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자른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빠른 경질 향한 정정용 감독의 개탄
입력 2024.05.31 (17:54)
수정 2024.05.31 (17:5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시즌 초중반 '깍두기' 김천 상무의 돌풍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정용 감독.
불과 일 년 전, 감독직을 수락할 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속 깊은 곳에서 감춰왔던 숨이 터져 나왔다.
"'프로팀 감독 자리라는 게 나에게는 여러모로 안 맞는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상무팀 지도자에 대한 외부 시선도 별로 좋지는 않죠. 가장 먼저 생각한 게, 연령별 대표팀 시절 거쳐 갔던 선수들이었어요. 거의 한 번씩은 함께했던 선수들이라서 다시 도전 의지가 생겼죠."

정정용 감독에게 프로팀 지휘봉은 아픈 상처였다.
지난 2019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폴란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사고'를 친 정정용 감독은 이듬해 서울이랜드FC의 손을 잡고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래 꿈꿔온 프로 지도자의 삶.
해외 구단의 오퍼까지 뿌리치며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K리그 감독직은 대표팀과 달랐다.
첫 해 아쉽게 승격에 실패한 데 이어, 2~3년차에도 고전을 거듭하자 정정용 감독을 향한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당시에 스트레스 참 많이 받았죠. 대상포진까지 걸리고 난리였어요. 저도 큰 뜻과 꿈을 갖고 부임했는데, 마음처럼 안 되니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구단 고위층과 2~3차례 만나 자신의 거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마음을 다잡을 무렵, 경기장에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했다. 정정용 감독의 기억 속,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무력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정정용 감독 본인은 계약 기간 3년을 모두 채웠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팬들의 목소리와 몇 년 새 급격히 빨라진 '감독 경질 시계'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유다.
실제로 2021년 K리그는 3명의 감독이 시즌 중간에 물러났지만, 2022년에 6명, 지난해엔 무려 8명의 감독이 중도 퇴진했다. 올 시즌도 성남, 대구, 대전, 전북, 그리고 수원 삼성까지 해가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벌써 5팀이 사령탑을 바꿨다.
" 전체적인 선수단 분위기가 안 좋아지니까... 그래서 당시에 팬들에게 '감독인 내가 지금 나가면 팀이 더 깨질 거 같다, 팀이 다 포기하게 된다'고 얘기했는데, 안 먹히더라고요. 감독 바꾼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순간적으로 분위기는 바꿀 수 있겠지만…."

서울이랜드를 떠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김천의 지휘봉을 잡은 정정용 감독은 부임 반 시즌 만에 승격을 이끌며 재기에 성공했다.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 첫 1부리그 시즌인 올해도 감독으로서 역량을 양껏 발휘 중이다.
최근 10경기 무패를 달리는 등 김천을 '지지 않는 팀'으로 만들며 '깍두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레알 상무'라 불릴만큼 화려한 선수 수급 덕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김현욱, 김태현, 이준민 등 원소속팀에서 배고픔을 느끼던 선수들을 일깨운 정정용 감독의 '동기부여 리더십'이 발휘된 결과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제가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니까요. 이해관계 없이 그저 들어온 선수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니까. 선수들에게 돈을 더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프로 선수로서 나와 함께 여기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자고 얘기하고, 더 자유로운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줄 뿐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그냥 자른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빠른 경질 향한 정정용 감독의 개탄
-
- 입력 2024-05-31 17:54:13
- 수정2024-05-31 17:55:19

시즌 초중반 '깍두기' 김천 상무의 돌풍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정용 감독.
불과 일 년 전, 감독직을 수락할 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속 깊은 곳에서 감춰왔던 숨이 터져 나왔다.
"'프로팀 감독 자리라는 게 나에게는 여러모로 안 맞는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상무팀 지도자에 대한 외부 시선도 별로 좋지는 않죠. 가장 먼저 생각한 게, 연령별 대표팀 시절 거쳐 갔던 선수들이었어요. 거의 한 번씩은 함께했던 선수들이라서 다시 도전 의지가 생겼죠."

정정용 감독에게 프로팀 지휘봉은 아픈 상처였다.
지난 2019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폴란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사고'를 친 정정용 감독은 이듬해 서울이랜드FC의 손을 잡고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래 꿈꿔온 프로 지도자의 삶.
해외 구단의 오퍼까지 뿌리치며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K리그 감독직은 대표팀과 달랐다.
첫 해 아쉽게 승격에 실패한 데 이어, 2~3년차에도 고전을 거듭하자 정정용 감독을 향한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당시에 스트레스 참 많이 받았죠. 대상포진까지 걸리고 난리였어요. 저도 큰 뜻과 꿈을 갖고 부임했는데, 마음처럼 안 되니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구단 고위층과 2~3차례 만나 자신의 거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마음을 다잡을 무렵, 경기장에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했다. 정정용 감독의 기억 속,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무력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정정용 감독 본인은 계약 기간 3년을 모두 채웠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팬들의 목소리와 몇 년 새 급격히 빨라진 '감독 경질 시계'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유다.
실제로 2021년 K리그는 3명의 감독이 시즌 중간에 물러났지만, 2022년에 6명, 지난해엔 무려 8명의 감독이 중도 퇴진했다. 올 시즌도 성남, 대구, 대전, 전북, 그리고 수원 삼성까지 해가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벌써 5팀이 사령탑을 바꿨다.
" 전체적인 선수단 분위기가 안 좋아지니까... 그래서 당시에 팬들에게 '감독인 내가 지금 나가면 팀이 더 깨질 거 같다, 팀이 다 포기하게 된다'고 얘기했는데, 안 먹히더라고요. 감독 바꾼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순간적으로 분위기는 바꿀 수 있겠지만…."

서울이랜드를 떠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김천의 지휘봉을 잡은 정정용 감독은 부임 반 시즌 만에 승격을 이끌며 재기에 성공했다.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 첫 1부리그 시즌인 올해도 감독으로서 역량을 양껏 발휘 중이다.
최근 10경기 무패를 달리는 등 김천을 '지지 않는 팀'으로 만들며 '깍두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레알 상무'라 불릴만큼 화려한 선수 수급 덕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김현욱, 김태현, 이준민 등 원소속팀에서 배고픔을 느끼던 선수들을 일깨운 정정용 감독의 '동기부여 리더십'이 발휘된 결과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제가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니까요. 이해관계 없이 그저 들어온 선수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니까. 선수들에게 돈을 더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프로 선수로서 나와 함께 여기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자고 얘기하고, 더 자유로운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줄 뿐입니다."
-
-
이무형 기자 nobrother@kbs.co.kr
이무형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