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몰아낼 역사적 순간…한국, 마지막 싸움 도와달라”
입력 2024.05.26 (13:53)
수정 2024.05.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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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미얀마 양곤에서 20대 여성 대학생이 체포됐습니다. 혐의는 두 가지였습니다. 야당을 지지했다는 것, 그리고 집회에 나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를 비판하는 시와 성명을 읽었다는 것. 곧장 심문 수용소로 끌려간 그는 변호인 없이 감옥에서 28년형을 선고받고 11년을 복역했습니다. 2024년, 그는 미얀마 외교장관으로 활동 중입니다. 다만 정식 정부가 아닌 군부에 맞선 임시정부의 외교장관으로서입니다.
진 마 아웅(47)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외교장관은 출소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다 2015년 미얀마 야권의 상징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5년 후 재선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임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쪼그라든 군부가 선거 3개월 만인 2021년 2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재선거를 위해 쿠데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스스로 총리직에 올라 현재까지 집권 중입니다. 이후 3년간 군경 탄압에 무고한 5,143명이 숨졌습니다.
쿠데타 직후 출범한 임시정부인 NUG는 군대를 조직해 미얀마 군부와 내전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불신과 반복을 쌓아온 소수민족들과도 이번에는 힘을 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격화된 무장투쟁에 군부 통치는 전례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랭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각지의 분쟁으로 미얀마 쿠데타가 잊혀가는 가운데, 각국 지지도 이전만 못 해졌습니다. 임시정부는 올 초 외교부에 조태열 장관 취임 축하를 겸해 협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러 한국을 찾은 아웅 장관은 이달 20일 KBS와 만나,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뤄낸 한국은 미얀마인들에게 특별한 사례라며 군부가 실패 중인 만큼 이제는 한국도 군부 압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방송에 전하지 못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 광주 방문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 여러 감정을 느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과 지금 우리의 상황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요. 미얀마에선 군사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이 몇 차례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하지만 우리는 44년 전의 광주를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광주가 매우 고무적인 성공사례입니다. 세대적으로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미얀마는 공통의 감정과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1년간 투옥되셨죠. 2009년 석방되던 당시엔, 2024년에도 미얀마가 여전히 군사정권 지배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2009년 출소 당시 군사 쿠데타는 끝나 있었지만 정치 체제는 완전히 권위적이었어요. 다만 다잇에는 독재에 대한 저항이 대중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평화 시위와 무력 투쟁이 결합된 독특한 상황입니다. 미얀마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사회 곳곳에서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기에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미얀마에서 저항군이 통제하는 영역은 어느 정도입니까? 60%에 가깝다는 이상이라는 보도도 있는데요.
▶ 매일 상황이 바뀌고 있기에 숫자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군부가 통제하는 지역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저항군이 이제는 군부를 상대로 분명히 승리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항군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민족 무장조직 연합체도 있습니다. 이들과의 연대가 굉장히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 독립 이후 이 같은 연대의 경험은 없었기에, 경이로운 일입니다.
▷ 3년 전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엔 이런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 3년 전을 돌아보면,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외교관들은 이렇게 말했죠. '군부가 겁을 주면 미얀마인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항은 5개월, 6개월이면 끝날 것이다.' 그러나 보세요. 3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강하며 싸우는 중입니다. 군부는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 말씀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항군의 우세에 군부는 더 잔인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2월부턴 강제 징집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떻습니까.
▶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군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통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을 두렵게 하려는 겁니다. 그들은 약해질수록 더더욱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할 겁니다.
▷ 미국은 유럽연합 및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군부에 무역과 금융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군부는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재가 솔직히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전히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부가 무기를 사기 위해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 상당한 차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제재해야 할지, 그러니까 어떤 기업을, 산업을, 무기를 제재하는 것이 민간인을 보호하고 군부를 압박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지 계속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 군부 소유 업체와 한국 기업의 협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과 미얀마 내 교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은 경제 활동을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한국 측 입장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최선의 방법으로 지원하고 도울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국민과 정부, 국회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사 쿠데타를 막을 수 있도록 그와 같은 지원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강화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내에서 민주주의 선도국가로서의 한국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100개 이상 소수민족 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는 연방 민주제가 NUG의 목표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과제인데요.
▶ 그렇지만 우리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이 올해 1월 30일 발표된 'NUG(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플러스 민족동맹'이라는 공동 성명에 담겨 있습니다. 우선은 군사 쿠데타를 끝내야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민족그룹 간의 대화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정부 다음에 올 미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버마족이 주축인 NUG, 그리고 소수민족 집단은 이제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합니까? 아니면 여전히 신뢰를 쌓는 단계인가요.
▶ 신뢰는 이미 있다고 봅니다. 군사정권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소수 집단을 탄압해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신뢰를 쌓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미얀마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입니다.
▷ NUG가 미얀마 합법 정부로 인정받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 군부를 압박하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공식적으로 국제사회나 외국 정부를 상대할 수 있게 되면 미얀마 국민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전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 미 국무부나 일본 외무성 등 해외 정부 관계자들이 NUG를 공개적으로 만난 경우는 상당히 있었지만, 정식 정부 승인은 아직이죠.
▶ 네.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라는 것 때문이겠지요. 모든 것이 권력, 힘,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어렵지만, 계속 나아갈 겁니다.
▷ 이번 방한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나 여당 의원들을 만날 기회는 있었습니까?
▶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 방문은 5·18 기념식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가택연금 중이라는 아웅 산 수치 전 국가고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 아니요.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군부는 수치 고문을 주로 수도인 네피도 근방에서, 때로는 감옥에 때로는 외부 군사시설에 가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수치 고문이 군부 손아귀에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고, 그녀의 안전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 수치 고문의 아들은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그녀를 일종의 '인간 방패'로 쓰고 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수치 고문이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특히 임시정부의 시민방위군이 수도에서 전투를 벌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간 수치 고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렇습니까?
▶ 그렇습니다. 군부는 우리 지도자를 체포해 인질로 삼았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 방패'로 쓰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고문과의 연락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도 부근에서는) 매우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지금까지 오랜 기간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오셨죠. 때로는 좌절도 겪으셨을 텐데 계속 나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저는 그저 인간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다른 개인들도 그러한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곳곳에서 인권침해와 학대가 자행됐습니다. 언론의 자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비롯한 기본권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여기에는 책임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자유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에 되찾아주겠다는 책임이요. 저는 그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미얀마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까요?
▶ 지금은 끔찍한 시간입니다. 집이 불타고 가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회복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항군은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군부가 겁박할수록, 국민들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 이번에는 민주주의가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갖고 계시는군요.
▶ 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싸움입니다.
진 마 아웅(47)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외교장관은 출소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다 2015년 미얀마 야권의 상징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5년 후 재선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임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쪼그라든 군부가 선거 3개월 만인 2021년 2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재선거를 위해 쿠데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스스로 총리직에 올라 현재까지 집권 중입니다. 이후 3년간 군경 탄압에 무고한 5,143명이 숨졌습니다.
쿠데타 직후 출범한 임시정부인 NUG는 군대를 조직해 미얀마 군부와 내전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불신과 반복을 쌓아온 소수민족들과도 이번에는 힘을 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격화된 무장투쟁에 군부 통치는 전례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랭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각지의 분쟁으로 미얀마 쿠데타가 잊혀가는 가운데, 각국 지지도 이전만 못 해졌습니다. 임시정부는 올 초 외교부에 조태열 장관 취임 축하를 겸해 협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러 한국을 찾은 아웅 장관은 이달 20일 KBS와 만나,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뤄낸 한국은 미얀마인들에게 특별한 사례라며 군부가 실패 중인 만큼 이제는 한국도 군부 압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방송에 전하지 못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KBS와 인터뷰 중인 진 마 아웅 미얀마국민통합정부(NUG) 외교장관.
▷ 광주 방문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 여러 감정을 느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과 지금 우리의 상황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요. 미얀마에선 군사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이 몇 차례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하지만 우리는 44년 전의 광주를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광주가 매우 고무적인 성공사례입니다. 세대적으로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미얀마는 공통의 감정과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1년간 투옥되셨죠. 2009년 석방되던 당시엔, 2024년에도 미얀마가 여전히 군사정권 지배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2009년 출소 당시 군사 쿠데타는 끝나 있었지만 정치 체제는 완전히 권위적이었어요. 다만 다잇에는 독재에 대한 저항이 대중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평화 시위와 무력 투쟁이 결합된 독특한 상황입니다. 미얀마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사회 곳곳에서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기에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미얀마에서 저항군이 통제하는 영역은 어느 정도입니까? 60%에 가깝다는 이상이라는 보도도 있는데요.
▶ 매일 상황이 바뀌고 있기에 숫자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군부가 통제하는 지역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저항군이 이제는 군부를 상대로 분명히 승리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항군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민족 무장조직 연합체도 있습니다. 이들과의 연대가 굉장히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 독립 이후 이 같은 연대의 경험은 없었기에, 경이로운 일입니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 겸 총리. 쿠데타를 주도한 그는 저항군을 향해 “테러집단과 협상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섬멸하겠다”고 밝혔다.
▷ 3년 전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엔 이런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 3년 전을 돌아보면,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외교관들은 이렇게 말했죠. '군부가 겁을 주면 미얀마인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항은 5개월, 6개월이면 끝날 것이다.' 그러나 보세요. 3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강하며 싸우는 중입니다. 군부는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 말씀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항군의 우세에 군부는 더 잔인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2월부턴 강제 징집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떻습니까.
▶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군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통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을 두렵게 하려는 겁니다. 그들은 약해질수록 더더욱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할 겁니다.
현지시각 이달 9일 미얀마 마궤 지역에서 군부 폭격으로 폐허가 된 사원. 최소 16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이 지역은 미얀마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 산하 군사조직인 시민방위군이 통제하는 지역이다. 군부는 통제권을 상실하는 지역이 늘자 사원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다중시설 공격을 늘리고 있다. [사진출처 : 미얀마 나우]
▷ 미국은 유럽연합 및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군부에 무역과 금융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군부는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재가 솔직히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전히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부가 무기를 사기 위해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 상당한 차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제재해야 할지, 그러니까 어떤 기업을, 산업을, 무기를 제재하는 것이 민간인을 보호하고 군부를 압박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지 계속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 군부 소유 업체와 한국 기업의 협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과 미얀마 내 교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은 경제 활동을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한국 측 입장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최선의 방법으로 지원하고 도울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국민과 정부, 국회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사 쿠데타를 막을 수 있도록 그와 같은 지원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강화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내에서 민주주의 선도국가로서의 한국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난민들이 목선을 타고 인도네시아 해변에 도착하고 있다. 미얀마 인구 70%를 차지하는 불교도 버마족과 달리 이들은 무슬림이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도 2017년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 비판을 받았다.
▷ 100개 이상 소수민족 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는 연방 민주제가 NUG의 목표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과제인데요.
▶ 그렇지만 우리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이 올해 1월 30일 발표된 'NUG(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플러스 민족동맹'이라는 공동 성명에 담겨 있습니다. 우선은 군사 쿠데타를 끝내야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민족그룹 간의 대화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정부 다음에 올 미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버마족이 주축인 NUG, 그리고 소수민족 집단은 이제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합니까? 아니면 여전히 신뢰를 쌓는 단계인가요.
▶ 신뢰는 이미 있다고 봅니다. 군사정권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소수 집단을 탄압해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신뢰를 쌓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미얀마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입니다.
▷ NUG가 미얀마 합법 정부로 인정받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 군부를 압박하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공식적으로 국제사회나 외국 정부를 상대할 수 있게 되면 미얀마 국민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전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2022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은 세계 인권과 법치를 증진하기로 약속하며, 미얀마 쿠데타를 함께 규탄하고 민주주의로의 조속한 복귀를 위해 압박하겠다고 공동성명에서 밝혔다.
▷ 미 국무부나 일본 외무성 등 해외 정부 관계자들이 NUG를 공개적으로 만난 경우는 상당히 있었지만, 정식 정부 승인은 아직이죠.
▶ 네.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라는 것 때문이겠지요. 모든 것이 권력, 힘,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어렵지만, 계속 나아갈 겁니다.
▷ 이번 방한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나 여당 의원들을 만날 기회는 있었습니까?
▶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 방문은 5·18 기념식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가택연금 중이라는 아웅 산 수치 전 국가고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 아니요.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군부는 수치 고문을 주로 수도인 네피도 근방에서, 때로는 감옥에 때로는 외부 군사시설에 가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수치 고문이 군부 손아귀에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고, 그녀의 안전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 수치 고문의 아들은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그녀를 일종의 '인간 방패'로 쓰고 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수치 고문이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특히 임시정부의 시민방위군이 수도에서 전투를 벌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간 수치 고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렇습니까?
▶ 그렇습니다. 군부는 우리 지도자를 체포해 인질로 삼았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 방패'로 쓰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고문과의 연락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도 부근에서는) 매우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2년 미 국무부 ‘용기있는 여성상’을 수상한 진 마 아웅 장관이 미셸 오바마 여사·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미 국무부]
▷ 지금까지 오랜 기간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오셨죠. 때로는 좌절도 겪으셨을 텐데 계속 나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저는 그저 인간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다른 개인들도 그러한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곳곳에서 인권침해와 학대가 자행됐습니다. 언론의 자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비롯한 기본권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여기에는 책임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자유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에 되찾아주겠다는 책임이요. 저는 그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미얀마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까요?
▶ 지금은 끔찍한 시간입니다. 집이 불타고 가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회복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항군은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군부가 겁박할수록, 국민들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 이번에는 민주주의가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갖고 계시는군요.
▶ 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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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 몰아낼 역사적 순간…한국, 마지막 싸움 도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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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5-26 13:53:42
- 수정2024-05-26 18:26:57
1998년 미얀마 양곤에서 20대 여성 대학생이 체포됐습니다. 혐의는 두 가지였습니다. 야당을 지지했다는 것, 그리고 집회에 나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를 비판하는 시와 성명을 읽었다는 것. 곧장 심문 수용소로 끌려간 그는 변호인 없이 감옥에서 28년형을 선고받고 11년을 복역했습니다. 2024년, 그는 미얀마 외교장관으로 활동 중입니다. 다만 정식 정부가 아닌 군부에 맞선 임시정부의 외교장관으로서입니다.
진 마 아웅(47)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외교장관은 출소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다 2015년 미얀마 야권의 상징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5년 후 재선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임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쪼그라든 군부가 선거 3개월 만인 2021년 2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재선거를 위해 쿠데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스스로 총리직에 올라 현재까지 집권 중입니다. 이후 3년간 군경 탄압에 무고한 5,143명이 숨졌습니다.
쿠데타 직후 출범한 임시정부인 NUG는 군대를 조직해 미얀마 군부와 내전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불신과 반복을 쌓아온 소수민족들과도 이번에는 힘을 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격화된 무장투쟁에 군부 통치는 전례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랭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각지의 분쟁으로 미얀마 쿠데타가 잊혀가는 가운데, 각국 지지도 이전만 못 해졌습니다. 임시정부는 올 초 외교부에 조태열 장관 취임 축하를 겸해 협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러 한국을 찾은 아웅 장관은 이달 20일 KBS와 만나,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뤄낸 한국은 미얀마인들에게 특별한 사례라며 군부가 실패 중인 만큼 이제는 한국도 군부 압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방송에 전하지 못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 광주 방문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 여러 감정을 느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과 지금 우리의 상황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요. 미얀마에선 군사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이 몇 차례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하지만 우리는 44년 전의 광주를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광주가 매우 고무적인 성공사례입니다. 세대적으로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미얀마는 공통의 감정과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1년간 투옥되셨죠. 2009년 석방되던 당시엔, 2024년에도 미얀마가 여전히 군사정권 지배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2009년 출소 당시 군사 쿠데타는 끝나 있었지만 정치 체제는 완전히 권위적이었어요. 다만 다잇에는 독재에 대한 저항이 대중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평화 시위와 무력 투쟁이 결합된 독특한 상황입니다. 미얀마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사회 곳곳에서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기에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미얀마에서 저항군이 통제하는 영역은 어느 정도입니까? 60%에 가깝다는 이상이라는 보도도 있는데요.
▶ 매일 상황이 바뀌고 있기에 숫자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군부가 통제하는 지역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저항군이 이제는 군부를 상대로 분명히 승리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항군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민족 무장조직 연합체도 있습니다. 이들과의 연대가 굉장히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 독립 이후 이 같은 연대의 경험은 없었기에, 경이로운 일입니다.
▷ 3년 전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엔 이런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 3년 전을 돌아보면,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외교관들은 이렇게 말했죠. '군부가 겁을 주면 미얀마인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항은 5개월, 6개월이면 끝날 것이다.' 그러나 보세요. 3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강하며 싸우는 중입니다. 군부는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 말씀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항군의 우세에 군부는 더 잔인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2월부턴 강제 징집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떻습니까.
▶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군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통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을 두렵게 하려는 겁니다. 그들은 약해질수록 더더욱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할 겁니다.
▷ 미국은 유럽연합 및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군부에 무역과 금융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군부는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재가 솔직히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전히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부가 무기를 사기 위해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 상당한 차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제재해야 할지, 그러니까 어떤 기업을, 산업을, 무기를 제재하는 것이 민간인을 보호하고 군부를 압박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지 계속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 군부 소유 업체와 한국 기업의 협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과 미얀마 내 교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은 경제 활동을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한국 측 입장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최선의 방법으로 지원하고 도울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국민과 정부, 국회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사 쿠데타를 막을 수 있도록 그와 같은 지원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강화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내에서 민주주의 선도국가로서의 한국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100개 이상 소수민족 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는 연방 민주제가 NUG의 목표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과제인데요.
▶ 그렇지만 우리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이 올해 1월 30일 발표된 'NUG(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플러스 민족동맹'이라는 공동 성명에 담겨 있습니다. 우선은 군사 쿠데타를 끝내야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민족그룹 간의 대화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정부 다음에 올 미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버마족이 주축인 NUG, 그리고 소수민족 집단은 이제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합니까? 아니면 여전히 신뢰를 쌓는 단계인가요.
▶ 신뢰는 이미 있다고 봅니다. 군사정권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소수 집단을 탄압해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신뢰를 쌓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미얀마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입니다.
▷ NUG가 미얀마 합법 정부로 인정받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 군부를 압박하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공식적으로 국제사회나 외국 정부를 상대할 수 있게 되면 미얀마 국민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전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 미 국무부나 일본 외무성 등 해외 정부 관계자들이 NUG를 공개적으로 만난 경우는 상당히 있었지만, 정식 정부 승인은 아직이죠.
▶ 네.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라는 것 때문이겠지요. 모든 것이 권력, 힘,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어렵지만, 계속 나아갈 겁니다.
▷ 이번 방한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나 여당 의원들을 만날 기회는 있었습니까?
▶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 방문은 5·18 기념식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가택연금 중이라는 아웅 산 수치 전 국가고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 아니요.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군부는 수치 고문을 주로 수도인 네피도 근방에서, 때로는 감옥에 때로는 외부 군사시설에 가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수치 고문이 군부 손아귀에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고, 그녀의 안전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 수치 고문의 아들은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그녀를 일종의 '인간 방패'로 쓰고 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수치 고문이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특히 임시정부의 시민방위군이 수도에서 전투를 벌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간 수치 고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렇습니까?
▶ 그렇습니다. 군부는 우리 지도자를 체포해 인질로 삼았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 방패'로 쓰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고문과의 연락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도 부근에서는) 매우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지금까지 오랜 기간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오셨죠. 때로는 좌절도 겪으셨을 텐데 계속 나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저는 그저 인간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다른 개인들도 그러한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곳곳에서 인권침해와 학대가 자행됐습니다. 언론의 자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비롯한 기본권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여기에는 책임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자유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에 되찾아주겠다는 책임이요. 저는 그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미얀마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까요?
▶ 지금은 끔찍한 시간입니다. 집이 불타고 가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회복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항군은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군부가 겁박할수록, 국민들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 이번에는 민주주의가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갖고 계시는군요.
▶ 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싸움입니다.
진 마 아웅(47)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외교장관은 출소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다 2015년 미얀마 야권의 상징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5년 후 재선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임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쪼그라든 군부가 선거 3개월 만인 2021년 2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재선거를 위해 쿠데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스스로 총리직에 올라 현재까지 집권 중입니다. 이후 3년간 군경 탄압에 무고한 5,143명이 숨졌습니다.
쿠데타 직후 출범한 임시정부인 NUG는 군대를 조직해 미얀마 군부와 내전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불신과 반복을 쌓아온 소수민족들과도 이번에는 힘을 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격화된 무장투쟁에 군부 통치는 전례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랭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각지의 분쟁으로 미얀마 쿠데타가 잊혀가는 가운데, 각국 지지도 이전만 못 해졌습니다. 임시정부는 올 초 외교부에 조태열 장관 취임 축하를 겸해 협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러 한국을 찾은 아웅 장관은 이달 20일 KBS와 만나,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뤄낸 한국은 미얀마인들에게 특별한 사례라며 군부가 실패 중인 만큼 이제는 한국도 군부 압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방송에 전하지 못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 광주 방문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 여러 감정을 느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과 지금 우리의 상황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요. 미얀마에선 군사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이 몇 차례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하지만 우리는 44년 전의 광주를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광주가 매우 고무적인 성공사례입니다. 세대적으로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미얀마는 공통의 감정과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1년간 투옥되셨죠. 2009년 석방되던 당시엔, 2024년에도 미얀마가 여전히 군사정권 지배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2009년 출소 당시 군사 쿠데타는 끝나 있었지만 정치 체제는 완전히 권위적이었어요. 다만 다잇에는 독재에 대한 저항이 대중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평화 시위와 무력 투쟁이 결합된 독특한 상황입니다. 미얀마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사회 곳곳에서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기에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미얀마에서 저항군이 통제하는 영역은 어느 정도입니까? 60%에 가깝다는 이상이라는 보도도 있는데요.
▶ 매일 상황이 바뀌고 있기에 숫자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군부가 통제하는 지역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저항군이 이제는 군부를 상대로 분명히 승리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항군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민족 무장조직 연합체도 있습니다. 이들과의 연대가 굉장히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 독립 이후 이 같은 연대의 경험은 없었기에, 경이로운 일입니다.
▷ 3년 전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엔 이런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 3년 전을 돌아보면,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외교관들은 이렇게 말했죠. '군부가 겁을 주면 미얀마인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항은 5개월, 6개월이면 끝날 것이다.' 그러나 보세요. 3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강하며 싸우는 중입니다. 군부는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 말씀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항군의 우세에 군부는 더 잔인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2월부턴 강제 징집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떻습니까.
▶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군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통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을 두렵게 하려는 겁니다. 그들은 약해질수록 더더욱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할 겁니다.
▷ 미국은 유럽연합 및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군부에 무역과 금융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군부는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재가 솔직히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전히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부가 무기를 사기 위해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 상당한 차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제재해야 할지, 그러니까 어떤 기업을, 산업을, 무기를 제재하는 것이 민간인을 보호하고 군부를 압박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지 계속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 군부 소유 업체와 한국 기업의 협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과 미얀마 내 교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은 경제 활동을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한국 측 입장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최선의 방법으로 지원하고 도울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국민과 정부, 국회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사 쿠데타를 막을 수 있도록 그와 같은 지원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강화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내에서 민주주의 선도국가로서의 한국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100개 이상 소수민족 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는 연방 민주제가 NUG의 목표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과제인데요.
▶ 그렇지만 우리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이 올해 1월 30일 발표된 'NUG(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플러스 민족동맹'이라는 공동 성명에 담겨 있습니다. 우선은 군사 쿠데타를 끝내야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민족그룹 간의 대화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정부 다음에 올 미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버마족이 주축인 NUG, 그리고 소수민족 집단은 이제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합니까? 아니면 여전히 신뢰를 쌓는 단계인가요.
▶ 신뢰는 이미 있다고 봅니다. 군사정권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소수 집단을 탄압해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신뢰를 쌓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미얀마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입니다.
▷ NUG가 미얀마 합법 정부로 인정받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 군부를 압박하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공식적으로 국제사회나 외국 정부를 상대할 수 있게 되면 미얀마 국민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전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 미 국무부나 일본 외무성 등 해외 정부 관계자들이 NUG를 공개적으로 만난 경우는 상당히 있었지만, 정식 정부 승인은 아직이죠.
▶ 네.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라는 것 때문이겠지요. 모든 것이 권력, 힘,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어렵지만, 계속 나아갈 겁니다.
▷ 이번 방한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나 여당 의원들을 만날 기회는 있었습니까?
▶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 방문은 5·18 기념식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가택연금 중이라는 아웅 산 수치 전 국가고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 아니요.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군부는 수치 고문을 주로 수도인 네피도 근방에서, 때로는 감옥에 때로는 외부 군사시설에 가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수치 고문이 군부 손아귀에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고, 그녀의 안전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 수치 고문의 아들은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그녀를 일종의 '인간 방패'로 쓰고 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수치 고문이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특히 임시정부의 시민방위군이 수도에서 전투를 벌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간 수치 고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렇습니까?
▶ 그렇습니다. 군부는 우리 지도자를 체포해 인질로 삼았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 방패'로 쓰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고문과의 연락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도 부근에서는) 매우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지금까지 오랜 기간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오셨죠. 때로는 좌절도 겪으셨을 텐데 계속 나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저는 그저 인간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다른 개인들도 그러한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곳곳에서 인권침해와 학대가 자행됐습니다. 언론의 자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비롯한 기본권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여기에는 책임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자유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에 되찾아주겠다는 책임이요. 저는 그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미얀마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까요?
▶ 지금은 끔찍한 시간입니다. 집이 불타고 가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회복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항군은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군부가 겁박할수록, 국민들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 이번에는 민주주의가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갖고 계시는군요.
▶ 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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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기자 n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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