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중단” “갱단 위협” 아이티 교민의 호소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3.22 (10:01) 수정 2024.03.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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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상황이 참혹합니다. 갱단에 의해 국가 기능이 거의 마비된 것은 오래됐지만,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갱단의 행위는 참혹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현지인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면 기사에 첨부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짓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쓰레기와 시신이 함께 나뒹구는 건 그나마 낫습니다. 곳곳에 불에 탄 시신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산 사람의 손을 묶고 불을 지른 뒤 이를 보며 웃는 영상도 있습니다.

아이티의 아리엘 앙리 총리가 물러나면서 과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선정된 위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섭니다. 혼돈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국제기구 탈출 행렬

결국, 각국은 자국민을 철수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미국입니다. 대사관에 필수인력만 남긴 채 철수시키고, 해병대를 증파해 대사관 보안을 강화했습니다.

민간인도 탈출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 일요일엔 전세기를 동원했습니다. 아이티 수도의 주 공항인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은 갱단의 공격으로 기능이 정지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이티 북쪽에 있는 카프 아이시앵 국제공항을 통해 47명을 마이애미로 데려왔습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호텔 공터에 대형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고, 미국인들이 줄지어 탑승하고 있다. 현지시각 3월 20일 현지인이 찍은 동영상 갈무리.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호텔 공터에 대형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고, 미국인들이 줄지어 탑승하고 있다. 현지시각 3월 20일 현지인이 찍은 동영상 갈무리.

아이티 수도인 포르토프랭스 근처에 있는 미국인들은 그때 나오지 못했습니다. 외부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틀 전, 헬리콥터를 동원했습니다. 포르토프랭스 안 공터에 대형 헬기를 착륙시켜 수십 명을 탈출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근 도미니카 공화국도 움직였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군 헬기를 동원해 자국민을 빼냈습니다.

필리핀도 자국민에게 출국 신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제기구 인력들도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현지 시각으로 19일, 유럽연합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직원 등 300명을 대피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국가 단위로 탈출이 이뤄지는 건 개별적인 탈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상업용 비행기는 중단됐고, 육로는 언제 갱단의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교민 상황은?..."공장 중단" "갱단 위협"

당장 현지 상황을 보면 갱단의 교도소 공격과 포르토프랭스 공항 공격 때에 비하면 다소 진정된 듯 보입니다. 밤에는 통행금지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낮에는 어느 정도 현지인들의 통행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중교통은 중단됐지만, 개별 차량은 드문드문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다는 게 현지 전언입니다.

공항 앞은 경찰이 다시 지키고 있고, 아이티 중앙은행에 대한 공격이 몇 차례 있었지만 다 막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내 곳곳에선 총격전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민들도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일 때의 소나피 공단 내 모습이다. 공단의 전체 모습은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안정적일 때의 소나피 공단 내 모습이다. 공단의 전체 모습은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아이티에는 소나피 국가 공단 내 공장 직원들과 선교사, 그리고 신부, 수녀 등 모두 70여 명의 교민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아이티의 불안정한 상태를 힘겹게 견뎌 왔지만, 최근 2, 3주간의 혼란은 여느 때 보다 심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상당수 교민이 현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공장 가동이 중단됐거나 중단될 위기에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업체들이 주로 이용하는 컨테이너 항구가 두 번이나 갱단에게 약탈을 당했고, 지금도 제대로 운영이 안 되면서 자재를 들여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장 설비 때문이 아니라면 공장 운영을 위해 현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도 공단은 외부와 격리돼 있고, 여러 교민이 모여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단 외부에 개별적으로 거주하는 교민이 느끼는 위협감은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한 교민의 경우 집으로 갱단이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며 불안감을 호소했습니다. 요구한 돈은 미화 1,500달러입니다. 현지 돈으로 21만 구드입니다. 갱단 하위 조직원이 하루에 받는 일당이 200~300 구드라고 하니 7백에서 천 명에게 줄 수 있는 돈입니다.

일단 돈이 없다고 돌려보냈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미 외국인임이 드러나 갱단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이티에서 외국인은 외부 출입이 극도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교민은 아예 열흘 동안 집 밖을 못 나간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갱단에 더해 교도소에서 탈출한 죄수들이 약탈을 벌이고 다닌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민은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공장 가동도 힘들어지면서, 상황을 더 지켜보려 했던 교민들도 하루 빨리 나오고 싶어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우리 외교 당국도 현지 상황을 파악하며 탈출 계획을 마련해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현지 상황상 쉽게 움직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긍정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7명의 아이티 과도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돼,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인정 즉시 가동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안정을 되찾을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이 주말 가동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업용 비행기의 운항이 가능해져 급한 대로 아이티를 벗어날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일부 교민들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지에 있는 교민들 가운데 길게는 십수 년간 현지에서 생업을 이어 온 분들도 계십니다. 최근 7,8년간은 아이티의 극심한 불안에도 그대로 버텨왔습니다. 그런 곳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는 건 현지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아이티가 안정을 되찾아 교민들이 다시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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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장 중단” “갱단 위협” 아이티 교민의 호소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3-22 10:01:02
    • 수정2024-03-22 1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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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상황이 참혹합니다. 갱단에 의해 국가 기능이 거의 마비된 것은 오래됐지만,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갱단의 행위는 참혹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현지인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면 기사에 첨부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짓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쓰레기와 시신이 함께 나뒹구는 건 그나마 낫습니다. 곳곳에 불에 탄 시신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산 사람의 손을 묶고 불을 지른 뒤 이를 보며 웃는 영상도 있습니다.

아이티의 아리엘 앙리 총리가 물러나면서 과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선정된 위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섭니다. 혼돈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국제기구 탈출 행렬

결국, 각국은 자국민을 철수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미국입니다. 대사관에 필수인력만 남긴 채 철수시키고, 해병대를 증파해 대사관 보안을 강화했습니다.

민간인도 탈출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 일요일엔 전세기를 동원했습니다. 아이티 수도의 주 공항인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은 갱단의 공격으로 기능이 정지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이티 북쪽에 있는 카프 아이시앵 국제공항을 통해 47명을 마이애미로 데려왔습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호텔 공터에 대형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고, 미국인들이 줄지어 탑승하고 있다. 현지시각 3월 20일 현지인이 찍은 동영상 갈무리.
아이티 수도인 포르토프랭스 근처에 있는 미국인들은 그때 나오지 못했습니다. 외부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틀 전, 헬리콥터를 동원했습니다. 포르토프랭스 안 공터에 대형 헬기를 착륙시켜 수십 명을 탈출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근 도미니카 공화국도 움직였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군 헬기를 동원해 자국민을 빼냈습니다.

필리핀도 자국민에게 출국 신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제기구 인력들도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현지 시각으로 19일, 유럽연합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직원 등 300명을 대피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국가 단위로 탈출이 이뤄지는 건 개별적인 탈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상업용 비행기는 중단됐고, 육로는 언제 갱단의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교민 상황은?..."공장 중단" "갱단 위협"

당장 현지 상황을 보면 갱단의 교도소 공격과 포르토프랭스 공항 공격 때에 비하면 다소 진정된 듯 보입니다. 밤에는 통행금지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낮에는 어느 정도 현지인들의 통행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중교통은 중단됐지만, 개별 차량은 드문드문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다는 게 현지 전언입니다.

공항 앞은 경찰이 다시 지키고 있고, 아이티 중앙은행에 대한 공격이 몇 차례 있었지만 다 막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내 곳곳에선 총격전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민들도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일 때의 소나피 공단 내 모습이다. 공단의 전체 모습은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아이티에는 소나피 국가 공단 내 공장 직원들과 선교사, 그리고 신부, 수녀 등 모두 70여 명의 교민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아이티의 불안정한 상태를 힘겹게 견뎌 왔지만, 최근 2, 3주간의 혼란은 여느 때 보다 심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상당수 교민이 현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공장 가동이 중단됐거나 중단될 위기에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업체들이 주로 이용하는 컨테이너 항구가 두 번이나 갱단에게 약탈을 당했고, 지금도 제대로 운영이 안 되면서 자재를 들여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장 설비 때문이 아니라면 공장 운영을 위해 현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도 공단은 외부와 격리돼 있고, 여러 교민이 모여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단 외부에 개별적으로 거주하는 교민이 느끼는 위협감은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한 교민의 경우 집으로 갱단이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며 불안감을 호소했습니다. 요구한 돈은 미화 1,500달러입니다. 현지 돈으로 21만 구드입니다. 갱단 하위 조직원이 하루에 받는 일당이 200~300 구드라고 하니 7백에서 천 명에게 줄 수 있는 돈입니다.

일단 돈이 없다고 돌려보냈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미 외국인임이 드러나 갱단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이티에서 외국인은 외부 출입이 극도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교민은 아예 열흘 동안 집 밖을 못 나간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갱단에 더해 교도소에서 탈출한 죄수들이 약탈을 벌이고 다닌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민은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공장 가동도 힘들어지면서, 상황을 더 지켜보려 했던 교민들도 하루 빨리 나오고 싶어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우리 외교 당국도 현지 상황을 파악하며 탈출 계획을 마련해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현지 상황상 쉽게 움직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긍정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7명의 아이티 과도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돼,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인정 즉시 가동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안정을 되찾을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이 주말 가동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업용 비행기의 운항이 가능해져 급한 대로 아이티를 벗어날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일부 교민들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지에 있는 교민들 가운데 길게는 십수 년간 현지에서 생업을 이어 온 분들도 계십니다. 최근 7,8년간은 아이티의 극심한 불안에도 그대로 버텨왔습니다. 그런 곳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는 건 현지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아이티가 안정을 되찾아 교민들이 다시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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