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의 또 다른 목격자…전경의 일기

입력 2024.05.19 (07:02) 수정 2024.05.1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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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 당시 시민들이 쓴 일기장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은 물론, 5.18을 경험한 시민들의 심정을 생생히 전하는 중요한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5.18 당시 광주여고 3학년 학생, 광주우체국 공무원, 천주교광주대교구 직원, 전남 목포에 사는 주부가 쓴 일기장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전일빌딩 245에 전시돼 있는 1980년 당시 동산초등학교 6학년 김현경 학생의 일기 일부분.전일빌딩 245에 전시돼 있는 1980년 당시 동산초등학교 6학년 김현경 학생의 일기 일부분.

전일빌딩245에 전시돼 있는 1980년 당시 광주여고 3학년 주소연 씨의 일기 일부분. 주 씨의 일기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전일빌딩245에 전시돼 있는 1980년 당시 광주여고 3학년 주소연 씨의 일기 일부분. 주 씨의 일기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런데, 지난해 또 하나의 특별한 일기가 발굴됐습니다.

1980년 스물 두 살의 나이에 광주에서 전투경찰로 복무한 유영옥 씨가 자신의 일기장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5.18 이후 43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KBS 뉴스9도 지난해 5.18을 앞두고 유 씨의 일기장 기증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진상규명 도움될 수 있다면”…80년 5월 광주 ‘전경’의 일기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75991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신수연 연구사는 “(그동안 알려진 건) 광주, 전남 시민의 일기가 대부분이었다”라며 전경이라는 특수한 지위와 시점에서 일기를 기록한 경우는 처음이어서 소중한 기록물이라고 생각하고 기증을 받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노영기 조선대학교 교수는 “20대에 전경을 하던 청년이 제한된 정보 하에서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한계일 수도 있다”라며 “그렇더라도 시민들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쓴 이런 기록물들 자체가 5.18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 폭넓게 할 수 있어, 역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정말 좋은 사료”라고 평가했습니다.


■ 22살 전투경찰의 눈으로 본 오월 광주

KBS 시사프로그램 <더 보다>는 유영옥 씨의 동의와 기록관 측 협조를 받아 '유영옥 전경 일기'를 취재했습니다.

일기에는 5.18 이전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였던 전남대, 조선대 앞에서 학생들과 대치하던 전경들의 일상과 5월 18일부터 벌어진 계엄군의 진압 작전, 이에 맞선 시위대의 항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7공수여단이 광주에 투입된 5월 18일의 일기입니다.

계엄군과 같은 쪽에 서서 시위를 막던 전경이 보기에도, 공수부대의 진압은 “점심밥조차 넘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유영옥 전경 일기’ 일부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위대를 목격한 경험이 자세히 적혀 있다.1980년 5월 18일 ‘유영옥 전경 일기’ 일부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위대를 목격한 경험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계엄군이 광주에 온 날부터, 그때부터 광주 시내가 전혀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그 전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어요. 분위기가 아주아주 안 좋았죠. 학생들이 돌을 던지고 그러니까 군인들이 떼를 지어서 학생들을 쫓아가고, 공격을 하고, 검거해서 차에 태우고. 학생들은 안 끌려가려고 하니까 몽둥이로 패고 발로 차고, 그러니까 피가 나고. 아스팔트 위에서 막 끌려가고…

저희들도 도열을 해서, 뒤에 방패 들고 서 있었으니까 눈앞에서 다 보고 있었죠.

장갑차처럼 전쟁에 동원되는 그런 장비를 갖고 와서 마치 적을 향해서 때리는 그런 분위기로 해서 이렇게 (진압)하니까, 사람들이 막 피를 흘리는 장면을 보니까 참혹했어요. 저는 그 당시에 나이도 별로 안 됐었고, 그 전에는 그런 장면을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긴장도 되고 이건 좀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기장에도 기록돼 있지만 밥이 안 넘어갈 정도로, 그 정도로 아주 마음이 안 좋았죠.”

1980년 5월 19일, 광주 금남로에 서 있는 전경 부대 사이로 한 시민과 계엄군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나경택)1980년 5월 19일, 광주 금남로에 서 있는 전경 부대 사이로 한 시민과 계엄군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나경택)

5월 18일의 유혈 진압 이후 광주 시민들의 저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5월 19일 전경의 일기는 “계엄군이 첫날부터 너무 과격한 탓인지 시민들의 눈치가 이상해졌다. 왠지 조금씩 데모대에게 호응하는 기미가 보였다”라며 항쟁 초기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그 장면(계엄군의 시위 진압)을 저희들만 본 게 아니라, (금남로) 양쪽에 있는 건물 상가, 빌딩 창문이나 옥상에서 시민들이 다 봤습니다. 간혹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이 창문으로 다 내다보고. 그때부터 전체적인 시민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군인들만 안 왔으면 5.18은 없었을 겁니다. 시위 자체가 과격해지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게 광주가 불타고 사람이 다치고 죽고 그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1980년 5월 20일, 시위대와 대치하는 계엄군과 전경들이 광주 금남로에 앉아 쉬고 있다. (사진 제공: 광주일보)1980년 5월 20일, 시위대와 대치하는 계엄군과 전경들이 광주 금남로에 앉아 쉬고 있다. (사진 제공: 광주일보)

5.18민주화운동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5월 21일은, 유영옥 전경이 일기장 네 쪽을 꽉 채워 가장 긴 일기를 쓴 날이었습니다.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집단 발포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진상 규명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도청 앞에서 민간인 41명이 숨졌습니다. 이 가운데 36명의 사인은 총상으로 밝혀졌습니다.

도청에서 군의 발포를 목격했던 전경 유영옥도 이 사건을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1980년 5월 21일 ‘유영옥 전경 일기’ 일부분. 도청 앞 계엄군의 발포 장면이 서술돼 있다.1980년 5월 21일 ‘유영옥 전경 일기’ 일부분. 도청 앞 계엄군의 발포 장면이 서술돼 있다.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군인들이 총 쏠 땐 저희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도시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타당 타당 이런 식으로 총소리가 났어요.

전쟁이 날 수 있겠구나. 광주가 아주 위험에 처할 수 있겠구나하는 그런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 서랍 깊숙이 넣어뒀던 일기장, 43년 흘러 기증한 이유는…

5월 21일 군과 경찰이 전남도청에서 철수하면서, 5·18과 관련한 유영옥 전경의 일기도 막을 내립니다.


이듬해 전역한 유영옥 씨는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일기장은 유영옥 씨의 가족조차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로, 유 씨가 근무하던 경찰서 서랍 깊숙이 보관돼 왔습니다.

유영옥 씨가 5·18의 상징적 장소인 광주 금남로를 등지고 앉아 자신의 일기장을 읽어보고 있다.유영옥 씨가 5·18의 상징적 장소인 광주 금남로를 등지고 앉아 자신의 일기장을 읽어보고 있다.

5월이 오면 혼자서만 조용히 꺼내 읽어보던 일기장을, 40년 넘는 세월이 지나 5·18 기록물로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제가 경찰 신분일 때는 이 내용을 외부에 알리고 그런 게 뭔가 아직은 자신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소장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가 야인으로 돌아왔고, 나이도 70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일기장이 그냥 버려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기장을 광주의 5.18 관련 단체에 기증해서 이 역사가 영원히 후세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맨 앞에서 방패 들고 봉 하나 들고 시위를 막았던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제 주제에 무슨 진상규명까지 거론할 그런 신분, 입장은 아닙니다.

그냥 그 현장에 있었던 내용이니까, 이 사실적인 이야기가 잘 보존이 돼서 후세들이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앞으로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다시는 이 땅에 없어야 되겠죠.”

◆ 오늘(19일) 밤 10시 30분 KBS1에서 방영되는 <더 보다> 13회에서, ‘유영옥 전경 일기’의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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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 광주의 또 다른 목격자…전경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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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 당시 시민들이 쓴 일기장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은 물론, 5.18을 경험한 시민들의 심정을 생생히 전하는 중요한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5.18 당시 광주여고 3학년 학생, 광주우체국 공무원, 천주교광주대교구 직원, 전남 목포에 사는 주부가 쓴 일기장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전일빌딩 245에 전시돼 있는 1980년 당시 동산초등학교 6학년 김현경 학생의 일기 일부분.
전일빌딩245에 전시돼 있는 1980년 당시 광주여고 3학년 주소연 씨의 일기 일부분. 주 씨의 일기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런데, 지난해 또 하나의 특별한 일기가 발굴됐습니다.

1980년 스물 두 살의 나이에 광주에서 전투경찰로 복무한 유영옥 씨가 자신의 일기장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5.18 이후 43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KBS 뉴스9도 지난해 5.18을 앞두고 유 씨의 일기장 기증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진상규명 도움될 수 있다면”…80년 5월 광주 ‘전경’의 일기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75991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신수연 연구사는 “(그동안 알려진 건) 광주, 전남 시민의 일기가 대부분이었다”라며 전경이라는 특수한 지위와 시점에서 일기를 기록한 경우는 처음이어서 소중한 기록물이라고 생각하고 기증을 받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노영기 조선대학교 교수는 “20대에 전경을 하던 청년이 제한된 정보 하에서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한계일 수도 있다”라며 “그렇더라도 시민들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쓴 이런 기록물들 자체가 5.18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 폭넓게 할 수 있어, 역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정말 좋은 사료”라고 평가했습니다.


■ 22살 전투경찰의 눈으로 본 오월 광주

KBS 시사프로그램 <더 보다>는 유영옥 씨의 동의와 기록관 측 협조를 받아 '유영옥 전경 일기'를 취재했습니다.

일기에는 5.18 이전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였던 전남대, 조선대 앞에서 학생들과 대치하던 전경들의 일상과 5월 18일부터 벌어진 계엄군의 진압 작전, 이에 맞선 시위대의 항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7공수여단이 광주에 투입된 5월 18일의 일기입니다.

계엄군과 같은 쪽에 서서 시위를 막던 전경이 보기에도, 공수부대의 진압은 “점심밥조차 넘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유영옥 전경 일기’ 일부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위대를 목격한 경험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계엄군이 광주에 온 날부터, 그때부터 광주 시내가 전혀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그 전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어요. 분위기가 아주아주 안 좋았죠. 학생들이 돌을 던지고 그러니까 군인들이 떼를 지어서 학생들을 쫓아가고, 공격을 하고, 검거해서 차에 태우고. 학생들은 안 끌려가려고 하니까 몽둥이로 패고 발로 차고, 그러니까 피가 나고. 아스팔트 위에서 막 끌려가고…

저희들도 도열을 해서, 뒤에 방패 들고 서 있었으니까 눈앞에서 다 보고 있었죠.

장갑차처럼 전쟁에 동원되는 그런 장비를 갖고 와서 마치 적을 향해서 때리는 그런 분위기로 해서 이렇게 (진압)하니까, 사람들이 막 피를 흘리는 장면을 보니까 참혹했어요. 저는 그 당시에 나이도 별로 안 됐었고, 그 전에는 그런 장면을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긴장도 되고 이건 좀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기장에도 기록돼 있지만 밥이 안 넘어갈 정도로, 그 정도로 아주 마음이 안 좋았죠.”

1980년 5월 19일, 광주 금남로에 서 있는 전경 부대 사이로 한 시민과 계엄군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나경택)
5월 18일의 유혈 진압 이후 광주 시민들의 저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5월 19일 전경의 일기는 “계엄군이 첫날부터 너무 과격한 탓인지 시민들의 눈치가 이상해졌다. 왠지 조금씩 데모대에게 호응하는 기미가 보였다”라며 항쟁 초기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그 장면(계엄군의 시위 진압)을 저희들만 본 게 아니라, (금남로) 양쪽에 있는 건물 상가, 빌딩 창문이나 옥상에서 시민들이 다 봤습니다. 간혹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이 창문으로 다 내다보고. 그때부터 전체적인 시민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군인들만 안 왔으면 5.18은 없었을 겁니다. 시위 자체가 과격해지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게 광주가 불타고 사람이 다치고 죽고 그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1980년 5월 20일, 시위대와 대치하는 계엄군과 전경들이 광주 금남로에 앉아 쉬고 있다. (사진 제공: 광주일보)
5.18민주화운동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5월 21일은, 유영옥 전경이 일기장 네 쪽을 꽉 채워 가장 긴 일기를 쓴 날이었습니다.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집단 발포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진상 규명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도청 앞에서 민간인 41명이 숨졌습니다. 이 가운데 36명의 사인은 총상으로 밝혀졌습니다.

도청에서 군의 발포를 목격했던 전경 유영옥도 이 사건을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1980년 5월 21일 ‘유영옥 전경 일기’ 일부분. 도청 앞 계엄군의 발포 장면이 서술돼 있다.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군인들이 총 쏠 땐 저희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도시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타당 타당 이런 식으로 총소리가 났어요.

전쟁이 날 수 있겠구나. 광주가 아주 위험에 처할 수 있겠구나하는 그런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 서랍 깊숙이 넣어뒀던 일기장, 43년 흘러 기증한 이유는…

5월 21일 군과 경찰이 전남도청에서 철수하면서, 5·18과 관련한 유영옥 전경의 일기도 막을 내립니다.


이듬해 전역한 유영옥 씨는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일기장은 유영옥 씨의 가족조차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로, 유 씨가 근무하던 경찰서 서랍 깊숙이 보관돼 왔습니다.

유영옥 씨가 5·18의 상징적 장소인 광주 금남로를 등지고 앉아 자신의 일기장을 읽어보고 있다.
5월이 오면 혼자서만 조용히 꺼내 읽어보던 일기장을, 40년 넘는 세월이 지나 5·18 기록물로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유영옥 / 5.18 당시 전투경찰 · 일기장 기증

“제가 경찰 신분일 때는 이 내용을 외부에 알리고 그런 게 뭔가 아직은 자신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소장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가 야인으로 돌아왔고, 나이도 70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일기장이 그냥 버려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기장을 광주의 5.18 관련 단체에 기증해서 이 역사가 영원히 후세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맨 앞에서 방패 들고 봉 하나 들고 시위를 막았던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제 주제에 무슨 진상규명까지 거론할 그런 신분, 입장은 아닙니다.

그냥 그 현장에 있었던 내용이니까, 이 사실적인 이야기가 잘 보존이 돼서 후세들이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앞으로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다시는 이 땅에 없어야 되겠죠.”

◆ 오늘(19일) 밤 10시 30분 KBS1에서 방영되는 <더 보다> 13회에서, ‘유영옥 전경 일기’의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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