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K] ‘히말라야 14좌 완등’ 김미곤 대장의 새로운 도전은?

입력 2024.06.10 (20:03) 수정 2024.06.10 (21:1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열린 K 시간입니다.

전북도 체육회가 체육역사기념관 건립을 위해 전북 출신 스포츠 스타들로부터 소장품을 기증받고 있죠.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전북 출신 산악인 김미곤 대장도 최근 자신의 소장품들을 체육회에 기증했다는 소식.

뉴스를 통해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열린 K 에서는 김 대장을 직접 모시고, 소장품에 얽힌 사연과 도전 과정의 숨겨진 얘기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미곤 대장님 어서 오십시오!

김 대장님, 지난 4일 그동안 세계의 명산을 오르내리며 착용했던 등산복과 가방, 사진 등 소장품 20여 점을 전북도 체육회에 기증했죠.

먼저 어떤 소장품들입니까?

소장품들에 얽힌 추억들도 있을 텐데, 아쉽지는 않았나요?

[답변]

전북산악연맹에서 연락이 왔는데 "전북도 체육회에서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는데 그곳에 소장품을 기증을 하면 어떻게나?"라고 해서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제 고향인 전북에 기증 하는것에 대하여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증한 제품들중에는 2018년 14좌의 마지막 낭가파르밧등반에서 입었던 옷, 그리고 칸첸중가에서 사용했던 피켈 등등 저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장비들입니다.

[앵커]

지금부터 김 대장님과 추억 여행 한번 떠나보시죠.

기증한 등산복과 배낭 등에 의지해 지난 2018년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었죠.

국내에서는 6번째, 세계적으로는 40번째 완등 기록인데요.

그때 감동이 생생하시죠?

[답변]

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2018년 낭가파르밧이 마지막으로 14좌를 완등 하였습니다.

그때 대만에 있는 등반가와 함께 등반을 하고 정상 등정도 같이 하였는데요.

대만 친구는 2013년과 2014년 히말라야 등반당시 정상등정후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우리 한국팀의 도움으로 무사히 B.C에 내려온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연으로 지금도 대만팀과 계속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면 항상 그들이 한국으로 빙벽을 하러 옵니다.

[앵커]

특히, 히말라야 해발 8천미터급 12좌는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정상에 오른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산에 오르게 된 겁니까?

[답변]

네 제 고향이 남원 지리산 밑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과 친해졌고요.

산이 어릴 적 저에게는 놀이터였습니다.

그래서 대학 산악 동아리에 가입을 하였고 전문 등반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히말라야를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세계 최고봉에 가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봉 한 봉 오르다보니 14좌 완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산에 오르면서 늘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2010년 마나슬루 등반 때는 동료 2명을 잃기도 했는데요?

험난한 세계 명산을 오르다 보면 아픈 추억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트라우마도 상당했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답변]

네 2010년 마나슬루는 저에게는 정말 가슴 아픈 산입니다.

마나슬루는 1998년도에 처음으로 히말라야를 갔던 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2010년 마나슬루를 등반하다 두 명의 대원이 실종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팀은 정상 공격 중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 8,000m에서 비박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두 명이 실종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인 2011년 실종자를 찾으러 마나슬루를 갔습니다.

가서 한 명은 찾아서 시신수 습을 해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 이후로는 내 주위에는 더 이상 그런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내가 오히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 상황에서 원초적인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산악인이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답변]

산이 있어 그곳에 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저 산이 좋아서 산악인이 됐는데요,

산악인이 되어 산을 오르다 보니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산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산 정상에 가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 대원들, 현지인들과의 만남이 매우 소중하더라고요.

그래서 산악인으로서 계속 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요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청소년보호관찰대상자들을 위한 백두대간 걷기 활동에 나섰다고요?

어떤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답변]

네, 9월에 약 1개월정도 그들과 백두대간 걷기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에 가면 순수해 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들과 그냥 걸으면서 호연지기도 기르고 그들 스스로 걸으면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이는 프랑스 "쇠이유"라는 단체에서 걷기로 치유를 해서 검증이 어느 정도 된 내용인데요,

비록 보호관찰대상자이지만 우리 청소년들에게 산을 통해 끈기와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상편집:최승리/글·구성:진경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열린K] ‘히말라야 14좌 완등’ 김미곤 대장의 새로운 도전은?
    • 입력 2024-06-10 20:03:08
    • 수정2024-06-10 21:13:44
    뉴스7(전주)
[앵커]

열린 K 시간입니다.

전북도 체육회가 체육역사기념관 건립을 위해 전북 출신 스포츠 스타들로부터 소장품을 기증받고 있죠.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전북 출신 산악인 김미곤 대장도 최근 자신의 소장품들을 체육회에 기증했다는 소식.

뉴스를 통해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열린 K 에서는 김 대장을 직접 모시고, 소장품에 얽힌 사연과 도전 과정의 숨겨진 얘기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미곤 대장님 어서 오십시오!

김 대장님, 지난 4일 그동안 세계의 명산을 오르내리며 착용했던 등산복과 가방, 사진 등 소장품 20여 점을 전북도 체육회에 기증했죠.

먼저 어떤 소장품들입니까?

소장품들에 얽힌 추억들도 있을 텐데, 아쉽지는 않았나요?

[답변]

전북산악연맹에서 연락이 왔는데 "전북도 체육회에서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는데 그곳에 소장품을 기증을 하면 어떻게나?"라고 해서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제 고향인 전북에 기증 하는것에 대하여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증한 제품들중에는 2018년 14좌의 마지막 낭가파르밧등반에서 입었던 옷, 그리고 칸첸중가에서 사용했던 피켈 등등 저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장비들입니다.

[앵커]

지금부터 김 대장님과 추억 여행 한번 떠나보시죠.

기증한 등산복과 배낭 등에 의지해 지난 2018년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었죠.

국내에서는 6번째, 세계적으로는 40번째 완등 기록인데요.

그때 감동이 생생하시죠?

[답변]

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2018년 낭가파르밧이 마지막으로 14좌를 완등 하였습니다.

그때 대만에 있는 등반가와 함께 등반을 하고 정상 등정도 같이 하였는데요.

대만 친구는 2013년과 2014년 히말라야 등반당시 정상등정후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우리 한국팀의 도움으로 무사히 B.C에 내려온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연으로 지금도 대만팀과 계속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면 항상 그들이 한국으로 빙벽을 하러 옵니다.

[앵커]

특히, 히말라야 해발 8천미터급 12좌는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정상에 오른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산에 오르게 된 겁니까?

[답변]

네 제 고향이 남원 지리산 밑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과 친해졌고요.

산이 어릴 적 저에게는 놀이터였습니다.

그래서 대학 산악 동아리에 가입을 하였고 전문 등반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히말라야를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세계 최고봉에 가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봉 한 봉 오르다보니 14좌 완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산에 오르면서 늘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2010년 마나슬루 등반 때는 동료 2명을 잃기도 했는데요?

험난한 세계 명산을 오르다 보면 아픈 추억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트라우마도 상당했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답변]

네 2010년 마나슬루는 저에게는 정말 가슴 아픈 산입니다.

마나슬루는 1998년도에 처음으로 히말라야를 갔던 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2010년 마나슬루를 등반하다 두 명의 대원이 실종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팀은 정상 공격 중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 8,000m에서 비박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두 명이 실종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인 2011년 실종자를 찾으러 마나슬루를 갔습니다.

가서 한 명은 찾아서 시신수 습을 해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 이후로는 내 주위에는 더 이상 그런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내가 오히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 상황에서 원초적인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산악인이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답변]

산이 있어 그곳에 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저 산이 좋아서 산악인이 됐는데요,

산악인이 되어 산을 오르다 보니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산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산 정상에 가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 대원들, 현지인들과의 만남이 매우 소중하더라고요.

그래서 산악인으로서 계속 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요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청소년보호관찰대상자들을 위한 백두대간 걷기 활동에 나섰다고요?

어떤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답변]

네, 9월에 약 1개월정도 그들과 백두대간 걷기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에 가면 순수해 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들과 그냥 걸으면서 호연지기도 기르고 그들 스스로 걸으면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이는 프랑스 "쇠이유"라는 단체에서 걷기로 치유를 해서 검증이 어느 정도 된 내용인데요,

비록 보호관찰대상자이지만 우리 청소년들에게 산을 통해 끈기와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상편집:최승리/글·구성:진경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전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