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무심코 내던진 담배꽁초…몇 분 만에 ‘활활’

입력 2024.03.29 (17:29) 수정 2024.03.2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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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제주의 한 주택가 골목.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담배를 입에 뭅니다. 그런데 이 남성, 담배를 다 피우고는 꽁초를 인근 폐기물 더미 틈 사이로 휙 던지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윽고 폐기물 사이에서 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벌건 화염이 일기 시작합니다. 길을 지나다가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 119에 신고하고, 이웃 주민은 직접 물을 길어와 화재 현장에 뿌리기도 합니다.


뒤이어 소화기를 가져온 주민까지 합세해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며 상황은 종료됩니다. 불이 더 커져 주변으로 번졌더라면 자칫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담뱃불큰불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 겨우 '20여 분'

제주도소방안전본부가 최근 소방교육대에서 공개 실험을 했습니다. 대기가 건조한 계절, 담뱃불이 큰불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야외 실험이 진행된 시각은 지난 27일 오후 2시쯤. 기온 20.3℃, 습도 47.7%, 풍속 1.2m/s의 바람이 부는 조건에서, 갓 피운 담배꽁초 한 개를 낙엽 더미에 던졌습니다.


불씨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꽁초였지만, 이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담배꽁초 투척 후 22분 20초가 지났을 무렵, 낙엽 더미 속에서 열이 축적되며 까맣게 변해갑니다.

그리고 꽁초 투척 24분 10초 만에 내부 온도가 발화점까지 오르면서 벌건 화염이 솟구쳤습니다. 26분 후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최성기에 다다랐습니다.

낙엽이 쌓인 한라산 중산간이나 들판이었다면, 불이 주변으로 삽시간에 번져나가 화재 진압에 애를 먹었을 상황인 겁니다.

이렇게 작은 담배꽁초 불씨가 큰불로 이어지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주는 섬 특성상 우리나라에서 습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으로 산불 발생 빈도가 다른 지역보다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건조한 날씨 속에서 오름이나 농경지, 초지, 목지 등에서 들불 화재가 이따금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제주에서 발생한 들불 화재의 47%(73건)가 3월에서 5월 사이, 봄철에 일어났습니다.

■ 밭에서 들에서 버젓이 불법 쓰레기 소각…부주의에 '큰불'

2021년 2월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의 밭에서 불이 났습니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지만, 불이 주변으로 번지며 800여만 원 상당 재산 피해가 났습니다.

지난해 3월 제주시 한경면 야초지에서 발생한 화재 역시 80여만 원 상당 재산 피해를 낸 뒤,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진압됐습니다.

두 화재의 공통점은 '쓰레기 소각 부주의'로 인한 불이란 거였습니다. 건조한 날씨 속에 야외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남은 잔불이 번져나가 들불이 됐습니다.

지난해 1월 방화로 인해 임야 약 9,000㎡가 불에 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우보악오름. 당초 산불로 신고됐으나 야초지에만 불이 난 것으로 판단돼 ‘들불’로 정정됐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지난해 1월 방화로 인해 임야 약 9,000㎡가 불에 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우보악오름. 당초 산불로 신고됐으나 야초지에만 불이 난 것으로 판단돼 ‘들불’로 정정됐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최근 5년 사이 제주에서 발생한 들불 사고 156건을 장소별로 분류해보니 과수원이 65.4%(102건)로 절반을 훌쩍 넘었고, 들판(12건)과 논·밭두렁(11건), 목초지(5건)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불법으로 농업 부산물과 쓰레기 등을 태우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탓입니다.

■ 따뜻하고 건조한 봄철…강한 바람에 화재 위험↑

봄철은 강한 바람과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전국적으로 화재 발생 가능성이 큰 계절입니다. 특히 바깥에서 쓰레기 따위를 태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등 '괜찮겠지.' 하며 무심코 저지른 실수가 대형 재난을 낳는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주에선 쓰레기 소각, 불씨 방치, 담배꽁초 등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81.4%(127건)로, 최근 5년 새 봄철 들불 화재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강준현 국회 기획재정위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9월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4천495건 중 담배꽁초로 인한 산불이 1천237건(27.5%)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담배꽁초'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연속 가장 많은 산불 원인으로 기록됐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산불이 발생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소방 당국은 봄철 들불 등 화재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 ▲취사나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는 허용된 안전한 곳에서만 하기 ▲담배꽁초는 불씨를 완전히 제거한 후 올바른 곳에 버리기 ▲밭두렁이나 가지치기한 과실나무, 농산 폐기물 등 불법 소각행위 삼가기 ▲산과 오름을 오를 땐 성냥, 라이터와 같은 인화성 물질 가져가지 않기 등을 부탁했습니다.

지난해 1월 방화로 인해 임야 약 9,000㎡가 불에 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우보악오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지난해 1월 방화로 인해 임야 약 9,000㎡가 불에 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우보악오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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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03-29 17: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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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제주의 한 주택가 골목.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담배를 입에 뭅니다. 그런데 이 남성, 담배를 다 피우고는 꽁초를 인근 폐기물 더미 틈 사이로 휙 던지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윽고 폐기물 사이에서 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벌건 화염이 일기 시작합니다. 길을 지나다가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 119에 신고하고, 이웃 주민은 직접 물을 길어와 화재 현장에 뿌리기도 합니다.


뒤이어 소화기를 가져온 주민까지 합세해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며 상황은 종료됩니다. 불이 더 커져 주변으로 번졌더라면 자칫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담뱃불큰불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 겨우 '20여 분'

제주도소방안전본부가 최근 소방교육대에서 공개 실험을 했습니다. 대기가 건조한 계절, 담뱃불이 큰불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야외 실험이 진행된 시각은 지난 27일 오후 2시쯤. 기온 20.3℃, 습도 47.7%, 풍속 1.2m/s의 바람이 부는 조건에서, 갓 피운 담배꽁초 한 개를 낙엽 더미에 던졌습니다.


불씨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꽁초였지만, 이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담배꽁초 투척 후 22분 20초가 지났을 무렵, 낙엽 더미 속에서 열이 축적되며 까맣게 변해갑니다.

그리고 꽁초 투척 24분 10초 만에 내부 온도가 발화점까지 오르면서 벌건 화염이 솟구쳤습니다. 26분 후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최성기에 다다랐습니다.

낙엽이 쌓인 한라산 중산간이나 들판이었다면, 불이 주변으로 삽시간에 번져나가 화재 진압에 애를 먹었을 상황인 겁니다.

이렇게 작은 담배꽁초 불씨가 큰불로 이어지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주는 섬 특성상 우리나라에서 습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으로 산불 발생 빈도가 다른 지역보다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건조한 날씨 속에서 오름이나 농경지, 초지, 목지 등에서 들불 화재가 이따금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제주에서 발생한 들불 화재의 47%(73건)가 3월에서 5월 사이, 봄철에 일어났습니다.

■ 밭에서 들에서 버젓이 불법 쓰레기 소각…부주의에 '큰불'

2021년 2월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의 밭에서 불이 났습니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지만, 불이 주변으로 번지며 800여만 원 상당 재산 피해가 났습니다.

지난해 3월 제주시 한경면 야초지에서 발생한 화재 역시 80여만 원 상당 재산 피해를 낸 뒤,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진압됐습니다.

두 화재의 공통점은 '쓰레기 소각 부주의'로 인한 불이란 거였습니다. 건조한 날씨 속에 야외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남은 잔불이 번져나가 들불이 됐습니다.

지난해 1월 방화로 인해 임야 약 9,000㎡가 불에 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우보악오름. 당초 산불로 신고됐으나 야초지에만 불이 난 것으로 판단돼 ‘들불’로 정정됐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최근 5년 사이 제주에서 발생한 들불 사고 156건을 장소별로 분류해보니 과수원이 65.4%(102건)로 절반을 훌쩍 넘었고, 들판(12건)과 논·밭두렁(11건), 목초지(5건)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불법으로 농업 부산물과 쓰레기 등을 태우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탓입니다.

■ 따뜻하고 건조한 봄철…강한 바람에 화재 위험↑

봄철은 강한 바람과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전국적으로 화재 발생 가능성이 큰 계절입니다. 특히 바깥에서 쓰레기 따위를 태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등 '괜찮겠지.' 하며 무심코 저지른 실수가 대형 재난을 낳는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주에선 쓰레기 소각, 불씨 방치, 담배꽁초 등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81.4%(127건)로, 최근 5년 새 봄철 들불 화재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강준현 국회 기획재정위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9월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4천495건 중 담배꽁초로 인한 산불이 1천237건(27.5%)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담배꽁초'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연속 가장 많은 산불 원인으로 기록됐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산불이 발생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소방 당국은 봄철 들불 등 화재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 ▲취사나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는 허용된 안전한 곳에서만 하기 ▲담배꽁초는 불씨를 완전히 제거한 후 올바른 곳에 버리기 ▲밭두렁이나 가지치기한 과실나무, 농산 폐기물 등 불법 소각행위 삼가기 ▲산과 오름을 오를 땐 성냥, 라이터와 같은 인화성 물질 가져가지 않기 등을 부탁했습니다.

지난해 1월 방화로 인해 임야 약 9,000㎡가 불에 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우보악오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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