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다 지었는데 ‘소방차 전용구역’ 없어…소방서가 누락

입력 2024.04.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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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17년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불법 주·정차된 차량과 주차 공간 문제가 참극의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100세대 이상 아파트에는 소방차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소방기본법이 개정됐습니다. 그런데 제주에서 소방 당국이 관련 법을 확인하지 않아 소방차 전용구역이 없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주시 연동의 신축 110세대 아파트. 소방차 전용구역이 설치되지 않았지만 소방시설 허가를 받았다제주시 연동의 신축 110세대 아파트. 소방차 전용구역이 설치되지 않았지만 소방시설 허가를 받았다

■ 아파트, 다 지었는데 '소방차 전용구역' 어디 갔나?

제주시 연동의 신축 아파트. 15층 110여 세대 규모로 지은 지 1년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소방차 전용구역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문제의 시작은 제주소방서였습니다. KBS 취재 결과 제주소방서는 2020년 건축허가 과정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 등 소방시설법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소방시설 허가(동의)를 내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 내용이 담긴 소방기본법을 검토하지 않은 겁니다.


소방 당국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고 2022년 3월 소방시설 착공신고와 2023년 완공증명서 발급 과정에서 시공사 관계자를 불러 '구두'로 소방차 전용 구역을 설치하라고 보완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문제는 보완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시공사 관계자, 건축 당시 현장 소장과 안전부장 등에게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 여부에 관해 물었더니 관련자들이 이직해서 내용을 모르거나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시행사 관계자는 관련 문서 수·발신 목록을 찾아봤지만 소방차 전용구역 관련 내용은 없었다면서 정상적으로 건축허가와 사용 승인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제주소방서가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요구한 시공사 관계자가 누구인지, 또 보완 요청을 공문이 아닌 '구두'로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소방기본법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해…"있을 수 없는 일"

100세대 이상 아파트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가 의무화된 건 2018년 8월입니다.

제주소방서가 해당 아파트에 대한 소방시설을 동의한 건 2020년 6월로 이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시점입니다.

소방청은 소방기본법이 개정될 당시인 2018년 8월 1일과 8월 9일 관련 공문을 각 시도 소방안전본부에 내려보냈습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도 해당 공문을 제주소방서로 전달했습니다.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개정된 법률 시행에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방청 관계자는 "다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 이전에도 구축 아파트에 소방차 전용구역을 임의로 설치해 왔다"며 "이 내용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주소방서는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소방서 측은 제주에서 100세대 이상의 아파트 건축이 드문 데다 기존에도 소방시설법 위주로만 동의를 해왔기에 소방기본법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소방시설 허가(동의) 건수가 2019년 961건, 2020년 1,210건에 달하는 등 업무량도 상당해 세밀하게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당 아파트 주변에 주·정차돼 있는 차량들해당 아파트 주변에 주·정차돼 있는 차량들

■ 입주민 안전에 빨간불

집이 다 지어지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안 입주민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입주민 강명호 씨는 "차량이 많이 지나가고 길이 좁다 보니까 소방차 등 큰 차가 들어오기 어려워서 위험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신축 아파트에 기분 좋게 들어왔는데 새 아파트면 그만한 안전성이 있어야 하는데 불안감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ㄷ자 형태입니다. 소방차 전용구역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도로에 주차된 차가 많아 차량 통행이 어렵습니다.

아파트 입구 높이도 2.9m에 불과해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합니다. 제주소방서에서 가장 작은 소방차의 높이는 2.9m가 넘고, 고가 사다리차는 3.6m에 달합니다.

현재로선 아파트 건물을 부술 수도 소방차 전용구역을 새로 확보할 수도 없는 상황. 우선 입주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소방당국이 나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제주소방서 측은 KBS 취재가 시작되자 해당 아파트를 포함해 100세대 규모 이상의 아파트를 전수 조사하고 특별 관리에 나서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또 허가 과정 전반에서 관련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입주민들은 소방 당국과 시공사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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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다 지었는데 ‘소방차 전용구역’ 없어…소방서가 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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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2017년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불법 주·정차된 차량과 주차 공간 문제가 참극의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100세대 이상 아파트에는 소방차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소방기본법이 개정됐습니다. 그런데 제주에서 소방 당국이 관련 법을 확인하지 않아 소방차 전용구역이 없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strong><strong> </strong>
제주시 연동의 신축 110세대 아파트. 소방차 전용구역이 설치되지 않았지만 소방시설 허가를 받았다
■ 아파트, 다 지었는데 '소방차 전용구역' 어디 갔나?

제주시 연동의 신축 아파트. 15층 110여 세대 규모로 지은 지 1년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소방차 전용구역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문제의 시작은 제주소방서였습니다. KBS 취재 결과 제주소방서는 2020년 건축허가 과정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 등 소방시설법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소방시설 허가(동의)를 내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 내용이 담긴 소방기본법을 검토하지 않은 겁니다.


소방 당국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고 2022년 3월 소방시설 착공신고와 2023년 완공증명서 발급 과정에서 시공사 관계자를 불러 '구두'로 소방차 전용 구역을 설치하라고 보완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문제는 보완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시공사 관계자, 건축 당시 현장 소장과 안전부장 등에게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 여부에 관해 물었더니 관련자들이 이직해서 내용을 모르거나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시행사 관계자는 관련 문서 수·발신 목록을 찾아봤지만 소방차 전용구역 관련 내용은 없었다면서 정상적으로 건축허가와 사용 승인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제주소방서가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요구한 시공사 관계자가 누구인지, 또 보완 요청을 공문이 아닌 '구두'로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소방기본법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해…"있을 수 없는 일"

100세대 이상 아파트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가 의무화된 건 2018년 8월입니다.

제주소방서가 해당 아파트에 대한 소방시설을 동의한 건 2020년 6월로 이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시점입니다.

소방청은 소방기본법이 개정될 당시인 2018년 8월 1일과 8월 9일 관련 공문을 각 시도 소방안전본부에 내려보냈습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도 해당 공문을 제주소방서로 전달했습니다.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개정된 법률 시행에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방청 관계자는 "다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 이전에도 구축 아파트에 소방차 전용구역을 임의로 설치해 왔다"며 "이 내용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주소방서는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소방서 측은 제주에서 100세대 이상의 아파트 건축이 드문 데다 기존에도 소방시설법 위주로만 동의를 해왔기에 소방기본법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소방시설 허가(동의) 건수가 2019년 961건, 2020년 1,210건에 달하는 등 업무량도 상당해 세밀하게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당 아파트 주변에 주·정차돼 있는 차량들
■ 입주민 안전에 빨간불

집이 다 지어지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안 입주민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입주민 강명호 씨는 "차량이 많이 지나가고 길이 좁다 보니까 소방차 등 큰 차가 들어오기 어려워서 위험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신축 아파트에 기분 좋게 들어왔는데 새 아파트면 그만한 안전성이 있어야 하는데 불안감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ㄷ자 형태입니다. 소방차 전용구역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도로에 주차된 차가 많아 차량 통행이 어렵습니다.

아파트 입구 높이도 2.9m에 불과해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합니다. 제주소방서에서 가장 작은 소방차의 높이는 2.9m가 넘고, 고가 사다리차는 3.6m에 달합니다.

현재로선 아파트 건물을 부술 수도 소방차 전용구역을 새로 확보할 수도 없는 상황. 우선 입주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소방당국이 나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제주소방서 측은 KBS 취재가 시작되자 해당 아파트를 포함해 100세대 규모 이상의 아파트를 전수 조사하고 특별 관리에 나서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또 허가 과정 전반에서 관련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입주민들은 소방 당국과 시공사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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