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걸로 장난치지 마”…‘슈링크플레이션’에 칼 빼든 프랑스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4.26 (08:50) 수정 2024.04.2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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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소비자가 과자에 표시된 정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AFP프랑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소비자가 과자에 표시된 정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AFP

'질소 과자' 논란 기억하십니까. 과자 봉지가 빵빵해서 열어봤더니 과자는 조금이고, 질소가 대부분을 차지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킨 바로 그 과자입니다. '질소 과자'는 물가 상승 국면에 가격을 올리는 대신 슬그머니 양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슈링크플레이션
'줄어들다'는 뜻의 영어 '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 기존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품의 크기나 수량 등을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판매 방식.

최근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급등하자 영국에서는 그램 수를 줄인 초콜릿이 나왔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원가 상승을 이유로 유명 식품업체가 용량을 줄인 캔 참치를 판매했다는 소비자단체 지적도 있었습니다. 업체들은 원가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항변합니다. 다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마치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듯 제품을 내놓는다면, 소비자 기만이 될 수 있습니다.

■ 프랑스, '단위당 가격 변화' 고지해야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초 국정연설에서, 양을 10% 정도 줄인 스니커즈를 예로 들면서 "제과 업계는 똑같은 봉지에 과자를 적게 넣고, 가격을 똑같이 하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의회에는 '슈링크플레이션 방지법'도 발의돼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브루노 르메르 경제부 장관은 "이것은 사기다! 우리는 그것을 끝낼 것"이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대책을 내놨습니다.

프랑스 경제부는 최근, '가격은 그대로지만 수량이 줄어든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슈퍼마켓이 이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고지 의무 제도는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가령 해당 제품 옆에 '이 제품 용량이 얼마나 증가 혹은 감소했는지, 그래서 용량당 가격이 몇 퍼센트, 혹은 몇 유로나 오른 것인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르메르 장관은 "표시에는 특히 무게와 관련된 가격 변화를 명시해야, 소비자가 가격의 진정한 변화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정보는 판매일로부터 두 달 동안 유통업체가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그 대상은 통조림 제품과 음료수, 세탁 세제 등 식품뿐 아니라 비식품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이번 정책을 두고, 올리비아 그레고아 통상부 장관은 "우리가 소비자에게 빚진 투명성을 위해 벌이고 있는 싸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 가격 수상하면 앱으로도 신고

프랑스 정부가 이처럼 칼을 빼든 배경에는 2022년부터 소셜미디어상에서 잇따른 소비자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경제부 산하 소비자 관련 기관(한국으로 치면 한국소비자원)이 2022년 9월부터 약 두 달간, 제품 포장에 표시된 수량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식품 포장 업체를 대상으로 31건을 조사했습니다. 또 300개 이상의 식품 유통업체를 방문해 진열대에 있는 제품의 표시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식품 유통업체의 11%에서 측정 단위당 가격과 제품에 표시된 가격이 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 품목별로는 요구르트와 밀가루, 커피, 설탕, 초콜릿 등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국민을 내부 고발자로 설정하고, 이런 사례를 신고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관행은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대표적인 유통업체인 까르푸는 최근까지도 '최저 가격'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은 1유로 이하로 유지하되 수량을 대폭 줄인 야채를 판매해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자 신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격과 수량에 대한 '고지 의무' 제도를 시행하게 된 이유입니다.

■ "그걸 왜 우리한테 떠넘겨"

유통업체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4위 유통업체인 '시스템 U' 측은 제도가 시행되면 따르겠지만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포장 내용물이 줄어드는 건 제조업체 책임인데, 왜 유통업체 직원들이 고지 의무를 위해 시간을 더 들여 일해야 하느냐는 불만입니다.

슈퍼마켓 체인인 르클레르 측도 "포장에 이를 표기하는 것은 제조업체의 몫"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에 올리비아 그레고아 통상부 장관은 내년에 유럽연합에서 '식품에 대한 소비자 정보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 향후 유럽 차원에서 이러한 의무가 유통업체가 아닌 제조업체에 부과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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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6 08:50:08
    • 수정2024-04-26 08: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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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소비자가 과자에 표시된 정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AFP
'질소 과자' 논란 기억하십니까. 과자 봉지가 빵빵해서 열어봤더니 과자는 조금이고, 질소가 대부분을 차지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킨 바로 그 과자입니다. '질소 과자'는 물가 상승 국면에 가격을 올리는 대신 슬그머니 양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슈링크플레이션
'줄어들다'는 뜻의 영어 '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 기존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품의 크기나 수량 등을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판매 방식.

최근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급등하자 영국에서는 그램 수를 줄인 초콜릿이 나왔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원가 상승을 이유로 유명 식품업체가 용량을 줄인 캔 참치를 판매했다는 소비자단체 지적도 있었습니다. 업체들은 원가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항변합니다. 다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마치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듯 제품을 내놓는다면, 소비자 기만이 될 수 있습니다.

■ 프랑스, '단위당 가격 변화' 고지해야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초 국정연설에서, 양을 10% 정도 줄인 스니커즈를 예로 들면서 "제과 업계는 똑같은 봉지에 과자를 적게 넣고, 가격을 똑같이 하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의회에는 '슈링크플레이션 방지법'도 발의돼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브루노 르메르 경제부 장관은 "이것은 사기다! 우리는 그것을 끝낼 것"이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대책을 내놨습니다.

프랑스 경제부는 최근, '가격은 그대로지만 수량이 줄어든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슈퍼마켓이 이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고지 의무 제도는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가령 해당 제품 옆에 '이 제품 용량이 얼마나 증가 혹은 감소했는지, 그래서 용량당 가격이 몇 퍼센트, 혹은 몇 유로나 오른 것인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르메르 장관은 "표시에는 특히 무게와 관련된 가격 변화를 명시해야, 소비자가 가격의 진정한 변화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정보는 판매일로부터 두 달 동안 유통업체가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그 대상은 통조림 제품과 음료수, 세탁 세제 등 식품뿐 아니라 비식품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이번 정책을 두고, 올리비아 그레고아 통상부 장관은 "우리가 소비자에게 빚진 투명성을 위해 벌이고 있는 싸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 가격 수상하면 앱으로도 신고

프랑스 정부가 이처럼 칼을 빼든 배경에는 2022년부터 소셜미디어상에서 잇따른 소비자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경제부 산하 소비자 관련 기관(한국으로 치면 한국소비자원)이 2022년 9월부터 약 두 달간, 제품 포장에 표시된 수량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식품 포장 업체를 대상으로 31건을 조사했습니다. 또 300개 이상의 식품 유통업체를 방문해 진열대에 있는 제품의 표시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식품 유통업체의 11%에서 측정 단위당 가격과 제품에 표시된 가격이 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 품목별로는 요구르트와 밀가루, 커피, 설탕, 초콜릿 등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국민을 내부 고발자로 설정하고, 이런 사례를 신고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관행은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대표적인 유통업체인 까르푸는 최근까지도 '최저 가격'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은 1유로 이하로 유지하되 수량을 대폭 줄인 야채를 판매해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자 신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격과 수량에 대한 '고지 의무' 제도를 시행하게 된 이유입니다.

■ "그걸 왜 우리한테 떠넘겨"

유통업체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4위 유통업체인 '시스템 U' 측은 제도가 시행되면 따르겠지만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포장 내용물이 줄어드는 건 제조업체 책임인데, 왜 유통업체 직원들이 고지 의무를 위해 시간을 더 들여 일해야 하느냐는 불만입니다.

슈퍼마켓 체인인 르클레르 측도 "포장에 이를 표기하는 것은 제조업체의 몫"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에 올리비아 그레고아 통상부 장관은 내년에 유럽연합에서 '식품에 대한 소비자 정보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 향후 유럽 차원에서 이러한 의무가 유통업체가 아닌 제조업체에 부과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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