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을 누가 본다고”… 북한이 ‘보도’로 총선 개입?

입력 2024.04.02 (16:29) 수정 2024.04.0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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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총선을 8일 앞두고 '북한이 총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취지의 자료를 내놨습니다. 북한이 오늘(2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고, 주요 선거를 앞두고 도발을 일삼은 터라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료를 받아보니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통일부가 내놓은 자료에는 북한이 관영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모략·폄훼하고, 반정부 시위를 과장 보도하거나, 우리 사회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는 점이 총선 개입의 근거로 제시됐는데요. 통일부가 제공한 보도 참고자료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여성자살률이 세계적으로 1위인 것은 여성천시가 제도화된 괴뢰한국의 단면" (3.8. 노동)
"촛불이 모이고모여서 거대한 용광로를 만들어 윤00을 반드시 처넣자!" (1.30.노동)
"미국이 박은 윤00쇠말뚝 뽑고 핵전쟁을 막자!" (3.12. 노동)

매일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접하는 통일부 출입 기자가 보기에는 꽤나 익숙한 패턴의 북한 기사 제목들입니다. 통일부는 노동신문에 대남 비방 기사가 1월에 7건, 2월에 12건, 3월에 22건으로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부 대변인은 "총선을 앞두고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불순한 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경고한다"며 "북한발 가짜뉴스와 선전·선동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통할 수 없다"고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도 대변인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좀 다릅니다. 분명 북한발 가짜뉴스와 선전·선동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선 도달이 쉽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저 제목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저런 과격한 주장들이 북한발로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 적이 있는지, 선뜻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북한 매체들의 홈페이지 등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북한 매체의 보도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건 대부분 한국 언론의 기사를 통해서일 텐데, 저런 일방적인 주장들은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 통일부 "여러 경로로 우리 국민들 노동신문 보도 접해"… "어떤 경로로?"

통일부의 브리핑 내용이 알려지자 기자들 사이에서도 "북한 매체들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는데 어떻게...?"라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질문을 받고 "조선중앙통신은 대외용이고, 노동신문은 공식적으로 대내 매체이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국민이 노동신문 보도 내용도 접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에도 의문은 남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국민이 노동신문 보도 내용을 접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어떤 경로를 가리키는 걸까요.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19대와 20대,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관영 매체를 통해 과격한 주장을 담은 대남 선전·선동을 일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는 선거를 앞둔 특정 시기만의 행태는 아닙니다. 다만 선전 ·선동 빈도가 선거를 앞두고 잦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지적은 일면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실제, 통일부 당국자는 "(노동신문에서) 선거를 자꾸 언급을 하고 있고 심판과 탄핵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6면에 우리 시위 동향을 계속 게시해 왔던 건, 작년부터 게시해 왔는데 그와 별도로 단신 보도로 비난이 올해부터 추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총선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북한이 대남 선전·선동을 늘려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자신들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나 남한 주민들은 애초에 접속조차 되지 않는 대외매체를 통한 '보도' 대신에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오히려 이같은 북한에 대한 비판이 북한 의도대로 맞춰주는 게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남북 간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인,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서 분명히 지적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입니다. 지적은 좋으나, 좀 더 현실에 입각한 설득력 있는 지적인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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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총선을 8일 앞두고 '북한이 총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취지의 자료를 내놨습니다. 북한이 오늘(2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고, 주요 선거를 앞두고 도발을 일삼은 터라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료를 받아보니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통일부가 내놓은 자료에는 북한이 관영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모략·폄훼하고, 반정부 시위를 과장 보도하거나, 우리 사회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는 점이 총선 개입의 근거로 제시됐는데요. 통일부가 제공한 보도 참고자료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여성자살률이 세계적으로 1위인 것은 여성천시가 제도화된 괴뢰한국의 단면" (3.8. 노동)
"촛불이 모이고모여서 거대한 용광로를 만들어 윤00을 반드시 처넣자!" (1.30.노동)
"미국이 박은 윤00쇠말뚝 뽑고 핵전쟁을 막자!" (3.12. 노동)

매일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접하는 통일부 출입 기자가 보기에는 꽤나 익숙한 패턴의 북한 기사 제목들입니다. 통일부는 노동신문에 대남 비방 기사가 1월에 7건, 2월에 12건, 3월에 22건으로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부 대변인은 "총선을 앞두고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불순한 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경고한다"며 "북한발 가짜뉴스와 선전·선동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통할 수 없다"고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도 대변인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좀 다릅니다. 분명 북한발 가짜뉴스와 선전·선동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선 도달이 쉽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저 제목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저런 과격한 주장들이 북한발로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 적이 있는지, 선뜻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북한 매체들의 홈페이지 등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북한 매체의 보도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건 대부분 한국 언론의 기사를 통해서일 텐데, 저런 일방적인 주장들은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 통일부 "여러 경로로 우리 국민들 노동신문 보도 접해"… "어떤 경로로?"

통일부의 브리핑 내용이 알려지자 기자들 사이에서도 "북한 매체들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는데 어떻게...?"라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질문을 받고 "조선중앙통신은 대외용이고, 노동신문은 공식적으로 대내 매체이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국민이 노동신문 보도 내용도 접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에도 의문은 남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국민이 노동신문 보도 내용을 접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어떤 경로를 가리키는 걸까요.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19대와 20대,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관영 매체를 통해 과격한 주장을 담은 대남 선전·선동을 일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는 선거를 앞둔 특정 시기만의 행태는 아닙니다. 다만 선전 ·선동 빈도가 선거를 앞두고 잦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지적은 일면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실제, 통일부 당국자는 "(노동신문에서) 선거를 자꾸 언급을 하고 있고 심판과 탄핵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6면에 우리 시위 동향을 계속 게시해 왔던 건, 작년부터 게시해 왔는데 그와 별도로 단신 보도로 비난이 올해부터 추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총선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북한이 대남 선전·선동을 늘려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자신들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나 남한 주민들은 애초에 접속조차 되지 않는 대외매체를 통한 '보도' 대신에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오히려 이같은 북한에 대한 비판이 북한 의도대로 맞춰주는 게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남북 간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인,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서 분명히 지적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입니다. 지적은 좋으나, 좀 더 현실에 입각한 설득력 있는 지적인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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