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 조성용 선생, 망월동 묻히다

입력 2024.03.29 (21:56) 수정 2024.03.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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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80년대 간첩 조작 사건인 '오송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고 조성용 선생 유골이 광주 5·18 구 묘역에 다시 자리를 텄습니다.

동지들은 선생의 곧은 뜻을 기리며 '산 자'의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해사하게 웃는 사진이 앞서자, 가족과 후배들이 뒤따릅니다.

'민주주의자' 고 조성용 선생의 유골함이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향합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반 만에 망월동으로 이사가는 길, 동지들의 감회도 남다릅니다.

[김남규/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 "선생의 삶이 5·18 민주화운동과도 깊은 관련 있어서 가족의 희망과 지역 인사들의 조력으로 여기까지…."]

1982년 군사 독재정권이 군산제일고 교사 9명에게 '간첩'이란 딱지를 붙인 '오송회 사건'.

다섯이 소나무 아래 모여 모의했다며 지어낸 이름도 거짓, 불온한 전복을 꾀했단 용공 조직도 역시 조작이었습니다.

정읍 출신으로 KBS PD로도 일했던 선생은 '간첩단 배후'가 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2008년 재심 끝에 무죄를 확정받고 사법부 사과를 이끌어냈지만, 삶의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습니다.

[김초선/고 조성용 선생 아내 : "안 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네요.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힘들게 살았습니까. 죄 없는 사람들을 생으로 잡아가서…."]

엄혹한 감시와 여생을 괴롭힌 고문 후유증에도 민주와 평화를 위한 여정은 담대했습니다.

전북 민주 시민사회의 구심점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초석을 놓는 등 헌신했습니다.

[채규구/'오송회 사건' 피해자 : "오송회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무지를 걷어낸 어른이십니다. 선생님 삶은 재조명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선생이 떠난 자리, 시대를 함께 견딘 동지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할 공간을 만들어 가는 건 남은 과제입니다.

["참아라, 독립운동한 사람도 있었지 않느냐. 우리 동지들 도와주셔서 여기 왔어요. 정말 기쁘고 영광이고."]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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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첩 누명’ 조성용 선생, 망월동 묻히다
    • 입력 2024-03-29 21:56:16
    • 수정2024-03-29 22:19:23
    뉴스9(전주)
[앵커]

80년대 간첩 조작 사건인 '오송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고 조성용 선생 유골이 광주 5·18 구 묘역에 다시 자리를 텄습니다.

동지들은 선생의 곧은 뜻을 기리며 '산 자'의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해사하게 웃는 사진이 앞서자, 가족과 후배들이 뒤따릅니다.

'민주주의자' 고 조성용 선생의 유골함이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향합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반 만에 망월동으로 이사가는 길, 동지들의 감회도 남다릅니다.

[김남규/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 "선생의 삶이 5·18 민주화운동과도 깊은 관련 있어서 가족의 희망과 지역 인사들의 조력으로 여기까지…."]

1982년 군사 독재정권이 군산제일고 교사 9명에게 '간첩'이란 딱지를 붙인 '오송회 사건'.

다섯이 소나무 아래 모여 모의했다며 지어낸 이름도 거짓, 불온한 전복을 꾀했단 용공 조직도 역시 조작이었습니다.

정읍 출신으로 KBS PD로도 일했던 선생은 '간첩단 배후'가 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2008년 재심 끝에 무죄를 확정받고 사법부 사과를 이끌어냈지만, 삶의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습니다.

[김초선/고 조성용 선생 아내 : "안 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네요.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힘들게 살았습니까. 죄 없는 사람들을 생으로 잡아가서…."]

엄혹한 감시와 여생을 괴롭힌 고문 후유증에도 민주와 평화를 위한 여정은 담대했습니다.

전북 민주 시민사회의 구심점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초석을 놓는 등 헌신했습니다.

[채규구/'오송회 사건' 피해자 : "오송회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무지를 걷어낸 어른이십니다. 선생님 삶은 재조명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선생이 떠난 자리, 시대를 함께 견딘 동지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할 공간을 만들어 가는 건 남은 과제입니다.

["참아라, 독립운동한 사람도 있었지 않느냐. 우리 동지들 도와주셔서 여기 왔어요. 정말 기쁘고 영광이고."]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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