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동생들이 밝힌 죽음…유일한 기록

입력 2024.04.15 (19:08) 수정 2024.04.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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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군경 토벌대가 버리고 간 폭발물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갖게 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폭발 사고는 4·3 기간을 지난 시기에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최근 4·3 이후에 수류탄을 밟고 숨진 당시 어린이 2명이 희생자로 결정돼 전환점이 마련됐습니다.

탐사K는 4·3진상조사보고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폭발사고 피해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첫 순서로 안서연 고성호 기자가 유족들의 노력으로 공론화된 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를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여든다섯의 강승찬 할아버지 왼쪽 눈에는 파편이 박혀 있습니다.

70년 넘게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강 할아버지.

가슴부터 다리까지 곳곳에 박힌 파편은 11살 소년의 삶을 조각냈습니다.

[강승찬/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5~6학년생들이 그걸(포탄) 가져가서 돌로 두드렸단 말이야. 그러니까 무슨 노란 약들이 막 떨어지더라고. 그런데 그것만 생각나지, 그대로 폭발해 버리니까. 한 3시간? 3시간은 기절해 버렸지 나도. 그때 즉석에서 한 22명 돌아가시고 한 이틀 삼일 일주일 안에 또 7~8명 돌아가시고. 총 32명 죽었어요. 산 건 나 하나라."]

끔찍했던 폭발 사고는 1950년 7월 14일 오전 10시쯤 표선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졌습니다.

[강상준/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큰 나무 밑에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쾅' 하는 소리가 터졌고. 동시에 하얀 연기가 올라왔고. 어린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온 마을이 슬픔에 잠겼고. 동네 어르신들이 '어린것들이 죽었으니까 하늘도 불쌍해서 비가 내린다' 하는 말씀을."]

현재 표선초등학교 한 귀퉁이에 서 있는 희생자 위령탑.

당시 학생 30여 명이 폭발물로 희생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겁니다.

65년 만에 위령탑을 세운 건 형제를 잃은 동생들입니다.

[강귀민/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강귀섭 동생 : "죄없이 갔는데. 동생인 나라도 형님네 죽음, 애석하게 죽은 걸 밝혀야 되겠다.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추적해 보니) 군인들이 한 3개월여 주둔했었다. 그런데 그날 폭발사고는 (음력) 5월 29일 날 발발했었고, 군인들이 철수한 날은 28일 날이에요."]

[강연호/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강태호 동생 : "희생자를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 제적부라든가 이런 거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 누구냐 하는 부분을 만들어 내는 게,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려웠었죠."]

결국, 당시 표선국민학교 피해 어린이들은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4·3희생자로 인정됐습니다.

2019년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피해 사실도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제외하고 4·3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된 폭발사고 피해는 없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 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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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동생들이 밝힌 죽음…유일한 기록
    • 입력 2024-04-15 19:08:03
    • 수정2024-04-15 22:02:56
    뉴스7(제주)
[앵커]

4·3 당시 군경 토벌대가 버리고 간 폭발물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갖게 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폭발 사고는 4·3 기간을 지난 시기에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최근 4·3 이후에 수류탄을 밟고 숨진 당시 어린이 2명이 희생자로 결정돼 전환점이 마련됐습니다.

탐사K는 4·3진상조사보고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폭발사고 피해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첫 순서로 안서연 고성호 기자가 유족들의 노력으로 공론화된 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를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여든다섯의 강승찬 할아버지 왼쪽 눈에는 파편이 박혀 있습니다.

70년 넘게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강 할아버지.

가슴부터 다리까지 곳곳에 박힌 파편은 11살 소년의 삶을 조각냈습니다.

[강승찬/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5~6학년생들이 그걸(포탄) 가져가서 돌로 두드렸단 말이야. 그러니까 무슨 노란 약들이 막 떨어지더라고. 그런데 그것만 생각나지, 그대로 폭발해 버리니까. 한 3시간? 3시간은 기절해 버렸지 나도. 그때 즉석에서 한 22명 돌아가시고 한 이틀 삼일 일주일 안에 또 7~8명 돌아가시고. 총 32명 죽었어요. 산 건 나 하나라."]

끔찍했던 폭발 사고는 1950년 7월 14일 오전 10시쯤 표선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졌습니다.

[강상준/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큰 나무 밑에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쾅' 하는 소리가 터졌고. 동시에 하얀 연기가 올라왔고. 어린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온 마을이 슬픔에 잠겼고. 동네 어르신들이 '어린것들이 죽었으니까 하늘도 불쌍해서 비가 내린다' 하는 말씀을."]

현재 표선초등학교 한 귀퉁이에 서 있는 희생자 위령탑.

당시 학생 30여 명이 폭발물로 희생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겁니다.

65년 만에 위령탑을 세운 건 형제를 잃은 동생들입니다.

[강귀민/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강귀섭 동생 : "죄없이 갔는데. 동생인 나라도 형님네 죽음, 애석하게 죽은 걸 밝혀야 되겠다.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추적해 보니) 군인들이 한 3개월여 주둔했었다. 그런데 그날 폭발사고는 (음력) 5월 29일 날 발발했었고, 군인들이 철수한 날은 28일 날이에요."]

[강연호/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강태호 동생 : "희생자를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 제적부라든가 이런 거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 누구냐 하는 부분을 만들어 내는 게,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려웠었죠."]

결국, 당시 표선국민학교 피해 어린이들은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4·3희생자로 인정됐습니다.

2019년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피해 사실도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제외하고 4·3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된 폭발사고 피해는 없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 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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