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30여 명이 희생됐는데…왜 조사조차 않나”

입력 2024.04.16 (19:19) 수정 2024.04.16 (20:1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제주 4·3 당시 군경이 버리고 간 폭발물로 희생된 어린이들에 대한 기록은 지난 1950년 30여 명이 희생된 표선국민학교 사례가 유일합니다.

사고 발생 65년 만인 2015년, 희생자들의 동생들이 밝힌 기록, 이 시간에 전해드렸는데요.

KBS 취재 결과 옛 서귀국민학교에서도 같은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탐사K,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한 해 전인 1949년 3월 10일.

서귀국민학교에서도 비명 소리가 퍼졌습니다.

[서근숙/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생존자/당시 8살 : "마침 집에 가려고 하니까 비가 막 왔어요. 갑자기 팡하는 소리가 나면서 정신을 잃었고 그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된 거는 몰라요. 그날 다친 사람 중에서 제가 제일 중상자였고, 다친 학생들은 28명이 다쳤고, 또 그 이후에 5명이 죽었다고. 저 혼자 (4·3)희생자로 등록이 되고 하니까 참 마음이 아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가장 친한 친구가 그날 밤에 죽었다는 걸 생각이 났어요."]

사고 이후 76년 만에 학교를 찾은 생존자 서근숙씨.

곁에는 당시 폭발사고로 숨진 친구 김춘강의 남동생이 함께했습니다.

[김재옹/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춘강 동생 : "서근숙 누님이 어릴 때 춘강이 누님하고 단짝이었나 봐요. 그래서 연이 닿아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근숙이 누님 덕분에, 근숙이 누님이 자료 냈던 거, 기억해서 글을 써놓은 걸 모아서 유족 신청을 했더니 작년에, 작년 4·3 때 유족으로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김씨가 어렵게 찾은 누님의 학교 생활기록부에는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쓰였습니다.

사고 당시 교실에 있던 고 김춘강의 큰 언니도 이제야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김순여/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춘강 언니 : "교실 바로 밑에 뚫려 있는 그 구멍에 탄환을 넣은 걸 애들이 무슨 장난감인 줄 알고 가져다가 장난하다가 사고가 난 거거든요. 9연대가 여기 주둔해 있을 때 이 속에 버리고 가니까 애들이 그걸 주워서 때리니까 폭발물이 터졌다 이거를 제 귀로 다 듣고."]

하지만 4·3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시기,

유족들은 그날의 진상을 묻지 못한 채 슬픔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재옹/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춘강 동생 : "이런 큰 사고 났는데 그런 걸 조사조차 안 하느냐. 세상에 학교에서, 학교에서 그런 사고가 났는데 말도 한마디 못 하고 이제까지 지내다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피해자 3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단 2명 만이 4·3희생자로 인정됐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탐사K] “30여 명이 희생됐는데…왜 조사조차 않나”
    • 입력 2024-04-16 19:19:16
    • 수정2024-04-16 20:10:42
    뉴스7(제주)
[앵커]

제주 4·3 당시 군경이 버리고 간 폭발물로 희생된 어린이들에 대한 기록은 지난 1950년 30여 명이 희생된 표선국민학교 사례가 유일합니다.

사고 발생 65년 만인 2015년, 희생자들의 동생들이 밝힌 기록, 이 시간에 전해드렸는데요.

KBS 취재 결과 옛 서귀국민학교에서도 같은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탐사K,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한 해 전인 1949년 3월 10일.

서귀국민학교에서도 비명 소리가 퍼졌습니다.

[서근숙/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생존자/당시 8살 : "마침 집에 가려고 하니까 비가 막 왔어요. 갑자기 팡하는 소리가 나면서 정신을 잃었고 그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된 거는 몰라요. 그날 다친 사람 중에서 제가 제일 중상자였고, 다친 학생들은 28명이 다쳤고, 또 그 이후에 5명이 죽었다고. 저 혼자 (4·3)희생자로 등록이 되고 하니까 참 마음이 아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가장 친한 친구가 그날 밤에 죽었다는 걸 생각이 났어요."]

사고 이후 76년 만에 학교를 찾은 생존자 서근숙씨.

곁에는 당시 폭발사고로 숨진 친구 김춘강의 남동생이 함께했습니다.

[김재옹/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춘강 동생 : "서근숙 누님이 어릴 때 춘강이 누님하고 단짝이었나 봐요. 그래서 연이 닿아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근숙이 누님 덕분에, 근숙이 누님이 자료 냈던 거, 기억해서 글을 써놓은 걸 모아서 유족 신청을 했더니 작년에, 작년 4·3 때 유족으로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김씨가 어렵게 찾은 누님의 학교 생활기록부에는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쓰였습니다.

사고 당시 교실에 있던 고 김춘강의 큰 언니도 이제야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김순여/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춘강 언니 : "교실 바로 밑에 뚫려 있는 그 구멍에 탄환을 넣은 걸 애들이 무슨 장난감인 줄 알고 가져다가 장난하다가 사고가 난 거거든요. 9연대가 여기 주둔해 있을 때 이 속에 버리고 가니까 애들이 그걸 주워서 때리니까 폭발물이 터졌다 이거를 제 귀로 다 듣고."]

하지만 4·3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시기,

유족들은 그날의 진상을 묻지 못한 채 슬픔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재옹/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춘강 동생 : "이런 큰 사고 났는데 그런 걸 조사조차 안 하느냐. 세상에 학교에서, 학교에서 그런 사고가 났는데 말도 한마디 못 하고 이제까지 지내다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피해자 3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단 2명 만이 4·3희생자로 인정됐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제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