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됐던 파국?…북한은 무엇을 원했을까

입력 2024.03.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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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회담 논의" 공개 하루 만에 "교섭 중단" 선언

북한이 일본과 정상회담 논의가 오갔다고 공개한 지 하루 만에 돌연 '교섭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어제(26일) 저녁 담화를 내고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겁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외교 현안 창구 역할을 하는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일본의 태도를 다시 한번 명백히 파악하였다"며 "결론은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주위의 이목을 끈 기시다 수상(일본 총리)의 조일(북일)수뇌회담 관련 발언은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의식하고 있는 일본 수상의 정략적인 타산에 조일(북일)관계가 이용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자신들은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 출발을 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환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며 "조일(북일)수뇌회담은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사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일본이 먼저 정상회담을 제안해와 응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하루 전인 지난 25일 김여정 부부장은 "최근에도 기시다 수상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가능한 빠른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우리에게 전해왔다"고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지만, 양국 간 정상회담은 결국 논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예상됐던 걸림돌…'일본인 납북자 문제'

김여정 부부장은 돌연 교섭 중단을 선언하면서 어제 오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됐다는 북한 주장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것을 거론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일본은 역사를 바꾸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새로운 조일(북일) 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5일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 사실을 공개하면서 회담 전제 조건으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더이상 해결할 것도, 알 재간도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거부하자 교섭 중단을 선언해버린 겁니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선 북한이 내건 전제조건은 수용하기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에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핵심 현안입니다. 일본은 과거 자국민 17명 납북돼 귀환자 5명을 제외한 12명이 북한에 아직 있다고 보지만, 북한은 일본이 말한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아예 북한에 오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나려는 일본을 향해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애초 회담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 북한의 의도는?…"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안 하는 게 낫다"

북한도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과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 논의 과정을 먼저 공개하면서까지 이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못박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다시 의제화해서 얻을 게 없다"며 "이 문제를 제거하지 않으면 대화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과거 트럼프 정부와 협상을 할 때 태도와 똑같다"며 "문턱을 확실하게 세워서 그것을 넘지 않으면 상대와 협상할 의사가 없다라고 아예 전제를 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바에 아예 회담하지 않는게 낫다는 판단 아래 자신들이 잘하는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이벤트를 마련해서라도 낮은 지지율을 돌파해야 하는 기시다 정부와 구체적인 결실이 필요한 북한 사이 입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일본과의 정상회담 협상을 통해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습니다.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외교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통상 물밑에서 진행되는 회담 논의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도 이러한 목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의 잇단 일방적 발표에 일본은 일단 외교적으로 다소 망신을 당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다만 북한이 과거 여러 협상 과정에서 '벼랑끝'을 오가는 '밀당'을 일삼았던 만큼 일본과도 모종의 극적인 반전을 통해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과 일본 모두 정상회담 논의를 통해 국내외정치적으로 얻고싶은 게 있다는 점입니다. 이례적으로 양국간 접촉 과정을 공개하고 있는 북한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계속해서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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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회담 논의" 공개 하루 만에 "교섭 중단" 선언

북한이 일본과 정상회담 논의가 오갔다고 공개한 지 하루 만에 돌연 '교섭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어제(26일) 저녁 담화를 내고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겁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외교 현안 창구 역할을 하는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일본의 태도를 다시 한번 명백히 파악하였다"며 "결론은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주위의 이목을 끈 기시다 수상(일본 총리)의 조일(북일)수뇌회담 관련 발언은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의식하고 있는 일본 수상의 정략적인 타산에 조일(북일)관계가 이용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자신들은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 출발을 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환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며 "조일(북일)수뇌회담은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사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일본이 먼저 정상회담을 제안해와 응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하루 전인 지난 25일 김여정 부부장은 "최근에도 기시다 수상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가능한 빠른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우리에게 전해왔다"고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지만, 양국 간 정상회담은 결국 논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예상됐던 걸림돌…'일본인 납북자 문제'

김여정 부부장은 돌연 교섭 중단을 선언하면서 어제 오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됐다는 북한 주장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것을 거론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일본은 역사를 바꾸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새로운 조일(북일) 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5일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 사실을 공개하면서 회담 전제 조건으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더이상 해결할 것도, 알 재간도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거부하자 교섭 중단을 선언해버린 겁니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선 북한이 내건 전제조건은 수용하기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에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핵심 현안입니다. 일본은 과거 자국민 17명 납북돼 귀환자 5명을 제외한 12명이 북한에 아직 있다고 보지만, 북한은 일본이 말한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아예 북한에 오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나려는 일본을 향해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애초 회담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 북한의 의도는?…"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안 하는 게 낫다"

북한도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과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 논의 과정을 먼저 공개하면서까지 이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못박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다시 의제화해서 얻을 게 없다"며 "이 문제를 제거하지 않으면 대화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과거 트럼프 정부와 협상을 할 때 태도와 똑같다"며 "문턱을 확실하게 세워서 그것을 넘지 않으면 상대와 협상할 의사가 없다라고 아예 전제를 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바에 아예 회담하지 않는게 낫다는 판단 아래 자신들이 잘하는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이벤트를 마련해서라도 낮은 지지율을 돌파해야 하는 기시다 정부와 구체적인 결실이 필요한 북한 사이 입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일본과의 정상회담 협상을 통해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습니다.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외교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통상 물밑에서 진행되는 회담 논의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도 이러한 목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의 잇단 일방적 발표에 일본은 일단 외교적으로 다소 망신을 당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다만 북한이 과거 여러 협상 과정에서 '벼랑끝'을 오가는 '밀당'을 일삼았던 만큼 일본과도 모종의 극적인 반전을 통해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과 일본 모두 정상회담 논의를 통해 국내외정치적으로 얻고싶은 게 있다는 점입니다. 이례적으로 양국간 접촉 과정을 공개하고 있는 북한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계속해서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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