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한계 넘겠다?…트럼프의 ‘죄와 벌’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입력 2024.04.04 (07:00) 수정 2024.04.0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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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미국 대선 '옥중 출마' 후보…득표는 인생 최고 기록

1920년. 미국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 갇혀있던 한 수감자가 미국 대선에 나섰습니다. 이름은 유진 뎁스.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1918년부터 1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수감자였습니다.

뎁스의 죄목이었던 '선동법'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여론을 단속하기 위해 간첩법을 강화해 개정한 법이었습니다. 전쟁이 무기 제조업체의 배만 불린다며 참전에 반대했던 뎁스는 1918년 7월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반전 연설을 합니다. "월스트리트의 쓰레기들"을 언급하며 "그들은 여러분에게 전쟁에 나가 그들의 명령에 따라 학살되는 게 애국이라고 믿도록 가르쳐 왔다"고 말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연설이 미군에 대한 불복종과 입대 모집 방해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1918년 '선동법' 위반으로 10년 형을 받은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 유진 뎁스 (사진=미국 국립문서보관소)1918년 '선동법' 위반으로 10년 형을 받은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 유진 뎁스 (사진=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연방 검사가 연설이 이뤄지는 공원에 속기사를 보냈는데 자동차 판매원이었던 이 속기사는 연설 대부분을 제대로 필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증언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뎁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전쟁 지지 여론도, 반전 여론도 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당원들은 1900년, 1904년, 1908년, 1912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뎁스를 자당의 대선 후보로 추대했고, 교도소 밖에서 죄수복을 입은 뎁스의 사진과 수감번호 '9653'이 찍힌 배지를 나눠주며 선거 운동에 나섰습니다. 뎁스는 그해 선거에서 91만 5천 표를 얻어, 자신의 최고 득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 트럼프의 '4+2' 재판…민사·형사, 성추문부터 선거 개입까지

100년 전 사망한 유진 뎁스의 이름이 미국 정치권에서 오르내리는 건 당선 가능성이 꽤 높은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입니다. 여러 건의 재판에 들락거리는 트럼프의 출마가 타당한지, 정말 징역형에 처해질 경우 당선 자격은 있는지, 전례가 부족하다보니 100년 전의 '옥중 출마'가 소환된 겁니다.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트럼프의 재판 관련 소식들이 너무 다양해 정리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일단 형사 기소된 건만 네 건입니다. ① 첫 번째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듬해 1월 미 국회의사당 의회 난입을 방조 혹은 개입해 선거 결과를 뒤엎고 권력을 유지하 니다. 트럼프가 '전직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는 기소를 면제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다른 대법원 소송이 있어 재판 진행이 보류돼 있습니다. ② 두 번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당시 경합지역이었던 조지아주 선거에서 근소한 차로 패하자 결과를 뒤집기 위해 주 선거관리 책임자였던 래팬스퍼거 총무장관에게 전화해 자신의 표를 더 찾아내라고 압박한 사건입니다.


③ 세 번째론 '기밀문서 유출 사건' 재판입니다. 대통령 시절의 문건을 자신의 자택인 '마러라고'에 불법반출했다는 겁니다. 연방 검찰은 자택 창고와 연회장, 화장실에 서류 상자가 수북이 쌓인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이 문건 중에 핵무기 관련 사안 등 핵심 기밀들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④ 네 번째는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2016년 대선 직전 입막음용 돈을 줬다는 혐의입니다. 성인물 배우인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이 개인 돈으로 합의금 13만 달러를 지급했고, 이후 트럼프 그룹이 합의금과 추가 비용 명목으로 코헨에게 42만 달러를 갚아줬으니 회삿돈을 유용한 셈입니다. 자금 집행 내역을 법률 자문 비용으로 부정 처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2022년 8월, 트럼프 전 대통령 자택 '마러라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기밀문서(좌)와 트럼프와의 성 추문 이후 입막음용 돈을 받은 거로 알려진 성인물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우)    (사진=미국 법무부, AP)2022년 8월, 트럼프 전 대통령 자택 '마러라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기밀문서(좌)와 트럼프와의 성 추문 이후 입막음용 돈을 받은 거로 알려진 성인물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우) (사진=미국 법무부, AP)

트럼프는 이 밖에도 트럼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패션 칼럼니스트 진 캐럴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대출을 늘려 받으려고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는 사기 의혹으로 뉴욕주가 제기한 소송에도 걸려 있습니다. 둘 다 민사 소송으로 1심에서 패소해 각각 위자료 8,330만 달러(약 1,112억 원)와 3억 5,500만 달러(약 4천784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트럼프는 앞서 언급한 민·형사 재판의 혐의를 몽땅 부정하고 있습니다.

■ "성공적 재판 지연 작전"…"모두 다 마녀사냥"

이렇게 많은 혐의로 재판에 걸려있지만, 트럼프의 형사 소송들은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성 추문 입막음 혐의'의 재판 일정이 3주의 연기 끝에 오는 15일로 잡혔는데, 다른 재판들은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연루된 사람과 관련 자료가 너무 많다는 이유가 우선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의 '재판 지연 작전'이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론들은 지적합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을 하는 중에 몇 개나 되는 재판을 받아야 하는 바쁜 일정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특히 2020년 대선을 전후한 사건의 재판들은 서로 연관돼 있다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트럼프의 변호인들은 한 곳의 재판을 지연시킨 뒤 이 재판이 끝나지 않아 다른 재판도 진행할 수 없다며 절차적 불만을 제기해 다른 법정의 재판 날짜가 정해지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여러 사건에 같은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 일정이 충돌한다며 재판을 미루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계없는 2016년의 의혹을 다룬 재판만이 유일하게 일정이 정해진 이유입니다.


트럼프가 재판을 질질 끌고 있는 건 당연히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백악관 재입성을 가로막을 수 있는 악재가 될 재판을 연기해 형사 사건들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당선되면 공소 취소 등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트럼프는 지금도 자신이 걸린 모든 소송과 재판은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 선거·법정 싸움 "시너지 효과"…"전통 민주주의 한계 뛰어넘겠다는 트럼프"

트럼프가 잇달아 기소를 당하던 지난해 상반기 이후 '트럼프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미국인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지난해 7월 이후 공화·민주당, 중도 무당층 등 모든 집단에서 트럼프의 범죄 심각성을 믿는 비율이 꾸준히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과 중도층에서 그 비율이 크게 늘어난 점을 주목해볼 만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트럼프 범죄의 심각성을 거론하는 응답률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2월 조사에서 '트럼프의 범죄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민주당 지지자는 7%p가, 무당층은 9%p가 각각 감소했습니다.


트럼프의 재판 지연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게 조사를 의뢰한 뉴욕타임스의 해석입니다. 재판이 미뤄지면서 사람들의 머리에서 '트럼프의 범죄 의혹'이 잊혀지고 있고, '재판이 자꾸 연기되는 건 사실 문제가 없어서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미국 언론들 관측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8년간 정치인으로서 트럼프는 비판자들의 비판을 무디게 하려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법원을 포함한 전통적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3일 기사에서 애초에 "트럼프는 1년 전 맨해튼 대배심에 의해 처음 기소되면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그의 입지가 높아져 재선을 바라보는 길로 들어섰다"면서 "트럼프는 선거 운동과 법정 투쟁이 겹치며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싸움이, '정치적 반대자의 부당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레토릭에 힘을 실어주면서 정치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유력 대선 후보'를 엄하게 판결하는 것에 대한 재판부의 부담은 덤인 셈입니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향후 미국 정치에 줄 부담에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미국의 진보성향 매체 '더네이션'의 존 니콜스 기자는 지난해 6월 앞에서 예로 든 유진 뎁스를 거론한 칼럼에서 "뎁스의 기소는 전시에도 언론 자유 보호가 적용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기밀 문서를 빼돌리거나 사업 사기, 성적 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억만장자 절도범이 아니었다"며 트럼프와의 일반적 비교는 얼토당토않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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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 한계 넘겠다?…트럼프의 ‘죄와 벌’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 입력 2024-04-04 07:00:23
    • 수정2024-04-04 07: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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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미국 대선 '옥중 출마' 후보…득표는 인생 최고 기록

1920년. 미국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 갇혀있던 한 수감자가 미국 대선에 나섰습니다. 이름은 유진 뎁스.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1918년부터 1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수감자였습니다.

뎁스의 죄목이었던 '선동법'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여론을 단속하기 위해 간첩법을 강화해 개정한 법이었습니다. 전쟁이 무기 제조업체의 배만 불린다며 참전에 반대했던 뎁스는 1918년 7월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반전 연설을 합니다. "월스트리트의 쓰레기들"을 언급하며 "그들은 여러분에게 전쟁에 나가 그들의 명령에 따라 학살되는 게 애국이라고 믿도록 가르쳐 왔다"고 말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연설이 미군에 대한 불복종과 입대 모집 방해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1918년 '선동법' 위반으로 10년 형을 받은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 유진 뎁스 (사진=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연방 검사가 연설이 이뤄지는 공원에 속기사를 보냈는데 자동차 판매원이었던 이 속기사는 연설 대부분을 제대로 필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증언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뎁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전쟁 지지 여론도, 반전 여론도 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당원들은 1900년, 1904년, 1908년, 1912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뎁스를 자당의 대선 후보로 추대했고, 교도소 밖에서 죄수복을 입은 뎁스의 사진과 수감번호 '9653'이 찍힌 배지를 나눠주며 선거 운동에 나섰습니다. 뎁스는 그해 선거에서 91만 5천 표를 얻어, 자신의 최고 득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 트럼프의 '4+2' 재판…민사·형사, 성추문부터 선거 개입까지

100년 전 사망한 유진 뎁스의 이름이 미국 정치권에서 오르내리는 건 당선 가능성이 꽤 높은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입니다. 여러 건의 재판에 들락거리는 트럼프의 출마가 타당한지, 정말 징역형에 처해질 경우 당선 자격은 있는지, 전례가 부족하다보니 100년 전의 '옥중 출마'가 소환된 겁니다.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트럼프의 재판 관련 소식들이 너무 다양해 정리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일단 형사 기소된 건만 네 건입니다. ① 첫 번째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듬해 1월 미 국회의사당 의회 난입을 방조 혹은 개입해 선거 결과를 뒤엎고 권력을 유지하 니다. 트럼프가 '전직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는 기소를 면제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다른 대법원 소송이 있어 재판 진행이 보류돼 있습니다. ② 두 번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당시 경합지역이었던 조지아주 선거에서 근소한 차로 패하자 결과를 뒤집기 위해 주 선거관리 책임자였던 래팬스퍼거 총무장관에게 전화해 자신의 표를 더 찾아내라고 압박한 사건입니다.


③ 세 번째론 '기밀문서 유출 사건' 재판입니다. 대통령 시절의 문건을 자신의 자택인 '마러라고'에 불법반출했다는 겁니다. 연방 검찰은 자택 창고와 연회장, 화장실에 서류 상자가 수북이 쌓인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이 문건 중에 핵무기 관련 사안 등 핵심 기밀들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④ 네 번째는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2016년 대선 직전 입막음용 돈을 줬다는 혐의입니다. 성인물 배우인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이 개인 돈으로 합의금 13만 달러를 지급했고, 이후 트럼프 그룹이 합의금과 추가 비용 명목으로 코헨에게 42만 달러를 갚아줬으니 회삿돈을 유용한 셈입니다. 자금 집행 내역을 법률 자문 비용으로 부정 처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2022년 8월, 트럼프 전 대통령 자택 '마러라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기밀문서(좌)와 트럼프와의 성 추문 이후 입막음용 돈을 받은 거로 알려진 성인물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우)    (사진=미국 법무부, AP)
트럼프는 이 밖에도 트럼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패션 칼럼니스트 진 캐럴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대출을 늘려 받으려고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는 사기 의혹으로 뉴욕주가 제기한 소송에도 걸려 있습니다. 둘 다 민사 소송으로 1심에서 패소해 각각 위자료 8,330만 달러(약 1,112억 원)와 3억 5,500만 달러(약 4천784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트럼프는 앞서 언급한 민·형사 재판의 혐의를 몽땅 부정하고 있습니다.

■ "성공적 재판 지연 작전"…"모두 다 마녀사냥"

이렇게 많은 혐의로 재판에 걸려있지만, 트럼프의 형사 소송들은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성 추문 입막음 혐의'의 재판 일정이 3주의 연기 끝에 오는 15일로 잡혔는데, 다른 재판들은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연루된 사람과 관련 자료가 너무 많다는 이유가 우선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의 '재판 지연 작전'이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론들은 지적합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을 하는 중에 몇 개나 되는 재판을 받아야 하는 바쁜 일정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특히 2020년 대선을 전후한 사건의 재판들은 서로 연관돼 있다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트럼프의 변호인들은 한 곳의 재판을 지연시킨 뒤 이 재판이 끝나지 않아 다른 재판도 진행할 수 없다며 절차적 불만을 제기해 다른 법정의 재판 날짜가 정해지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여러 사건에 같은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 일정이 충돌한다며 재판을 미루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계없는 2016년의 의혹을 다룬 재판만이 유일하게 일정이 정해진 이유입니다.


트럼프가 재판을 질질 끌고 있는 건 당연히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백악관 재입성을 가로막을 수 있는 악재가 될 재판을 연기해 형사 사건들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당선되면 공소 취소 등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트럼프는 지금도 자신이 걸린 모든 소송과 재판은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 선거·법정 싸움 "시너지 효과"…"전통 민주주의 한계 뛰어넘겠다는 트럼프"

트럼프가 잇달아 기소를 당하던 지난해 상반기 이후 '트럼프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미국인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지난해 7월 이후 공화·민주당, 중도 무당층 등 모든 집단에서 트럼프의 범죄 심각성을 믿는 비율이 꾸준히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과 중도층에서 그 비율이 크게 늘어난 점을 주목해볼 만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트럼프 범죄의 심각성을 거론하는 응답률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2월 조사에서 '트럼프의 범죄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민주당 지지자는 7%p가, 무당층은 9%p가 각각 감소했습니다.


트럼프의 재판 지연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게 조사를 의뢰한 뉴욕타임스의 해석입니다. 재판이 미뤄지면서 사람들의 머리에서 '트럼프의 범죄 의혹'이 잊혀지고 있고, '재판이 자꾸 연기되는 건 사실 문제가 없어서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미국 언론들 관측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8년간 정치인으로서 트럼프는 비판자들의 비판을 무디게 하려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법원을 포함한 전통적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3일 기사에서 애초에 "트럼프는 1년 전 맨해튼 대배심에 의해 처음 기소되면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그의 입지가 높아져 재선을 바라보는 길로 들어섰다"면서 "트럼프는 선거 운동과 법정 투쟁이 겹치며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싸움이, '정치적 반대자의 부당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레토릭에 힘을 실어주면서 정치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유력 대선 후보'를 엄하게 판결하는 것에 대한 재판부의 부담은 덤인 셈입니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향후 미국 정치에 줄 부담에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미국의 진보성향 매체 '더네이션'의 존 니콜스 기자는 지난해 6월 앞에서 예로 든 유진 뎁스를 거론한 칼럼에서 "뎁스의 기소는 전시에도 언론 자유 보호가 적용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기밀 문서를 빼돌리거나 사업 사기, 성적 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억만장자 절도범이 아니었다"며 트럼프와의 일반적 비교는 얼토당토않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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