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항 재건 첫걸음…“다리 위 노동자 안전 조치 부족했다”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4.04 (10:21) 수정 2024.04.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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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만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교각에 충돌하면서 다리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연방정부와 주 정부 등은 조속한 복구를 천명하고, 엄청난 자금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지금도 컨테이너선은 다리 상판과 뒤엉킨 채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무너진 다리 일부를 치우고 배가 통행할 수 있는 길을 두 개 열었습니다. 사고 약 일주일 만에 일단 볼티모어항은 정상화를 향한 첫 걸음은 뗐습니다.

현지 시각 1일, 무너진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옆 임시 수로를 통해 바지선이 통과하고 있다.현지 시각 1일, 무너진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옆 임시 수로를 통해 바지선이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작업을 하다 물에 빠져 숨진 6명의 이주민 출신 노동자들입니다. 경찰은 선박의 조난 신고 직후 다리를 막아 추가 희생을 막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혹이 점차 불거지고 있습니다.

먼저 사고를 시간 대별로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시간대별 상황을 보면 컨테이너선 '달리'가 이상을 감지한 건 충돌 5분 전이었습니다. 항해 기록 장치에 다수의 경고음이 기록돼 있고, 이미 전원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상이 감지된 후 조난 신호를 보낼 때까지 2분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도선사가 예인선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때 예인선들은 이미 '달리'와 모든 연결선을 끊은 상태로,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예인선은 해당 선박이 항구를 떠나면 연결선을 더이상 유지 하지 않습니다.

경찰에 다리 통제를 요청한 건 다시 1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통제는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경찰의 다리 통제는, 다른 곳에 있던 경찰이 달려와 이뤄진 게 아니었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미 다리 양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경찰이 통제한 겁니다. 항만을 관리하는 쪽에서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한 뒤 곧바로 통제가 이뤄진 이유입니다.

하지만 다리 위 노동자에 대한 언급은 그로부터 다시 1분 뒤에 나옵니다. 우리의 119에 해당하는 미국의 911 기록을 보면 누군가 무전으로
"다리 위에 노동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공사) 감독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가서 데리고 올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선박이 다리에 충돌했고, 노동자들은 피할 새 없이 무너진 다리와 함께 물속에 빠졌습니다.

무전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은 공사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리 위 노동자의 존재 여부는 정확히 알지 못했고, 공사 감독관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리 위 노동자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을까요? 이 대목에서 공사를 담당한 회사 측의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AP 보도에 따르면 연방 규정은 물 위에서 노동자들이 일할 경우 근처에 스키프(Skiff)라고 하는 소형 보트를 두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사를 맡았던 브로너 빌더스(Brawner Builders)가 구조 보트를 띄워놨거나, 띄울 준비가 돼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AP는 지적했습니다. 수상 구조를 책임지는 해안경비대도 해당 회사의 배가 당시 떠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무전 기록으르 보면 노동자 사이에 다가오는 선박과 관련한 대화가 나오는데, 한 명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고, 한 명은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해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답합니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충돌 가능성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안전을 위한 배가 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선박이 해상 무선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노동자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알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다리 위 노동자들이 경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배가 있었다면 좀 더 준비할 시간은 있었을 겁니다. 건설사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양 사고 전문 변호사인 데니스 오브라이언은 AP와의 인터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험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소형 선박은 있어야 합니다. 만일 거기 있었다면, 노동자들에게 상황을 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선박이 현장에 있었는지, 없었다면 왜 없었는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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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티모어항 재건 첫걸음…“다리 위 노동자 안전 조치 부족했다”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4-04 10:21:31
    • 수정2024-04-04 10: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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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만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교각에 충돌하면서 다리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연방정부와 주 정부 등은 조속한 복구를 천명하고, 엄청난 자금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지금도 컨테이너선은 다리 상판과 뒤엉킨 채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무너진 다리 일부를 치우고 배가 통행할 수 있는 길을 두 개 열었습니다. 사고 약 일주일 만에 일단 볼티모어항은 정상화를 향한 첫 걸음은 뗐습니다.

현지 시각 1일, 무너진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옆 임시 수로를 통해 바지선이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작업을 하다 물에 빠져 숨진 6명의 이주민 출신 노동자들입니다. 경찰은 선박의 조난 신고 직후 다리를 막아 추가 희생을 막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혹이 점차 불거지고 있습니다.

먼저 사고를 시간 대별로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시간대별 상황을 보면 컨테이너선 '달리'가 이상을 감지한 건 충돌 5분 전이었습니다. 항해 기록 장치에 다수의 경고음이 기록돼 있고, 이미 전원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상이 감지된 후 조난 신호를 보낼 때까지 2분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도선사가 예인선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때 예인선들은 이미 '달리'와 모든 연결선을 끊은 상태로,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예인선은 해당 선박이 항구를 떠나면 연결선을 더이상 유지 하지 않습니다.

경찰에 다리 통제를 요청한 건 다시 1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통제는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경찰의 다리 통제는, 다른 곳에 있던 경찰이 달려와 이뤄진 게 아니었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미 다리 양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경찰이 통제한 겁니다. 항만을 관리하는 쪽에서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한 뒤 곧바로 통제가 이뤄진 이유입니다.

하지만 다리 위 노동자에 대한 언급은 그로부터 다시 1분 뒤에 나옵니다. 우리의 119에 해당하는 미국의 911 기록을 보면 누군가 무전으로
"다리 위에 노동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공사) 감독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가서 데리고 올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선박이 다리에 충돌했고, 노동자들은 피할 새 없이 무너진 다리와 함께 물속에 빠졌습니다.

무전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은 공사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리 위 노동자의 존재 여부는 정확히 알지 못했고, 공사 감독관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리 위 노동자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을까요? 이 대목에서 공사를 담당한 회사 측의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AP 보도에 따르면 연방 규정은 물 위에서 노동자들이 일할 경우 근처에 스키프(Skiff)라고 하는 소형 보트를 두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사를 맡았던 브로너 빌더스(Brawner Builders)가 구조 보트를 띄워놨거나, 띄울 준비가 돼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AP는 지적했습니다. 수상 구조를 책임지는 해안경비대도 해당 회사의 배가 당시 떠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무전 기록으르 보면 노동자 사이에 다가오는 선박과 관련한 대화가 나오는데, 한 명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고, 한 명은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해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답합니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충돌 가능성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안전을 위한 배가 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선박이 해상 무선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노동자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알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다리 위 노동자들이 경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배가 있었다면 좀 더 준비할 시간은 있었을 겁니다. 건설사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양 사고 전문 변호사인 데니스 오브라이언은 AP와의 인터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험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소형 선박은 있어야 합니다. 만일 거기 있었다면, 노동자들에게 상황을 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선박이 현장에 있었는지, 없었다면 왜 없었는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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