강사를 다른 학원으로 분산시키는 조건을 붙이는 겁니다. 강력한 조건이지만, 배민-요기요 사례처럼 매각 후 인수는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위원회 측은 메가스터디가 1위 사업자로 올라서면 어떤 조건으로도 경쟁 제한을 해소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인수를 하용하면 메가스터디는 1위가 되기 위해 공단기 사업부를 우선 취하고, 2위인 메가공무원(메가스터디의 공무원 부문)을 팔거나 사업을 줄이겠죠.

하지만 메가스터디가 사교육 업계에서 노하우와 자금력을 쌓아온 만큼, 금세 줄어든 파이를 되찾을 거란 게 위원회 판단입니다. 메가스터디가 공시 분야에서도 ‘1타 사업자’가 되는 건 너무 위험하단 거죠.

‘수험생들도 반기는 합병을 공정위가 왜 막냐’는 지적은 당장은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틀리다는 게 입증된 셈입니다. 최근 공무원 시험 관련 시장은 공무원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위축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두 학원이 수험생들에게 더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경쟁을 펼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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