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행 피해자 향한 국가 권력의 ‘2차 가해’…20년 지난 지금은? [주말엔]

입력 2024.06.16 (07:00) 수정 2024.06.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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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년 전 사건에 우리 사회가 다시 분노했습니다.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한 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때문입니다. "당시 수사기관과 법원이 하지 못한 처벌을 우리가 하자"는 '사적 제재'의 목소리도 높아집니다.

사건은 밀양에서 벌어졌고, 울산에서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습니다. KBS 울산은 20년 전 수사와 판결을 비판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짚어봅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울산 남부경찰서 소속 경찰 한 명은 피해 학생을 향해 "네가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는 폭언을 해 정직 1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마주 보게 세워놓는 등, 공권력에 의한 '2차 가해'가 다반사였습니다.

경찰은 결국 "담당자들을 인사 조처하고, 여성 경찰 조사관을 추가 배치하는 등 노력하겠다"며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책위원회 측은 "국가 권력이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결국,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가해졌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게 국가가 5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어땠을까요? 기소된 10명에게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 측과 가해자가 합의했다'였습니다. 합의서를 받자마자 가해 학부모들의 태도가 바뀌어 피해자 측이 "합의서를 써준 걸 후회한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소년부로 넘어간 사건에 피해자 측은 항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국가 권력의 2차 가해와 솜방망이 판결은 부메랑이 되어 '사적 제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전문가들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합니다.

■스토킹 신고에 "호감 갖고 한 거 아니냐", 성폭력 신고에 "합의하자고 문자 보내봐"


"피해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공권력이 경찰인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존중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을 "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다. 그냥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김혜란 / 울산 동구 성폭력상담소 소장

지난해 울산에서는 함께 술을 마셨던 남성이 성폭행하려 했다는 신고를 한 여성이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더한 사건도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남성이 여성에게 "좋은 쪽으로 해결하자"는 문자를 보냈다는 말을 전하자, 수사관이 "그러면 5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문자를 한번 보내봐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수사관은 해당 사건 수사에서 배제조치 됐습니다.

2022년 서울에서는 한 여성이 이틀 연속으로 뒤쫓아온 남성을 스토킹으로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남자가 호감을 갖고 그랬던 거 아니냐"라고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여성이 화를 내자, 경찰이 "나는 그 사람을 못 봤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경찰관은 "당시에도 피해자에게 거듭 사과했고,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명했습니다.

경찰청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경찰에 의한 2차 피해실태 연구'에 따르면, 여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응답자 10명 중 8명이 피해 접수 단계에서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가장 빈번한 피해는 '피해를 사소화하는 발언이나 태도'였다고 답했습니다.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성범죄 신고자가 많다는 겁니다.

■초등학생 성매매 사건에 "합의했다"며 '집행유예'…감형 사유 되어야 할까?

"가해자 측이 합의를 부탁하니까 법정 대리인이 "그냥 합의해줘야겠다"고 해서 자녀를 설득해 합의서를 만드는 경우도 많거든요…판결 내리기 전에 "지금도 합의를 할 의사가 있느냐"고 한 번 확인해보는 건 제도상으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김지훈 / 변호사

전문가들은 밀양 성폭행 사건 판결에 대한 분노가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동·청소년 문제임에도 '법정 대리인의 합의'를 감형 사유로 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합의 과정에서 친권자의 의사가 크게 반영될 수 있는데, 이걸 양형 이유에 오롯이 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미성년 성범죄 합의에 따른 감형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강원도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현금과 게임기기를 주며 성매매를 제안하고 성관계를 한 남성 6명이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해자 한 명과 합의가 됐고, 공탁금도 걸었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의 부모는 "나는 합의한 적도 없고, 공탁금이 아닌 엄벌을 원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대로 2020년에는 10대 여성 3명을 상대로 성적 학대를 저지른 50대 남성이 "피해 여성들과 합의"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아동·청소년 상대 범행은 피해자와의 합의서를
중대한 감형자료로 쓸 수 없다"며 징역 7년을 선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여전히 '제각각'인 미성년 성범죄 합의 감형 여부는 '사법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경찰·검찰에 2차 피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길 바란다"


지난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기자회견을 열고 밀양 성폭행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신 전했습니다. 피해자 측은 "분노하고 걱정해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면서도, "경찰·검찰에 2차 피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상담소 측도 당시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수사기관 측이 "피의자 검거에 중점을 두느라 피해자 조치에 미흡했다"는 해명을 했다면서도, '가해자 엄벌'에 집중한다며 피해자 보호를 놓치는 상황이 지금도 만연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피해자 측은 "이 사건이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측이 말한대로 반짝 관심으로 끝나 또 다른 2차 가해를 겪는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20년 전 사건을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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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성폭행 피해자 향한 국가 권력의 ‘2차 가해’…20년 지난 지금은? [주말엔]
    • 입력 2024-06-16 07:00:09
    • 수정2024-06-16 07:01:22
    주말엔
20년 전 사건에 우리 사회가 다시 분노했습니다.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한 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때문입니다. "당시 수사기관과 법원이 하지 못한 처벌을 우리가 하자"는 '사적 제재'의 목소리도 높아집니다.<br /><br />사건은 밀양에서 벌어졌고, 울산에서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습니다. KBS 울산은 20년 전 수사와 판결을 비판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짚어봅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울산 남부경찰서 소속 경찰 한 명은 피해 학생을 향해 "네가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는 폭언을 해 정직 1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마주 보게 세워놓는 등, 공권력에 의한 '2차 가해'가 다반사였습니다.

경찰은 결국 "담당자들을 인사 조처하고, 여성 경찰 조사관을 추가 배치하는 등 노력하겠다"며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책위원회 측은 "국가 권력이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결국,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가해졌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게 국가가 5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어땠을까요? 기소된 10명에게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 측과 가해자가 합의했다'였습니다. 합의서를 받자마자 가해 학부모들의 태도가 바뀌어 피해자 측이 "합의서를 써준 걸 후회한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소년부로 넘어간 사건에 피해자 측은 항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국가 권력의 2차 가해와 솜방망이 판결은 부메랑이 되어 '사적 제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전문가들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합니다.

■스토킹 신고에 "호감 갖고 한 거 아니냐", 성폭력 신고에 "합의하자고 문자 보내봐"


"피해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공권력이 경찰인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존중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을 "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다. 그냥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김혜란 / 울산 동구 성폭력상담소 소장

지난해 울산에서는 함께 술을 마셨던 남성이 성폭행하려 했다는 신고를 한 여성이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더한 사건도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남성이 여성에게 "좋은 쪽으로 해결하자"는 문자를 보냈다는 말을 전하자, 수사관이 "그러면 5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문자를 한번 보내봐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수사관은 해당 사건 수사에서 배제조치 됐습니다.

2022년 서울에서는 한 여성이 이틀 연속으로 뒤쫓아온 남성을 스토킹으로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남자가 호감을 갖고 그랬던 거 아니냐"라고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여성이 화를 내자, 경찰이 "나는 그 사람을 못 봤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경찰관은 "당시에도 피해자에게 거듭 사과했고,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명했습니다.

경찰청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경찰에 의한 2차 피해실태 연구'에 따르면, 여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응답자 10명 중 8명이 피해 접수 단계에서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가장 빈번한 피해는 '피해를 사소화하는 발언이나 태도'였다고 답했습니다.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성범죄 신고자가 많다는 겁니다.

■초등학생 성매매 사건에 "합의했다"며 '집행유예'…감형 사유 되어야 할까?

"가해자 측이 합의를 부탁하니까 법정 대리인이 "그냥 합의해줘야겠다"고 해서 자녀를 설득해 합의서를 만드는 경우도 많거든요…판결 내리기 전에 "지금도 합의를 할 의사가 있느냐"고 한 번 확인해보는 건 제도상으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김지훈 / 변호사

전문가들은 밀양 성폭행 사건 판결에 대한 분노가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동·청소년 문제임에도 '법정 대리인의 합의'를 감형 사유로 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합의 과정에서 친권자의 의사가 크게 반영될 수 있는데, 이걸 양형 이유에 오롯이 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미성년 성범죄 합의에 따른 감형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강원도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현금과 게임기기를 주며 성매매를 제안하고 성관계를 한 남성 6명이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해자 한 명과 합의가 됐고, 공탁금도 걸었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의 부모는 "나는 합의한 적도 없고, 공탁금이 아닌 엄벌을 원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대로 2020년에는 10대 여성 3명을 상대로 성적 학대를 저지른 50대 남성이 "피해 여성들과 합의"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아동·청소년 상대 범행은 피해자와의 합의서를
중대한 감형자료로 쓸 수 없다"며 징역 7년을 선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여전히 '제각각'인 미성년 성범죄 합의 감형 여부는 '사법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경찰·검찰에 2차 피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길 바란다"


지난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기자회견을 열고 밀양 성폭행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신 전했습니다. 피해자 측은 "분노하고 걱정해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면서도, "경찰·검찰에 2차 피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상담소 측도 당시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수사기관 측이 "피의자 검거에 중점을 두느라 피해자 조치에 미흡했다"는 해명을 했다면서도, '가해자 엄벌'에 집중한다며 피해자 보호를 놓치는 상황이 지금도 만연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피해자 측은 "이 사건이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측이 말한대로 반짝 관심으로 끝나 또 다른 2차 가해를 겪는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20년 전 사건을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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