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에 깔려 숨진 소방관…“붕괴 위험 예측 했어야”

입력 2024.03.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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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일 새벽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난 모습.지난해 12월 1일 새벽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난 모습.

지난해 12월, 제주에서 창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순직한 20대 구급대원 고(故) 임성철 소방장을 기억하십니까.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키고 진압에 나섰던 임 소방장은 거센 화염 속, 창고 처마가 무너지며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소방장의 안타까운 순직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소방청 합동조사위원회가 한 달여간 사고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합동 조사위 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창고 처마 붕괴 위험성 사전 예측 부족'이 순직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 "처마붕괴 위험 예측 못 했다."…충격이 '방화 헬멧 100배'

지난해 12월 창고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 임성철 소방장은 인근에 살던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킨 후 화재 진압을 하다가 콘크리트 처마에 깔려 숨졌다. (사진 :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지난해 12월 창고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 임성철 소방장은 인근에 살던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킨 후 화재 진압을 하다가 콘크리트 처마에 깔려 숨졌다. (사진 :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시간대별로 당시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났다는 119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지난해 12월 1일 0시 49분이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9분 만에 임 소방장이 속한 표선구급대가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임 소방장이 현장에 갔을 땐 이미 불이 급격하게 커진 '화재 최성기' 상태였습니다.

구급대는 현장 도착 1분 만에 화재 진압과 인명검색 활동을 했고, 새벽 1시 6분쯤 인근에 살던 80대 노부부가 외부로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2분 뒤, 임 소방장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창고 인근에서 화재 진압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9분, 임 소방장 위로 창고 처마가 속절없이 무너졌고, 임 소방장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머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불이 난 곳은 감귤 창고였습니다. 화재에 취약한 '목재 트러스 구조'로 지은 창고입니다. 1960~1970년대 제주 감귤 산업이 성장할 당시 감귤 창고를 여기저기 짓기 시작했는데, 마땅한 건축자재가 없어 목조 지붕에 콘크리트 처마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은 겁니다.

감귤 창고의 내부 천장이 '목재 트러스 구조'라는 건, 단시간에 화재 최성기에 도달하고 콘크리트 처마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방 당국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처마 붕괴 사고가 발생한 뒤인 새벽 1시 15분쯤에야 동부소방서 현장 지휘팀이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역할을 해야 할 현장 지휘팀은 화재 현장과 먼 거리에 있어 구급대보다 도착 시간이 늦었습니다.

현장 지휘팀에는 처마 붕괴 가능성 등을 점검하는 현장안전 점검관 1명이 배치돼 있었지만, 역할을 하지 못한 겁니다.

결국, 안전 점검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위험성 예측' 자체가 부족했다는 게 사고 조사의 결론입니다.

임 소방장을 덮친 창고 처마의 무게는 약 9톤. 방화 헬멧이 견딜 수 있는 최고 충격력에 최대 100배를 초과한 무게였습니다.

■ 화재 진압 시 '통신장비 불량'도…"소방 호스는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조사 결과, 화재 진압에 필요한 정보가 '통신 장비 불량'으로 소방관들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못한 것도 문제로 꼽혔습니다.

무전 전달이 되지 않으면서, 상황 보고가 제때 이뤄질 수도 없었단 겁니다.

소방청은 이와 관련해 "제주 일부 지역에서 통신이 잘 터지지 않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방 자체적으로 통신 기능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고 조사 결과, 화재 진압 시 필수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소방호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순직 사고 이후 뒤늦게…소방 대책 마련


순직 사고 이후, 제주도소방안전본부와 소방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사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현장 안전 관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다.

우선, 소방대원이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안전관리 기본원칙'을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실제 현장에서 소방관이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현장안전점검관의 전문성을 향상할 방침입니다.

제주 지역 '목재 트러스 구조' 건축물 맞춤형 대응 절차 수립을 위해서는 유사 구조 건축물 현황을 파악했습니다. 화재 발생 위험이 클 경우에는 안전 조사로 사전에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예방 대책이 추진됩니다.

현장지휘관 중심의 지휘 체계도 확립해 '선 위험성 판단 후 활동'을 원칙으로 한 체계도 마련될 예정입니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는 이를 위해 안전관리 전담 조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 현장대원의 원활한 역할 수행을 위해 구급대원 화재현장 역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화재 진압 시 신속한 정보 전달을 위해 '재난 안전 통신망 단말기'도 확대 보급해 무전 인프라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전부터 소방관 순직 사고 이후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실제로 이 대책을 현장에 적용하려고 할 때 인력 문제, 예산 문제에 부딪힌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축소된 대책이 시행된 경우가 많았기에 효과가 미미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고 이후 효과가 미미한 대책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기에, 이번 대책 수립 이후에도 대책 실행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제 아들을 위해 응원과 기도를 해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들의 희생과 청춘이 밑거름되어, 소방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면, 우리 가족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아들의 숨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겠습니다."

고(故) 임성철 소방장 부친

고(故) 임성철 소방장고(故) 임성철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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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2 13: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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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일 새벽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난 모습.
지난해 12월, 제주에서 창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순직한 20대 구급대원 고(故) 임성철 소방장을 기억하십니까.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키고 진압에 나섰던 임 소방장은 거센 화염 속, 창고 처마가 무너지며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소방장의 안타까운 순직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소방청 합동조사위원회가 한 달여간 사고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합동 조사위 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창고 처마 붕괴 위험성 사전 예측 부족'이 순직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 "처마붕괴 위험 예측 못 했다."…충격이 '방화 헬멧 100배'

지난해 12월 창고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 임성철 소방장은 인근에 살던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킨 후 화재 진압을 하다가 콘크리트 처마에 깔려 숨졌다. (사진 :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시간대별로 당시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났다는 119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지난해 12월 1일 0시 49분이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9분 만에 임 소방장이 속한 표선구급대가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임 소방장이 현장에 갔을 땐 이미 불이 급격하게 커진 '화재 최성기' 상태였습니다.

구급대는 현장 도착 1분 만에 화재 진압과 인명검색 활동을 했고, 새벽 1시 6분쯤 인근에 살던 80대 노부부가 외부로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2분 뒤, 임 소방장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창고 인근에서 화재 진압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9분, 임 소방장 위로 창고 처마가 속절없이 무너졌고, 임 소방장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머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불이 난 곳은 감귤 창고였습니다. 화재에 취약한 '목재 트러스 구조'로 지은 창고입니다. 1960~1970년대 제주 감귤 산업이 성장할 당시 감귤 창고를 여기저기 짓기 시작했는데, 마땅한 건축자재가 없어 목조 지붕에 콘크리트 처마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은 겁니다.

감귤 창고의 내부 천장이 '목재 트러스 구조'라는 건, 단시간에 화재 최성기에 도달하고 콘크리트 처마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방 당국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처마 붕괴 사고가 발생한 뒤인 새벽 1시 15분쯤에야 동부소방서 현장 지휘팀이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역할을 해야 할 현장 지휘팀은 화재 현장과 먼 거리에 있어 구급대보다 도착 시간이 늦었습니다.

현장 지휘팀에는 처마 붕괴 가능성 등을 점검하는 현장안전 점검관 1명이 배치돼 있었지만, 역할을 하지 못한 겁니다.

결국, 안전 점검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위험성 예측' 자체가 부족했다는 게 사고 조사의 결론입니다.

임 소방장을 덮친 창고 처마의 무게는 약 9톤. 방화 헬멧이 견딜 수 있는 최고 충격력에 최대 100배를 초과한 무게였습니다.

■ 화재 진압 시 '통신장비 불량'도…"소방 호스는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조사 결과, 화재 진압에 필요한 정보가 '통신 장비 불량'으로 소방관들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못한 것도 문제로 꼽혔습니다.

무전 전달이 되지 않으면서, 상황 보고가 제때 이뤄질 수도 없었단 겁니다.

소방청은 이와 관련해 "제주 일부 지역에서 통신이 잘 터지지 않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방 자체적으로 통신 기능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고 조사 결과, 화재 진압 시 필수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소방호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순직 사고 이후 뒤늦게…소방 대책 마련


순직 사고 이후, 제주도소방안전본부와 소방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사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현장 안전 관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다.

우선, 소방대원이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안전관리 기본원칙'을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실제 현장에서 소방관이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현장안전점검관의 전문성을 향상할 방침입니다.

제주 지역 '목재 트러스 구조' 건축물 맞춤형 대응 절차 수립을 위해서는 유사 구조 건축물 현황을 파악했습니다. 화재 발생 위험이 클 경우에는 안전 조사로 사전에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예방 대책이 추진됩니다.

현장지휘관 중심의 지휘 체계도 확립해 '선 위험성 판단 후 활동'을 원칙으로 한 체계도 마련될 예정입니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는 이를 위해 안전관리 전담 조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 현장대원의 원활한 역할 수행을 위해 구급대원 화재현장 역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화재 진압 시 신속한 정보 전달을 위해 '재난 안전 통신망 단말기'도 확대 보급해 무전 인프라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전부터 소방관 순직 사고 이후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실제로 이 대책을 현장에 적용하려고 할 때 인력 문제, 예산 문제에 부딪힌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축소된 대책이 시행된 경우가 많았기에 효과가 미미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고 이후 효과가 미미한 대책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기에, 이번 대책 수립 이후에도 대책 실행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제 아들을 위해 응원과 기도를 해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들의 희생과 청춘이 밑거름되어, 소방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면, 우리 가족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아들의 숨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겠습니다."

고(故) 임성철 소방장 부친

고(故) 임성철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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