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여러분의 ‘단체방’은 몇 개인가요? [특파원리포트]

입력 2024.05.11 (09: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월급은 5천 위안인데 단체방은 46개"

최근 한 직장인의 토로가 중국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월급은 5천 위안인데 위챗 단체방은 46개다".

5천 위안이면 우리 돈 약 95만 원 수준으로, 팍팍한 월급을 받으면서 퇴근 후에도 수십 개에 달하는 회사 위챗 단체방에서 시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위챗만 카톡으로 바꾸면 지금 기사를 읽는 여러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은 생활….

주말에도 카톡 알림 소리를 쉬이 넘기지 못하고, 상사 카톡에 답장이 늦으면 전전긍긍하는 게 요즘 직장인 일상입니다. 여러분의 카톡 단체방은 몇 개인가요?


■'숨은 야근' · '위챗 근무'…팍팍한 중국 직장인

통계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지난해 중국 기업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48.7 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근로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한국이지만, 2022년 한국 풀타임 근로자의 경우 42시간으로 조사돼 중국보다 7시간 가까이 적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참고용으로 2019년 발표된 보고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법정 근로 시간 한도 역시 중국이 한국보다 길었습니다. 월별 평균 근로시간의 법정 최대한도는 중국 226.9 시간, 한국 225.6 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코로나가 닥치면서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업무를 처리하는 문화가 더 보편화 되자, 중국에서는 가뜩이나 긴 오프라인 근무에 더해 퇴근 후에도 SNS 등을 이용한 보이지 않는 근무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는 '숨은 야근(隱形加班)'·'위챗 근무(微信辦公) '등 각종 신조어가 현 시점 중국의 팍팍한 근로 문화를 대변합니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오프라인 휴식권'을 보호해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출처 : 중국 허난일보출처 : 중국 허난일보

■"위챗 업무도 추가 근로"…중국 '최초 판결'

이런 가운데, 중국 근로자들이 반가워할 만한 소식이 올해 1월 전해졌습니다. 법원 판결문에서 위챗을 통한 '숨은 야근(隱形加班)' 문제를 명확히 다룬 첫 번째 판결이 나온 겁니다.

베이징시 제3 중급인민법원은 근로자 리 모 씨가 2019년 12월부터 1년간 위챗 등으로 퇴근 후 추가 근로를 한 데에 따른 돈을 요구하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사측이 3만 위안(한화 약 567만 원 )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사측은 추가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리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리 씨는 평일 퇴근 후와 주말에도 SNS를 이용해서 업무를 처리했는데, 이것이 단순한 소통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겁니다.

일시적·우발적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SNS 소통과는 달리 주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진행된 만큼 업무의 범위에 속하고, 따라서 추가 근로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시했습니다.

최고인민법원도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올해 3월 양회에서 2023년도 주요 성과를 설명하며 '숨은 야근'을 언급했을 정도로 사회적 주목도가 큽니다.

<중국 최고인민법원 2024년 공작보고서>

"'실질적인 노동''명확한 시간 할애'를 온라인에서의 '숨은 야근'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로써 온라인 근무로도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오프라인 휴식권을 보장했습니다."

주기성, 고정성, 명확한 시간 할애, 실질적 노동 등 법원에서 숨은 야근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노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뤼궈취안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 오프라인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을 제정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야근해도 수당을 지급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야근을 감독·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24시간 휴대전화 켜놔야"…논란 휩싸인 바이두

하지만 아직까지 옛 직장 문화의 병폐는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최근 중국을 대표하는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취징 홍보담당 부사장이 숨은 야근을 당연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중국판 틱톡 더우인에 올린 영상이 발단이 됐습니다. '24시간 휴대전화를 켜놓고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되어야 한다', '직원들의 가정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 등의 발언이 누리꾼들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영상을 내리고 사과했음에도 논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홍보 담당 부사장이 도리어 바이두의 홍보에 악재를 가져왔다는 차가운 평가 속에 취 부사장은 현재 바이두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마윈 알리바바 창시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을 근무해야 한다는 이른바 '996 근무제'를 옹호했다가 비난 여론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과거의 근로 문화와 새로운 인식 변화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지난 2022년 근로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제화를 위해 '근무시간 외 카톡 금지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 걸까요? 퇴근 후 단체방 알림은 언제쯤 꺼놓을 수 있을까요?

(그래픽 : 이재희)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퇴근 후, 여러분의 ‘단체방’은 몇 개인가요? [특파원리포트]
    • 입력 2024-05-11 09:45:06
    글로벌K

■ "월급은 5천 위안인데 단체방은 46개"

최근 한 직장인의 토로가 중국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월급은 5천 위안인데 위챗 단체방은 46개다".

5천 위안이면 우리 돈 약 95만 원 수준으로, 팍팍한 월급을 받으면서 퇴근 후에도 수십 개에 달하는 회사 위챗 단체방에서 시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위챗만 카톡으로 바꾸면 지금 기사를 읽는 여러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은 생활….

주말에도 카톡 알림 소리를 쉬이 넘기지 못하고, 상사 카톡에 답장이 늦으면 전전긍긍하는 게 요즘 직장인 일상입니다. 여러분의 카톡 단체방은 몇 개인가요?


■'숨은 야근' · '위챗 근무'…팍팍한 중국 직장인

통계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지난해 중국 기업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48.7 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근로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한국이지만, 2022년 한국 풀타임 근로자의 경우 42시간으로 조사돼 중국보다 7시간 가까이 적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참고용으로 2019년 발표된 보고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법정 근로 시간 한도 역시 중국이 한국보다 길었습니다. 월별 평균 근로시간의 법정 최대한도는 중국 226.9 시간, 한국 225.6 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코로나가 닥치면서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업무를 처리하는 문화가 더 보편화 되자, 중국에서는 가뜩이나 긴 오프라인 근무에 더해 퇴근 후에도 SNS 등을 이용한 보이지 않는 근무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는 '숨은 야근(隱形加班)'·'위챗 근무(微信辦公) '등 각종 신조어가 현 시점 중국의 팍팍한 근로 문화를 대변합니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오프라인 휴식권'을 보호해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출처 : 중국 허난일보
■"위챗 업무도 추가 근로"…중국 '최초 판결'

이런 가운데, 중국 근로자들이 반가워할 만한 소식이 올해 1월 전해졌습니다. 법원 판결문에서 위챗을 통한 '숨은 야근(隱形加班)' 문제를 명확히 다룬 첫 번째 판결이 나온 겁니다.

베이징시 제3 중급인민법원은 근로자 리 모 씨가 2019년 12월부터 1년간 위챗 등으로 퇴근 후 추가 근로를 한 데에 따른 돈을 요구하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사측이 3만 위안(한화 약 567만 원 )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사측은 추가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리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리 씨는 평일 퇴근 후와 주말에도 SNS를 이용해서 업무를 처리했는데, 이것이 단순한 소통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겁니다.

일시적·우발적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SNS 소통과는 달리 주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진행된 만큼 업무의 범위에 속하고, 따라서 추가 근로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시했습니다.

최고인민법원도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올해 3월 양회에서 2023년도 주요 성과를 설명하며 '숨은 야근'을 언급했을 정도로 사회적 주목도가 큽니다.

<중국 최고인민법원 2024년 공작보고서>

"'실질적인 노동''명확한 시간 할애'를 온라인에서의 '숨은 야근'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로써 온라인 근무로도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오프라인 휴식권을 보장했습니다."

주기성, 고정성, 명확한 시간 할애, 실질적 노동 등 법원에서 숨은 야근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노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뤼궈취안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 오프라인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을 제정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야근해도 수당을 지급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야근을 감독·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24시간 휴대전화 켜놔야"…논란 휩싸인 바이두

하지만 아직까지 옛 직장 문화의 병폐는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최근 중국을 대표하는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취징 홍보담당 부사장이 숨은 야근을 당연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중국판 틱톡 더우인에 올린 영상이 발단이 됐습니다. '24시간 휴대전화를 켜놓고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되어야 한다', '직원들의 가정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 등의 발언이 누리꾼들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영상을 내리고 사과했음에도 논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홍보 담당 부사장이 도리어 바이두의 홍보에 악재를 가져왔다는 차가운 평가 속에 취 부사장은 현재 바이두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마윈 알리바바 창시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을 근무해야 한다는 이른바 '996 근무제'를 옹호했다가 비난 여론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과거의 근로 문화와 새로운 인식 변화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지난 2022년 근로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제화를 위해 '근무시간 외 카톡 금지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 걸까요? 퇴근 후 단체방 알림은 언제쯤 꺼놓을 수 있을까요?

(그래픽 : 이재희)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