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은] 한겨울 백두산 답사…“불이익 당할라” 외

입력 2024.03.23 (08:33) 수정 2024.03.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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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봄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혹독한 추위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백두산 행군을 하는 주민들인데요.

김일성 동상이나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밀영 등의 코스를 일주일간 답사하는데, 참가자 본인이 먹을 쌀과 기타 부대비용을 준비해 간다고 합니다.

그 비용이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를 넘어선다는데요.

여기에 답사지 지역 주민은 이들대로 고충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 북한은> 첫 번째 소식, 먼저 백두산으로 가보시죠.

[리포트]

아직도 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백두산 지역.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사람들이 줄지어 답사 길에 오릅니다.

[조선중앙TV/3월 4일 : "손발이 시리고 귀뿌리를 도려내는 듯한 추위도 느껴봐야 선열들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을 알 수 있고."]

2019년 김정은이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른 뒤 시작됐다는 이 행군은 보통 11월 말에 시작됩니다.

양강도 삼지연시 김일성 동상 앞에서 출발해 백두산을 돈 뒤 되돌아와 삼지연시의 대기념비 앞에서 끝나는데 보통 일주일이 걸립니다.

[조선중앙TV/3월 18일 : "백두산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혁명의 활화산을 터쳐 올리시어 조국 해방의 대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 뜨겁게 되새겼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까지 4년 동안 총 2,400여 단체, 12만 명이 참가했다며 행군 참여를 독려했는데요.

답사 행군에 나서면 적지 않은 혜택이 있다는데요.

[박현숙/2015년 탈북 : "정말 일을 잘해서 이제 뭐 청년 (동맹) 생활하다가 진급해서 입당한다든가 아니면 초위원장에서 이제 사노청(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위원장으로 이제 발탁된다든가 그럴 때 한 줄이, 글이 감상평에 올라가는 거죠."]

반면 불참하면 불이익이 따른다고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불참하면) 입당할 때 입당이 보류된다든가 아니면 승진할 때 승진이 보류된다든가 그런 게 있죠."]

그런데 막상 답사에 참가하려면 식량 등을 직접 준비해야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최소 5kg 이하는 아니에요. 우리가 계산하면은 4인 가족이 한 달 넘어 먹을 수 있는 그런 비용을, 한 달이 뭐예요. (답사) 생활비까지 합하면 (4인 가족이) 한 달 살 수 있는 그런 비용이 들어요. 일주일 가는 게요."]

또 답사지 주변 주민들은 밀려오는 참가자들에게 반찬과 국,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어느 마을은 산나물 말린 거 어떻게 해라, 어느 마을은 고추장을 내라, 어느 마을은 소금을 내라 이렇게 돌림 식으로 계속해요."]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세금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것들이 각 개인에게 다 할당돼서 항상 인민반장이 받으러 다니잖아요."]

이래저래 주민 생활에 도움 안 되는 답사 행군은 3월이 다 지나가야 겨우 끝납니다.

[앵커]

“잔디를 심어라”…“민생과 무관”

북한에선 3월 14일을 식수절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식목일이죠.

이날을 전후해 관영매체는 산림녹화나 도시경관 꾸미기 방송을 집중적으로 내보냈는데요.

그런데 관련 방송 중에서 특히 지피식물, 그러니까 땅을 덮는 키 낮은 식물에 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나중에 크게 자랄 나무의 묘목을 산이나 들에 심는 게 우리 식목일의 풍경이다 보니, 북한의 이 같은 지피식물 강조는 색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왜 그런 걸까요?

<요즘 북한은> 두 번째 소식입니다.

[리포트]

지난 14일 북한의 식수절을 맞아 관영매체들은 앞다퉈 산림녹화 등을 강조했습니다.

[전일혁/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지도원 : "이런 충성과 애국의 마음을 이 나무들과 함께 종일 묻고 있습니다."]

14일을 전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관련 방송이 나가는데 특히 비중 있게 다뤄지는 내용이 지피식물입니다.

땅을 덮는 용도로도 쓰이는 게 지피식물인데 잔디가 대표적이죠.

잔디 외에 꽃패랭이나 꽃잔디 등이 추위와 가뭄에 강하고 미관에 좋다며 권장합니다.

[조선중앙TV/3월 17일 : "부식질이 적은 메마른 땅이나 모래 자갈땅에서도 견딥니다.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므로 일반 녹지에 꽃밭으로도 조성할 수 있고..."]

이처럼 관영매체가 지피식물 강조에 열중하는 건 김정은 위원장의 남다른 지피식물 사랑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최리나 : "2015년 탈북 평양이 더 좀 심하거든요. 매해 방침이 떨어지고 지시가 떨어지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게 있어서 이렇게 구간을 딱 맡아 줘요. 그러면 우리 부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걸 다 깔아야 한다고 하면 저희가 나가서 다 그걸 하고 들어와야 하거든요."]

이 때문에 평양의 모습이 바뀌어 가는데, 예를 들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보존된 금수산태양궁전의 경우 김정은 집권 전과 후의 녹지 비율이 확연히 차이 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지피식물 사랑이 불량국가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과 관련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삼언/국립산림과학원 박사연구원 : "울창한 숲, 아름다워진 도시의 가로수, 그리고 도시조경 이런 식으로 김정은 시대의 업적을 이런 측면으로 부각하려는 것이 아닌가. 평양시 경우에도 많이 변모한 걸 알 수 있는데 금수산태양궁전도 그런 차원에서 모범적으로 조성한 게 아닌가."]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는 무관하다는 증언도 있는데요.

[최리나/2015년 탈북 : "예쁘고 안 예쁘고 내가 먹고 살기 힘든데 지금 아사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먹을 거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 국토에 잔디를 심어 나가자고 강조하는 북한.

보기에 '예쁜 풀'은 있지만 정작 '먹을 만한 풀'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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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3 08:33:10
    • 수정2024-03-23 09:35:00
    남북의 창
[앵커]

봄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혹독한 추위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백두산 행군을 하는 주민들인데요.

김일성 동상이나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밀영 등의 코스를 일주일간 답사하는데, 참가자 본인이 먹을 쌀과 기타 부대비용을 준비해 간다고 합니다.

그 비용이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를 넘어선다는데요.

여기에 답사지 지역 주민은 이들대로 고충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 북한은> 첫 번째 소식, 먼저 백두산으로 가보시죠.

[리포트]

아직도 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백두산 지역.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사람들이 줄지어 답사 길에 오릅니다.

[조선중앙TV/3월 4일 : "손발이 시리고 귀뿌리를 도려내는 듯한 추위도 느껴봐야 선열들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을 알 수 있고."]

2019년 김정은이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른 뒤 시작됐다는 이 행군은 보통 11월 말에 시작됩니다.

양강도 삼지연시 김일성 동상 앞에서 출발해 백두산을 돈 뒤 되돌아와 삼지연시의 대기념비 앞에서 끝나는데 보통 일주일이 걸립니다.

[조선중앙TV/3월 18일 : "백두산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혁명의 활화산을 터쳐 올리시어 조국 해방의 대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 뜨겁게 되새겼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까지 4년 동안 총 2,400여 단체, 12만 명이 참가했다며 행군 참여를 독려했는데요.

답사 행군에 나서면 적지 않은 혜택이 있다는데요.

[박현숙/2015년 탈북 : "정말 일을 잘해서 이제 뭐 청년 (동맹) 생활하다가 진급해서 입당한다든가 아니면 초위원장에서 이제 사노청(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위원장으로 이제 발탁된다든가 그럴 때 한 줄이, 글이 감상평에 올라가는 거죠."]

반면 불참하면 불이익이 따른다고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불참하면) 입당할 때 입당이 보류된다든가 아니면 승진할 때 승진이 보류된다든가 그런 게 있죠."]

그런데 막상 답사에 참가하려면 식량 등을 직접 준비해야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최소 5kg 이하는 아니에요. 우리가 계산하면은 4인 가족이 한 달 넘어 먹을 수 있는 그런 비용을, 한 달이 뭐예요. (답사) 생활비까지 합하면 (4인 가족이) 한 달 살 수 있는 그런 비용이 들어요. 일주일 가는 게요."]

또 답사지 주변 주민들은 밀려오는 참가자들에게 반찬과 국,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어느 마을은 산나물 말린 거 어떻게 해라, 어느 마을은 고추장을 내라, 어느 마을은 소금을 내라 이렇게 돌림 식으로 계속해요."]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세금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것들이 각 개인에게 다 할당돼서 항상 인민반장이 받으러 다니잖아요."]

이래저래 주민 생활에 도움 안 되는 답사 행군은 3월이 다 지나가야 겨우 끝납니다.

[앵커]

“잔디를 심어라”…“민생과 무관”

북한에선 3월 14일을 식수절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식목일이죠.

이날을 전후해 관영매체는 산림녹화나 도시경관 꾸미기 방송을 집중적으로 내보냈는데요.

그런데 관련 방송 중에서 특히 지피식물, 그러니까 땅을 덮는 키 낮은 식물에 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나중에 크게 자랄 나무의 묘목을 산이나 들에 심는 게 우리 식목일의 풍경이다 보니, 북한의 이 같은 지피식물 강조는 색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왜 그런 걸까요?

<요즘 북한은> 두 번째 소식입니다.

[리포트]

지난 14일 북한의 식수절을 맞아 관영매체들은 앞다퉈 산림녹화 등을 강조했습니다.

[전일혁/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지도원 : "이런 충성과 애국의 마음을 이 나무들과 함께 종일 묻고 있습니다."]

14일을 전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관련 방송이 나가는데 특히 비중 있게 다뤄지는 내용이 지피식물입니다.

땅을 덮는 용도로도 쓰이는 게 지피식물인데 잔디가 대표적이죠.

잔디 외에 꽃패랭이나 꽃잔디 등이 추위와 가뭄에 강하고 미관에 좋다며 권장합니다.

[조선중앙TV/3월 17일 : "부식질이 적은 메마른 땅이나 모래 자갈땅에서도 견딥니다.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므로 일반 녹지에 꽃밭으로도 조성할 수 있고..."]

이처럼 관영매체가 지피식물 강조에 열중하는 건 김정은 위원장의 남다른 지피식물 사랑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최리나 : "2015년 탈북 평양이 더 좀 심하거든요. 매해 방침이 떨어지고 지시가 떨어지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게 있어서 이렇게 구간을 딱 맡아 줘요. 그러면 우리 부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걸 다 깔아야 한다고 하면 저희가 나가서 다 그걸 하고 들어와야 하거든요."]

이 때문에 평양의 모습이 바뀌어 가는데, 예를 들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보존된 금수산태양궁전의 경우 김정은 집권 전과 후의 녹지 비율이 확연히 차이 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지피식물 사랑이 불량국가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과 관련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삼언/국립산림과학원 박사연구원 : "울창한 숲, 아름다워진 도시의 가로수, 그리고 도시조경 이런 식으로 김정은 시대의 업적을 이런 측면으로 부각하려는 것이 아닌가. 평양시 경우에도 많이 변모한 걸 알 수 있는데 금수산태양궁전도 그런 차원에서 모범적으로 조성한 게 아닌가."]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는 무관하다는 증언도 있는데요.

[최리나/2015년 탈북 : "예쁘고 안 예쁘고 내가 먹고 살기 힘든데 지금 아사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먹을 거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 국토에 잔디를 심어 나가자고 강조하는 북한.

보기에 '예쁜 풀'은 있지만 정작 '먹을 만한 풀'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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