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고아가 된 아이의 장난감

입력 2024.04.18 (21:59) 수정 2024.04.1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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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4·3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남긴 북촌국민학교 인근에서, 폭발물로 인한 어린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탐사K를 통해 전해드렸는데요.

어린 생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사고는 또 있습니다.

70여 년 만에야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생존자를 안서연, 고성호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여든셋의 원홍택 할아버지는 1949년 북촌국민학교 집단 학살 당시, 어머니를 잃고 8살 고아가 돼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고완순/4·3북촌유족회장 : "할머니가 형제를 거두다가 능력이 안 돼서 외도 고아원에 간 거야. 그래서 고아원에 가서 생활하다가 할머니가 보고 싶으니까 어릴 때 집에 왔나 봐. 외갓집이 북촌초등학교 가까워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학교 주변을 맴돌았던 소년은 70여 년이 흘러서야 자신이 폭발사고 피해자란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원홍택/제주보육원 폭발사고 생존자 : "어릴 때니까 거기서 막 뛰어놀다가 담 위에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수류탄이 눈에 띄었어요. 수류탄인 줄도 모르고. 그걸 외도 보육원에 갖고 가서 공 차듯 차다가 손에서 뭐하다가. 뭐 생각지도 않고 이렇게 툭툭툭툭 두드리다 보니까 '팡'하니까 저는 살고 내가 두드렸는데, 저는 살고 옆에 앉았던 친구는 돌아가 버리고."]

이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원 할아버지.

당시 보육원 인근 시냇가에 있던 군인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고완순/4·3북촌유족회장 : "얘가 고아원이니까 밥하는 엄마들이 있었나 봐. 손 잘라지니까 손 잘라진 거 줄줄줄 하면서 피 흘리면서 뛰어가는 걸 보니까. 아이고 저 개인(홍택)이 어쩌고저쩌고 막 하는데 군인들이 도와준 거라."]

사고 이후 남들과 다른 모습에 친구들의 따돌림까지 받으면서 외로움은 더 컸습니다.

[원홍택/제주보육원 폭발사고 생존자 :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다니고 그대로 책보 갖고 고향으로 와버렸어요. 제사 명절 할 사람이 없거든요. 가방 들고 지금 온 게 고향 와서 산 게 지금까지. 후회는 있지만 후회해서 뭐 할겁니까. 4·3이 하여튼 원인으로 아버지, 어머니, 외할아버지 전부 돌아가셔 버리니까 어디 갈 데가 없어서 보육원에 갔는데 어떻게 해요."]

유난히 공차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이제 슬픔도, 아픔도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 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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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고아가 된 아이의 장난감
    • 입력 2024-04-18 21:59:31
    • 수정2024-04-18 22:12:32
    뉴스9(제주)
[앵커]

제주4·3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남긴 북촌국민학교 인근에서, 폭발물로 인한 어린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탐사K를 통해 전해드렸는데요.

어린 생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사고는 또 있습니다.

70여 년 만에야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생존자를 안서연, 고성호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여든셋의 원홍택 할아버지는 1949년 북촌국민학교 집단 학살 당시, 어머니를 잃고 8살 고아가 돼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고완순/4·3북촌유족회장 : "할머니가 형제를 거두다가 능력이 안 돼서 외도 고아원에 간 거야. 그래서 고아원에 가서 생활하다가 할머니가 보고 싶으니까 어릴 때 집에 왔나 봐. 외갓집이 북촌초등학교 가까워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학교 주변을 맴돌았던 소년은 70여 년이 흘러서야 자신이 폭발사고 피해자란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원홍택/제주보육원 폭발사고 생존자 : "어릴 때니까 거기서 막 뛰어놀다가 담 위에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수류탄이 눈에 띄었어요. 수류탄인 줄도 모르고. 그걸 외도 보육원에 갖고 가서 공 차듯 차다가 손에서 뭐하다가. 뭐 생각지도 않고 이렇게 툭툭툭툭 두드리다 보니까 '팡'하니까 저는 살고 내가 두드렸는데, 저는 살고 옆에 앉았던 친구는 돌아가 버리고."]

이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원 할아버지.

당시 보육원 인근 시냇가에 있던 군인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고완순/4·3북촌유족회장 : "얘가 고아원이니까 밥하는 엄마들이 있었나 봐. 손 잘라지니까 손 잘라진 거 줄줄줄 하면서 피 흘리면서 뛰어가는 걸 보니까. 아이고 저 개인(홍택)이 어쩌고저쩌고 막 하는데 군인들이 도와준 거라."]

사고 이후 남들과 다른 모습에 친구들의 따돌림까지 받으면서 외로움은 더 컸습니다.

[원홍택/제주보육원 폭발사고 생존자 :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다니고 그대로 책보 갖고 고향으로 와버렸어요. 제사 명절 할 사람이 없거든요. 가방 들고 지금 온 게 고향 와서 산 게 지금까지. 후회는 있지만 후회해서 뭐 할겁니까. 4·3이 하여튼 원인으로 아버지, 어머니, 외할아버지 전부 돌아가셔 버리니까 어디 갈 데가 없어서 보육원에 갔는데 어떻게 해요."]

유난히 공차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이제 슬픔도, 아픔도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 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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