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고 싶어요”…장애와 비장애 사이, 경계를 걷는 사람들 [취재후]

입력 2024.05.02 (11:06) 수정 2024.05.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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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IQ라고 알고 있는 지능지수는 지적장애 판정의 객관적인 지표로 쓰입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지적장애는 '지능지수 70 이하'를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지능지수 85 이상'을 정상 범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이 분류에 따르면 그늘이 생깁니다. 바로 지능지수 70과 85 사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선 사람들입니다.

■"친구 한 명만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어"…느린학습자 부모의 마음

올해 중학교 2학년인 가별이도 이른바 '느린학습자'로 불리는 경계성 지능인입니다.

늦은 나이에 첫째 딸 가별이를 품에 안은 최혜경 씨. 가별이가 서너 살 때쯤 문화센터에서 촉감놀이에 자지러지게 울던 모습도, 또래들과 다르게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는 모습마저도 당시 혜경 씨에겐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15살 가별이 엄마 최혜경 씨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15살 가별이 엄마 최혜경 씨

가별이의 발달이 조금 느리다는 걸 알게 된 건 유치원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가별이에게 자폐 성향이 있고 지능지수가 경계선에 있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는 혜경 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내가 없어도 가별이가 혼자 잘 살 수 있어야 할텐데'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앞섰던 혜경 씨, 가별이의 전담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험하고 고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금방 익혔을까?' 싶은 단어 하나, 집에서 학교까지 5분 거리의 등굣길조차 6개월을 매일 반복해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선 참 답답하고 울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교육이나 치료 등 마땅한 지원책조차 없었던 상황. 남편은 차라리 가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아 국가로부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바랐지만, 사실 그것도 부모가 억지로 강제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혜경 씨가 직접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동네에서 마음 맞는 엄마들과의 공동육아부터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최혜경 / 이가별 양 어머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보면, 우영우 옆에 동그라미라는 친구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우리 아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옆에서 '너는 잘할 수 있어'라고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친구 딱 한 명만 만들어주고 제가 세상에 없어도 얘한테 부모로서 어느 정도 할 도리는 그래도 다 한 거 아닐까 생각을 하게 돼서..."

혜경 씨와 마을 주민들이 꾸린 경기도 시흥의 ‘마을학교’혜경 씨와 마을 주민들이 꾸린 경기도 시흥의 ‘마을학교’

비장애인 친구들과 한데 어울리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공간이 생기자, 가별이도 또래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의사 표현을 배우며 한층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공동육아를 넓혀 동네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보듬는 '마을학교'까지 꾸린 혜경 씨, 지금은 전국의 경계선 지능인 자녀 부모들과 소통하면서 여러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혜경 / 이가별 양 어머니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어서 이 아이들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까 결국 그 비용은 다 부모가 부담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점점 부모가 지치는 거죠. 어디 가서 말을 못하고 가슴 안에만 담아두고 있다가, 같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는 엄마들도 많아요."

"또 경계선 지능인, 느린 학습자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부모님도 내 아이가 느린 학습자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고 잘 알려져서 일반 아이들하고 제도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요."

■취업은 또 다른 벽…"다양한 직업훈련 마련돼야"

20대 경계선 지능인 딸을 둔 A 씨 역시 "학창시절엔 딸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살고, 무사히 졸업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졸업장까지 받아 그 목표는 이뤘지만, 사회에 나와 일자리를 구하는 건 또 다른 벽으로 다가왔습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A 씨의 마음. 하지만 경계선 지능인의 취업 준비를 도와줄 기관도, 또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는 회사도 매우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A 씨 / 20대 경계선 지능인 자녀 어머니
"안심과 동시에 걱정이 생기는 거죠. 이제는 아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서의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꿈이 캐릭터 디자인, 이모티콘 제작하는 건데 문제는 컴퓨터를 배워야 하거든요. 그런데 경계선 지능인이 일반 학원에서는 배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최근에야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생기고 있지만 다 서울에 있고, 받을 수 있는 교육도 바리스타나 제과제빵 이런 것만 있는 거예요. 좀 더 다양한 교육 환경, 직업훈련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책 마련을 위한 기본계획 등을 수립하는 조례가 일부 지자체에서 제정되고는 있다지만, 당사자의 피부로 와닿기엔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는 겁니다.

■지능지수 70 아래여도 사각지대…"기준이 뭔가요?"

8살 성준이와 함께 놀고 있는 엄마 최수진 씨8살 성준이와 함께 놀고 있는 엄마 최수진 씨

문제는 지능지수 70 아래인데도, 지적장애 판정을 받지 못해 경계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성준이의 지능지수는 63입니다.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아이인데도 종종 '학교에서 친구들이 안 놀아줘, 나는 혼자야' 이런 말을 할 때 엄마인 최수진 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수진 씨라고 마냥 성준이의 장애 등록을 달갑게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앞으로 성준이 혼자 살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서류를 꾸리고 전문의 소견서까지 받아 장애 등록 신청을 했지만, 올해 초 구청으로부터 날아온 판정 결과는 '장애 미해당'이었습니다. 지능지수는 70 아래지만, 시공간 지표 등 일부 검사 소항목의 점수가 평균 수준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최수진 / 강성준 군 어머니
"저희도 전문의가 진단을 했고, 대면 심사를 했잖아요. 근데 장애 여부를 판정하는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전혀 저희 아이를 보지도 않았고 서류만 검토하고서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해요. 기준치에 맞는데도 아이가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정상인 건 아니잖아요. 주민센터에서 안내받았을 때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지능지수 70 이하'만 요건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차라리 장애 등록을 할 때 '소항목 점수도 모두 평균 이하여야 된다든지' 이런 구체적인 요건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진 씨 역시 행정심판까지 제기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행정심판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려면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으로 망설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경계 해소 위한 지원체계 있는지 돌아봐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등록 현황'을 보면 국가에 등록된 지적장애인은 2022년 기준 22만 5,067명입니다. 전체 인구 대비 0.4% 정도입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얼마나 될까요? 아직까진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없어 지능지수의 정규분포로 '추정'만 할 수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13.6%가 지능지수 70에서 85 사이에 분포하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경계선 지능인은 7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성준이처럼 지능지수로는 장애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장애 등록을 하지 못한 사례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수치화된 지수만으로 장애와 비장애를 무 자르듯 나누기보다, 촘촘하고 세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임한결 /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
"웩슬러 지능검사는 기본적으로 오차 범위를 내재하고 있고요. 우리나라는 진단 기준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참고하는데, 최근에 개정된 DSM-5에선 '경계선 지적 기능과 경도의 지적장애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지적 기능과 적응 기능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구체적인 지능지수 수치와 사용 가능한 표준화된 검사를 제시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늘을 걷어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우리 사회의 노력일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송연숙 /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
"장애 영역을 조금 넓게 보면 좋겠는데 우리나라가 중증 장애에 주로 집중하다 보니까 아쉽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도 느린학습자, 경계선 지능인으로만 접근하려고 막상 문을 열었더니 양쪽으로 사각지대가 있는 거예요. 지능지수 60점대에 장애 등록 못 하는 친구들, 또 80점대에 있어 끼지 못하는 친구들까지요. 국가가 이들을 끌어안고 갈 건지, 적절한 지원 체계는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관 기사] 장애 판정 사각지대가 만든 그늘…“우리 아이도 보호받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3872

(촬영기자: 최석규 하정현 /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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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호받고 싶어요”…장애와 비장애 사이, 경계를 걷는 사람들 [취재후]
    • 입력 2024-05-02 11:06:37
    • 수정2024-05-02 12:15:04
    취재후·사건후

흔히 우리가 IQ라고 알고 있는 지능지수는 지적장애 판정의 객관적인 지표로 쓰입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지적장애는 '지능지수 70 이하'를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지능지수 85 이상'을 정상 범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이 분류에 따르면 그늘이 생깁니다. 바로 지능지수 70과 85 사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선 사람들입니다.

■"친구 한 명만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어"…느린학습자 부모의 마음

올해 중학교 2학년인 가별이도 이른바 '느린학습자'로 불리는 경계성 지능인입니다.

늦은 나이에 첫째 딸 가별이를 품에 안은 최혜경 씨. 가별이가 서너 살 때쯤 문화센터에서 촉감놀이에 자지러지게 울던 모습도, 또래들과 다르게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는 모습마저도 당시 혜경 씨에겐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15살 가별이 엄마 최혜경 씨
가별이의 발달이 조금 느리다는 걸 알게 된 건 유치원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가별이에게 자폐 성향이 있고 지능지수가 경계선에 있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는 혜경 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내가 없어도 가별이가 혼자 잘 살 수 있어야 할텐데'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앞섰던 혜경 씨, 가별이의 전담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험하고 고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금방 익혔을까?' 싶은 단어 하나, 집에서 학교까지 5분 거리의 등굣길조차 6개월을 매일 반복해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선 참 답답하고 울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교육이나 치료 등 마땅한 지원책조차 없었던 상황. 남편은 차라리 가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아 국가로부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바랐지만, 사실 그것도 부모가 억지로 강제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혜경 씨가 직접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동네에서 마음 맞는 엄마들과의 공동육아부터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최혜경 / 이가별 양 어머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보면, 우영우 옆에 동그라미라는 친구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우리 아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옆에서 '너는 잘할 수 있어'라고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친구 딱 한 명만 만들어주고 제가 세상에 없어도 얘한테 부모로서 어느 정도 할 도리는 그래도 다 한 거 아닐까 생각을 하게 돼서..."

혜경 씨와 마을 주민들이 꾸린 경기도 시흥의 ‘마을학교’
비장애인 친구들과 한데 어울리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공간이 생기자, 가별이도 또래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의사 표현을 배우며 한층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공동육아를 넓혀 동네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보듬는 '마을학교'까지 꾸린 혜경 씨, 지금은 전국의 경계선 지능인 자녀 부모들과 소통하면서 여러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혜경 / 이가별 양 어머니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어서 이 아이들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까 결국 그 비용은 다 부모가 부담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점점 부모가 지치는 거죠. 어디 가서 말을 못하고 가슴 안에만 담아두고 있다가, 같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는 엄마들도 많아요."

"또 경계선 지능인, 느린 학습자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부모님도 내 아이가 느린 학습자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고 잘 알려져서 일반 아이들하고 제도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요."

■취업은 또 다른 벽…"다양한 직업훈련 마련돼야"

20대 경계선 지능인 딸을 둔 A 씨 역시 "학창시절엔 딸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살고, 무사히 졸업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졸업장까지 받아 그 목표는 이뤘지만, 사회에 나와 일자리를 구하는 건 또 다른 벽으로 다가왔습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A 씨의 마음. 하지만 경계선 지능인의 취업 준비를 도와줄 기관도, 또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는 회사도 매우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A 씨 / 20대 경계선 지능인 자녀 어머니
"안심과 동시에 걱정이 생기는 거죠. 이제는 아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서의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꿈이 캐릭터 디자인, 이모티콘 제작하는 건데 문제는 컴퓨터를 배워야 하거든요. 그런데 경계선 지능인이 일반 학원에서는 배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최근에야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생기고 있지만 다 서울에 있고, 받을 수 있는 교육도 바리스타나 제과제빵 이런 것만 있는 거예요. 좀 더 다양한 교육 환경, 직업훈련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책 마련을 위한 기본계획 등을 수립하는 조례가 일부 지자체에서 제정되고는 있다지만, 당사자의 피부로 와닿기엔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는 겁니다.

■지능지수 70 아래여도 사각지대…"기준이 뭔가요?"

8살 성준이와 함께 놀고 있는 엄마 최수진 씨
문제는 지능지수 70 아래인데도, 지적장애 판정을 받지 못해 경계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성준이의 지능지수는 63입니다.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아이인데도 종종 '학교에서 친구들이 안 놀아줘, 나는 혼자야' 이런 말을 할 때 엄마인 최수진 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수진 씨라고 마냥 성준이의 장애 등록을 달갑게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앞으로 성준이 혼자 살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서류를 꾸리고 전문의 소견서까지 받아 장애 등록 신청을 했지만, 올해 초 구청으로부터 날아온 판정 결과는 '장애 미해당'이었습니다. 지능지수는 70 아래지만, 시공간 지표 등 일부 검사 소항목의 점수가 평균 수준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최수진 / 강성준 군 어머니
"저희도 전문의가 진단을 했고, 대면 심사를 했잖아요. 근데 장애 여부를 판정하는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전혀 저희 아이를 보지도 않았고 서류만 검토하고서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해요. 기준치에 맞는데도 아이가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정상인 건 아니잖아요. 주민센터에서 안내받았을 때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지능지수 70 이하'만 요건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차라리 장애 등록을 할 때 '소항목 점수도 모두 평균 이하여야 된다든지' 이런 구체적인 요건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진 씨 역시 행정심판까지 제기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행정심판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려면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으로 망설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경계 해소 위한 지원체계 있는지 돌아봐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등록 현황'을 보면 국가에 등록된 지적장애인은 2022년 기준 22만 5,067명입니다. 전체 인구 대비 0.4% 정도입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얼마나 될까요? 아직까진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없어 지능지수의 정규분포로 '추정'만 할 수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13.6%가 지능지수 70에서 85 사이에 분포하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경계선 지능인은 7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성준이처럼 지능지수로는 장애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장애 등록을 하지 못한 사례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수치화된 지수만으로 장애와 비장애를 무 자르듯 나누기보다, 촘촘하고 세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임한결 /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
"웩슬러 지능검사는 기본적으로 오차 범위를 내재하고 있고요. 우리나라는 진단 기준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참고하는데, 최근에 개정된 DSM-5에선 '경계선 지적 기능과 경도의 지적장애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지적 기능과 적응 기능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구체적인 지능지수 수치와 사용 가능한 표준화된 검사를 제시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늘을 걷어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우리 사회의 노력일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송연숙 /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
"장애 영역을 조금 넓게 보면 좋겠는데 우리나라가 중증 장애에 주로 집중하다 보니까 아쉽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도 느린학습자, 경계선 지능인으로만 접근하려고 막상 문을 열었더니 양쪽으로 사각지대가 있는 거예요. 지능지수 60점대에 장애 등록 못 하는 친구들, 또 80점대에 있어 끼지 못하는 친구들까지요. 국가가 이들을 끌어안고 갈 건지, 적절한 지원 체계는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관 기사] 장애 판정 사각지대가 만든 그늘…“우리 아이도 보호받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3872

(촬영기자: 최석규 하정현 /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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