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터 보고 도박 끊어요?”…업계 ‘조상’의 이유 있는 분통 [주말엔]

입력 2024.06.15 (09:00) 수정 2024.06.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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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총 1천35명의 청소년이 적발됐습니다.

도박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의 평균연령은 2019년 17.3세에서 지난해 16.1세로 낮아졌습니다.

심지어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들은 학생들을 '총판'으로 고용해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며 학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한 고등학생은 온라인 도박에 빠져 사채를 빌렸다가 돈을 갚으라는 압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도박 뉴스가 끊이지 않자 "대응을 잘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있습니다.

■ "사실 제가 업계 조상입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교장 조호연 씨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교장 조호연 씨

청소년 도박 근절을 목표로 한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를 세운 조호연 교장을 지난 10일 서울 금천구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가 청소년 도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업계 경험이 컸습니다.

20여 년 전 영상물등급위원회 정식 심의를 받고 온라인 도박을 운영해 본, 자칭 '이 바닥 조상'이었던 겁니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온라인 도박이 불법화된 이후에는 중국으로 넘어가 불법 도박 사이트의 기반을 다져주는 일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랑 같이 일했던 팀들이 전부 다 중국으로 가서 불법화에 대한 체계를 갖추는 일을 했었습니다. 카지노가 됐든 토토가 됐든 소스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 다음에 솔루션 제공을 했어요. IP나 해외서버 임대, 이런 갖가지 전반적인 일을 다 했습니다."

■ 친구 아들이 온라인 도박 중독!?

이후 불법적인 일에 회의를 느끼고 국내에서 합법적인 사업을 하던 조 교장은 친구로부터 부탁 하나를 받게 됩니다.

당시 친구 아들이 중학생이었는데, 도박에 빠져 몇천만 원을 탕진했다면서 아들이 자기 말은 듣지 않으니 만나서 얘기 좀 나눠줄 수 있냐는 거였습니다.

그 학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학교에 온라인 불법 도박이 문화처럼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게다가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던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들이 이제는 어린 학생들을 꼬드겨 돈을 벌고 있다는 것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는 3년 전 '도박없는학교'를 세운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친구 아들, 그 친구들 한 10여 명을 제가 불러 모았어요. 그 애들을 토대로 도박없는학교 1기가 됐고, 지금까지 활동을 많이 해줬죠. 그 애들은 도박 다 끊었습니다. 다 끊었습니다, 도박을."

‘도박없는학교’ 활동에 참여한 고등학생들‘도박없는학교’ 활동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 "5만 원 벌려다가 5억짜리 통장이 잠겨요"

청소년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는 학생들로부터 불법 도박 사이트 제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도박 입금 계좌에 돈을 넣고 게임머니로 바꾸는 과정을 기록해 경찰에 신고했고, 지난해 차명계좌(대포통장) 280여 개가 줄줄이 정지됐습니다.

학생들의 제보로 입금 계좌가 정지된 불법 도박 사이트들학생들의 제보로 입금 계좌가 정지된 불법 도박 사이트들

정부도 청소년 대상 불법 도박을 엄벌하겠다고 나서는 등 변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까지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미성년자 입장불가라는 글을 보지 못했다는 조 교장은 "우리가 활동한 이후 미성년자를 안 받기 시작했다"면서 "그때는 솔직히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도박없는학교가 누굴 딱 찍으면 거의 죽는다고 본다"면서 "5만 원 벌자고 애들 받았다가 5억짜리 통장이 잠긴다"며 도박 사이트 사냥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학생 : 선생님, 저 도박 사이트 이름 바꿔서 저기로 갑니다!
교장 : 어떻게 알았냐?
학생 : 어느 총판이 이렇게 알려줬습니다.
교장 : 찾아가서 또 죽이자!

■ 해본 사람이 내린 결론, '예방'이 아닌 '박멸'

오랫동안 온라인 도박 업계에 몸담았던 조 교장은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 정부나 공공기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비판합니다.

'도박하지 말자', '청소년 도박은 위험한 거다' 등의 공익광고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박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도박을 끊었다가도 그런 것들 보고 갑자기 잊었던 도박이 생각나서 또 들어간다"면서 "무수하게 많은 학생한테서 다 나온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소년 도박 예방 공익광고’ 포스터를 비판하는 조호연 교장‘청소년 도박 예방 공익광고’ 포스터를 비판하는 조호연 교장

도박 사이트 IP 주소 차단도 소용이 없다면서 "요즘 학생들은 휴대전화에 무료 VPN(Virtual Private Network·가상 사설망) 앱을 다운 받아 우회해서 다 들어갈 수 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도박 사이트 하나에 IP가 500개에서 1,000개가 물려 있기 때문에 사이트를 완전히 잠글 수도 없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계좌 정지로 불법 도박 조직의 돈줄을 끊고 '박멸'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도박업을 할 때 머릿속에 있던 고민거리가 원활한 충환전이에요. 충환전 그거 진짜 어렵습니다. 원활하지가 않아요. (정부 기관의) 수천 명 되는 인력이 계좌로만 관심을 돌리면 얼마든지 박멸할 수 있어요."
(※ 충환전 : 도박 사이트 게임머니의 충전과 환전)

■ "은행 실무자 눈엔 훤히 보일 겁니다"

전국 곳곳의 학생들이 ‘도박없는학교’에 제보한 불법 도박 사이트 입금 계좌들전국 곳곳의 학생들이 ‘도박없는학교’에 제보한 불법 도박 사이트 입금 계좌들

조 교장은 도박에 사용된 계좌를 발급해 준 건 은행이기 때문에 은행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그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이용되는 대포통장과 가상계좌 번호를 모아 은행에 전달할 계획"이라면서 "은행 실무자 눈엔 불법 계좌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계좌를 제보하면 은행은 이를 토대로 모니터링해달라는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은행이 해당 계좌의 출금 한도를 대폭 내리고, 예금주에게 불법이 아님을 증빙하라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등 전화 금융사기에 가능한 계좌 지급정지를 불법 도박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법안이 만들어질 동안에도 청소년들은 지속적으로 도박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도박 베팅자금 입출금 계좌의 예>
- 유럽 프로축구 리그가 열리는 자정쯤 돈이 한꺼번에 몰렸다가 경기가 끝나면 다시 돈이 빠져나간다.
- 개인 통장인데 하루에 5억씩 거래가 되고, 500~1,0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한 계좌에 매일 꾸준히 입금한다.

■ 손주가 가는 학교는 '도박 없는 학교'가 되길…

조 교장이 외치는 '청소년 도박 근절'에는 공익적인 목적과는 별개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제가 어린 손주가 있다"고 밝힌 그는 "나이는 아직 어린데, 그 애가 학교에 갈 땐 정말로 도박이 아예 없는 무균실 같은 학교를 물려주고 싶다"며 개인적인 소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미성년자 입장불가'만 공지한 채 여전히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도박 사이트들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근원을 뿌리 뽑아야죠. 19살은 도박하면 안 되고, 20살은 되나? 아니죠. 불법 사이트들 착각하는 게 미성년자만 안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걔네 존재 자체를 없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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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포스터 보고 도박 끊어요?”…업계 ‘조상’의 이유 있는 분통 [주말엔]
    • 입력 2024-06-15 09:00:16
    • 수정2024-06-15 09:07:14
    주말엔

경찰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총 1천35명의 청소년이 적발됐습니다.

도박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의 평균연령은 2019년 17.3세에서 지난해 16.1세로 낮아졌습니다.

심지어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들은 학생들을 '총판'으로 고용해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며 학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한 고등학생은 온라인 도박에 빠져 사채를 빌렸다가 돈을 갚으라는 압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도박 뉴스가 끊이지 않자 "대응을 잘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있습니다.

■ "사실 제가 업계 조상입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교장 조호연 씨
청소년 도박 근절을 목표로 한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를 세운 조호연 교장을 지난 10일 서울 금천구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가 청소년 도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업계 경험이 컸습니다.

20여 년 전 영상물등급위원회 정식 심의를 받고 온라인 도박을 운영해 본, 자칭 '이 바닥 조상'이었던 겁니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온라인 도박이 불법화된 이후에는 중국으로 넘어가 불법 도박 사이트의 기반을 다져주는 일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랑 같이 일했던 팀들이 전부 다 중국으로 가서 불법화에 대한 체계를 갖추는 일을 했었습니다. 카지노가 됐든 토토가 됐든 소스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 다음에 솔루션 제공을 했어요. IP나 해외서버 임대, 이런 갖가지 전반적인 일을 다 했습니다."

■ 친구 아들이 온라인 도박 중독!?

이후 불법적인 일에 회의를 느끼고 국내에서 합법적인 사업을 하던 조 교장은 친구로부터 부탁 하나를 받게 됩니다.

당시 친구 아들이 중학생이었는데, 도박에 빠져 몇천만 원을 탕진했다면서 아들이 자기 말은 듣지 않으니 만나서 얘기 좀 나눠줄 수 있냐는 거였습니다.

그 학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학교에 온라인 불법 도박이 문화처럼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게다가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던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들이 이제는 어린 학생들을 꼬드겨 돈을 벌고 있다는 것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는 3년 전 '도박없는학교'를 세운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친구 아들, 그 친구들 한 10여 명을 제가 불러 모았어요. 그 애들을 토대로 도박없는학교 1기가 됐고, 지금까지 활동을 많이 해줬죠. 그 애들은 도박 다 끊었습니다. 다 끊었습니다, 도박을."

‘도박없는학교’ 활동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 "5만 원 벌려다가 5억짜리 통장이 잠겨요"

청소년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는 학생들로부터 불법 도박 사이트 제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도박 입금 계좌에 돈을 넣고 게임머니로 바꾸는 과정을 기록해 경찰에 신고했고, 지난해 차명계좌(대포통장) 280여 개가 줄줄이 정지됐습니다.

학생들의 제보로 입금 계좌가 정지된 불법 도박 사이트들
정부도 청소년 대상 불법 도박을 엄벌하겠다고 나서는 등 변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까지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미성년자 입장불가라는 글을 보지 못했다는 조 교장은 "우리가 활동한 이후 미성년자를 안 받기 시작했다"면서 "그때는 솔직히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도박없는학교가 누굴 딱 찍으면 거의 죽는다고 본다"면서 "5만 원 벌자고 애들 받았다가 5억짜리 통장이 잠긴다"며 도박 사이트 사냥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학생 : 선생님, 저 도박 사이트 이름 바꿔서 저기로 갑니다!
교장 : 어떻게 알았냐?
학생 : 어느 총판이 이렇게 알려줬습니다.
교장 : 찾아가서 또 죽이자!

■ 해본 사람이 내린 결론, '예방'이 아닌 '박멸'

오랫동안 온라인 도박 업계에 몸담았던 조 교장은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 정부나 공공기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비판합니다.

'도박하지 말자', '청소년 도박은 위험한 거다' 등의 공익광고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박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도박을 끊었다가도 그런 것들 보고 갑자기 잊었던 도박이 생각나서 또 들어간다"면서 "무수하게 많은 학생한테서 다 나온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소년 도박 예방 공익광고’ 포스터를 비판하는 조호연 교장
도박 사이트 IP 주소 차단도 소용이 없다면서 "요즘 학생들은 휴대전화에 무료 VPN(Virtual Private Network·가상 사설망) 앱을 다운 받아 우회해서 다 들어갈 수 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도박 사이트 하나에 IP가 500개에서 1,000개가 물려 있기 때문에 사이트를 완전히 잠글 수도 없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계좌 정지로 불법 도박 조직의 돈줄을 끊고 '박멸'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도박업을 할 때 머릿속에 있던 고민거리가 원활한 충환전이에요. 충환전 그거 진짜 어렵습니다. 원활하지가 않아요. (정부 기관의) 수천 명 되는 인력이 계좌로만 관심을 돌리면 얼마든지 박멸할 수 있어요."
(※ 충환전 : 도박 사이트 게임머니의 충전과 환전)

■ "은행 실무자 눈엔 훤히 보일 겁니다"

전국 곳곳의 학생들이 ‘도박없는학교’에 제보한 불법 도박 사이트 입금 계좌들
조 교장은 도박에 사용된 계좌를 발급해 준 건 은행이기 때문에 은행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그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이용되는 대포통장과 가상계좌 번호를 모아 은행에 전달할 계획"이라면서 "은행 실무자 눈엔 불법 계좌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계좌를 제보하면 은행은 이를 토대로 모니터링해달라는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은행이 해당 계좌의 출금 한도를 대폭 내리고, 예금주에게 불법이 아님을 증빙하라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등 전화 금융사기에 가능한 계좌 지급정지를 불법 도박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법안이 만들어질 동안에도 청소년들은 지속적으로 도박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도박 베팅자금 입출금 계좌의 예>
- 유럽 프로축구 리그가 열리는 자정쯤 돈이 한꺼번에 몰렸다가 경기가 끝나면 다시 돈이 빠져나간다.
- 개인 통장인데 하루에 5억씩 거래가 되고, 500~1,0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한 계좌에 매일 꾸준히 입금한다.

■ 손주가 가는 학교는 '도박 없는 학교'가 되길…

조 교장이 외치는 '청소년 도박 근절'에는 공익적인 목적과는 별개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제가 어린 손주가 있다"고 밝힌 그는 "나이는 아직 어린데, 그 애가 학교에 갈 땐 정말로 도박이 아예 없는 무균실 같은 학교를 물려주고 싶다"며 개인적인 소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미성년자 입장불가'만 공지한 채 여전히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도박 사이트들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근원을 뿌리 뽑아야죠. 19살은 도박하면 안 되고, 20살은 되나? 아니죠. 불법 사이트들 착각하는 게 미성년자만 안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걔네 존재 자체를 없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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