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죽창가? 역사 덮어두기?…한일 역사전 대응법

입력 2024.05.25 (10:00) 수정 2024.06.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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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기타자와 부유선광장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사도광산 기타자와 부유선광장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 "제일 나쁜 데가 사도섬"…'강제동원' 지우고 관광지 변신

거기 가면 1구, 2구가 있는데 자기 굴을 찾아가면 거기서 또 어디로 가라, 어디 가라...하여튼 제일 나쁜 데가 사도섬이었어. 꼼짝을 못했으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섬이라 꼭 가둬놓고 배를 타고 건너올 수가 있나 뭐...
- 故김주형/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1991년 인터뷰)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제일 나쁜 곳"이었던 사도광산은 이제 서양인들도 단체로 많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KBS 취재진이 지난달 방문한 사도섬은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사도를 세계유산으로!'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벚꽃과 함께 곳곳에서 휘날렸다.

일본이, 자국 땅에 남아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는데, 왜 한국이 발끈할까. 사도광산 피해자의 절절한 증언처럼 "제일 나쁜 데가 사도섬"이었던 역사가 있는데, 일본은 강제동원 기간을 쏙 빼는 꼼수를 썼기 때문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불거졌던 논란이 2024년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 군함도, 사도광산이 끝?…일본, 산업유산 수백 개 정리
더 큰 문제는 사도광산이 끝이 아니라는데 있다. 일본은 아베 내각 때부터 근대화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근대화 산업유산군 66'을 만들었다. 일본의 근대화 성취를 발판으로 다시 ‘강한 일본’으로 가자는 야심찬 계획을 담은 것으로, 수백 개의 유산을 정리해 목록을 작성했다. 학계에선 해당 유산 목록의 40%는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곳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이번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끝내 무산되더라도,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은 강제 동원 문제를 놓고 국제 사회에서 결코 질 수 없는, 역사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KBS와 인터뷰 중인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KBS와 인터뷰 중인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

"제가 선정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었기 때문에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것을 선정할 때는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진두지휘했습니다. 하나하나가 서양에서 들어온 문명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심혈을 기울여 산업으로 어떻게 건설해 나갔는지 전체를 묶어 하나의 스토리로 전달하는 게 목적이었죠."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

KBS 시사기획 창은 이 유산 선정을 맡았던 일본 세계유산 전문가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는 사도광산 다음으로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될 후보지로 '치수·사방의 역사를 말해 주는 근대화산업유산군'에 포함된 '다테야마 사방'을 꼽았다. 일본 도야마현 구로베강에 있는 치수 시설로, 역시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곳으로 확인됐다.

개발되기 전엔 사람이 갈 수 없었던 곳. 험준한 구로베강 협곡에서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벼랑길로 공사 자재를 실어나르고 180도까지 치솟는 암반 온도를 견디며 터널을 뚫어 제3발전소를 지은 노동자의 3분의 1은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었다. 일본 현지 시민들이 직접 조사한 자료를 보면 최소 1,0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일했다. 제3발전소를 짓다 숨진 희생자는 3백 명 이상이다. 해당 자치단체의 입장은 일본 정부 입장과 같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고, 역사를 제대로 알릴 계획이 없다고 했다.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 저자 호리에 세쓰코. 제3발전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역사를 직접 조사해 책을 쓰고, 일본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구로베 저편의 목소리’ 저자 호리에 세쓰코. 제3발전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역사를 직접 조사해 책을 쓰고, 일본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한계는 이 문제를 중장기적인 전략 속에서 꾸준히 갖고 가지 못한다는 게 최대 결점이에요. 사안이 발생할 때만 갑자기 막 불이 붙어서 하다가 금세 우리는 식어버리거든요. 일본이 버티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반드시 드러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규명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
-강동진/ 경성대교수·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 '죽창가'도, '역사 덮어두기'도 결코 답이 아니다
이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학자들은 다시 '죽창가'를 부르는 것도, 무작정 '역사 덮어두기'도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진단한다. 20년 전부터 몇백 개의 산업 유산을 정리해놓고 차근차근 등재를 시도하는 치밀한 일본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꾸준히 갈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바로 그 전략이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스라엘은 어떨까. 1953년부터 나치 독일에 강제동원되고 희생된 유대인들의 증거와 자료를 모아 대응하는 전담 기관 '야드바셈'을 설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한때 국무총리실 산하에 강제동원 문제를 전담하던 위원회가 있었다. 그러나 2015년에 해체돼 지금은 없다.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부정하고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의 실체를 제대로 알리려면 관련 연구와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전담 기구도 없고,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한반도엔 일제 침략전쟁 유적지 8,707 곳이 남아 있다. 강제동원위원회 조사과장이었던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가 연구를 이어간 결과물이다. 일본이 침략 전쟁을 하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 유적지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 한반도 강제동원 유적지 8,707 곳 지도 KBS 최초 공개
KBS 시사기획창 취재진은 인천 부평부터 시작해 대전, 해남, 목포, 통영, 부산, 제주도까지 전국 유적지를 전문가들과 함께 돌며 점검했다. 또 방송에 소개된 곳을 포함해 한반도에 남은 8,707개소 유적지가 어디인지 시청자들이 직접 검색해 볼 수 있도록 지도로 만들어 처음 공개한다.

우리 동네 유적지 찾기
☞관련 방송 다시보기: 시사기획 창_아베 야망은 살아있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강제동원 #군함도 #다테야마 #구로베 #일본의알프스 #아베 #근대화유산 #전쟁유적지 #시사기획창 #산업유산 #죽창가

-관련 방송: 2024년 5월 21일(화) KBS 1TV, 22:00 <시사기획 창> '아베 야망은 살아있다'

취재기자: 김지선
촬영기자: 조승연
영상편집: 김대영
자료조사: 황현비
조연출: 최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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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죽창가? 역사 덮어두기?…한일 역사전 대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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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기타자와 부유선광장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 "제일 나쁜 데가 사도섬"…'강제동원' 지우고 관광지 변신

거기 가면 1구, 2구가 있는데 자기 굴을 찾아가면 거기서 또 어디로 가라, 어디 가라...하여튼 제일 나쁜 데가 사도섬이었어. 꼼짝을 못했으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섬이라 꼭 가둬놓고 배를 타고 건너올 수가 있나 뭐...
- 故김주형/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1991년 인터뷰)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제일 나쁜 곳"이었던 사도광산은 이제 서양인들도 단체로 많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KBS 취재진이 지난달 방문한 사도섬은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사도를 세계유산으로!'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벚꽃과 함께 곳곳에서 휘날렸다.

일본이, 자국 땅에 남아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는데, 왜 한국이 발끈할까. 사도광산 피해자의 절절한 증언처럼 "제일 나쁜 데가 사도섬"이었던 역사가 있는데, 일본은 강제동원 기간을 쏙 빼는 꼼수를 썼기 때문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불거졌던 논란이 2024년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 군함도, 사도광산이 끝?…일본, 산업유산 수백 개 정리
더 큰 문제는 사도광산이 끝이 아니라는데 있다. 일본은 아베 내각 때부터 근대화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근대화 산업유산군 66'을 만들었다. 일본의 근대화 성취를 발판으로 다시 ‘강한 일본’으로 가자는 야심찬 계획을 담은 것으로, 수백 개의 유산을 정리해 목록을 작성했다. 학계에선 해당 유산 목록의 40%는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곳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이번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끝내 무산되더라도,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은 강제 동원 문제를 놓고 국제 사회에서 결코 질 수 없는, 역사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KBS와 인터뷰 중인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
"제가 선정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었기 때문에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것을 선정할 때는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진두지휘했습니다. 하나하나가 서양에서 들어온 문명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심혈을 기울여 산업으로 어떻게 건설해 나갔는지 전체를 묶어 하나의 스토리로 전달하는 게 목적이었죠."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

KBS 시사기획 창은 이 유산 선정을 맡았던 일본 세계유산 전문가 '니시무라 유키오'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는 사도광산 다음으로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될 후보지로 '치수·사방의 역사를 말해 주는 근대화산업유산군'에 포함된 '다테야마 사방'을 꼽았다. 일본 도야마현 구로베강에 있는 치수 시설로, 역시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곳으로 확인됐다.

개발되기 전엔 사람이 갈 수 없었던 곳. 험준한 구로베강 협곡에서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벼랑길로 공사 자재를 실어나르고 180도까지 치솟는 암반 온도를 견디며 터널을 뚫어 제3발전소를 지은 노동자의 3분의 1은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었다. 일본 현지 시민들이 직접 조사한 자료를 보면 최소 1,0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일했다. 제3발전소를 짓다 숨진 희생자는 3백 명 이상이다. 해당 자치단체의 입장은 일본 정부 입장과 같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고, 역사를 제대로 알릴 계획이 없다고 했다.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 저자 호리에 세쓰코. 제3발전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역사를 직접 조사해 책을 쓰고, 일본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한계는 이 문제를 중장기적인 전략 속에서 꾸준히 갖고 가지 못한다는 게 최대 결점이에요. 사안이 발생할 때만 갑자기 막 불이 붙어서 하다가 금세 우리는 식어버리거든요. 일본이 버티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반드시 드러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규명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
-강동진/ 경성대교수·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 '죽창가'도, '역사 덮어두기'도 결코 답이 아니다
이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학자들은 다시 '죽창가'를 부르는 것도, 무작정 '역사 덮어두기'도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진단한다. 20년 전부터 몇백 개의 산업 유산을 정리해놓고 차근차근 등재를 시도하는 치밀한 일본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꾸준히 갈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바로 그 전략이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스라엘은 어떨까. 1953년부터 나치 독일에 강제동원되고 희생된 유대인들의 증거와 자료를 모아 대응하는 전담 기관 '야드바셈'을 설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한때 국무총리실 산하에 강제동원 문제를 전담하던 위원회가 있었다. 그러나 2015년에 해체돼 지금은 없다.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부정하고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의 실체를 제대로 알리려면 관련 연구와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전담 기구도 없고,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한반도엔 일제 침략전쟁 유적지 8,707 곳이 남아 있다. 강제동원위원회 조사과장이었던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가 연구를 이어간 결과물이다. 일본이 침략 전쟁을 하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 유적지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 한반도 강제동원 유적지 8,707 곳 지도 KBS 최초 공개
KBS 시사기획창 취재진은 인천 부평부터 시작해 대전, 해남, 목포, 통영, 부산, 제주도까지 전국 유적지를 전문가들과 함께 돌며 점검했다. 또 방송에 소개된 곳을 포함해 한반도에 남은 8,707개소 유적지가 어디인지 시청자들이 직접 검색해 볼 수 있도록 지도로 만들어 처음 공개한다.

우리 동네 유적지 찾기
☞관련 방송 다시보기: 시사기획 창_아베 야망은 살아있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강제동원 #군함도 #다테야마 #구로베 #일본의알프스 #아베 #근대화유산 #전쟁유적지 #시사기획창 #산업유산 #죽창가

-관련 방송: 2024년 5월 21일(화) KBS 1TV, 22:00 <시사기획 창> '아베 야망은 살아있다'

취재기자: 김지선
촬영기자: 조승연
영상편집: 김대영
자료조사: 황현비
조연출: 최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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