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온 한국 복싱의 '지지 않는 태양', 최현미(33) 선수가 지난 4월 경기에서 첫 고배를 마셨습니다.
22전 21승 1무의 최현미 선수는 세계복싱협회(WBA) 페더급과 슈퍼페더급, 두 체급의 챔피언이었는데요.
세 체급 석권을 위해 도전한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패배해 '검은 별'을 달았습니다.
'무패 세계 챔피언'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최현미 선수를 KBS 취재진이 만나 패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정말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딱 '패' 한 번이 없었어요"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전의 링 위에 올라선 최현미 선수.
남녀 복서를 통틀어 현존하는 국내 유일 세계 챔피언.
'3최'. 최연소·최장수 챔피언 최현미.
화려한 커리어만큼 첫 패배가 쓰라릴 만도 한데 최현미 선수의 태도는 의연했습니다.
"승리 뒤에 따라오는 단어에 항상 '패'가 있거든요. 그 모든 걸 감수하면서 가는 게 운동선수의 삶이기 때문에." |
이번 경기에서 최현미 선수에게는 한 가지 다짐이 있었습니다.
페더급 7차 방어, 슈퍼페더급 10차 방어를 해내며 어느새 훌쩍 지나간 16년의 세월.
곳곳에서 들려오는 '너 할 만큼 했다.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니?'라는 물음에 답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최현미 선수가 치른 수많은 슈퍼페더급 방어전들.
"나 아직 건재하고, 더 할 수 있고, 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그동안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한 단계 높은 라이트급에서 캐나다의 제시카 카마라 선수와 혈투를 벌인 최현미 선수.
비록 패배했지만 이번 패가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 '화룡점정'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연승, 국가대표, 세계 챔피언의 영광만큼이나 패배의 교훈이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 "뼈는 붙을 거고, 재활은 하면 되고!"
이번 시합 3라운드에 최현미 선수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팔에 감각이 없어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10라운드 마지막까지 경기를 이어갔죠.
회복은 순조롭지만 훈련 복귀까지 최현미 선수에게 약 5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5개월 동안의 공백은 현역 선수에게 상상 이상의 손실입니다.
지난 경기에서 최현미 선수의 왼손 엄지손가락이 분쇄골절됐다. 현재 부서진 뼈를 두 개의 핀으로 고정한 상태다.
하지만 최현미 선수는 좌절하지 않고 그 이후를 준비합니다.
"인대가 아니라 뼈가 부러진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뼈는 붙잖아요. 저와 시간과의 싸움이죠." |
뼈가 부러지면 더 단단하게 굳는 것처럼 패배 후 최현미 선수의 의지도 더 굳세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유산소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링 위에 돌아올 그날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오른손이 올라가는 그때 그 느낌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훈련과 치명적인 부상을 감수해야 하는 스포츠, 복싱.
위험천만한 복싱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최현미 선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성취감을 꼽았습니다.
최현미 선수가 지난 2013년 WBA 여자 페더급 7차 방어전 승리 후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제 오른손이 올라갈 때 그 느낌은 저 말고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 희열이 24년 동안 저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
갈고닦은 모든 걸 경기에서 남김없이 쏟아낸 후 찾아온 승리의 순간.
그 순간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듭니다.
■ "최현미, 너 진짜 열심히 했다. 잘했다"
애증의 장소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최현미 선수는 고등학생 때부터 매일 남산에서 10km 러닝을 했다.
최현미 선수는 다른 사람에게 받는 응원만큼 스스로에게 보내는 격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졌지만 시원하게 링에서 내려와 동료들에게 "야, 가자! 이제 놀자!"를 외쳤습니다.
'찐한' 휴식은 마지막 힘 한 방울까지 쥐어짜낸 최현미 선수가 자신에게 주는 상입니다.
"경기에서 질 수 있죠. 그럼 열심히 놀고, 다시 시작해야죠. 저는 지금 이 시간에 머물지 않아요." |
이번이 끝이 아니라 그다음 기회가 있음을 잊지 않는 것.
최현미 선수가 패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 "대한민국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흥겨운 세리머니와 함께 경기장에 들어서는 최현미 선수. 그는 더 강인해져 링에 돌아올 것이다.
무패 복서라는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린 최현미 선수는 이제 거칠 것이 없습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화끈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복싱 팬들에게 선보일 계획인데요.
부상이 회복되면 복싱 시장이 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동과 복싱의 메카 미국에서의 경기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최현미 선수는 앞으로의 변화에 팬들의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고 전했습니다.
"제 다음 시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 시합이 훨씬 재밌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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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무패 복서’가 첫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법 [주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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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6-02 09:00:19
16년 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온 한국 복싱의 '지지 않는 태양', 최현미(33) 선수가 지난 4월 경기에서 첫 고배를 마셨습니다.
22전 21승 1무의 최현미 선수는 세계복싱협회(WBA) 페더급과 슈퍼페더급, 두 체급의 챔피언이었는데요.
세 체급 석권을 위해 도전한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패배해 '검은 별'을 달았습니다.
'무패 세계 챔피언'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최현미 선수를 KBS 취재진이 만나 패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정말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딱 '패' 한 번이 없었어요"
남녀 복서를 통틀어 현존하는 국내 유일 세계 챔피언.
'3최'. 최연소·최장수 챔피언 최현미.
화려한 커리어만큼 첫 패배가 쓰라릴 만도 한데 최현미 선수의 태도는 의연했습니다.
"승리 뒤에 따라오는 단어에 항상 '패'가 있거든요. 그 모든 걸 감수하면서 가는 게 운동선수의 삶이기 때문에." |
이번 경기에서 최현미 선수에게는 한 가지 다짐이 있었습니다.
페더급 7차 방어, 슈퍼페더급 10차 방어를 해내며 어느새 훌쩍 지나간 16년의 세월.
곳곳에서 들려오는 '너 할 만큼 했다.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니?'라는 물음에 답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나 아직 건재하고, 더 할 수 있고, 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그동안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한 단계 높은 라이트급에서 캐나다의 제시카 카마라 선수와 혈투를 벌인 최현미 선수.
비록 패배했지만 이번 패가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 '화룡점정'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연승, 국가대표, 세계 챔피언의 영광만큼이나 패배의 교훈이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 "뼈는 붙을 거고, 재활은 하면 되고!"
이번 시합 3라운드에 최현미 선수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팔에 감각이 없어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10라운드 마지막까지 경기를 이어갔죠.
회복은 순조롭지만 훈련 복귀까지 최현미 선수에게 약 5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5개월 동안의 공백은 현역 선수에게 상상 이상의 손실입니다.
하지만 최현미 선수는 좌절하지 않고 그 이후를 준비합니다.
"인대가 아니라 뼈가 부러진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뼈는 붙잖아요. 저와 시간과의 싸움이죠." |
뼈가 부러지면 더 단단하게 굳는 것처럼 패배 후 최현미 선수의 의지도 더 굳세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유산소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링 위에 돌아올 그날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오른손이 올라가는 그때 그 느낌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훈련과 치명적인 부상을 감수해야 하는 스포츠, 복싱.
위험천만한 복싱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최현미 선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성취감을 꼽았습니다.
"제 오른손이 올라갈 때 그 느낌은 저 말고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 희열이 24년 동안 저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
갈고닦은 모든 걸 경기에서 남김없이 쏟아낸 후 찾아온 승리의 순간.
그 순간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듭니다.
■ "최현미, 너 진짜 열심히 했다. 잘했다"
최현미 선수는 다른 사람에게 받는 응원만큼 스스로에게 보내는 격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졌지만 시원하게 링에서 내려와 동료들에게 "야, 가자! 이제 놀자!"를 외쳤습니다.
'찐한' 휴식은 마지막 힘 한 방울까지 쥐어짜낸 최현미 선수가 자신에게 주는 상입니다.
"경기에서 질 수 있죠. 그럼 열심히 놀고, 다시 시작해야죠. 저는 지금 이 시간에 머물지 않아요." |
이번이 끝이 아니라 그다음 기회가 있음을 잊지 않는 것.
최현미 선수가 패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 "대한민국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무패 복서라는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린 최현미 선수는 이제 거칠 것이 없습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화끈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복싱 팬들에게 선보일 계획인데요.
부상이 회복되면 복싱 시장이 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동과 복싱의 메카 미국에서의 경기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최현미 선수는 앞으로의 변화에 팬들의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고 전했습니다.
"제 다음 시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 시합이 훨씬 재밌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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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 기자 toe2to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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